양민석 목사가 고든 맥도날드의 책을 무료로 배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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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2025-01-25 07: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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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지구한인목사회 제53회기 정기총회가 11월 12일 뉴욕만나교회에서 열렸다. 예배에서 양민석 목사(뉴욕그레잇넥교회)는 마가복음 6:34-44 말씀을 본문으로 “빈들의 식탁(잔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양민석 목사는 설교중에 고든 맥도날드의 저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했으며,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하는 목사들을 위해 10권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티켓을 제공했다. 어떤 내용의 책이기에 그렇게 했을까?
고든 맥도날드가 1997년에 낸 저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은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영적 발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내면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맥도날드는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기 성찰과 내면의 평화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겪는 도전과 갈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영감을 제공하며, 내면의 질서를 통해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을 안내한다. 맥도날드는 기도와 명상, 그리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요소들이 영적 성장에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위한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안하며, 독자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도록 독려한다.
다음은 양민석 목사가 ‘싱크홀 증후군’ 등 책의 일부분을 나눈 내용이다.
1.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와 영적성장론
신앙의 싱크홀 증후군, 어떻게 극복할까
영적 메마름의 극복을 위한 대안과 해법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고 목회자의 멘토로 잘 알려진 고든 맥도날드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책은 신앙인들과 목사님들의 ‘싱크홀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핵심으로 다룬다. 싱크홀이란 멀쩡한 도로가 갑자기 어느 날 확 꺼져버리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싱크홀이 생겨 아파트가 무너지기도 한다. 갑자기 푹 꺼지는 이 ‘싱크홀 신드롬’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함몰 웅덩이 증후군’이다.
그런데 ‘싱크홀 신드롬’은 땅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땅에서도 일어난다. 특별히 신앙이 좋다고 하는 분들, 믿음이 좋다고 하는 분들, 목사님들도 너무나 많이 이 싱크홀 증후군이 생긴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설교를 잘 하고, 목회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한다. 겉으로 볼 때는 반듯하고 은혜가 풍성한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인 메말림으로, 안에서 점점 뭔가 메말라 가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내부에서 뭔가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점점 하나씩 무너지는 현상들이 있는데, 이것을 잘 캐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도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 워낙 목회를 잘하셨던 분으로 교회를 크게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회가 커져도 마음의 기쁨이 없었다. 성도를 봐도 반갑지 않았다. 설교를 멋지게 잘한 것 같은데, 본인 마음속에 건조함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자기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뭔가 알지 못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면서, 나중에는 목회를 못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한순간에 함몰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를 잘했던 분들이 한순간에 탈선을 하는 것이다. 돈으로 탈선하게 되고, 명예로 탈선하게 되고, 이성으로 탈선하게 되고, 분노 조절장애증으로 탈선한다. 인격이 훌륭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막 분노가 폭발하며 갑자기 인격이 무너지고 세상법에 무너지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들을 잘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돼야 된다고 강조한다.
고든 맥도날드는 여러 가지 영적 대안들을 제시한다. 내적인 빈들의 메마름을 치료하기 위해서 여러 대안들을 내놓는데 그중에서 책을 읽다가 제 마음속에 확 들어왔던 것은 CF이다. CF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캐피털 에프’ 즉 대문자 F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F는 프렌드(Friend)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베스트 프렌드, 절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절친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내면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친구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캐피털 에프’가 있어야 된다는데 공감했다. 그러면서 2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2.
보이지 않는 CF, 예수님과의 깊은 우정
보이는 CF,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
친구 되신 예수님은 영적 회복의 열쇠
첫째, 보이지 않는 CF(절친)가 있어야 된다. 그 친구가 누구인가? 예수님인 줄로 믿는다. 요한복음 15장 14~15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신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내면과 교류하고 싶은 친구가 되어주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보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분을 과연 CF(절친)로 모시고 사는가? 정말 예수님 때문에 살맛 나고, 예수님 때문에 신이 나고, 예수님 때문에 정말 내 마음의 상처를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되신 예수님으로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인가?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친구 되신 예수님을 많이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하기 위해서 함께 하는 예수님은 계셨는데, 목회하려고 설교하려고 사역하려고 같이 가는 예수님은 있었는데, 친구로서의 예수님은 많이 내 안에 없었다는 것이 반성이 되었다. 예수님이 진짜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CF(절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있어야 된다.
다른 하나는 보이는 CF(절친)도 있어야 된다. 보이는 CF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우리 친구들, 옆에 앉아있는 우리 성도들이다. 우리가 옆에 앉아 있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모임 안에서 함께 하는 공동체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CF가 돼야 될 줄로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바로 목사회가 이러한 공동체가 돼야 되지 않을까?
3.
예수님의 분출된 사랑, 빈들에 식탁을 차리다
스플랑크니조마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비
선교사의 헌신은 한국교회 부흥의 뿌리
둘째,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은 상대의 필요에 반응하는 마음이다. 본문에 사용된 ‘불쌍히 여긴다’라고 말은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이다. 복음서에 12번 나와있다. 그것은 창자가 뒤틀릴 정도의 격한 감정의 움직임과 더불어, 상대 필요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동정심과 다르다. 저 사람은 참 불쌍하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분출되어서 나오는 그러한 긍휼의 마음을 의미한다.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하거나 선행을 말할 때에, 의도된 선행이 있고 분출된 선행이 있다. 의도된 선행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포지션을 감당하기 위해서 의무로 또는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선행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체면이 유지되고, 목사라고 하는 타이틀이 괜찮게 보인다. 그런것 때문에 우리가 선행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그런 의도된 선행이 아니라 분출된 선행을 보여주신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긍휼의 마음 때문에 베풀어 주셨던 오병이어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긴다’고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를 보면 그 답은 행동이다. 잘 알고 있는 누가복음 10장 34절 이하의 말씀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온다. 강도 만난 사람들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보고 불쌍히 여겨 자기의 모든 것을 털어서 도와주지만, 전에 지나갔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의도된 선행과 의도된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출되는 자비심으로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메마르고 황량한 빈들에서 풍성한 식탁이 마련되고 영적인 잔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있었던 ‘스플랑크니조마이’이라고 하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분출되는 그러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이와 같은 풍성함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저는 목회가 흔들리고 또 차가워질 때마다 양화진에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사역하다가 돌아가신 수십명 선교사들의 묘가 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사역할 때 썼던 편지라든가 기록들을 보면, 참 한국이 소망 없는 빈들과 같았다고 하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서 조선초기 1891년부터 1908년까지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고 제중원에서 사역하고 선교에 헌신했던 빈튼 선교사가 1891년 4월에 쓴 편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은 배설물과 비위생적인 물질에서 나오는 병원균과 그리고 끊임없이 암반 위의 토양층 아래의 쓰레기들에서 나오는 병균과 세균들이 득실거린다. 그리고 이런 환경들 때문에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 열악한 환경과 전염병 때문에 여러 선교사들이 죽었다. 선교하러 온 지 얼마 안 되어 빈튼 선교사의 가족들도 죽음을 맞이한다. 먼저 1살짜리 왈터가 죽는다. 그리고 곧 이어서 4살짜리 케드 윌라드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6개월짜리 메리가 또한 죽어서 양화진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1903년도에 부인 레피시아가 역시 병에 걸려서 차가운 땅 양화진에 묻히게 된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교사들이 풍토병으로 또 전염병 때문에 죽어서 묘소를 채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선교사들이 이런 현실 가운데서도 이들이 꿋꿋이 사역했던 이유가 뭘까? 빈들과 같은 조선 한가운데서도 조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이 분출된 따뜻한 마음, 의도된 그런 마음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따뜻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분출된 마음이 그들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의 글의 고백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런 마음들이 빈들과 같은 조선에 학교라는 식탁을 차려주었고, 병원이란 식탁을 차려주었고, 교회라는 식탁을 차려주었고, 여성인권이라는 식탁을 차려주면서 조선에는 일어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흥하여 세계 각처에다가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 2등 파송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바로 이들 선교사들이 심어놓은 분출되는 따뜻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 실행에 옮기는 마음, 뭔가 그냥 불쌍하고 마음속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풍성함을 만들었다. 목사회가 저 목사님이 많이 힘들겠다는 것을 그냥 마음으로만 품지 말고 뭔가 긍휼함들이 분출되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누지문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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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읽기를 시작했다가 전문을 자세히 읽으며 끝냈습니다.
양민석 목사님의 진심어린 마음을 깨닫게 되며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리라 생각됩니다.
"의도된 선행은 필요에 의해서 교회 안에서 흔히 보이지만
분출된 선행 , 분출되는 따듯한 마음은 본질적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