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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근 목사 “그리스도인은 왜 투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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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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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미국 대선을 치루며 큰 폭풍이 미전국과 세계에 휘몰아쳤다. 선거후 첫 주일을 맞이하여 뉴욕감리교회 강원근 목사는 11월 8일 주일설교에서 사사기 9:7-15를 본문으로 “사회 참여: 그리스도인은 왜 투표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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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근 목사는 서강대학교 경제학 석사, 씨라큐스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예일대학교 신학 석사, 씨라큐스대학교 정치학 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산업은행과 미국 상무성 경제분석국에서 일한 독특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다.

 

1. 들어가는 말: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

 

지난주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개표 결과로 인해서 온 세계가 긴장한 한 주였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투표결과에 대해서 양측 후보가 서로 다른 입장을 내면서 어수선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 나라가 속히 안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평신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참여를 해야 하는가? 만약 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해야 하는가? 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 등 많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 질문들에 대한 성경의 답변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왜 정치 참여를 해야 하는가?

 

주일이 되면 성도들이 많이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주일에 진행되는 아이들의 여러가지 학교 행사입니다. 각종 체육행사와 기념행사들이 주일에 많이 집중되어 있어서 성도들은 주일에 교회를 갈 것인지, 아니면 행사장으로 갈 건지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창조론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진화론을 배우면서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은 교회 학교에서 기도하라고 배우지만, 정작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는 공식적으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세상의 가치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주일을 지키고, 모든 상황 가운데서 기도하면서, 또 창조론을 굳건하게 믿으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 것을 세상이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 사회의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아예 학교 행사를 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의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정치적 참여 즉,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시대 동안 전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님은 『현대 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에서 교회와 정치/사회참여와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교차로가 있습니다. 이 교차로에서는 자꾸만 사고가 일어납니다. 차들끼리 부딪히고 사람들이 다칩니다. 이 교차로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신호등 때문입니다. 한쪽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다른 한쪽은 빨간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 동시에 파란불이 들어옵니다. 운전자들이 신호만 보고 통행을 하다가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본 교회는 교차로 옆에 구급차를 세워 두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 피를 흘리고 죽어 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실어가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강도 만난 사람을 나귀에 실어 여관으로 데려 가서 치료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기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호등 때문에 사고는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사람은 죽어 갑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구급차의 기능과 함께 잘못된 신호등을 바꾸어 다는 일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에 대해 교회는 병든 자, 재앙 만난 자, 가난한 자, 억울한 자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구급차의 역할은 많이 했지만, 잘못된 신호등 자체를 바꾸는 근원적 문제의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3. 정치적 무관심의 폐해

 

여러분들 가운데는 '그래도 교회와 정치는 무관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 교회와 정치가 무관할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까요? 오늘의 본문인 사사기 9장에 보면, 40여 년 동안 선정을 베풀면서 이스라엘을 통치한 기드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도 늙어서 이제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드온에게는 많은 부인이 있었고 무려 70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 그 중 첩의 소생인 아비멜렉이라는 약삭빠르고, 권력욕이 대단한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고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 가서 세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세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그는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자인 자기 이복형제들을 모두 다 죽여 버렸습니다. 아비멜렉이 이복형제들을 모두 죽일 때 딱 한 사람, 형제들 중에서도 막내였던 요담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요담은 그리심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온 세겜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요담의 우화'입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숲에 있는 나무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 중에 왕을 세우자." 나무들은 먼저 감람나무에게 찾아갔습니다. "감람나무여, 숲의 왕이 되어 주소서" 감람나무는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바빠서 안 된다" 그 다음에는 무화과나무에게 갔더니 그도 거절했습니다. "나는 단 실과를 맺어야 하니 안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포도나무를 찾아갔더니 "나는 포도주 만드는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해야 하니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숲의 나무들이 찾아간 것이 가시나무였습니다. 부탁을 했더니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겠거든 다 내게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과 말하며 수락합니다. 

 

이 우화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같이 이 세상의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함으로써 세상의 권세가 가시나무에게로 넘어가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 무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는 정치 지도자를 세울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4. 미국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 역사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미국정치학, 특히 선거분석을 위해서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동향을 필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만큼 복음주의자들의 현실정치참여가 매우 활발하다는 말입니다. 미국 역사 초반부에는 개신교도들이 크게 득세를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몰려오는 천주교 신자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오는 유태인들, 아울러 중국, 일본인들까지 합세하면서 그들 신앙의 전통을 지키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한때 KKK라는 단체를 만들어 천주교 성도들과 유태인들을 테러하고 린치 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Ku Klux Klan(KKK)하면 흔히 흑인 탄압 단체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고, 원래 KKK는 천주교인들과 유태인들을 미국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극우파 개신교도들이 만든 단체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비개신교인들과 아울러 과학주의, 상업주의의 발달로 미국은 더 이상 복음주의자들의 신앙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점점 주변세력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미국을 자기들 신앙으로 움직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고립되어서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채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학교를 만들고, 교회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세상의 성 문화, 상업주의 문화를 배격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크리스천 학교들과 홈 스쿨링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고립되어서 고집스럽게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근본주의자들 중 일부는 194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 근본주의의 신학과 노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했는데 “세상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기독교인들끼리만 담을 쌓고 살면서 어떻게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반성의 결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소위 신-복음주의자(neo-evangelicals) 들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신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신학교를 세웠는데 대표적인 것인 1947년에 세워진 Fuller 신학대학과 1969년에 세워진 Gordon-Conwell 신학대학입니다. 그리고 신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를 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개신교는 크게 근본주의자, 신복음주의자, 그리고 자유주의자 이렇게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유지가 되었습니다. 이 중 자유주의자라고 하면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중요시해서 과학적 혹은 합리적 성경연구를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을 말합니다.

 

요즘 예일 신학대학, 하버드 신학대학,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은 자유주의자와 복음주의자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이 모두 섞여 있지만, 20세기 전반부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맨 먼저 근본주의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배하는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래서 예일 신학대학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예일에서도 밀려나면서, 급기야 프린스턴 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그들은 1929년에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을 만들어 그곳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크게 3개의 분파적 모습을 보이면서 흘러가는 동안 1961년에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61년에 천주교도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는 짧은 재임 기간 중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이후 1977년에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 낙태 문제로 인해서 미국 정치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근본주의자들과 신복음주의자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Jerry Falwell (침례교), D. James Kennedy (장로교), Oral Roberts (오순절파) 등 당시 미국 개신교를 주도하였던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Moral Majority’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 단체는 Pat Robertson (CBN 창립자, 700 club 진행자)을 중심으로 하는 ‘Christian Coalition’이라는 단체로 개편되어서 미국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부시, 트럼프 등 주로 공화당 계열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아울러 기독교 진보진영에서는 Jesse Jackson 목사님이 주도하는 ‘Rainbow PUSH’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현재까지 미국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주로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21세기 민주주의 체제에서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사회에서 표현한다는 것은 개별적 기독교인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도전을 극복하고자 개교회 팽창주의를 넘어 서로 연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협력의 이미지, 정의의 이미지, 강한 이미지, 용기의 이미지가 미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5. 결론: 초신자, 제자, 군사

 

이제 마무리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씀으로 이 두 권의 책을 통하여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모욕과 수치와 고통을 다 참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시며,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아끼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가면 예수님의 모습은 확 달라집니다. 예수님은“백마 탄 기사가 되어서 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강력한 심판자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에 나오는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라는 장면은 예수님이 백마를 타시고 공의를 위하여 싸우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 적용해 보면,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여 초신자를 만든 다음, 그 초신자가 십자가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백마 탄 예수의 군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제자’라는 단어의 핵심은 자기 성숙, 자기 변혁입니다. 반면 ‘군대’라는 단어의 핵심은 사회 성숙, 사회 변혁을 위한 사회 참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마 6:10)”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하나님의 뜻만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땅은 하나님의 통치와 사탄의 통치와 인간의 통치가 혼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될 수 있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보다 성경적인 세상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와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서 이 사회의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투표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명심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을 변혁하고, 나아가 예수님의 군대로서 이 ‘사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변혁해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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