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라는 마약, 수평 이동이라는 환각… 성장 신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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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5-11-29 04:1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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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교회 성장 전문가 척 로리스는 단순한 출석 인원 증가가 곧 교회의 건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는 군중과 교회의 본질적 차이, 수평 이동의 함정, 전도와 양육의 불균형 등을 지적하며 양적 팽창 너머의 질적 성숙을 주문했다. 진정한 성장은 숫자가 아닌 제자 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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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 아래 가득 찬 회중석, 그러나 그곳에 진정한 제자는 몇 명이나 존재하는가(AI사진)
숫자가 우상이 된 시대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목회자는 안도하고, 교인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수천 명이 모인 그 자리가 ‘교회’가 아니라 단순한 ‘군중’의 집합이라면 어떨까. 척 로리스(Chuck Lawless)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교 교수는 처치앤미니스트리 기고를 통해 현대 교회가 맹신하는 성장 신화에 메스를 댔다. 그는 뼈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제자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관객을 모으고 있는가."
로리스 교수는 '교회 성장에 대한 6가지 주의사항(6 cautions about church growth)'이라는 칼럼에서 양적 지표 뒤에 숨겨진 영적 공허함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는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과 윈 안(Win Arn)이 1970년대에 주창한 교회 성장의 원리, 즉 "단순한 결신이 아닌,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사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 성장의 본질임을 재확인하며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6가지 함정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회중은 교회가 아니다: 많은 목회자가 주일 예배 참석 인원을 교회의 실체로 착각한다. 로리스 교수는 "주일에 모인 사람들의 무리가 자동으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간판에 '교회'라는 단어를 내걸었다고 해서 그 모임이 곧 교회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배당을 채운 이들 중 상당수는 구경꾼이거나 종교적 소비자에 불과할 수 있다. 성경적 교회는 단순한 물리적 집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의 유기적이고 헌신적인 공동체여야 한다.
성장이 곧 축복은 아니다: 교세 확장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등식은 위험하다.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와 회개가 빠진 설교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탁월한 마케팅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 혹은 세속적인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군중을 끌어모으는 것은 종교 비즈니스일 뿐이다. 로리스는 "숫자의 증가는 하나님의 역사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보증수표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수평 이동의 착시 효과: 오늘날 대형교회 성장의 상당수는 불신자 전도가 아닌 기존 신자의 이동, 즉 '수평 이동'에 기인한다. 이사를 하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교회를 옮기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교회가 오직 이것에만 의존하여 성장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마치 한 울타리의 양을 다른 울타리로 옮겨놓고 양 떼가 늘어났다고 기뻐하는 꼴이다. 로리스는 "수평 이동에 의한 성장은 교회를 영적 안일함에 빠뜨리며,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전도의 야성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다.
양육 없는 전도의 공허함: 전도 집회에서 결신 카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 사역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로리스는 "제자 훈련이 결여된 전도는 반쪽짜리 성장"이라고 비판했다. 마태복음 28장의 지상 대명령은 단순히 불신자를 모으는 것을 넘어, 그들을 훈련해 또 다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로 세우는 것(엡 4:11-12)까지 포함한다. 예수를 영접했다는 고백은 출발선일 뿐이다. 그들을 말씀으로 길러내지 않고 방치한다면, 교회는 영적 어린아이들만 가득한 유아보호소가 되고 만다.
전도 없는 양육의 폐쇄성: 반대로, 내부 결속과 훈련에만 몰두하느라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로리스는 자신의 세대가 전도에 치중하느라 양육을 소홀히 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양육과 커뮤니티를 강조하느라 전도를 등한시하는 '과잉 교정(overcorrecting)'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끼리 깊이 있는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은 좋지만,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린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거룩한 사교클럽'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출석부 너머를 보라: 결국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 "몇 명이 왔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교회의 건강을 측정할 수 없다. 로리스는 출석 숫자보다 더 중요한 지표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의 수 ▲자신의 신앙을 이웃과 나누는 수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의 수 ▲열방으로 파송된 선교적 자원의 수 등이 그것이다. 그는 "책임감 있는 사역을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하지만, 그 숫자는 단순한 머릿수가 아닌 영적 성숙도를 반영하는 지표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척 로리스의 경고는 ‘성장통’조차 겪지 못한 채 ‘비만’이 되어버린 현대 교회를 향한 묵직한 돌직구다. 우리는 그동안 건물의 크기와 회중의 숫자가 곧 영적 권위라고 착각하는 집단적 최면에 걸려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화려한 포장지를 뜯어내고 내용물을 직시할 때다. 수천 명의 익명적 군중이 뿜어내는 일시적 열기보다,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내는 한 사람의 냉철한 헌신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교회의 진짜 성적표는 주일 예배당을 채운 숫자가 아니라, 월요일 아침 성도들이 흩어진 삶의 현장에서 세상과 부딪히며 증명해 내는 거룩한 영향력에 의해 매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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