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 한국교회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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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1ㆍ 2025-04-1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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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랫동안 기독교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서구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남반구의 성장은 눈부시다. 이런 변화는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회학자이자 종교학자인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는 이미 2002년에 출간한 저서 '넥스트 크리스텐덤: 세계 기독교의 도래'를 통해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후반부터 기독교 인구가 유럽과 북미에서는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반면,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인구 통계의 변화를 넘어 기독교의 미래 권력과 중심지가 남반구로 이동하는 '지각 변동'이라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선교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는 기독교 역사를 '중심지 이동의 역사'로 파악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특정 문화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권으로 중심지를 옮겨가며 확장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 이후 북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북미로 중심지를 옮겼듯이, 이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로 그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 역사적 패턴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가인 마크 놀(Mark Noll)은 '새로운 세계 기독교의 모습'이라는 책에서 21세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남진'(Southern Shift)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교인 수의 증가뿐 아니라, 신학적 활력과 선교 열정 면에서도 남반구 교회가 세계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서구 교회가 이러한 변화를 겸허히 인정하고 남반구 교회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2.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기독교가 아시아로 옮겨가는 이유(Why Christianity is taking an Asian tur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교회들의 변화와 부상을 조명했다. 흥미롭게도 기사의 문은 한국교회 이야기로 시작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보인 한국 기독교계 내부의 분열이 바로 그것이다. 전광훈 목사의 극우적 입장과 NCCK의 에큐메니칼 지향성은 한국 기독교의 스펙트럼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실제로 한국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입지까지 갖춘 거대한 공동체라고 말한다. 약 30%의 신자 비율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민주화운동과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오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쳐왔다. 과거에는 개신교가 보수 정권과 가까웠고, 가톨릭은 민주화 진영과 연대했다면, 이제는 그런 경계조차 흐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모든 모습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시아 전체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리더십, 아시아 교회의 부상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 유럽과 북미와 달리, 아시아는 여전히 성장세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 추나카라 총무는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5년 사이 아시아 기독교 인구는 매년 평균 1.6%씩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도력에서도 감지된다. 보스턴 고든콘웰 신학교의 토드 존슨 교수는 아시아 출신 기독교 지도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구 중심이었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창설한 복음주의 로잔 운동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이끌고 있다. 또한, 오순절세계협의회(PWC)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같은 주요 단체의 최근 수장 명단에도 각각 말레이시아인과 필리핀인이 이름을 올렸다. 활발한 해외 선교 활동으로 잘 알려진 한국 선교사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 후보로도 아시아인이 거론된다.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여러 언론에서 차기 교황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 교회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기독교가 ‘서구 종교’라는 인식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교회가 보여주는 활발한 선교 활동과 교회 성장의 경험은 전 세계 기독교계에 있어 하나의 모델로서 자리잡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숫자 너머의 신앙
그러나 단순히 통계만으로 아시아 기독교를 다 파악하긴 어렵다. 퍼듀대 양펑강 교수는 “아시아에서는 여러 종교가 혼합되는 문화가 많아, 공식 통계가 실제보다 기독교 인구를 적게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만 해도 표면상 기독교 인구는 1% 미만이지만, 다른 조사 방식으로는 3~4%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숨겨진 기독교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기독교가 미치는 영향은 숫자보다 교육이라는 통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전후 총리 가운데 65명 중 9명(약 14%)이 기독교인이었고, 약 600개 사립대 중 10%가 기독교 계열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더 두드러진다. 대통령 70%가 기독교인이었고, 3분의 1에 이르는 대학들이 기독교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단순한 신앙을 넘어 사회 전반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균열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한국 교회
하지만 한국 교회의 풍경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다. 고려대 김은기 교수의 말처럼 극우에서 극좌까지, 한국 교회 내부에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때로는 경제 문제에서는 진보적이면서, 성적 지향과 같은 사회 이슈에선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의 보수 복음주의와 긴밀히 연결된 일부 대형 교회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방향은 아니다. 성소수자 이슈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교회는 격렬히 반대하지만, 소수지만 진보적인 이동환 목사처럼 개인의 신앙적 고민 끝에 포용의 길을 택한 이들도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셨다”는 그의 고백은, 한국 교회 내에서도 새로운 질문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내부적 논쟁과 다양성 또한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바라본다.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의 역할은 단지 숫자와 영향력을 넘어, 복음의 본질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가 힘이 아닌, 진정성으로 아시아 사회에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아시아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시대적 소명을 감당할지, 믿음의 눈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AI 생성사진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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