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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모 목사 “복음 전달자가 하기 쉬운 오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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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1-10-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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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조진모 목사 강의 요약

 

뉴저지실버미션 선교훈련원이 줌 화상을 통해 진행 중인 제36기 선교학교는 10월 18일(월) 오후 8시에 9번째 강의를 진행됐다. 이번 강의는 조진모 목사(전 합동신학대학원 교수)가 "변화하는 세상, 불변하는 복음"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조진모 목사는 먼저 제목대로 급하게 변화하는 세상과 불변하는 복음을 비교하여 전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었는데, 변화하는 세상에 복음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달콤한 유혹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유혹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복음보다 앞서는 자아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조 목사는 변화하는 세상을 위해 십자가 복음 전달자의 자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조진모 목사는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어떻게 전해야 할 것인가? 혹자는 그냥 전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말하기도 한다. 물론 상대에 따라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해야 한다. 복음의 전달방법이 어떤 것이어도 될까?”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복음은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이다. 외워서 알려주는 정도라면, 교회에 나오면 좋다거나 예수 믿으면 좋다고만 말할 정도에 그친다면 값싼 복음이 되기 쉽다. 물론 그런 말도 해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복음 전달의 핵심은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죽었으며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지 아는가를 전하는 것이다. 복음 자체가 소중하기에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진모 목사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며 “정말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이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할지라도 전달자의 마음은 동일해야 한다. 그 마음이 전달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정말 좋은 방법은 내가 만난 하나님을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그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복음전달의 오류에 대해 나누는데 “효과적인 복음 전달방법을 찾다보면 스스로 함정을 팔 때가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고 내가 열심히 하려고 하기도 한다”고 했으며, “변화하는 이 시대는 자기에게 맞추어 복음을 변화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예수를 믿으면 유익이 있으며 성공을 한다는 번영신학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경계했다.

 

조진모 목사는 마무리하며 “정말 복음을 전달하려면 변하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지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라.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의 십자가 복음으로 끌고 가는 것이 복음전달자의 사명이다. 현대식으로 전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확신을 먼저 가져야 한다. 복음의 내용을 파악하고, 복음의 역할을 이해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라. 내 안에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나를 보내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다음은 강의 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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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변화하는 세상, 불변하는 복음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선교학 교수였던 Harvie Conn은 1992년에 “Eternal Word and Changing Worlds (영원한 말씀, 변화하는 세상들)”를 출판하였다. 불변하는 성경 말씀의 진리를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선교는, 1700년의 역사를 지닌 서구에 뿌리를 둔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타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형태로 이해되어왔다. 한국교회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서구 교회의 해외선교가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평하는 자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전과 같지 않다.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더 이상 기독교는 서구 중심이 아닐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탈기독교 시대에 돌입한 상태에 있다. 더욱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곳의 상황 역시 급변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자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부담이 있다. 이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과 환경이 변화는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변화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복음을 접할 사람들이 이런 변화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살피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1.  급하게 변화하는 세상

 

(1) 변화가 상식이 된 세상  

 

세상은 항상 변화되어왔다. 인류의 역사를 지속적인 변화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다. 변화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어떤 목적을 지니는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어진다. 또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변화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삶의 변화이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서서히 정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하지만, 사실은 이전과 다른 변화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① 현대 사회를 주도하는 속도 문화 = 현대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특징은 속도에 있다. 전화기를 예를 들어보자.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고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걸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그러나 요즘은 속도가 큰 관심거리다. 겉모습은 별 차이가 없어도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Gordon Moore가 1965년에 내놓은 무어의 법칙 (Moore’s law)은 반도체 메모리칩의 성능이 약 2년에 2배씩 향상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2005년 이후 그 법칙의 의미가 상실되었다. 속도가 급속도로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② 경쟁 구도의 쇄신 = 미래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정보가 힘이라는 말을 해왔다. 누가 유익한 정보를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에 대한 경쟁 속에서, 고급 정보를 지닌 자들이 사회를 이끄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아직도 이런 현상이 기본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속도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져서 새로운 변화의 방편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는 무가치하다. 그러므로 각 기업마다 속도를 의식하는 경영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한 예로, 코비드-19 백신 개발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연구실에서 경쟁적으로 연구하였지만, 현재 속도전에서 승리한 제약회사의 제품만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반응 

 

① 수동적: 변화에 익숙해짐=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화는 큰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과거의 추억에 안주하며 평안을 찾으려는 자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급히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변화란 더 이상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과거 인력을 사용하던 일들을 무인자동으로 대치하고 있다. 은행 일부터 장보는 일까지 삶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 생소한 기계라도 거침없이 다루는 젊은이들처럼 될 수는 없다해도, 삶의 불편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변화에 익숙해져 있다. 

 

②능동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변화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과거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던 일들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SNS와 유튜브에는 무궁무진한 정보로 채워져 있다. 자신이 씨름하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은 후부터는, 전문가들이 올리는 유튜브를 가정교사로 모시게 된다. 의학을 포함하여 각 분야가 대단한 속도로 발전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암 치료를 포함하여 인류가 씨름하고 있는 난제들이 속한 시일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3) 변화하는 세상이 던지는 도전

 

크리스천들은 변화하는 세상이 생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변화가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영적 의미를 주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극히 미래지향적이다. 나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소수가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대중은 선택권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주류의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기독교는 2천년이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종말을 포함하여 미래에 대한 진리도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 과거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을 중심하기 때문에 과거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성경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 그리스도와 초대교회를 중심한 사건들 모두 현재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증거와 논리를 중시하는 개인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세상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기독교와 성경의 진리는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 반문할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세상은 기독교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1) 거침돌이 되는 과거의 것은 과감하게 버려라! (2)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라! (3) 밝은 미래를 위해 혁명적인 변화라도 수용해라! 비록 신앙을 지닌 성도이지만,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을 지닌 성도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매우 궁금하다.  

 

 

2. 불변하는 복음   

 

(1) 이미 주어진 은혜의 복음 

 

복음은 오직 한 가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외에는 없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어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복음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성경의 진리를 매우 복잡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집약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완성하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성경을 도덕적인 삶 또는 자기 수양 지침서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이 있다. 심지어는 교회에 오래 출석한 성도들도 주어진 은혜의 복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복음주의 신학자 Michael Horton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책에서, 복음이 사라진 현대 교회의 충격적인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회집을 하고 봉사와 교제를 하지만, 실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큰 선물인 은혜의 복음이 발견되지 않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진정한 성도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리고 성령 안에서 그와 연합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표지는 복음 문화가 지배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복음이 각 성도의 인격에 유지되고,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며 지속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2) 전혀 다른 복음의 출현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오직 한 가지, 즉 십자가 복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초대교회에 이미 ‘다른 복음’이 등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 1장 6-7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은혜의 십자가 복음이 아닌 다른 가르침을 복음이라 생각하여 그대로 믿고 따르는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복음을 전하고 받아드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지만, 그 삶에는 언제나 영적인 공격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범한 사건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유혹으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 이후 현대교회까지 줄줄이 이단이 출현하고 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단성이 있는 가르침을 통해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복음의 뿌리를 잘 내린 상황에서도 마귀의 유혹이 끊이지 않지만, 복음을 새롭게 받아드린 피선교지는 매우 살벌한 영적전쟁터이다. 한 생명이라도 그리스도에게로 속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원수 마귀 대문이다.    

 

(3) 주어진 복음이 지닌 능력 

 

이 세상에서 완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모두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주어진 복음이 지닌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복음은 죄인을 위해 허락하신 선물이다. 철저한 검사를 걸쳐 완벽한 자들에게만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전적으로 부패한 우리가 한없기 부족하고 연약하며,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바로 알고 의지하게 된다. 복음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아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복음은 반드시 반응을 끌어낸다. 먼저 구원에 대한 초청에 응하거나 거부하게 한다. 은혜의 복음을 받아드린 자들은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이뿐 아니다. 복음은 성도들이 삶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사는 경험을 하게 한다. 복음의 능력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주도한다. Tim Keller 목사는 자신이 저술한 “Center City” 에서 복음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정의한다. 나아가서 복음으로 인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맞추어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복음 전파는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를 확장하는 소중한 사역이다. 모든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지니지 않는 교회는 문화센터 또는 친목단체에 불과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먼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주어진 은혜의 십자가 복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건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달콤한 유혹 – 복음 전달 방법의 변화 

 

(1) 복음 전달 방법이 복음에 미치는 영향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녔다면 반드시 그 방법을 배워야한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어떻게 복음을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매우 효과적인 사역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 전도학교 또는 선교훈련 커리큘럼에는 어떻게 대인 관계를 하며 소통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성령의 역사를 믿고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먼저 피전달자와 익숙한 문화와 삶의 형편을 이해하고 접촉점을 만들 수 있다면 불필요한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한다. 전하는 자가 십자가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다면,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을 선택하여도 무방할까?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복음 전파의 대상에게 구원을 주시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다. 그러나 자칫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정보를 잘 외워서 알려주어 ‘값싼 복음’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닌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것이다.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그 사랑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 

 

복음 자체가 귀중한 만큼,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소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상태이다. 복음 전달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자에게 잠시 복음을 전할 때는 오래 사귄 친구를 의도적으로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과 달라야 한다. 직장 동료에게 전하는 것과 문화권이 전혀 다는 해외에 사는 자들을 찾아가 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누구에게 어디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복음 전달자의 마음은 동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 지닌 함정 – 교회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 역사는 선교 역사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는다. 교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선교를 통한 복음의 확장을 추적해가는 일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 즉 선교와 전도를 통해 교회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난 2천년 동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모두 동일한 복음 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을까? 아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접근 방법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달리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복음 자체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하였다.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과 그를 구주로 받아드림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었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복음 전파의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달랐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복음 전파를 위해 하시는 일에,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복을 전파를 하는 자들을 위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자의 경우는, 내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는 자에게 역사하시어 성령을 통해 마음을 열고 받아드리게 하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태도를 지녔다. 후자의 경우는, 내가 복음을 전하는 동한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나에게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시어 듣는 자의 마음을 잘 열어 주실 것으로 믿고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전자의 경우, 복음을 전달받는 자들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자신 스스로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거나 받아드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눈과 마음을 여시어 참된 진리를 깨닫고 수용하게 하신다고 믿었다. 후자의 경우, 복음을 전달받는 자들이 지닌 이성과 논리를 통해 제대로 설득하거나 감정적인 요소를 제대로 사용하면 상대가 진리를 수용하기에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토록 서로 상충되는 방법이 초대교회에서 가장 먼저 시도된 이후 지난 2000년 동안 지속되어왔다. 놀랍게도 현대교회 역시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속도 지향적으로 변화되는 이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얻는 효과적인 방법이 대세이다. 만일 선교지에 어느 정도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면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대단한 성과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복음 자체에 대한 이해와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져보라. 복음에 대한 이해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복음 전달자의 태도와 방법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3)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일그러진 복음 

 

이 시대는 인내심을 상실하고 있다. 속도가 겸비된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상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매우 한심하게 생각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십자가에 죽은 청년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냐고 힐문할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성경이 그렇게 약속하기 때문이다. 복을 바라는 마음은 신앙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 이미 1980년대에 교회성장의 물결과 함께, 예수를 믿으면 복을 얻는다는 신앙적 신념이 한국교회 안에 자리를 잡았다. 현대인들은 급히 변하는 이 세상에서 복에 누리길 원한다. 따라서 기독교를 복을 주는 종교라는 확신으로 인해 교회를 찾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물질이나 자녀 또는 건강의 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도록 보장하는 분이 아니다. 산상수훈에 잘 드러나 있듯, 성경적인 복은 영적이며 내면적인 성경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 있게 복음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결국 일그러진 복음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널리 알려진 기복신앙과 번영신앙이다. 절대자를 의지하려는 종교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기희생을 요구하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란 사실 앞에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언제든지 자신의 기준과 기대와 다르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 일그러진 복음은 죄인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4. 복음 전달자의 확신 – 변화하는 세상을 위한 십자가 복음 

 

(1) 복음의 내용을 파악하라! 

 

교회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변해야 한다.  불필요한 교회의 전통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 시대의 문화를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예배의 형식부터 교회당의 구조까지 현대인들의 눈높이를 의식하여 이질감을 없애는 것이 좋다. 복음이 삶의 상황과 현실에 다가서고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려면 무엇보다 복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혹시 다른 복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지 또는 인간 중심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오직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4영리’에 요약된 것처럼 매우 단순한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다. 이미 복음에 대해 여러 차례 성경공부를 했고 매주 설교를 통해 확인 받기에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매우 깊다. 복음이 우리 삶과 교회를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이 절대적인 영향은 끼치기 때문이다. 주어진 십자가 복음은 우리가 처한 형편에 따라 매우 다른 방법과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특정 상황에서 복음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드러내며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변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불변하는 심오한 복음의 진리의 내용을 분명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는 그 누구보다 이 사명을 신중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자신이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복음의 역할을 이해하라! 

 

교회 역사를 통해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일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사람이 사회와 가정을 변화시킨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자들이 한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들과 교회를 세우실 것을 확신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교지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복음 전하는 사역에 임하게 된다. 자신이 그런 곳으로 향하게 된 동기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바로 십자가 복음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심부름을 맡은 자이며, 자신을 변화시킨 은혜의 복음을 나누는 사명을 지니고 보내심을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 속에서 섭리하시며 일하신다는 확신을 지닐 때,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불쌍한 영혼을 사랑으로 대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달할 수 있다. 

 

선교지에 학교를 세우거나 병원을 짓는 일 자체는 복음 전파를 위한 훌륭한 도구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대하며 배를 채워주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해외 선교지 뿐 아니라 교회 주위를 적극적으로 돌아보아 실천해야 할 사명이다. 그러나 만일 복음과 상관없이 물질을 제공하고 여러 시설을 지어준다면 전문적 비영리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복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접촉점을 허락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을 나누고 섬겨야 한다. 

 

(3)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라! 

 

복음을 가장 분명하게 전하는 방법은 친히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변화된 자신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자기중심의 삶을 살던 자가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기쁘게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자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없이 교회 생활에 익숙해 질 수도 있다. 직분을 받아 칭찬받는 봉사자가 될 수도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와 선교에 열심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종교적 행위에 불과하다.

 

복음 전도의 열매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것 이상이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반성하는 태도로 현대교회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자. 불신자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여 정식 교인이 되기 전에 매우 중요한 과정을 걸친다. 바로 세례식이다. 세례식은 초대교회가 가장 중요시 했던 예식 중에 하나였다. 복음 전파의 열매로 불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경우,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매우 긴 시간을 두고 그들의 신앙을 교육하였다. 

 

요즘처럼 대단한 신학서적이나 발전된 조직신학이 없던 상황 속에서, 그들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분명하게 믿고 그를 구주로 모시고 살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였던 것이다. 무더기로 세례를 주면서 그 수를 자랑한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채 살아가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 때로는 1년 또는 2년 이상 긴 시간을 두고 교육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서 세례를 받는 자에게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하였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 급변할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십자가 복음에 뿌리를 내린 신앙인으로 굳건히 서시기를 바란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즐겁고 복된 일이다. 죽은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놀라운 변화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시어 복음의 파수꾼으로 훈련받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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