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PC 포럼, 강영안 교수 “목회자의 독서와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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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0-09-02 13: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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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총회장 조문휘 목사)는 목회와 신학 포럼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줌(Zoom) 화상으로 열고 있다. 포럼은 8월 18일부터 9월 8일까지 4주간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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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화)는 3번째 강의인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교수)가 “목회자의 독서와 말씀 묵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사회를 본 박성일 목사가 “여러 번 강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이런 열강은 처음”이라고 했으며, 최근 책과 관련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뉴저지 열방교회 전우철 목사는 타교단 주최 포럼을 청강하며 “최고의 강의 자리에 초대해주어 감사하다”고 한 화제의 강의였다.
1.
강영안 교수는 '읽는다' 라는 행위를 '삶' 이라는 단어에 비유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읽기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읽는다'를 곧 '책을 읽는다' 라는 것 외에 별다른 사고를 해보지 않은 터에 삶이 곧 '읽혀지는 행위' 이며 우리는 눈을 뜨면서부터 수많은 읽기를 통해 이해하고 인식하고 지식을 쌓고 세상을 알아간다는 설명에 큰 공감을 한다. 데카르트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기 위해 나섰다가 '나 라는 책'을 읽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동서고금의 학자들이 읽기를 분류하고 방법론화 했으며,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했음도 흥미로웠다.
거리의 간판 읽기, 논문 읽기, 시 읽기, 소설 읽기, 신문의 기사 읽기, 판사의 판결문 읽기, 청문회의 보고서 읽기 등 우리가 읽는다고 표현을 하는 그 많은 읽을거리들을 대할 때 다른 마음가짐으로 결과를 만들어간다.
그 많은 읽기 중에 문자를 읽는 것으로 강 교수는 범위를 좁히고 글을 통해서 즉 현상학적인 해석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글쓴이의 의도를 알아내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까지 인문학적 읽기를 통해 ‘목사의 읽기’ 그리고 ‘목사의 성경 읽기’까지 좁혀간다.
잘못된 읽기의 결과로 ‘뒤틀림(deformation)’의 예도 설명한다.
한나 이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녀는 유태인 몰살의 4번째 주역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악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평범한 생각이 없는 무지의 근면한 인물로 평했다. 즉 생각이 없는 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또 강 교수는 자신의 강의 때 어떤 목사가 ‘교회 청년이 니체의 책을 읽고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질문을 했었다. 장 교수는 “끝까지 읽게 하라. 끝까지 읽어서 어디가 한계인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읽는다면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인문학적 읽기란 읽기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통해서 사람을 바꾸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읽은 후에 자신에게 적용해서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바른 읽기라는 것.
그러면 목사의 읽기란 무엇일까?
목사의 읽기 중 성경이 중요한 읽기 대상이라면 성경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의 답변에 에베소서 4장 11-16절과 디모데후서 3장 15-16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성경도 신학이나 교회와 상관없이 인문학자,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목회자의 성경읽기는 신학자의 성경읽기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경읽기 중간 지점에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간이란 기계적 중간이 아니라 유기적인 중간쯤으로 해석된다. 목회자는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생활을 하지만 성도의 자리는 세상인 셈이다. 마치 야고보 요한이 그물을 깁는 것처럼 성도를 온전케 해서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이다. 자기개발서가 아닌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교훈과 책망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성경 읽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일까?
강 교수는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아무리 자전거를 이론적으로 습득해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봐야 하는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교회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숨결을 지혜로 터득하고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성경 읽기는 중요하다.
학자의 읽기 방식의 전형은 중세 서양의 대학에서 유행하던 스콜라적 읽기가 있다. 이는 비교적 익숙한 신학자적인 입장에서 읽기로 주제와 연결된 질문을 통해 하나씩 대응하면서 그 답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읽기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은 중세 수도원 전통의 렉시오 디비나와 루터 신학공부 방법이 있다. 렉시오 디비나는 읽기를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한다. 말씀을 입에 담고 주야로 중얼거리듯 음미하며 맛을 얻어내는 것이다.
루터는 신학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읽을 때 기도하며, 읽고 나서 묵상하고, 마음으로 하는 것 외에 겉으로 입으로 쉬지 말고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마치 박하 잎을 손으로 문질러서 그 향기를 내듯, 읽고 또 읽는 것을 권했다. 그리고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듯 말씀으로 단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인격적인 성격읽기를 목회자의 성경읽기로 추천했다.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의 율법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질문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성경을 읽는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깨닫고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위해 자신이 고통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이웃이 되기 위해 날마다 씹고 음미하고 맛을 느끼는 먹는 행위를 하듯, 그 맛을 얻어내기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오랫동안 입안에 간직 하듯 읽어야 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2.
강의 후에는 독서나 말씀묵상에서 정독과 다독, 그리고 요약과 메모에 대한 참가 목회자의 질문이 있었다. 다음은 강영안 교수의 대답이다.
대학 다닐 때는 책에다 많이 줄도 긋고, 메모도 많이 했다. 지금도 어떤 책에서는 그렇게 하기는 하지만 책이 더러워진다. 가능하면 너무 줄을 치거나 메모하는 것은 안하려고 한다. 석사논문을 쓸 때는 생각하는 것은 푸른 카드에, 읽는 것은 하얀 카드에 타이핑을 쳤다. 독서카드가 쌓였지만 나중에 논문을 쓸 때 보니 한 장도 안보았다. 박사과정에 가서는 독서카드를 만들기 보다는 노트에서 메모했다.
독서할 때 중요한 습관이 있다. 소설은 연구하듯이 읽지 말라. 재미로 읽어야지 연구하지 말라. 하지만 조금 어려운 책이나 개념적인 책은 반드시 펜을 드는 것이 좋다. 펜으로 표시하지 않더라도 펜을 든다는 것은 내가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독서카드를 만들거나 노트를 만들면 좋지만, 안되면 포스트잇이라도 메모해서 끼워놓으면 나중에 사용하기가 편리하다. 왜냐하면 기억은 한계가 있다. 메모라도 해놓으면 기억을 살릴 수 있다.
다독과 정독은 어느 하나를 말할 수 없다. 성경도 빠르게 읽어나갈 부분은 그렇게 읽어나가고 어떤 부분에 가서는 몇 절만 가지고 씨름한다. 그것이 유익하다. 다독이나 정독 하나만 규칙으로 정하지 마라. 요즘은 읽을 것이 많으니 다독을 해 나가라. 다독해 나가면서 정독할 부분은 정독하라. 끝까지 정독할 책은 천천히 읽는 것은 좋다. 니체의 충고이기도 하다.
3.
책읽기의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목회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성경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신학적인 책이 있겠지만, 그 외에 우선순위로 목회자들이 접하면 좋을 책들은 어떤 것인가? 다음은 강영안 교수의 대답이다.
"C.S. 루이스의 충고를 따르면, 요즘 나온 책 한권을 읽으면 기독교 고전 한권을 읽으라. 꼭 신학책이 아니라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고전은 가치가 있다. 1대1로 읽거나, 그것이 힘들면 루이스의 권고는 현대책 3권을 읽을 때 반드시 1권의 고전을 읽는 3대1을 적용하라고 한다. 고전은 읽기 힘들다. 만약 고전 1권을 추천하라고 하면 1,500년 전에 썼지만, 지금 읽어도 따끈따끈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9월 8일에는 마지막으로 김병훈 교수(합동신학 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의 “시대적 과제로서 교회론의 재정립” 강의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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