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홍 목사 ① 목사의 성품 - 목사의 7가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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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0-10-21 09:4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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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성결신학대학교(총장 황하균 목사)는 2020년 가을학기 영성수련회를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10월 12일부터 2일간 열었다. “목사다움(빌3:13-14)를 주제로 열린 수련회 강사는 안선홍 목사(애틀랜타 섬기는교회).
안선홍 목사는 첫날 “목사의 복음, 설교, 교회관(빌3:13-14)”, 둘째 날 “목사의 성품, 영성, 푯대(빌3:13-14)”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전했다. 안 목사는 2일에 거쳐 주제인 “목사다움”에 영향을 주는 복음, 설교, 교회관, 성품, 영성, 푯대 등 6가지 소주제를 통해 신학생들에게 도전했다.
안선홍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2000년 유학을 와서 고든콘웰신대원을 졸업(M.A. 신약학)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한빛교회 부교역자로 섬겼으며, 2007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2008년에 아틀란타로 이주하여 2009년 6월 가족 등 10명과 교회를 개척했으며, 10년 만에 1천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관련기사] 안선홍 목사 “목사다움이란?”
http://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10534
복음, 설교, 교회관, 성품, 영성, 푯대 등 6가지 소주제에 대한 내용을 연속으로 소개하는 기회를 가진다. 먼저 “목사의 성품”에 대한 내용이다. 안선홍 목사는 목회자가 가져야 할 7가지 덕목으로 거룩한 삶, 사랑하는 삶, 지혜로운 삶, 단순한 삶, 겸손한 삶, 충성된 삶, 온유한 삶에 대해 나누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에베소서5:1)”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 유일하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표현이 있는 구절이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높은 기준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특권인 줄 믿는다. 하나님을 본받는 목사의 성품에 있어 7가지 덕목에 대해 성경적인 진리를 전하고자 한다.
1. 사역자의 삶은 거룩한 삶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윤리적 상대주의가 극에 달했고, 도덕적 혼란을 넘어서 도덕적 붕괴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상을 변하라고 꾸짖지 못하고, 세상에게서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꾸지람을 듣고 있는 기가 막힌 시절을 살고 있다.
거룩하지 않은 사역자는 사탄의 가장 훌륭한 동역자이다. 침체된 교회와 부패한 세상을 회복시키고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룩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무관심 해 온 것을 회개해야 한다. 거룩은 강대상에서 결코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교회에서 부교역자를 모실 때에도 그 사역자의 거룩에 대한 추구와 경건의 훈련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사역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경험을 우선시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사역의 능력이 사역자 배후에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역자로서 스펙을 쌓는 것으로 교회에 채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룩이 없이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기를 바란다.
34세에 세상을 떠난 스코틀랜드 저명한 목사였던 로버트 맥체인은 2세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우리 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의 성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구원받은 죄인이 거룩해질 수 있는 한계까지 거룩하게 해 주세요!”
교회에 나의 성결을 더하려고 하는 사역자가 되라. 거룩의 한계까지 성장하려고 씨름하려는 목회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도가 닮고 싶은 사역자, 세상이 닮고 싶은 교회를 만들어가는 모두가 되기를 소원한다.
2. 사역자의 삶은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이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표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하면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가? 설문조사 결과는 한 사람도 사랑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교회라면 생각나는 것이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교회는 분명히 하나 됨에 심각한 실패를 하고 있고, 하나 됨이 실패함으로 인해 교회의 복음전도에 치명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이 잡혀가기 직전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최우선적인 노력,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간에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하다가 만약에 하나 됨이 깨어지면 그것은 우리가 옳지 않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부디 바른 지식을 가지기 위해 힘을 다하라. 그리고 그 지식을 사랑으로 통제하는 멋진 사역자가 되라.
3. 사역자의 삶은 지혜로운 삶이 되어야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야고보서3:1)”에서 사도 야고보가 선생이 되지 말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선생이 불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생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생이 위험한 이유는 선생의 사역의 수단이 몸에서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혀이기 때문이다. 말의 실수가 없으신 유일한 완전한 모범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언제 말해야 하는지 완전한 모범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 내용과 질과 때에 있어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였다. 사역자는 자신의 말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반영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부디 말을 뱉지 말고 말을 지성과 감성과 영성으로 빚어내라. 여러분의 언어가 철학적이고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기를 바란다. 말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목회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4. 사역자의 삶은 단순한 삶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요7:33)” 예수님께서 돌아간다는 의식이 있을 때 단순함을 추구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위해 세례요한은 먹고 마시고 자는 일에도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이와 같은 단순한 삶의 방식은 그의 선포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말씀처럼 부디 먹고 마시는 것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집중력을 가질 수 있기 바란다.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는 제2의 세례 요한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도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게 될 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역시 잠시 출장 중이라는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가볍게, 조금 불편하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역자들은 금욕주의자들처럼 칙칙하게 살지 말고, 주의 깊게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균형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5. 사역자의 삶은 겸손한 삶이 되어야 한다.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이방선교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한 헬라식 이름을 가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에 더 중요한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 자라는 뜻이며, 반면에 바울이라는 이름은 작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에게는 섬김의 종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큰 자에서 작은 자라는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
사도직마저도 그러한 태도로 감당했다면 우리가 사역을 하는데 우리들의 태도는 얼마나 더 겸손한 태도가 되어야겠는가? 부디 사역자도 성도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을 성도에게 설교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설교하라. 성도의 고난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서둘러 경박한 해법을 제시하려는 조급증을 버리라.
여러분들이 배워야 하는 믿음의 본들이 회중석에 앉아있는 성도들 가운데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적으로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사역자들 보다 훨씬 탁월한 분들이 우리들을 전도사님이라고 목사님이라고 품고 존경해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교회에서 나이든 성도들에게 말을 짧게 하지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사역자는 목자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양이다. 그래서 사역자에게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 사역자는 결코 배우지 않으려는 교만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독교적 겸손의 본질은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란다. 사역하면서 잘못된 판단과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는 사역자가 되라. 정직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역자를 제대로 된 성도라면 더 사랑하고 더 존경하게 될 것이다.
6. 사역자의 삶은 충성된 삶이어야 한다.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 엘리에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엘리에셀 처럼 가장 중요한 일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사역자가 되라. 하나님께서는 주께 불순종이 되지 않는 한 담임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을 주께 대한 순종으로 여기신다. 담임목사가 여러분에게 내리는 지시가 때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여러분과의 생각이 다르면 공손하고 명확하게 의견을 개진하라. 그런데도 담임목사의 뜻이 분명하면 정확하게 담임목사가 원하시는 대로 따르라. 만약에 담임목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논쟁하고 사임하라. 힘 있는 담임목사에게 줄서고 힘없는 담임목사에게는 업신여기는 사역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성도와 행여나 유착하지 말고, 철저하게 담임목사의 편에서 언행을 삼가라. 성도들의 인기에 집착하지 말고 진리를 전하는 것에 집중하라. 저는 원색적으로 여러분들이 담임목사의 입의 혀처럼 행동하라고 권하고 싶다. 저는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있어서 입의 혀였다고 생각한다. 충성할 줄 아는 부교역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담임목회자가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받는 사례만큼 일하지 말고 그 이상으로 일하라. 남의 목회를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목회라고 여기라. 사역자로 잇속을 챙기려 하지 말고 뼛속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들이 되라.
7. 사역자의 삶은 온유한 삶이 되어야 한다.
온유는 예수님의 성품이며, 간절히 사모하고 훈련해서 얻을 수 있는 성령의 열매이다. 사무엘상 25장에서 다윗이 나발에게 화가 나고 나발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했다. 앞의 24장에는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사울을 살려주었다. 그런데도 25장에는 나발을 죽이려고 한다. 나발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몰살시키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만약에 25장에서 다윗이 순간적인 격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발의 악을 악으로 갚았다면, 26장에서 하길라 산에서 다윗은 사울을 살려둘 수 있었겠는가? 25장에서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26장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다윗은 어떻게 되었을까?
목회는 절대 성질대로 해서는 안된다. 목회하면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그 화를 잘 풀어날 때 목회가 잘 풀리는 것이다. 화가 나는 이유는 사역을 일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 중심으로 하다보면 다툼을 피할 길이 없다. 사역은 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중심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11년 동안 담임목회를 하며 이래도 저래도 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저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 교회에 칠할 페인트 색을 물을 때 대답하지 않는다.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하니 그렇다. 저라고 제가 좋아하는 색과 기호가 없겠는가?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면 그 말에 무게가 실리고 그것을 어떻게 뒤집기가 어렵기에 교회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당회를 진행하면서 사역자는 회의진행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저는 당회를 운영하면서 당회장이라는 생각보다는 사회자라고 생각한다. 당회를 운영하며 제 의견의 지분은 N 분의 1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설득이 안되면 제 의견을 강하게 관철시키지 않는다. 당회에서도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의해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도 그 판단을 관찰시키는 과정에서 관계가 깨질 것 같으면 저의 판단을 관철시키지 않는다. 그것이 저희 교회가 지난 11년간 한 번도 큰 분란이 없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옳은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옳은 말을 하면서 관계가 깨어지고, 옳은 말을 하면서 교회가 깨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교회는 옳은 말을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옳은 말을 은혜로 감싸서 해야 한다. 은혜로 감싸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분열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주장을 강하게 개진하지 않고, 온유하게 회의하고 온유하게 합의가 이루어내는가? 저는 목사와 사역자의 자아가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아가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의견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저는 담임목회 11년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많이 배워가고 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아무리 복기하며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참 많다. 아무리 생각하고 기도해도 이해가 안된다.
저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을 소화하는 것이 목회라는 생각도 든다. 억울할 때가 많다. 정말 희생적으로 한 일이 고맙다고 인정받는 일들이 생각보다 적다. 이것은 아닌 것 같다는 실망스러울 때가 너무 많다. 그러면서 기도한다. 그러면 제 마음이 바뀐다. 그랬으면 좋겠는 것처럼 목회가 안된다. 그럴 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 화가 났을 때나 실망했을 때에는 절대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목회하면서 적용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억울한 소리도 많이 듣는다. 악의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분이 신중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억울한 소리를 들으면 목사와 전도사는 바로 해명하려고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만약에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있으면 부디 뒤통수에다 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 그 성도가 교회와 목회자에게 해주었던 좋은 일들만 기억하고 잘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척지지 않게 잘 헤어지는 것이 목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성도들도 마음도 좋은 것이다. 우리 교회에 많은 분들이 오셨지만 부득불 하게 이런저런 이유로 떠난 분들도 있다. 그러면 잘 떠날 수 있도록 선대해서 보내면 그분에게 나가서 교회와 목사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목회자가 가져야 할 덕목 7가지를 말했다. 거룩한 삶, 사랑하는 삶, 지혜로운 삶, 단순한 삶, 겸손한 삶, 충성된 삶, 온유한 삶에 대해 나누었다. 목사가 자기가 사는 만큼만 설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가 이렇게 살아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목회해도 잘 안 통하는 것이 슬프다. 정말 진심을 가지고 대했는데 잘 안통할 때가 많다. 그럴 경우면 거꾸로 생각한다. 나는 과연 그분의 진심을 알아주면서 살았는가 라는 생각을 오히려 한다.
성도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 변화를 목사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가져오는 것이다. 성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저의 목회의 목표가 아니다. 성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회의 목표가 아니라 성도와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성도를 변화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지만 너무 실망이 된다. 목회를 하며 실망감을 잘 다스리며 그 실망감에 반응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적정수준에서 잠시 실망하고 다시 새로운 힘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충성되이 섬기는 것, 충성되게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제 목회의 목표이고 나머지는 다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권하고 싶은 것은 좋은 사역자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 그리고 먼저 좋은 성도가 되라. 저는 좋은 성도이면 좋은 전도사, 좋은 선교사, 좋은 목사가 된다고 확신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내 목회의 최고의 무기이다. 정말 인격을 위해 씨름하는 여러분들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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