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PC 목회와 신학 포럼 “타교단의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과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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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1-04-21 18:0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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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총회장 조문휘 목사)는 상임교육연구위원회(위원장 김선중 목사) 주관으로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4차 목회와 신학 포럼을 줌을 이용한 화상으로 진행했다.
강사는 한국의 개혁주의를 대표할 만한 젊고 실력 있는 신학자인 한병수 교수(전주대학교 기초융합대학원 교수)와 정성국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 신약학 교수).
먼저 정성국 교수가 “성경해석 연구: 고린도후서를 중심으로”으로, 한병수 교수가 “개혁주의 사상의 뿌리”라는 제목으로 각각 두 번의 강의를 했다. 각 강의는 90분 강의와 30분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됐다.
1.
총회장 조문휘 목사는 포럼을 마치며 작년에 이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고 평하고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의사도 필수적으로 봄가을에 연장교육을 하는데, 목사는 영혼을 다루면서 어떻게 안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총회 상임교육연구위원회에서 최근 발행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소개했다. 이 책은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외 텍스트 공유협약을 한 OPC 교단의 공식 텍스트를 사용하여 한국어와 영어로 33장, 30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1788년 미국 버전을 기초로 하고 있고 논란이 있는 이후 1903년 버전은 수용하지 않았다. 원판은 1647년판이며, 수정판은 1788년판 혹은 1903년판이 있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는 2,000부를 출판했으며, 정가는 20불이지만 6월말까지 15불로 구입할 수 있다. 동부는 퀸즈장로교회에서, 서부는 글렌데일그레이스교회에서 구입이 가능하며 총무에게 요청을 하면 된다.
2.
두 번째 강의를 한 한병수 교수는 침신대 신대원에서 목회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미시간 소재 칼빈신학교에서 역사신학으로 Th.M. 및 Ph.D.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합동신학대학원 강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전주대학교 기초융합대학원 교수와 교목으로 기독교와 성경을 가르치며 전주대 대학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설교보다 더 하나님이 더 많이 나오는 두 번의 강의를 들으며 느낀 생각이 있었는데 한 참가목사가 댓글로 그것을 잘 표현했다. 그 목사는 세미나를 마치며 “사경부흥회였다. 은혜 많이 받았다. 가슴이 뜨거웠다”고 자신의 참가 느낌을 나누었다.
몇 번에 걸쳐 한병수 교수의 강의와 질답 내용을 소개하는데, 먼저 첫날 강의후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소개한다.
한 참가 목사는 “베드로에게만 천국의 열쇠권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성경은 베드로의 우선성을 언급하는 부분이 발견된다. 종교개혁자들 중 베드로의 우선성에 대해 인정했던 부분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다음은 한병수 교수의 답변 내용이다.
베드로가 시간적으로 우선적인 예수님의 권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평판을 보면 우월적인 고지를 가져 모든 사도들보다 높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꾸짖는 것까지 있었다. 선후배간에도 권위의 우월개념이 없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늘같은 선배 베드로를 새까만 후보 막둥이 사도가 꾸짖을 수 있는 것이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었다는 자체가 감동적이다.
우리는 총회장이 되면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 단어보다는 ‘모더레이터(moderator)’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모더레이터는 의장으로서 회의 진행자이다. 아무리 교회 크기 등 외적인 요소가 작아도 한사람의 동등한 발언권을 누구든지 가질 수 있도록 마이크를 넘길 수 있는 회의 진행자로 공명정대하게 회의를 진행하는 자로서의 의장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레지던트’ 즉 ‘회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회장은 막대한 예산과 정책을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바울과 아볼로 같은 경우도 선후배 관계이다. 아볼로는 새까만 후배이고 바울은 선배이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 3장을 보면 특이한 표현을 바울이 사용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 동등성, 형평성이 없으면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바울에게 권위주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목사안수를 받으면 새까만 후배라고 아래로 내려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동역자로, 함께 하나님나라를 세워갈 자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 구축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장 조문휘 목사는 “우리 총회는 총회장을 모더레이터(moderator)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3.
그리고 “타교파에서 말하는 개혁주의에 대해 비판하거나 고쳐야 할 점에 대해 혹시 수긍이 되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우리 모두가 겸손하게 수용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다음은 한병수 교수의 답변 내용이다.
첫째는 개혁주의를 깊이 공부한 분은 말이 안 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은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다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생각하며 고집을 세운다.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음과 대화의 여백이 전혀 없으며, 자기 지식으로 꽉 차 있어서 아무도 파고 들 수 없는 고립된 성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반성되는 것이 한사람이 담을 수 있는 지식의 분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지 스스로를 반성했고, 개혁주의 목회자들이 그런 경험이 없지는 않다.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바른 진리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검증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교만의 근거나 타인을 판단하는 그런 잣대로 작용해서, 이것에서 벗어나면 다 틀렸다고 하는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개혁주의로 하여금 혐오감을 가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다 들었겠지만 개혁주의에 투철한 목회자는 전도를 안하고, 따뜻하지 않으며, 인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것이 정말 개혁주의자인지 아니면 못난 성품이 남아있어서 개혁주의를 먹칠하지는 않는지 자신의 인격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반박할 수 없게 만든다.
저는 침례교에서 M.Div. 과정을 공부했다. 개혁주의가 너무 좋았다. 침례교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기독교강해>를 계속 읽었다. 교수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꿀밤을 주면서 이책을 읽으려면 장로교에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좋은 전통, 진리를 잘 남아낸 문헌 등이 특정 교단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제해야 된다는 경험을 하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12지파를 세우셨다. 12지파는 색이 다양했지만 다 공존하며 하나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했다. 그런 것처럼 교파들이 참 다양하다. 저는 개혁주의가 성경전체 진리를 가장 완벽하게 다 담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침례교를 다니며 공부해보니 침례교의 아름다운 향기가 있고, 감리교와 오순절도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교단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개혁주의를 한다는 것이 나의 어떤 신학적인 신분을 보증해주는 것처럼, 개혁주의 타이틀만 가지고 있으면 마치 안심이 되고 다른 사람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다양한 교단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차원에서 정말 개혁주의의 좋은 점을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빛과 향기의 방식으로 증명하면 더욱더 강력한 설득력을 얻고 개혁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주변의 지적들을 따끔하게 잘 듣고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고 받아들이고 수정하면 오히려 그분들의 공존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이다.
4.
또 “한국장로교회가 과연 개혁교회인가 할 정도로 많은 문제가 있다. 한국장로교회가 드러내는 가장 취약점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개혁을 계속 이루어 갈 교회리더들로서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다음은 한병수 교수의 답변 내용이다.
한국장로교회는 교리의 체계가 정말 튼튼하다는 차원에서 세계역사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만들어 질 때에 1천 번 이상의 모임을 가지고, 모일 때마다 2시간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주해적 차원을 섭렵하며 딱딱한 이론만이 아니라, 끓임 없이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건의 태도로 나아갔던 이런 생산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신앙고백서의 이러한 산출 과정은 다 배제된 채 교리라는 일종의 딱딱한 뼈다귀만 가지고 있다 보니 역동성, 풍요함, 따뜻함 같은 것들이 장로교회에서 지금 잃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한 영혼의 양식은 교리라는 뼈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 성경을 훨씬 더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교리라는 뼈를 우려먹을 수 있을까? 교리는 정말 짧다. 반면 성경은 66권으로 두껍다. 일평생 한 번도 설교하지 못하는 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국교회 특히 개혁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는 성경에 올인해야 한다. 뒤늦게 담임목회를 하며 성경을 연구하며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빠지게 된다. 저 같은 경우에도 설교를 준비할 때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보고 직접 해석을 한다. 개혁교회 목회자들은 성경 원문과 맨살이 부딪치면서 끓임 없이 말씀이 모든 전인격이 노출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주일 내내 뒹굴며 몸과 생각과 가치관을 섞어서 철저하게 인간적인 요소는 없애고 하나님 말씀으로 완전히 교체되는 신앙과 목회엔진이 완전히 성경화 되는 그런 변화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개혁교회는 여전히 옳고 그름만 따지고 잘난 척만 하는 그런 교회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개혁주의 정통 개혁주의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좋은데 오늘 시대는 너무 모른다. 너무 아는 척 한다는 것과 모르는 것은 반대편의 문제이다. 귀한 전통을 제대로 모르니 손에 잡히는 것을 사용하고 활용해서 목회를 한다. 수백 년 동안 구축된 개혁주의의 튼튼한 전통을 우리가 많이 계승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대체로 라틴어나 영어로 쓰여 있다. 16~17세기 영어는 21세기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요즘은 자료가 디지털화되어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개혁주의 보물 같은 16~17세기 개혁신앙 자료들을 발굴하고 21세기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목회적인 문제들을 긴 역사 속에서 축척된 그런 보물 같은 진리를 통해 거리를 두고 해답을 제시함으로 시대의 문제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보물들이 많이 있다. 주석도 당시 주석서는 로마서만 해도 수백 권이 있다. 오늘날은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주석이 많지만, 당시는 실제 목회에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동성이 있는 주석들이 많다. 그런 자료들을 발굴하여 종교개혁 주석시리즈가 나오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 책들을 비치해 놓고 읽으면서 믿음의 선배인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흡수하며 목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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