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바울 사도 닮아가기 > 뉴스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제이미 제이미혜택


뉴스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바울 사도 닮아가기

페이지 정보

정보ㆍ2021-08-03 06:28

본문

“존 스토트의 말이 맞다. “바울은 … 일종의 기독교인 소크라테스이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가 알던 복음보다는 훨씬 더 탁월한 복음을 알고 있었다”” 

 

5580d1f9521b59355b12c098e480e85a_1627986500_66.jpg 

Photo by Nils on Unsplash

 

기원전 430년경, 델파이 신탁을 찾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제자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델파이의 신 아폴로는 “아니오”라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아폴로의 이런 대답은 소크라테스를 크게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폴로의 대답은 소크라테스에게 일종의 개종(conversion)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는 남은 인생 동안 과연 델파이의 신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탐구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적 탐구는 변증법을 탄생시켰는데, 즉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대화 상대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독특한 논증 스타일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델파이의 신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참으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플라톤의 ‘사과(Apology)’ 21D-E 참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철학자와 성경의 관계에 관해, 초대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은 “그럼 아테네는 예루살렘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질문 속에 그가 암시한 대답은 “전혀 없다”였다. 그러나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 어거스틴(Augustine), 그리고 한참 후 아퀴나스(Aquinas)와 같은 대부분의 다른 교부들은 “모든 면에서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초기 많은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적 준비가 유대인의 마음에 필요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그리스인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철학적 준비라고 주장했다.

 

모든 철학적 변증가의 선구자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바울과 누가는 그리스 철학을 구원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철학이 궁극적인 성취를 입증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사실은 사도행전 17장 16-34절에서, 기독교를 처음으로 접한 아테네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지금 이 본문을 통해서 누가가 바울을 새로운 소크라테스, 뭔가 아는 소크라테스로 제시하고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바울이 취한 소크라테스식 접근 방식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려고 한다.

 

새롭고 더 현명한 소크라테스인 바울

 

소크라테스의 고향이자 철학의 발상지라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지위를 감안할 때, 나름 교육을 받은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라도 사도행전 17장 16-34절을 읽을 때 소크라테스를 기억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고라(시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쉬지 않고 변증법적인 대화를 나눴을 바울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행 17:17; 플라톤의 ‘사과(Apology)’ 29D).

 

사실, 누가가 전설적인 철학자에 관한 기억을 깨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거 같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구절을 읽는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다음 말을 기억할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보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입니다.”(플라톤의 ‘사과(Apology)’ 29D). 

 

소크라테스와 바울의 유사점이라는 점에서 아테네 장면은 보다 더 두드러진다. 우선, 아테네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그리스 독자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일상적인 변증법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바울은 회당에 있는 자들과 아고라에 있는 자들과 변론하고 또 토론했다(행 17:17). 소크라테스도 이런 바울의 모습과 비슷했다. 크세노폰(Xenophon)은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열린 채로 살았다. 이른 아침에 그는 공공 산책로와 훈련장에 갔다. 오전에 그는 시장(아고라)에 나타났고, 나머지 시간 동안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에 있었다. 그는 주로 이야기를 했고 누구나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Memorabilia 1.1.10)라고 기록했다.

 

더욱이 소크라테스를 결국 처형으로 이끈 동일한 혐의가 아테네에서 바울에게도 제기되었다. 바울에 대해 아테네인들의 평가는 이렇다.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행 17:18). 유사하게, 크세노폰과 플라톤은 모두 다 이렇게 증언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거부하고 이상한 신(kaina daimonion)을 데려온 죄를 지었다”(Memorabilia 1.1; ‘사과(Apology)’ 24B).

 

바울은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책 ‘사과’에서 고소자들에게 말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아레오바고스 공의회와 안드레스 아테나이오이(“아테네 사람들”)에게 연설을 시작한다(‘사과(Apology)’).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플라톤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us),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적 유대인 필로(Philo)를 언급하고,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그리스의 그레데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와 솔리의 아라투스(Aratus)까지 인용한다. 

 

존 스토트의 말이 맞다. “바울은… 일종의 기독교인 소크라테스이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가 알던 복음보다는 훨씬 더 탁월한 복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히브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헬레니스트들에게 헬레니스트였다. 유대, 그리스, 그리고 로마라는 세 종류의 세계를 다 품었던 바울은 참으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

 

그렇다면 여전히 “우상이 가득한”(행 17:16) 문화 속에서 사는 우리는 바울의 이런 소크라테스적 접근을 어떻게 따를 수 있을까?

 

바울을 닮는 네 가지 방법

 

1. 푹 잠기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에 잠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고대의 지혜를 마음 깊숙이 빨아들이라. 그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문화를 제대로 비판하고 전복시키기 위해서 세속 문화에 빠진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바울은 성경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테네 문화, 즉 언어, 믿음, 그리고 영웅을 비롯해 그들의 가장 깊은 열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웃이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인가? 그들의 신념, 영웅, 가장 깊은 열망은 무엇인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또한 그들의 영웅을 인용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를 그런 그들의 모든 희망과 꿈의 성취로 보여주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2. 동의하라

 

우리는 다른 종교, 이념, 그리고 세계관과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세상 사람을 그들이 있는 곳에서 만나라. 바울이 만난 아테네 청중은 스스로를 지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지극히 무지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무지를 시각적으로 인정하는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비문을 그들을 교육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았다(행 17:23).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의 진리를 확신시키려고 하셨을 때, 그는 이사야서(사 26:19)나 다니엘서(단 12:2-3)가 아니라 출애굽기 3장 6절(막 12:18-27)을 인용하셨다. 왜?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 그러니까 토라만을 영감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성경을 인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이 사랑하는 스토아 시인인 에피메니데스와 아라투스의 글을 인용한다.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준 지혜를 배우라. 무슬림과 교제하고 있다면 꾸란을 인용하라. 몰몬과 이야기하고 있다면 몰몬경(또는 킹 제임스 버전)을,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신세계역을, 그리고 무신론자라면 니체(Nietzsche)나 토마스 네이겔(Thomas Nagel)을 인용하라. 세속적 인본주의자들과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전사들은 그들만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연구하라. 소크라테스 변증법을 공부하라. 반대되는 세계관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준비하라. 때때로 그들이 “성경”으로 간주하는 책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 반대하라

 

스토아 학파는 바울이 연설에서 말한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와 심판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은 입고 있던 토가 속에서 몸부림쳤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도 스토아 학파도,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출신 청년의 육체적 부활은 고사하고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그들의 반응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우리도 그런 바울을 닮아야 한다. “부활(아나스타시스)이 없다”고 주장한 아폴론 신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바울은 담대하게 부활을 전파했고 선포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를 보증하셨느니라”(행 17:31).

 

시종일관 재치와 사랑, 그리고 온유함으로 말했지만 바울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 여러분, 당신네들이 틀렸습니다! 당신이 틀렸다고요, 스토아학파!”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불교도, 힌두교도, 그리고 스스로를 “영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은 모두가 다 틀렸다. 심판이 있고,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 따라서 당신이 다루어야 하는 주제는 아폴로나 또는 어떤 “알지 못하는 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잊지 말라. 

 

4.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전파하라! 그리스도를 높이라! 그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삶, 그의 비할 데 없는 기적과 가르침, 십자가의 죽음, 부활과 승천, 그리고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심판주 그리스도를 전하라. 사도행전 속 모든 설교에서 선포되는 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우리가 부활을 선포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비록 바울이 스토아 학파 시인들을 인용하며 또한 그리스의 철학적 옷을 입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이다.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주는 지금도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소크라테스보다도 위대한 자

 

일부 비평가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아테네에서 승리했다. 놀랍게도 신약 학자이자 불가지론자인 바트 어만(Bart Ehrman)보다 이 사실을 더 잘 표현한 사람은 없다.

 

결국 바울이 이겼다. 그날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전파한 내용은 결국 모든 것을 이기게 되었다…. 아고라에서….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에서. 바울의 설교는 하파이스토스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을 압도했다. 바울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일어났다. 기독교는 결국 서구 문명을 인수했다.

 

그 날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스나 아고라의 그 누구도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행 17:32, 저자 번역). 반면에 바울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약속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그날 바울의 철학, 아니 그의 복음이 승리했다. 그가 불멸의 연설을 하고 수백 년이 흐른 후, 그리스 전역의 그 모든 신전들은 하나같이 교회로 바뀌었고 오늘날까지도 남아서 예수 이름의 권능을 찬양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역사상 가장 현명한 철학자일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인정한 것처럼, 그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을 닮도록 하자. 바로 기독교인 소크라테스 바울, 복음을 아는 그를 닮자. 그리고 지금 이 문화 속에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원제: Paul Was a New and Wiser Socrates (And How We Can Imitate Him) by Justin Bas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저스틴 바스는 NGO를 통해 난민 사역을 하고 있다. Jordan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있고, 바트 어만(Bart Ehrman)과 같은 대표적인 무신론자와 공식적인 토론을 벌였다. 저술한 책으로는 'The Battle for the Keys: Revelation 1:18' 등이 있다. 

 

---------------------------------------------------------------------------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팀 켈러 목사와 존 파이퍼 목사 등이 이끄는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연합)의 한국어 사이트(tgckorea.org)가 2018년 11월 오픈되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주제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 되고 있다. TGC코리아는 TGC는 물론 개혁주의 신앙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인기 사이트인 Desiring God(존 파이퍼), Ligonier(R.C. 스프로울), 9 Marks(마크 데버), Unlimited Grace(브라이언 채플)의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 TGC코리아(https://tgckorea.org)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쓰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뉴스 목록

Total 11,042건 74 페이지
뉴스 목록
기사제목 기사작성일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바울 사도 닮아가기 2021-08-03
하나님의성회 뉴욕신학대학(원) 임유니스 선교사 파송예배 2021-08-03
이기응 목사 “교회 신뢰도 37%를 더 높이는 할렐루야대회” 강조 2021-08-01
이준성 목사 소명 기자회견 “부덕의 소치로 여기고 기도한다” 2021-07-31
“박효성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사고 1년후 2021-07-31
퀸즈장로교회, 포기할 수 없는 단기선교 그래서 “킹덤 미션” 2021-07-30
뉴욕교협 법규위원회 1차 모임 “혁신위와 대립 아닌 협조” 댓글(1) 2021-07-30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제13회기 시무감사예배 및 이취임식 2021-07-30
2021 할렐루야뉴욕복음화대회 1차 준비기도회 2021-07-29
미동부기아대책 7월 모임 “기적을 이루는 성경의 원리” 2021-07-29
문석호 회장의 증경회장 초청 모임 “배려만 있는 감동의 자리” 2021-07-28
49회기 뉴욕목사회 임실행위원회, 직전 회장 제명 논란 2021-07-27
오늘의목양교회, 장봉익 목사 초청 일일부흥회-내일같이 나선 이웃교회들 2021-07-27
한국총회 동중부지방회 39차 정기총회 “믿음을 지키자” 2021-07-27
11주년 뉴저지 그레이스장로교회, 나눔하우스 초청 이웃사랑과 섬김 실천 2021-07-27
뉴욕선교로교회 선교세미나, 이용걸 목사 하나님의 선교 강조 2021-07-26
나눔하우스 이사회 “60만 불을 목표로 2차 모금 시작” 2021-07-24
예수님을 사랑한다며 이렇게 비도덕적이라고? 2021-07-24
뉴욕교협 혁신위 5차 회의 “공청회 앞두고 중간 정리” 2021-07-22
20주년 맞은 뉴욕권사선교합창단, 9.11테러때 창단되어 댓글(1) 2021-07-22
이보교, 여칠기 등 이민개혁법 통과위한 캠페인 벌여 2021-07-22
그레이스미션대학, 교차문화학 철학박사 ATS 인가 획득 2021-07-22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삼은 WKPC 뉴욕노회 2021-07-21
퀸즈한인교회 52주년 임직식 "KCQ는 멈추지 않는다" 2021-07-21
동부한미노회 정기노회, ‘임시 목사’가 늘어나는 사연 2021-07-21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