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간의 가장 반 성서적 의식은 “일제시대 [한민족]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란 주장이다. 이 발언의 비신앙성은 시편 137편이 말해준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이하 개역한글)
(Jews Mourning in Exile by Eduard Bendemann)
역사속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고, 그 백성이 침략자의 노예가 된 예는 흔하다. 전근대 노예들은 주로 전쟁 포로였다. 승자의 사회에 동화 되거나,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갔다. 이렇게 다른 지역, 또는 민족 공동체로 유입된 포로들은 새로운 환경을 받아 들였고, 그 사회에서 성공한 사례는 많다. 주로 싸움터에서 창칼로 합(合)을 치루다 패해 상대의 포로, 이어 노예가 되었으니 이들에 대한 무사 (武士) 사이의 존재하는 인정이 있었다. 흔한말로 눌러 앉기가 쉬웠다.
예외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다. 시편 137편의 고백이 이들의 민족 정체성을 시언어로 외친다.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이 고백에 제목을 달면 “포로된 민족에게도 나라는 있다”이다. 우리 선조들도 포로된 민족이지만, 늘 나라를 잊지말자고 소리쳤다. 이상화와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한민족의 바벨론 강변 울음소리다. 이 또한 통곡이 아니다. 민족 회복의 희망과 의지를 담은 포효다. 강력한 꿈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중략]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일제 강점기 땅은 빼앗기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꿈속에서라도 내 땅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고 했다. 바빌론의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비록 포로가 되었어도 존재는 꿈틀거려야 한다. 꿈은 혼과 마음의 노동이고 상상은 의식의 훈련이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루살렘을 머릿속에 그리며 강가에서 울었다.기쁨과 설움으로 뒤섞인 옛 기억이 동력이 되어, 신들린 (여호와를 그리는) 사람이 되어, 비록 이민족의 지배로 다리를 절지만, 봄을 그리며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이 여정의 끝은 해방이고 귀향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 열매인 구원을 간구하는 (꿈꾸는) 민족에게는 언약이 이루어진다. 본향으로 돌아감이다. 시편 138 편이 그 기쁨을 노래한다.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2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일제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이 사고가 반신앙, 비성서적인 이유는 뚜렷하다. 바벨론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 처럼 침탈과 폭압의 지배자와 우리는 결코 하나이지 않았다.
선조들은 메마르고 언땅에서 해방된 조국을 꿈꾸며 나라를 만들었다. 이미 1905년 을사늑약 부터 저항은 철저했다. 소나무에 민족의 "수금"을 걸어 맸다. 지배자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항일 의병, 국채보상운동, 구국 교육, 또 애국계몽운동의 상징 신민회 등,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은 바빌론 강가에서 울기만 하지 않았다. 눈물은 흘렀지만 이는 악물렸고 주먹은 쥐어져 있었다. 만해 한용운이 의 시가 말한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로 우리 민족은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땅을 빼앗긴 것은 맞다. 하지만 해방, 회복, 구원의 믿음은 강했다. 그 결과로 기미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세웠다. 먼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가 세계만방에 공표했다. 이 선언의 당위와 정당성은 대한민국 헌법이 증거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전문은 정확히 밝히고 있다.
(상하이 임시의정원 제6회 기념촬영. 대한민국 원년(1919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입시 정부가 탄생했다. 임시 헌법은 극히 짧은 문서지만, 근대 민주 국가의 이념을 올곧게 담아냈다.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한다. (제2조)” “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다. (제2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일체 평등하다. (제3조)” 6년 뒤인 1925년 이 헌법은 개정되고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라고 선언한다. 이게 바로 우리 나라다. 만해의 시말대로 우리 민족은 이 "님"을 보낸 적이 없다.
이 나라의 존재와 가치, 그 은혜를 부정하고, 우리 선조는 바벨론을 꿈꾸던 일본의 국적을 가졌었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이 말은 입에 담을 수 없음을 성서가 섬찟하리만큼 정확하게 말해준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 18장 2절)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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