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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 최고의 광대에서 최고의 신앙인으로" 윤복희 권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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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6-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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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약 외로울 때는 하나님이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는 하나님이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하나님이 너의 벗되리."

윤복희 권사(60, 온누리교회)가 아마 이렇게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이곡은 그녀가 부른 "여러분"의 가사이다. 그녀는 이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국제가요제에 대상을 차지한다. 그녀는 처음 생방송으로 중계된 가요제를 통해 2번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전했다고 기뻐한다.

이시대의 최고의 광대에서 이시대의 최고의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는 그녀와 만나보자. 그녀는 크리스찬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공연차 뉴욕을 방문했다.

○‥본인을 소개해주시죠?

재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4살 때부터 이다. 연예계에 있던 아버지의 인도로 5살부터 미 8군에서 노래를 했다. 8군을 통해 미국으로 왔고 다시 한국으로 가 76년 성령을 받았다. 85년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갔다. 30년 동안 50여개의 뮤지컬 작품을 했으며 올해 4월 60주년 기념음악회를 가졌다.

○‥여러 호칭이 있는데 혹시 권사라는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사람들이 엄마, 대장, 권사 등 여러 호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다 마음에 든다.

○‥윤항기 목사 등 크리스찬 가족으로 인데 가족을 소개해 주시죠?

우리는 4남매이다. 큰 오빠는 윤영기는 목사로 있고, 언니 윤수현은 전도사로 있다. 윤항기 작은 오빠도 목사가 되었다. 나는 막내이다.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것입니까?

나는 가수가 아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간증으로 주신 말씀에 내가 곡을 붙인 것이다. 국제가요제는 처음으로 TV로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그것 때문에 전국민에게 전도를 한다는 입장으로 나갔다. 내가 직접 작사와 작곡 편곡을 했다. 윤항기 오빠는 "노래가 너무 길다고 줄이자, 영어보다는 한국말로 하자, 끝에 하이라이트를 주자"등의 조언을 해주었다.

나의 목적은 오직 전도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중 7-8명이 영어권 크리스찬이었는데 '여러분'이 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고 그래서 대상으로 되었다. 생방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 2번이나 방송을 탔다.

○‥어떻게 하나님과 만났습니까?

75년 한국에 잠깐 나가 윤항기 오빠하고 MBC에서 특집방송을 했다. 오빠와 같이 한 노래를 음반으로 제작했다. 그 곡이 "나는 어떻하라고" 이다. 그것이 대 히트를 했다.

리사이틀을 해서 재정적으로 오빠를 도와주려고 했다. 76년 2월27일 마지막 공연을 위해 전주에서 대구를 향해 130km로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의 뒷바퀴를 연결하는 파이프가 부러져 자동차가 공중에 3바퀴를 돌고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자동차 문을 열고 나왔다.

차가 하늘로 떠오르는 순간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고 사고당시를 생생히 보여주셨다. 문을 열고 나가는 당시 성령이 나에게 임하셨다.

○‥그다음 연예인교회에 참가하셨나요?

사고에서 살아난 후 바로 하용조 전도사님을 만났다. 하 전도사님에게서 사도행전적 말씀을 받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성경공부 멤버는 곽규석, 고은아, 구봉서등이 아세아 신학대학 2층을 빌려 성경공부를 했다. 주일이 되면 갈 곳이 없어 주일날에는 빈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76년 3월 7일 연예인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당시 "새롭게 하소서" 선교공연을 해 새로운 기독교 문화가 시작되었다. 신용균씨가 예수역을 맡았고 이종용씨 등도 출연했다. 이종용씨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다. 이들은 다 연예인교회  성가대였다. 공연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교회를 지었다.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매일 8회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에 나가 찬양을 했다. 그리고 그 수익금으로 연예인교회를 세웠다.

하용조 전도사는 이때 전세를 얻어 두란노를 시작했는데 출판을 비용이 없어 음반을 내 수익금으로 출판을 했다. 당시 "한 알의 밀알" 이라는 최초의 CCM 음반도 제작했다.

○‥뉴욕 한마음 침례교회를 세우신 곽규석 목사님을 기억해 주시죠?

곽규석 목사님은 저희의 믿음의 아버지이셨다. MBC에 공연을 할때 사회자가 당시 후라이보이 곽규석 목사였다. 75년 미국에 오는데 곽 목사님이 성경을 선물로 주었다. 그렇지만 보지는 않았다. 성령을 받고 다음날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곽 목사님이 씨앗이 되신 것이다. 사고를 당한후 성경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곽 목사에게서 바로 공부를 하자고 전화가 와서 "Yes"라고 대답했다.

그 후 곽 목사는 미국으로 갔으며 82년 퀸즈칼리지 콜든센터에서 연합집회를 열기도 했다. 주님의 일을 하시는 데 저를 이용하시는 것이다.

○‥전도를 많이 하실 것 같은데?

전도를 많이 했다. 뮤지컬 등은 공연을 하기 전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나는 그러면 공연을 못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무료로 봉사를 했다. 나의 활동을 통해 알게 되신 분들이 내가 크리스천인줄 알고 교회에 대해 문의를 해온다. 그분들을 하나님에게 인도했다.

○‥'마리아 마리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2003년 처음 연습할 때 부터 와 달라고 해서 공연을 보러 갔다. '마리아 마리아'를 통해 한국 뮤지컬도 이제 해외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10년전부터 우리의 뮤지컬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리아 마리아'를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었다. 나는 슬퍼서는 잘 울지 않는다. 살아서 이런 작품을 보는 것이 감사했다. 나는 30대 초반부터 막달라 마리아역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주님이 눈뜨게 하시는 소경역할을 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엄마 언니 누나로서 팀원들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

○‥'마리아 마리아'를 추천해 주시죠?

'마리아 마리아'를 한인사회에서 꼭 보기를 원한다. 크리스찬은 많은데 성령체험을 한 크리스찬은 많지 않다. 한국과 미국은 거의 같다. 오늘이 지나면 안오는 내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연을 통해 주님을 찾는 통로가 될 것이다.

'마리아 마리아'는 크리스찬을 깨우는 하나의 '웨이컵 콜'이다.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통로가 될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생활하십니까?

성령이 인도하시는 데로 나를 맡긴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몰고가시는 데로 간다. 어떤 때는 끌려가기도 한다. 기도생활은 24시간 계속된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다. 항상 기도하면서 산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지난 9월1일 아틀란타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공연을 했다. 기독교인, 일반인과 외국인들도 왔다. 예수님으로는 차인표씨가 출연했다. 공연을 통해 '프라미스'의 주인공인 부룩스가 와서 주님의 일에 동역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달에 그들을 만나 그것에 대해 의논을 할 것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일이라고 믿는다.

○‥힘든 이민사회에 한 말씀?

나도 이민사회를 경험했다. 아버지를 따라 라스베가스에 왔으며 내가 10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민생활이 뭐가 힘든가? 미국의 축복의 크리스찬의 나라이다. 한국을 그리워하지 말고 미국에 적응하여 살아라. 힘이 들면 주님에게 오라. 목마른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하루를 즐겁게 살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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