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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 특강 "기독교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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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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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상열 목사(리빙스톤교회)가 9월 14일(금) 에버그린장로교회(담임목사 문덕연)에서 열린 대뉴욕지구원로성직자회(회장 박문근 목사) 월례예배에서 한 특강 내용이다.

음악은 용도나 그 성격 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입니다. 세속음악은 또다시 고전음악과 대중음악 민속음악 등으로 세분되고 종교음악은 종교의 수만큼 다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음악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찬양음악“으로 주제의 폭을 한정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찬양을 뜻하는 핵심적인 단어는 할랄(Halal)입니다. 구약에서 찬송이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말할 때 자주 인용하게 되는 성구인 이사야 43장 21절의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에서 “찬송”이란 말도 “할랄”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할렐루야”도 이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잭 테일러(Jack R. Taylor)라는 분은 “The Hallelujah Factor” 이라는 책에서 이 할랄(Halal)이란 단어를 “칭찬하다, 자랑하다, 축하하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시끄러워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위해 남녀 간의 첫사랑을 예를 들었습니다. 뜨겁게 사랑할 때 자기의 이성이나 지성이 끼어들 틈이 없듯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전적인 몰입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찬미(讚美)나 찬송(讚頌)이라는 비슷한 단어가 함께 쓰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뉘앙스만 다를 뿐이지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이란 찬성하여 칭찬하는 것을 말하고, 찬미란 아름다운 것을 일컬어 기리는 것을 말하며, 찬양이란 칭찬하여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전 인격을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며 그 분의 성품과 하시는 일을 드러내어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찬양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하려 할 때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 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경배”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경배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경배와 찬양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때 찬양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인간의 반응을 나타내며 경배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의 거룩하심 앞에 경외함으로 나타내게 되는 피조물의 낮아짐의 반응을 말합니다. 이 반응은 신뢰와 순종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Worship)라는 말이 바로 이 낮아지는 행위 즉 엎드리는 것, 무릎을 꿇고 손에 입 맞추는 것 또는 종으로서의 섬기는 것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리려면 그 방법이 어떤 형태이건 간에 -음악의 형식이든 춤의 형식이든 연극의 형식이든 말의 형식이든 문학의 형식이든- 바로 이런 마음의 낮아짐이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우리의 낮아짐이 없다면 아무리 잘 준비 된 예배의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곧 예배에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그 자체가 예배의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경외함을 가지고 나 자신의 낮아짐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적인 지식, 인간적인 체면, 자존심, 인기, 등등의 이유 등으로 인하여 마음이 갈리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보이는 것들이나 듣는 것 그 자체에 아예 온 마음을 다 빼앗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예를 들자면 음악의 선율 자체가 주는 분위기에 감동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귀한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것 필요하고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동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감동하며 눈물 흘리기로 말하면 대중가요도 그 힘이 아주 큽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딱 맞는 그런 노래를 들으면 특별히 더 감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 없으신지요?

자,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면 찬양과 음악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찬양이 곧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지요?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습니다. 음악은 찬양을 하는데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 중의 한 가지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찬양이라는 말을 언제나 음악으로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찬양이라는 단어에 노래 가(歌)자를 붙여야 비로소 하나님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로서의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찬성하여 칭찬하는 노래
찬미가: 아름다운 것을 일컬어 기리는 노래
찬양가: 칭찬하여 드러내는 노래

그러므로 노래가 되려면 가사가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음악의 형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를 담고 만들어 지기 때문에 무척 다양 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음악의 어떤 특정한 형식 자체가 거룩 성을 가지고 있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에 붙은 가사의 내용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음악의 형식보다는 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젊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를 담은 노래가 있습니다.

“함  께”
1) 당신이 내게 다가온 후에 그 사랑을 알게 됐지요
나의 마음에 가르쳐 준 것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랑
당신이 곁에 있어준다면 나의 가는 길 함께 걸어간다면
그 사랑이 나에게 꿈을 주지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2) 당신이 멀리 떠나간 후로 그리움을 알게 됐지요
기다려주고 날 믿어주었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
당신이 곁에 있어준다면 나의 가는 길 함께 걸어간다면
그 사랑이 나에게 꿈을 주지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러면 곡은 또 어떻습니까?
다 아시겠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음률을 맞추어 시를 쓰거나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무척 답답해합니다. 나오는 대로 그냥 중얼거리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훨씬 편한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결과입니다. 특히 요즘 유행음악은 정해진 템포와 리듬(Rhythm)이 있게 마련인데 여기에 긴 가사로 노래를 만들다 보니까 멜로디가 복잡해집니다. 어떤 경우는 아예 랩(Rap)으로 처리를 하기도 하고 또 처음부터 아예 랩(Rap) 형식으로 노래를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음악은 음정의 큰 변화가 없이 정해진 리듬에 맞추어서 지껄이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는 어떤 음률을 지켜 나가는 질서가 있지만은 기성세대에게는 그게 쉽게 들리질 않습니다. 거기다 가사까지 대중가요 가사 수준으로 읊어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음악의 형식이야 세대차이로 인한 문화 갈등으로 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에 있어서 찬양의 본질을 벗어나서야 되겠습니까?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오신 여러분들께서 찬송시에 관심을 가지시고 한 번 써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문학의 여러 기타장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찬송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찬양이 곧 음악”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에 나타난 찬양은 주로 하나님의 귀를 향한 소리로 표현되고 있고 많은 경우 노래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미주 찬송가 공회”에서 찬송가 가사를 모집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새로 출판된 찬송가에 부적절한 곡들이 많고 또 해외 실정에 맞도록 편집을 해서 새 찬송가를 발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 번 도전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찬양음악에 사용될 가사의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ACTS 를 각각 첫 자로 하는 4가지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집니다. 흔히 기도의 내용에서 있어서도 이와 같은 요소가 언급되곤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지금 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찬양(Adoration or Praise)의 내용과 우리자신의 실제적인 모습을 인정하는 고백(confession)의 내용과 그리고 감사(Thanksgiving)와 간구(Supplication)의 내용 등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사에 음악적인 요소가 섞여질 때 찬송의 노래 곧 찬송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노래가 향하는 방향성에 따라서 찬송가(Hymn), 복음찬송가(Gospel Hymn), 복음성가(Gospel Song)로 분류되기도 하며 또한 음악의 스타일로 그 장르를 구분하여 Praise and Worship, Worship Song, Contemporary worship Music, Christian Contemporary Music 등으로 분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음악을 사용할 때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곡을 선택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모임의 성격이나 회중마다의 그 문화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많은 현대적인 음악들은 음악의 형식만으로는 그것이 세속음악인지 교회음악인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노래의 가사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가사 면에서 볼 때 교회에서 특별히 예배에서 사용하기가 아주 부적절한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들의 인기와 판매수입에 관심을 둔 세속화된 노래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가사의 내용에 관심을 두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소홀히 할 때 “교회음악”은 점점 세속화 되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세속화의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좋은 찬양의 시가 그런 음악의 분위기를 압도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사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될 아주 중요한 이유 한가지 가 더 있습니다. 우리가 가사에 무관하다면 인기와 돈 벌이를 고려한 세속적인 상품화의 현상을 넘어서서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을 변질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음악들로 인하여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된 다는 것입니다. 아니 벌써 그런 혼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사가 없이 기악곡으로 만들어지는 뉴에이지 음악이 바로 그것인데 이 음악은 휴식음악, 명상음악, 치료음악, 태교음악, 환경음악, 내면음악 등등의 현대인에게 아주 유혹적인 이름으로 주로 정신세계에 파고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뉴에이지 운동이 단순히 이 시대의 어떤 사회적인 풍조가 아니라는 점과 또한 특별히 눈에 띄는 어떤 조직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극히 종교적인 현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잠재적으로 신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끊임없는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신의 경지에 도달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후의 조정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오랜 세월 하나님을 경험하신 여러분들께서 하나님을 만난 감격이 있는 아름다운 찬양의 시를 많이 쓰셔서 진정 하나님 기뻐하시는 찬양의 노래가 널리 알려져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사탄을 멸하는 승리의 기쁨도 누리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크게 쓰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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