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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 컨퍼런스, 강사 김성곤 목사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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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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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D12 세미나에서 강사 김성곤 목사(부산 풍성한 교회)가 거듭나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까지의 간증이다.

한국교회는 예배당 마루에서 방석을 놓는 것을 가지고 서로 싸웠고, 그 이후에는 예배당에 의자를 놓는 것을 놓고 싸웠다. 또 기타치는 사람을 사탄의 새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피나게 싸운다. 본질은 복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도 비본질적인 것은 빨리 변해야 세상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3일간 내가 할 이야기이다. 비본질이 본질의 발목을 붙잡아 한국교회가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숙인다. 한국교회는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55년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그 교회 장로가 은혜를 받았다고 식사를 대접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은혜를 받았느냐고 묻자 그 장로는 "본질로 돌아가자"라는 말에 은혜를 받았다며 "우리교회도 본질로 돌아가 의자가 아니라 방석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설교를 들어도 자기방식으로 설교를 듣는다. 70년대 이민온 사람은 그때 경험한 한국교회가 바른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민교회는 발전이 더딘 편이다.

비본질적인 것은 항상 변해야 한다. 다이아몬드는 값어치가 있지만 형편없는 포장지로 싸면 값어치가 없어 보인다. 우리가 복음을 값싼 포장지로 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간증을 말하겠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는 전도사였으며 아버지는 믿음 좋은 청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율법적인 신앙을 가졌다. 교회에서 연말에 주는 상을 휩쓸어 그 학용품으로 일년을 지냈다. 그러자 친구가 학교에서도 상을 받아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나는 학교공부는 안했으며 신앙에는 철저했다. 어느 토요일은 아파서 조퇴를 했다. 주일날 아침에도 아팠는데 어머니가 교회에 가라고 했다. 아파서 못가겠다고 했는데 순교를 하는 한이 있어도 교회에 가라고 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도 모른 채 했다. 나는 억지로 교회에 갔다. 신기하게도 예배를 보니 아픈것이 나았다. 중고등 학교때에는 주변 7개 학교를 연합해서 기독교 서클을 만들 정도였다. 그만큼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달라졌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었다. 주일에만 교회에 가는 신앙으로 떨어졌다. 20대 전체를 그렇게 보냈다. 모태 신앙이 아니라 못돼, 못해 신앙으로 보냈다. 영적인 열등감과 죄의식이 나를 괴롭혔다.

새롭게 변화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그런 삶을 31살 때까지 살았다. 31살때 건설사 소장을 했는데 나의 신앙 마지노선인 주일설교 참석을 지킬 수 없어 직접 건설사를 운영했다. 사업은 잘되었다. 잘되면서도 압박감이 있었다. 차라리 남 밑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당시에는 10분도 집중하여 기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듣고 기도원을 갔다. 오산리 기도원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찬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놀라 밖으로 나오며 속으로 이단이라는 비명이 나왔다. 차가 없어 돌아오지도 못하고 숙소에 들어갔다.

당시 담임 목사님은 칼빈주의 사상의 보수적인 목회자였다. 교회는 성경책 넘기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전통적인 교회였다. 그래서 박수를 치면서 찬양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박수치며 손을 들고 찬양하며, 방언하고, 넘어지는 것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숙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의 친구인 장로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정통 장로교 출신 장로였다. 그를 통해 스타일이 다른 다양한 교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나의 신앙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31년 만이다.

하지만 그들처럼 찬양을 하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손뼉이 안쳐지고 손이 안올라갔다. 몇일 지나니 그것이 가능해 졌다. 기도원에 들어간지 5일째 되는 날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지난 잘못이 지나가며 회개가 됐다. 그때 성령의 불이 임했다.

그때 하나님으로 부터 주의 종이 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집안에는 삼촌등 목회자가 5명이나 되어 종이 되라는 말씀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목회자인 친척들은 훌륭하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뛰어나지 못했다. 나는 경제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씀대로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 40살에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지 않으시고 아내를 치셨다. 아내는 갑자기 열병으로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도 나가라고 할 정도의 상태였다.

내가 순종하고 회개하기 시작하자 아내의 병은 일주일 만에 나았다. 그리고 나는 신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닌지 6개월이 지나도록 나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진정한 변화를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모태신앙이라 신앙의 출발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이 변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앙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교육과정을 공부한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한 대학생 선교단체와 연결하게 하셨다. 당시 신학생이며 전도사였지만 목회자 반이 아니라 2년 과정의 평신도 반에서 공부했다.

리더는 하루에 3시간을 기도하고 무념으로 성경 35장을 읽으라고 했다. 하지만 잡생각으로 처음에는 성경을 3줄도 읽기가 힘들었다. 결국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점점 기도의 시간이 늘어나고 성경을 무념으로 35장을 읽었다. 그래서 영적 성장은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필드에는 목회자가 뛰고 평신도는 병신도가 되어 시키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생 선교단체 회원들은 그들 삶 자체가 하나의 메세지였다. 하나님의 비전에 사로잡혀 애비의 심정으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사람을 양육시키는데 헌신했다. 그들을 통해 평신도가 황홀한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94년 나도 그런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세웠다. 그렇게 훈련하고 세우는 과정 7년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 판정을 받았다. 영적성장에는 지름길이 있으며, 건강한 교회는 확신찬 평신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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