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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희 목사 “생명의 성령의 법과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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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8-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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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7월 28일(월) 개회예배를 시작으로 5일간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셋째날(30일) 오후에 진행된 선택강좌에서 정광희 목사 (큐가든성신교회)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선교"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신앙의 뒷받침이 없는 선교는 가짜이다. 정광희 목사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선교"를 통해 신앙의 의문을 풀어주고 신앙의 큰 그림을 그려 한눈에 보게한다. 그리고 신앙의 성숙을 통해 선교로 나아가게 한다. 정 목사는 동문인 총신 77회 이상관 목사의 "생명의 성령의 법"강의를 소화하여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들려주었다. 스스로 노력하여 의롭게 되려고 하는 신앙인이면 꼭읽어야 할 강의이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의롭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라고 말씀한다.  의롭고 거룩하고 선한 것은 바로 율법이다(롬7:2).  율법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율법을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 행동하도록 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율법주의자로 만들어 간다.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님을 영접시킨 후 이제는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르치는 자도 못 살면서 말이다. 물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그렇게 살기 위해서 힘쓰고 애쓴다면 기독교는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택하여 십자가가 걸린 건물에서 종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렇게 살수 없다. 로마서 8:1-2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한다. 

1. 참된 신앙생활이란 ?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안서 사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흔히 신앙생활을 생각할 때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직분을 가지고 예배당에 열심히 나오고, 헌금도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명칭만 다를 뿐 모든 종교에 다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예배가 있고 설교가 있고 기도가 있고 전도도 있고 헌금도 있습니다. 단지 명칭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 자체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 제사장들이나 제사장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서기관들은 날마다 성경을 공부하며 연구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래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하여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 곧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마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직분을 가지고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독사의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롬10:1-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 느니라

여기서 보면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의는 무엇인가? 자기의 욕심과 생각과 마음으로 노력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자기 힘으로 살라고 합니다. 원래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장 루시퍼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힘으로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쫓겨나서 이 세상의 어둠의 세계로 쫓겨납니다. 그래서 사탄이 됩니다. 이 사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지옥인데 사탄은 혼자 저주 받은 지옥에 가려고 하지 않고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에게 와서 선악과를 먹도록 유도합니다.  너희가 만일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처럼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선악을 알게 되는 육신의 생각과 마음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사탄의 속성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선한 것을 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육신의 마음으로 선악과를 먹음으로 육신의 마음에 선과 악 곧 율법이 새겨져 버립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새겨진 율법을 가지고 스스로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옳게 살겠다고 합니다. 마귀의 대표적인 집단인 종교가 불교집단입니다. 불교는 스스로 열반, 해탈할 수 있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롭게 되는 자들은 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서 의롭고 거룩하게 되려는 자들은 마귀처럼 저주 아래 있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는 다는 것은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선하게 되려고, 거룩하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독사의 자식들, 사단의 자식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이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신 이유와 목적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요6:39-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믿어 영생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영생의 삶을 살기위해서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서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잘 믿는 것은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영생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영생의 의미를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고 막연하게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분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천국에도 있고 지옥에도 영원히 삽니다. 그래서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도 막연합니다.  좀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3:14절을 보면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말씀인데 그 이유와 목적이 그 다음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절 15절을 보면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목적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전서 5: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와 목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전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 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위를 위하여 죽으사 "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하기 위함" 이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영생의 삶이란 깨든지 자든지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을 주신다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인데 이 생명은 우리 주님과 하나가 되어서 사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자든지 깨듣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나는 하나 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이요 신앙의 본질이요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입니다. 이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은 깨든지 자든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생명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 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신앙생활이란 주님이 함께 생명하신 생명을 누리는 것이요 선교는 주님과 함께 누리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때 나와 주님이 하나 되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할 때 함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 행하십니까? 그것은 내안에 계신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분을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분이 하십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하나님의 영원전의 계획

하나님은 영원 전에 어떤 계획을 가지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것이다. (히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 예수님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 우리를 다 하나에서 낳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낳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 표현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아주셨다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미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낳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하늘로부터 났다는 말입니다. 중간에 새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이 씨로 뿌려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생명이 자라는 것입니다.  얼마큼 자라느냐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자랍니다. 우리는 그래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같이 되려고 하면 이단이지만 예수님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나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고전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자녀를 낳은 목적이 있습니다.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하늘에 간직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말은 바로 이 생명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구원인 것입니다.  바로 이 생명이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이 생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아들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요일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미 오셔서 모든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을 우리에게 인쳐버리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경 전체는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을 마시고 삽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생수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생수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바로 이 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셔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오셔셔 우리를 성전삼고 이 물을 주십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하나님의 목적과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살도록 하는 생명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는 법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하여 의롭게 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잡아 삼키려고 몸부림을 친다.  마귀가 가지고 역사 하는 것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율법을 스스로 지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라고 부축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있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어떻게 삼키려고 합니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가 노력하여 선하고 의롭게 거룩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그는 언제나 의롭게 살려고 하는데 살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은혜를 받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속사람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늘 패배였습니다.  그는 의롭게 살지 못하고 선하게 살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런데 그는 한 법을 깨달았다고 8장에서 말합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람의 법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엇인가?

계속해서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은 육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명은 율법을 지킬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죽여 묻어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의 생명을 바꾸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은 성령을 좇아 살아가게 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도록 하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을 성령으로 누리면서 사니까 율법의 요구가 이루러진다는 법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 가다보면 율법의 요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을 어떻게 사는 것일까?

3.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법

예수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영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영생은 깨듣지 자든지 함께 주님과 함께 사는 것)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성전삼으시고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요2:21절에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된 자신의 육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이이 되어 하나님과 깨듣지 자든지 함께 사셨습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시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0-11)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어 사셨고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요14:10)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대로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께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씀하셨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요8:25-28)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셨는데 어떻게 사셨는가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성전삼고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대언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성전삼고 계신 하나님이 음성을 듣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성전삼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오시어 나를 성전삼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2:13-14절을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지만 영적으로는 믿을 수 있고 듣고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에서 말씀합니다. (고전2:15-16)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과 마음으로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려하는 자 곧 율법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하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은  나를 성전 삼고 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서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의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으로 삼고 예수님 안에 계셨던 것은 예수님께 말씀하셔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받은 받으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되고 그 마음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안에서 성전삼고 계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

우리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려면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영으로 들어야 합니다.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성령)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성령)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우리는 새 언약의 일군들입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기록된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영으로 즉 성령으로  말씀을 들어야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기록된 말씀에서(의문)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살수 있습니다.

의문은 육신에 주신 말씀으로 돌판에 기록하여 주신 모세의 율법을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기록된 말씀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은 육의 눈으로 보는 것이요 의문으로 가르치며 듣는 것은 육신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의문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으로 새김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법에서도 생명을 공급하는 짐승의 괴를 먹을 때는 아무것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이 될 수 있는 고기는 반드시 되새김질 하는 짐승의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레11:1-8) (레11:3)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율법은 육신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서 살려는 것이요 복음은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율법으로도 살고 복음으로도 사는 것은 굽이 갈라져 쪽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생명이 되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명기8:1-3절에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기록된 말씀을 주시고 430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신 이유와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살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어서 사람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4:4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삼상16:7절에 보면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성령의 음성은 마음에 새겨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여야 합니다.

(신6:4-6)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잠3:1-3)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 있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귀중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첫째는 아담의 씨로 태어나 더러운 마귀의 속성으로 완전히 변질된 육신의 마음으로 심히 부패되어 버린 마음이었스니다. 그래서 예레미야17: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더러운 속성으로 변질된 육신의 마음에서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15:18-20)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토록 더러운 마음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고 해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10:16절에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그리고 후일에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골로새서2:11-12절에 할례는 오늘날 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30장 6절에 하나님께서 할례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 할레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친히 하나님의 마음에 기록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31:31-34) (렘31:33-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로 우리에게 할례를 베푸셨습니다. (골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육신의 생각과 마음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 우리는 육적 몸을 벗어버렸고  주님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이제는 새 생명으로 살아야 새 마음이 나오게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역을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깨꿋하게 되고 이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행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우리 마음에 임하신 성령께서 마음 안에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말씀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면 “ 성령의 음성과 가르침은 할례 받은 마음으로 듣고 받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그것은 육신의 귀와 어떤 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의 말씀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영으로 들어야 합니다.

영이 어디에 있는가? 영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성전은 세 곳으로 나눈다.  성전뜰 이것은 성전된 우리의 육신,  성소는 우리의 생각(혼)을 말하고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임하는 장소인데 우리의 마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할례 받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은 마음으로 듣습니다.

5. 예수님의 선교 -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예수님의 선교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하셨다.  그것은 곧 대언의 영으로 하였다.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대언의 영

예수님의 삶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성전 된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 예수님을 성전 삼으셨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성전 삼으셨는가? 예수님께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항상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들은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언의 삶을 사신 것이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성령으로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다.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예수의 영은 대언의 영으로만 증거할수 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으로만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대언의 영의 활동이다.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았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대언하는 것이다.

(요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말씀으로 하신 역사이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이 생명으로 낳아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는 생명(영)이다.  우리의 생명을 들을 수 있고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고, 대언할 수 있다. 예수님은 대언의 영으로 사셨다. 우리가 대언의 영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나온다.  예수의 생명은 스스로 사는 생명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가르치는 대로 사는생명이다.

(막11: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예수님이 무화가 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런데 예수님 스스로 저주하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대화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들은 대로 저주하셨다.  성전되어서, 기도는 아버지와 대화한 대로 저주했다.

(막 11: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막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 왜 그 말씀의 원조가 하나님이시니까, 자기 안에서 말씀하신 그 분의 말대로 했다. 저주의 원조가 하나님이다. 대언의 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된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천국되어 사셨다는 말이다.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누구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면 그대로 된다.  어디에서 예수님 안에서 하신 말씀, 지금 우리 안에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  누가 하신 말씀? 하나님의 말씀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자기 아버지하고 대화하고 구한다는 것이다.  그 성전이니까 그분의 음성을 듣고 구한다)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기도하고 구하여야 한다.  대화하고 구하여야 한다.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구하여야 한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가르침을 받고 하는 것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집이다.  성전은 청구하는 집이 아니다.


겔37:1
(겔 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겔 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 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 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겔 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천국 대사 (겔 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겔 37: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 37: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7:14)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대언하니까 이대로 이루어 졌다.  돌아왔다.  이런 연습을 경건의 연습니다.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 경건의 훈련이다. 경건의 훈련은 하나님이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연습니다. 기도를 할 때 그냥하지 말고, 기도속에서 구하라. 

6. 결론 : 생명의 성령의 법과 선교

선교는 대언의 영으로 하는 것이다.  나를 성전삼고 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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