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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목사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성경적인 믿음 실행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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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2-03-2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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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소고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이윤석 목사

 

[들어가며]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는 요즈음에 사순절을 지키는 분위기가 강하여,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지금과 같이 사순절을 잘 지키고 있는 시대 분위기를 거슬러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개혁자들이 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생각하며,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교리만을 믿고,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을 폐지하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실천하려 한 것을 기억하며 우리들도 성경과 역사의 교훈에 근거하여 시대에 거슬러 가는 성경적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가 부활절 이전의 40일 동안 사순절을 이어가는 교회가 많은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적이며 개혁신앙적인 입장에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사순절을 비롯한 교회력의 절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예배갱신운동과 교회력 복원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가톨릭의 “예배복고운동”에서 시작된 예배갱신운동은 초대교회의 예배회복이라는 과제를 통해 개신교에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문제는 문화적 흐름에 맞추려는 이 예배갱신운동을 계기로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교회력에 따른 절기와 행사나 축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절기나 행사에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색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회 전통을 되살리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특히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에 참여하는 교단의 실천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교회력과 축일을 폐지한 것을 마치 어린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내어다 버린 것인 양 비유하기도 한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중세의 예전과 교회력과 예배의식을 버린 것이 예배의 통전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예배복고 운동가’들의 주도하에 중세의 전통을 다시 도입하여 예배를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 따라 교회에서도 예배가 변화하면서 여러 가지 혼란을 불러왔기에,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목회적 지침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사순절에 대한 관심은 교회력과 절기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보다 큰 움직임의 일환이다. 예배를 비롯해 기독교가 문화의 흐름에 대해 무관심하고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문화에 적응하려는 경향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이러한 극단을 오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예배에 관한 성경적이며 신학적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글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보는 사순절에 대해 칼빈의 기독교강요, 개혁주의 신앙고백, 그리고 청교도 신학과 더불어 다수의 출판물과 인터넷 기사들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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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교회의 교육중심의 사순절

 

고대 교회의 사순절은 세례식과 연관되어 있다. 세례를 받을 사람은 일정 기간 동안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배운 후에 부활절 전날 저녁에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3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후에 세례를 받고서 교회에 가입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준비하였으며, 세례 받을 사람뿐 아니라 그들을 맞이할 교우들이 함께 금식하기도 하였다. 어떤 교회는 세례를 받기 전에 40시간 동안 금식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사순절(quadragesima, ‘40번째’라는 뜻으로 ‘40시간’ 혹은 ‘40일’을 가리킴)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두 주간 동안 부분적인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들이 세례를 위한 교육을 받는데 있어 기간이나 방식이 달랐다는 것은 그에 대한 사도적인 전통이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교육들이 있었지만, 부활절 때에 시행될 성례를 위하여 수제자들을 교육하고 금식과 기도로 준비함으로 그들은 사순절을 실행하였다.

 

이런 사순절이 고대 교회에서 정착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Flavius Constantinus, 재위 306-337)가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의 일이다. 4세기의 교회들은 부활절 전의 일곱 주간 동안 매일 3시간의 세례를 위한 교육을 시켰는데,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이런 시행은 제국의 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325년에 열린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는 사순절을 40일로 정하고 부활절에 있을 성례를 준비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모든 교회가 40일을 지킨 것은 아니고, 40일을 정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했다. 어느 교회에서는 수난일 6주일 전부터 계산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교회는 8주일 전부터 금식을 하되, 토요일과 주일은 제외하고 일주일에 5일씩 금식이나 절식을 하였다. 또 다른 교회에서는  7주일 전부터 금식의 날로 정하고 그 사이에 있는 여섯 주일을 제외하여 40일을 맞추어서 시행하기도 하였다.

 

2. 로마 교회의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니케야 종교 이후로 정해진 사순절이 형식을 갖추고 모든 지역에서 실행된 것은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하고 로마 교회가 교회와 세속의 모든 권리를 장악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로마 교회의 정치적인 기초를 놓았던 레오 대교황(Pope Leo I, 재위기간: 440-461)은 로마의 전통을 따라 주일을 제외한 6주일을 금식의 날로 정하여 36일을 지켰고, 7세기에 다른 교황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the first day of Lent))부터 토요일의 4일을 더하여서 40일로 확정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일곱째 주일 월요일부터 부활절 9일 전 금요일까지를 사순절로 지켰다. 동방 교회가 서방 교회보다 2일 먼저 시작하고 8일 먼저 끝났다. 동방 교회는 주일을 제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40일의 금욕 기간을 지킴으로 동서방교회가 공식적으로 사순절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3. 중세의 카니발 축제로서의 사순절

 

중세에서는 사순절이 게르만 족의 축제와 결합하면서 더 변질되기 시작했다. 해가 길어지는 시기에 그들은 3일 동안 사육제(謝肉祭, Carnival, ‘고기를 금한다’의 뜻)의 축제를 하고서 40일 동안 금욕하였다. 금욕의 방법도 지역마다 달랐다. 육류와 달걀은 금하고 빵만 먹는 지역이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생선까지 허용하는 곳도 있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우유를 포함한 낙농제품의 모든 음식까지 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엄격한 금식을 행하기도 했지만, 낮에 한 끼만 먹고 절식하면서 기도하는 곳도 있었다. 이런 관습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것이 춘궁기(春窮期)를 이기는 방식이었음을 설명한다. 사육제에서 큰 잔치를 하고 봄 농사를 준비하는데 처음 수확할 때까지는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절식을 하였고, 여기에다 종교적인 의미를 붙인 것이라는 것이다. 

 

중세의 사순절은 고대 교회의 사순절에 비하여 매우 변질된 내용을 가졌다. 중세에서는 성례가 약해지면서 사회적 성격을 지닌 정교한 예식으로 발전하였고 따라서 이런 축제의 후에 있을 로마 가톨릭의 금식의 전통인 사순절 이후에는 사회적 범죄가 훨씬 더 기승을 부렸다.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범죄를 저지르다가 축제가 끝날 무렵 마지막 ‘재의 수요일(참회의 수요일)’에 이르러 성체성사(미사 중에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축성 기도와 성찬 재정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로 변화되는 거룩한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죄책을 지울 절호의 기회를 갖는 시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중세에서는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사람들은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성당 앞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자기의 죄를 써서 거기에 못 박기도 하였다. 수난의 금요일에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진하고 거기에 달려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 수난극을 상연하였는데, 특히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하는 연극을 상연하였다. 그들은 이런 행사들을 통해서 자기들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공로를 가미한 미신적인 전통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을 준비하고 참여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주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려고 금식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행하는 금식 자체가 강조되고, 수난극 자체가 강조되었다. 이것은 사람의 선행을 강조하려는 로마 교회의 신학과 직결되어 행위 구원까지 연관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4. 종교개혁자들의 사순절 비판

 

1) 미신적 풍습에 대한 칼빈(Jean Calvin, 1509-1564)의 비판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을 높였던 개혁자들은 사순절이 미신적이며 이방 풍속이 가미된 비신앙적인 실행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고난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의 선행이 강조되었음을 칼빈은 지적하였다. 물론 고대 교회에서도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 있어 왔다. 그들이 이렇게 해 왔던 것은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특별히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여. 지도자들이 이것을 권장하였기 때문이다. 칼빈이 성경대로 말하는 것처럼, 성경에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복음 선포를 시작하심으로써, 복음은 사람의 교훈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서 내려온 것임을 증명하시려는 것이었다(마 4:2, 기독교강요, 4권 12장 20절). 당시에 그리스도의 40일 금식을 모방하려는 것은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는 일이기 때문에, 칼빈은 사순절 기간에 행하여지는 모든 것이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실행이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믿지 않고, 사람의 행위를 의지함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칼빈은 다수의 고대 교부들을 인용하면서, 사순절에 대한 고대교회의 약점과 특별히 로마 교회의 그릇된 사순절 시행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사순절의 관행이 복음을 가리기 때문에, 그는 강력한 어조로 사순절 시행을 비판한 것이다. 

 

2) 미사와 비슷한 실행에 대한 비판

중세 교회는 사순절 동안에 수난극을 상연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극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로마 교회의 미사와 맥락을 같이하는 전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수난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미사와 동일한 우상숭배이며 미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마 교회에서는 성찬의 떡과 잔이 사제가 축성(祝聖, consecratio)하는 순간에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가르쳤다. 그러나 개혁주의자인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가둔다. 우리는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끌어내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신비는 천상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되기 위해서 그를 지상에 끌어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기독교강요, 4권 17장 31절). 로마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사순절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가두고 기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칼빈의 표현을 빌리면, 로마 교회의 사순절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끌어내리는 신성모독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천주교에서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켜 나가는 것의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해야 하는데, 성경에는 사순절을 지키라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지키는 것은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미신적인 규례를 따르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양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규정한 것만을 따라가야 한다는 양심의 자유를 분명하게 밝힌다. 

 

3) 사순절 금식에 대한 비판으로 개혁의 기치를 든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

1522년 3월 9일 츠빙글리는 당시의 취리히 시의 출판업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사순절 금식 전례를 깨고 소시지를 먹었다. 하루 종일 일해야 했기에, 그 벅찬 일을 감당하느라 스위스 소시지를 충분히 먹었다. 취리히 사제였던 츠빙글리는 그들의 행동을 묵과해 주었다. 사순절이나 금식 같은 인위적 절기 전통은 성경적인 타당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경이 신앙과 행습 문제에 있어 최종 권위이기에, 성경적인 바탕이 없는 사순절과 그 준수는 간과해 넘길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달 후 츠빙글리는 [선택의 자유와 음식 고르기의 자유]에 관하여 설교했다. “...나는 사람들이 영원한 의에 도달하려 하기보다 더 악해져 가고 더 부패해져가는 시대의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평민들은 사순절에만 참회를 하고 금식을 준수하고, 성찬을 하기만 하면, 일 년 내내 범사가 괜찮다고들 생각할 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나 인식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경건해야 합니다. 우리가 금식철인 사순절 때에만 신경을 쓰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역행을 하는 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에 대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순절의 금식에 대하여 츠빙글리 중심의 취리히와 콘스탄츠의 가톨릭 주교단(Prince-Bishopric of Constance, 585년부터 1821년까지 존재함) 사이에 논쟁의 내용이 있다. 1522년 4월 7-9일 사흘간, (스위스-독일 국경도시인) 콘스탄츠의 주교가 보낸 대표단이 취리히에 도착하여 취리히의 사순절 금식 불이행 건을 놓고 시의 성직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1522년 사순절 기간 중 츠빙글리는 사순절 육식금지 전통이 성경에 아무 근거가 없음을 보여 주는 설교를 했고, 이에 따라 그와 함께 했던 몇몇 형제들이 실제로 자유롭게 행동했다. 이것이 당국과의 갈등을 불러왔다. 콘스탄츠 주교는 강력한 대표단을 보내어 전통적인 금식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츠빙글리 일동과 주교대표단은 취리히에서 만나 해당 이슈를 갖고 토론을 벌였다. 4월 9일, 행정관은 사순절 금식 준수 위반에 대한 금지 선언을 했고, 위반자는 처벌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대하여 츠빙글리는 4월 16일 자유로운 육식에 관한 논고로서 자기 방어를 했다. '선택과 음식의 자유'라는 이 논고는 그의 첫 저서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런 중립적 사안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유가 있고, 교회당국은 이 자유를 금할 어떤 권한도 없다는 사도바울의 입장을 취했다(고전 8:8; 10:25; 골 2:16; 딤전 4:1; 롬 14:1-3; 15:1-2),

 

이에 대하여 콘스탄츠 주교는 신성한 교회 규정을 방어해 달라고 권면하는 내용의 칙령을 5월 24일자로 취리히 시정부에 발부했으며, 이단적인 교리들의 확산을 막으라고 경고했다. 츠빙글리는 위기에 빠졌고, 거듭 암살협박을 받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므로 사순절에 대한 논쟁이 츠빙글리의 취리히 개혁의 발단이 된 셈이다. 그는 성경을 붙들었고 콘스탄츠 주교는 전통의 우월성을 주장한 것이었다. 

 

5. 개혁교회의 절기에 대해 언급한 고백서들

 

초대 교회에서는 ‘주일’이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갖는 유일한 ‘날’의 개념이었으며, 구약의 절기와 같은 절기 예배는 없었다. 초대 기독교회에 주의 날에 예배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공적 예배가 없었다. 주의 날에 예배와 아울러 주의 만찬(성찬)에 대한 절기적 기념이 있었지만, 다른 절기들은 없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당시의 교회가 초대 교회와 멀어졌을 때, 그들은 주의 날에 있었던 많은 절기들을 폐지하려 했다. 1520년에 루터는 "주의 날이 유일한 절기의 날이어야 할 것인데"하고 애석해 했다. 칼빈이 1536년에 제네바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주의 날이 유일한 절기의 날'이라는 것을 개혁의 초기부터 강조하였다. 네덜란드에서 1574년에 개최된 총회는 "성도들은 오직 주의 날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1)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24장 거룩한 날들과 금식들과 음식들의 선택에 관하여

- “미신: 우리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과 미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에는 나머지 날들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날들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키는 것은 유대교의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인 것이다.”

 

- “그리스도와 성자(聖者)들의 절기들: 만약 교회들이 기독교적 자유 안에서 주님의 탄생과 할례와 고난과 부활과 그 승천과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일을 기억함으로 축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즉 교리의 바른 내용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절기로 표현하거나 또는 사람들과 성자들을 숭상하기 위한 절기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거룩한 날들은 십계명의 첫 번째 돌 판에 관계된 것으로 오직 하나님을 위한 날들인 것이다. 결국 절기와 성자들을 위해서 제정된 날들을 우리는 이미 없애버렸는바 이날들은 모순투성이요, 아무 쓸데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 한편 우리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서 설교를 통하여 성자(선조들)의 회상을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유익하고, 이 성자들의 모범된 삶을 모든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좋다고 고백한다.”

 

- “금식: 그리스도의 교회는 포식과 술 취함과 모든 종류의 탐욕과 무절제를 심하게 정죄하느니만큼 기독교적 금식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강하게 권유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금식이란 경건한 신앙인들의 금욕과 절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 육신의 돌봄과 징벌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꼭 필요한 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며 육체는 그 연료를 빼앗기므로 더 자발적이고도 쉽게 성령께 순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에 관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금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위장을 채우고 일정한 시간에 음식을 멀리하는 것으로 금식한다고 생각하고 이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선한 일을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는 성도들은 금식함으로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고 덕목을 잘 실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서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듯이 음식은 멀리하나 악행을 멀리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금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 “공적인 금식과 개인적인 금식: 금식에는 공적인 것이 있고 사적인 것이 있다. 교회가 박해와 환난과 역경 속에 있었던 고대 기독교 역사에는 공적인 금식들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금식하되 이 시간동안에 기도에 몰두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회개에 힘쓴다. 이것은 애통함이나 다름없다. 이에 관하여 선지자들, 특히 요엘(2장)이 자주 언급하곤 하였다. 이와 같은 금식은 교회가 곤궁에 처할 경우, 오늘날에도 행해져야 한다. 한편 우리 각자는 성령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개인적인 금식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우리 각자는 육체로부터 그 연료를 제거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금식은 자유롭고 자원하는 마음에서 행해져야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 사람들의 칭찬과 호의를 얻기 위해서 금식이 행해져서는 안 되고, 금식함으로 의를 세우려는 의도는 더더욱 금물이다. 육체로부터 연료를 제거함으로 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에 전념하려는 것이 금식의 목적이어야 한다.”

 

- “사순절(四旬節): 사순절 때의 금식에 관하여는 고대 교부들의 글들이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금식을 성도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이미 초기에도 변질된 금식의 여러 형태와 관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 교부인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어떤 이는 하루만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이틀을, 어떤 이는 그 이상 혹은 40일간을 금식하라고 말한다. 금식에 대한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벌써 우리 시대 이전에 생겼다. 내(이레니우스) 추측으로는 이것이(사순절 금식) 사도시대로부터 전승된 것(금식)을 무시하고 또한 소홀히 여기거나 무식함 때문에 다른 습관에 빠진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그의 단편집 3,Ⅰ].

 

2) 츠빙글리 67개 신조(The 67 Articles, 1522)

- 음식을 금함에 대하여(Prohibition of Foods): 24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할 의무가 없다. 그들은 아무 때나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치즈와 빵에 대한 로마 교황의 교서는 로마주의자들의 협잡(fraud)임을 배운다.

- 축제와 순례에 대하여(Of Festivals and Pilgrimages): 25조: 절기와 장소가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에 속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으로 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절기와 장소에 속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합법적인 자유를 강탈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운다.

- 루터의 개혁이 충분하지 못한 미진한 개혁으로 보았던 츠빙글리의 취리히 시는 1524년에 사순절 금식과 부활절직전 고해성사를 폐지하였고 다음 해에는 미사를 일제히 제거하였다. 

 

3)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the Form of Church Government), "공적 예배의 날과 장소에 대하여"

복음 시대에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을 제외하고는 어느 날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각종 절기들이라고 말하면서 지키는 행해지는 날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장이 없으므로 우리는 지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당하는 여러 가지 특별한 경우에 그럴 이유와 기회가 백성들에게 주어질 때에 하루나 여러 날을 금식이나 감사 날로 구별하는 것은 합법적이요 필요한 것이다.

 

4) 장로교회의 절기에 관한 대회와 총회

1556년 에딘버러(Edinburgh) 대회와 1577년 4월에 열린 총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부활절, 크리스마스 날과 그 이외의 다른 미신적인 절기 때에 성찬을 집례 하는 목회자에게와 강독하는 강독자에게 성직을 박탈하겠다는 조건으로 그러한 것을 시행하지 말 것을 경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1638년 글라스고우(Glasgow) 총회(11월 찰스 1세에 반발하여 국민적 저항으로 이어진 스코틀랜드의 총회)에서는, 교회의 다양한 절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증되지 않음으로 완전히 폐지되는 것을 좋다고 여겼으며, 그것들을 지키는 목회자들은 관원들에 의해서 징벌을 받는 것이 좋다고 명문화 하였다. 

 

6. 청교도들의 사순절 철폐

 

칼빈의 입장을 따라 청교도들은 당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에 남아 있던 인간들의 규례를 철폐해 나가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고 청교도들을 존중하는 이들은 사순절을 지키며 이 기간 어떤 특정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분명히 사순절 금식이라는 것은 불행하게도 그 전체가 헛된 거짓 금식에 불과함을 알았다. 교회들이 ‘재의 수요일’에 사순절 참회기간의 시작을 알리고, 금식과 (육식 등의) 절식을 알리며 14살 이상의 사람들은 육식이나 고기로 된 어떤 음식도 삼가게 하고, 18~60세 사람들은 그 날 그 날 의무적으로 금식하는 이런 행위에 대하여, 그들은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개혁신앙의 근본적인 원칙은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에 근거해서만 교회의 여러 행위를 한다는 원칙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명백한 성경적인 기초가 없는 기독교의 절기들을 거절하였다. 사순절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십자가와 고난의 빛에서 살아야 한다는 루터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순절 기간을 지켜가는 루터파, 성공회와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에 의지해 예배와 교회의 모든 일을 하려던 청교도적 개혁교회가 이 지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7. 사순절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총회의 입장

 

- 현재에도 다수의 성경적이고 보수적인 교파와 교단들이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는 제84회 총회 결의를 통해 사순절 지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1998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83회 총회 보고서에는 '사순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킬 것인가?'라며 '사순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키는 것은 마땅치 않는 일'이라고 했다.(제 83회 총회 보고서 p.369-420). 

- 이듬해인 1999년 9월에 있었던 예장합동 제84회 총회에서는 로마 가톨릭에서 만들어낸 사순절을 개신 교회에서 절기로 지키지 않기로 결의했다. 제84회 총회보고서에 실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순절 문제에 대한 예장합동 제84회 총회 보고서 

 

1) 사순절은 부활절 전날 밤까지 40일간 이어지는 로마교회가 정한 행사이다. 

이 40일간에 로마교회는 금식을 하고 금식을 권장하고 또 음식을 제한해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육제를 하고 고기를 많이 먹은 후, 고기 양을 점차 줄여가다가 고난 주간과 특히 금요일에는 완전히 고기를 금지하였다. 

 

2) 종교개혁은 사순절을 완전히 폐지하였다. 

특히 칼빈은 사순절이 미신적으로 시행되고 공로를 세우며 금식이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폐지하였다(칼빈, 기독교강요 IV. 12). 

 

3) 칼빈은 사순절 기간에 금식은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였다. 

금식을 열심히 준수하면서 거짓되고 유독한 의견으로 부패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금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제시하였다(강요 IV, 12, 19). 하나님도 마음의 변화 없이 금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성경대로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금식은 가장 큰 혐오라고 제시하였다. 또 금식을 의무인 것처럼 엄격하게 지킴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강요 IV, 12, 20).  

4) 칼빈은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킴이 널리 퍼졌다고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사순절을 지킴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착각하였고, 예수의 모본을 따르는 것으로 여겨 연례적으로 행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주님은 모범을 위해 금식하지 않고 복음 선포의 장비로만 금식하였다고 칼빈은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이 반복적으로 금식하지 않았고, 구약에서 모세가 금식하였지만 선지자들이 그 모본을 따라서 금식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강요IV, 12, 20). 

5) 사순절 기간에 로마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최고 예배가 고기를 금하는 것으로 여겨 고기는 금지시키고 다른 단 것들을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먹었다. 오히려 더 성대히 고기와 다른 음식을 먹기 위해서 금식하였다고 칼빈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금식이 폐지되었다고는 칼빈이 결코 말하지 않고 재난의 때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할 것으로 말하였다(강요 IV, 12, 17). 

 

6) 우리 교회가 이 사순절을 교회의 경절로 채택하여 지키기로 하면, 우리도 로마교회처럼 사순절 기간에 금식을 해야 하고 또 고기를 그 기간에 먹지 않게 되며, 그러면 고기 먹는 것을 위해 사육제를 열 것이다. 그래서 많이 먹고 점점 줄이다가 완전히 금하는 일을 할 것이다. 

 

7) 긴 40일간에 걸쳐서 사순절 금식과 고기 금지 등을 하고 철야를 하게 되면, 신자들이 이런 경절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므로 양심이 심히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사에 참가하면 정상적인 사업과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형식이 되고 외식적이 되어 로마교회처럼 절기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8) 사순절을 교회의 경절로 받아들여 지키게 되면, 로마교회가 지키는 많은 다른 교회 경절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강절, 주의 현현절, 삼위일체 주간 등등 참으로 많은 절기들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9) 이렇게 사순절과 다른 절기들을 로마교회의 습관대로 지키게 되면, 많은 신자들이 혼란을 겪게 되고, 마침내 이럴 바에는 이 모든 것의 원형이며 모(母)교회인 로마교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 또 제103회 총회에서는 제84회 총회결의를 재확인하여 이 용어의 사용을 금하고 찬송가 교독문의 사순절 교독문은 사순절을 제하고 사용하도록 결의 하였다. 

 

* 결론: 종교개혁이 폐지한 사순절을 우리 한국교회가 로마교회로부터 받아서 부활시키고 지킬 필요가 전혀 없다. 사순절은 우리 한국교회가 교회 경절로 받아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고난주간을 오래도록 지킴으로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은혜롭게 시행해 왔다. 

8. 오늘날 교회의 사순절의 경향

 

사순절을 절기로 지키는 예전을 중요시하는 교단도 있고, 특정 기독교 미디어도 공공연히 이 절기를 지킨다. 재의 수요일에 죄 목록을 작성하고 태운 후, 그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다. 이것은 제 2계명에도 이탈된다. 사순절은 결국 로마 가톨릭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기간에 선한 뜻에서 자신을 절제의 시간에 머물고자 하는 진정한 기독교회들도 많다. 또 그런 분들과 여전히 우정을 같이 하지만, 개혁신학을 추구한다면 사순절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근래에 많은 교회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본받아 고난 주간과 더불어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기독교 서점가에서 봄철 베스트셀러는 ‘사순절에 대한 묵상’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하되 사순절 기간에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책들이 기독교 서점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다. 수난 주간에 상영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는 중세의 수난극 전통을 할리우드식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감독인 멜 깁슨(Mel Gibson)은 보수적인 로마 교회 신자로 마리아의 시각에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마지막 12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고 그는 그 영화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어떤 교회는 교회에서 단체로 그 영화 전체를 관람하는 것으로 수난 주간 집회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개혁교회가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처럼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주님께서는 성찬을 행하여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라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성찬에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해야 하고, 또한 주님께서 죽으신 그 주간과 금요일을 경건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에서 더 지나쳐 수난의 40일을 지키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나 이에 유추하여 믿음으로 시행해왔던 교회사적인 근거도 없다. 주님께서는 생명의 말씀의 교훈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려고 하는데, 사순절을 자신의 의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복음의 근본을 허무는 매우 비성경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고난주간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가톨릭의 영향으로 일어난 “예배갱신운동”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크게 작용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사순절을 비롯하여 교회의 절기를 규정한 교회력은 성경적 근거가 약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4세기 이후에 비로소 제정되어 중세를 거쳐 체계화되었다. 교회력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일 년 주기로 재연하는 예배와 축제적 관습을 통해 신앙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뒤섞이면서 이교화되고 미신화되는 폐단이 계속 싹터왔다. 종교개혁자들이 사순절 뿐 아니라 교회력 자체를 철폐한 것은 그것이 비성경적이며, 이교적 요소와 미신화로 인한 폐단을 지속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경계하며 우리는 성경과 성경의 올바른 이해와 적용으로 돌아가야 한다.

 

9. 사순절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

 

교회가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성경적인 믿음의 실행이 아니다. 잘못된 전통으로 내려온 사순절을 지정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이를 좇는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생각의 발상이며, 이는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한 사람의 일에 불과하다. 사순절을 지키면서 과연 성도들이 성경의 의도를 따라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려는 진정한 마음이 있을까? 성도들이 하루를 금식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경험하는 것보다, 금식 후에 또 배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고 즐기는 것에 무슨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교회가 사순절에 따라 그때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게 하며 여기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에 대하여, 특별히 지도자들은 그 비성경적인 그릇됨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개혁주의자들은 그 어디에도 교회가 절기 속에 있어야 할 것을 말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교회가 절기를 지키는 행위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금하여 왔었다. 왜냐하면 개혁신앙 선배들은 이 사순절 시행이 ‘그리스도에 반(反)’하는 것으로 얼마나 불신앙인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순절에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재현하며 이를 통해서 경험해 보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받으신 이 고난은 누가 함께 받아보고자 해서 받을 수 있는 고난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받으실 수 있는 고난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우리도 받아보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이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셨지만, 그러나 죄로 가득 찬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배척하였고,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가게 하였다. 우리는 사순절 행사로 우리의 경건의 의를 세우고 증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로 오심으로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고로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세상으로부터 그들도 함께 미움을 받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말하여 드러낼 자라는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꾼으로서 교회를 위해서 겪는 복음 전파의 사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겪게 되는 고난이 따름을 말씀했다. 그리스도인이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리스도가 받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순절과 같은 인위적인 행사를 만들고 그 행사에 참여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등에 져보고 나무에 묶여 보기도 하고, 못에 박혀 보기도 한다고 해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사순절이란 이런 특정한 기간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느껴보고 체험해 보고자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을 말하여 우리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믿는 자들의 생명의 주가 되심이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오직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도록 권면 받고 있다(히 12:5).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삶은 사순절의 행사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며]

 

“그러므로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에 따라 헛되이 과정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3:16-19)”라는 바울의 교회 성도들을 향한 권고의 말씀처럼, 사순절은 ‘절기’로 ‘꾸며낸 겸손’과 ‘과장’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기도기간을 만들어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새벽기도를 체질화하기,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이나 TV 시청하는 시간을 없애기, 회개운동, 소외된 이웃 돌보기 등에 더욱 역점을 두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이 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더욱 보람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되, 잘못된 가치관과 인생관에 좌우되지 말고, 십자가 사랑의 신앙 회복, 경건과 기도의 생활화, 나눔 운동의 확산, 사랑을 기반으로 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우리의 시간을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되었다는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약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삶이다. 이것은 어떤 정해진 특별한 절기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고 거듭난 이후 우리는 항상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 시민의 삶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신앙, 곧 개혁신앙을 가진 믿음의 선배들이 강조하며 주장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안에서 매일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절기를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순절 뿐 아니라, 신앙생활 방식 중 성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항상 명확한 성경적 근거가 있고, 믿음의 유추에 따라 집약되는 것들과 교회사의 올바른 이해와 성경적인 교리에 합당한 도리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생활만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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