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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 목회자 세미나 인도 "포스트모던 시대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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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9-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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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개막한 2009 할렐루야대회 강사인 이동원 목사가 7월 11일(토) 오전 목회자 세미나를 순복음뉴욕교회(김남수 목사)에서 열었다. 세미나의 주제는 설교의 전문가 답게 "포스트모던시대의 설교"이다.

다음의 핵심 강의내용이다.

1. 설교의 대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던인은 누구인가?
① 모던적 이성주의에 반발하는 감성적인 인간
② 권위에 반발하고 의심하는 주관적인 인간
③ 결과만을 기다리기 보다는 오늘을 즐기는 감각적인 인간
④ 개인을 보전하면서 공동체를 선망하는 인간
⑤ 미디아에 집중하는 피상적인 인간

2. 포스트모던시대에 변화되어야 할 설교의 요소
① 연역적이기 보다는 귀납적으로
② 이성적에서 좀 더 감성적으로
③ 예언적에서 좀 더 제사장적인
④ 결론과 본론만큼 서론이 중시된

3. 포스트모던 시대에 변치말아야 할 설교의 요소
① 텍스트에 대한 성실성
② 설교의 메인 아이디어
③ 설교 전개의 역동성
④ 강해와 적용의 균형
⑤ 해답으로서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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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21세기와 지나간 역사속에서 가장 근사했던 시대는 1세기이다. 팍스로마 시대이다. 로마로 통합되고 당시 과학의 발달과 문화적인 통합을 이루었다. 로마의 군대는 세계를 정복하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생겼다. 로마의 힘으로 세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시대였지만 평화가 깨지는 불안을 동반한 시대이다. 평화로웠지만 평화롭지 못한 시기이다. 본질에 대한 해답을 구하던 시대에 예수가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포스트모던 시대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작은 2차대전후 부터,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1975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후등 학자에 따라 다르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문화적으로는 파괴와 해체를 상징되지만, 나는 컴퓨터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문화적인 특성이라고 본다. 클릭한번으로 세계가 연결된다. 1세기 군사적으로 만든 길을 통해 로마와 연결되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가 있다.

바울은 로마가 군사적으로 만든 길을 따라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바울이 오늘 태어나면 컴퓨터를 반드시 이용할것이다. 다음 세가지 것에 대해 말하겠다.

1. 설교의 대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던인은 누구인가?
2. 포스트모던시대에 변화되어야 할 설교의 요소
3. 포스트모던 시대에 변치말아야 할 설교의 요소

예수님의 설교는 이야기와 비유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했지만 어떤 틀을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경우는 설교의 틀과 성격을 가지고 설교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성경을 읽고 진지하게 뜻을 풀었다고 했다. 강해적인 설교의 원칙을 가진것 같다. 또 성경에서 보듯이 사도바울의 유일한 촛점은 그리스도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를 했다.

사도바울의 설교의 결과는 사람들을 회심하게 하고 예수를 믿게 만들었다. 상당히 전도적이었다. 사도바울은 설교의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전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17장 후반부를 보면 아테네와 고린도에서의 설교스타일이 달랐다. 아테네에서는 문화속에서 적응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상황적인 설교를 한것으로 이해된다. 고린도에서는 직접적인 복음전도를 하고 성령의 능력을 강조했다.

1. 설교의 대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던 인은 누구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시대를 아는 자가 시대를 리더한다"고 했다. 설교자는 시대를 잘알고 있어야 하며, 시대에 방황하는 양들의 목자로서 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동료목사와 대화를 하면 이시대 사람이 아닌것 같아 가슴이 막힐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교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궁금하다. 시대에 영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사역하기 위해 이시대의 사람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설교자로서 포스트모던시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주일마다 설교를 듣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 갈수 있는가? 변하지 않는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변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것인가? 모든 것이 설교자의 책임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은 누구인가? 다섯가지로 요약한다.

① 모던적 이성주의에 반발하는 감성적인 인간

얼마전만 해도 이성적 시대에 살았다. 50세 넘으신 분은 모던시대의 산물이며, 40대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혼재하고, 30대이하는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았다.

모던시대를 읽는 키워드는 이성이다. 2차대전의 비참한 경험으로 이성과 과학에 회의를 가져왔다. 그래서 설교의 불신시대를 열었다. 이전에는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것에 회의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고 있다.

뉴스를 보니 국회의원끼리 싸우며 한 의원이 다른 의원에게 "나에게 설교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가슴에 박혔다. 이제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설교를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시대에서 우리는 설교를 한다.

우리시대에 와서 새롭게 이성이 아닌 감성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95년 <감성적 지성>에는 처음 EQ(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가 소개됐다. IQ만으로  인간을 진단할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EQ가 더 중요하다.

물론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이성을 버리고 살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설교의 이성적인 결론 접근은 교인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감성을 통해 이성으로 접근하여, 감성의 만짐으로 이성이 설득될때 교인들은 메세지를 받아들일수 있다. 한국사람은 더하다. 감정에 예민하다.

② 권위에 반발하고 의심하는 주관적인 인간

모던시대는 권위와 질서에 의해 세상이 유지되었다. 이것은 포스트모던시대에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시대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사람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믿는 사람이나 불신자나 가치관에 있어 공감대가 있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하면 불신자도 '아멘'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21세기는 다르다. 왜 그것이 간음이냐고 반박한다.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시대는 설교에 있어 일방적인 선포보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교인들과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경공부나 설교는 귀납적인 접근방법이 더욱 필요하다.

③ 결과만을 기다리기 보다는 오늘을 즐기는 감각적인 인간

산업화시대에는 목표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산업화시대가 지나면서 오늘은 목표뿐만 아니라 과정의 미학을 강조한다.  실용주의 체제가 기독교가 아니지만, 실용적인 접근을 무시하면 설교자가 힘들다. 듣는 사람들은 2시간 예배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할까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배와 설교의 중요성을 설득을 못하면 열매를 맺는 것이 힘들다.

④ 개인을 보전하면서 공동체를 선망하는 인간

이시대는 이기적인 시대이지만 고립한 자의 연결을 희망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본다. 가정을 해체되면서 대안으로 공동체를 열망한다. 셀교회가 일어나는 배경이다. 주일에 한번 교회를 왔다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흩어져간다. 진지한 교회론을 고민하는 사람보다 우리의 설교가 그런사람들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중의 하나로 인식하도록 공동체의 희망을 주는 것이 설교의 중요한 목표이다.

⑤ 미디아에 집중하는 피상적인 인간

멀티미디어의 시대이다. 55세가 넘은 사람들은 TV시대가 아니라 라디오 시대이다. 그들은 듣는 것에 익숙하다. TV 등장으로  보는 시대로 바뀌었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보면서 확인하는 시대이다. 시대가 바뀐것을 모르고 2-3시간 예배와 설교를 청취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설교자의 욕심이다.

TV는 스피드와 칼라이다. 리모트 컨트롤을 가지고 30분동안 여러 채널을 옮길수 있다. 교인들이 한시간 내내 내 설교를 경청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교인들이 내 거룩한 설교를 경청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라고 비싼 시설을 해야하나? 그런것이 아니라  설교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대에는 새로운 설교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 안에는 칼러와 스피드가 있다. 상상력을 주는 것은 스토리이다. 그래서 설교를 이야기식으로 갈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야기로 설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힘들다.

교인들과 통하지 않으면 설교가 힘들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 아픔)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열심히 하지만 통(通)이 안되는 것이 문제이다.

2. 포스트모던시대에 변화되어야 할 설교의 요소

① 연역적이기 보다는 귀납적으로

연역적인 것은 가치는 있다. 연역적인 접근없이 성경공부와 사역을 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연역적에서 귀납적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연역적인 것은 해답을 제시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방식은 이시대 사람들은 지루하게 생각한다. 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같이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훨씬 더 모험이 있다.

교인들은 원리적인 것보다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모던시대에는 잡소리 같았다고 평가될 프로그램인 "토크쇼"가 이시대에는 인기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 설교가 나올수 밖에 없다.

완전한 이야기 설교는 앞으로 10년간은 힘들다고 본다. 전통적인 설교틀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신선한 예화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예화사용을 반대한다. 그렇지만 예수님도 비유로 설교하셨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도구로서 이야기는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② 이성적에서 좀더 감성적으로

이성을 포기할수는 없다 그러나 감성의 접근을 놓치면 이성의 논리도 결론을 못 맺는다. 감성으로 마음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감정의 이입과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더불어 이야기해야 한다. 설교자도 청중의 한사람으로 같이 고민하는 접근방법을 가질때 교인들은 공감한다.

③ 예언적에서 좀 더 제사장적인

현대인들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 현대인들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수 있다. 사람들은 은혜를 경험하는 제사장적인 것을 아니면 고개를 돌린다.

한 목사는 설교의 90%가 교인들을 때리는 설교이다. 내가 이유를 물으니 그는 자기가 성경적이라고 대답했다. 내양을 치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 교인들을 끌어안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는 없다. 회개하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④ 결론과 본론만큼 서론이 중시된

부흥의 시대의 설교를 들으면 서론이 아주 간단하다. 빨리 본론을 전개한다. 이미 그들의 마음에는 부흥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시대 교인들은 설교를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 그래서 시작하는 서론이 중요하다.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여러가지 이유로 앉아 있으며 설교에 익숙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들과 대화의 접촉점이 중요하다.

소그룹을 해도 먼저 마음열기 부터 시작한다. 최근에는 설교의 서론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서론을 통해 교인들과 접촉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텍스트를 통해 텍스트로 가는 방법이다.

독단적인 결론보다 다양한 선택적인 결론이 필요하다. 물론 궁극적인 해답은 그리스도이다. 하지만 적용하는 다양한 해답이 있을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사로의 헌신도 가고 보내고 기도하고 동원하고 여러종류가 있을수 있다.

3. 포스트모던 시대에 변치말아야 할 설교의 요소

① 텍스트에 대한 성실성

이것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복음주의자는 텍스트를 붙잡아야 할 진리로 고백을 한다. 텍스트가 실종된다는 것은 복음의 실종을 의미한다. 이야기 설교가 잘못되면 이야기하다 끝날수 있다.  성실하게 설교를 풀어가기 위해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설교가 필요하다.

설교자의 발판과 전해야 할 소프트웨어는 말씀이자 텍스트이다. 성경기자의 의도와 이것을 어떻게 전할것인가 하는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이다.

② 설교의 메인 아이디어

무슨 설교를 해도 확실한 메인 아이디어(중심테마)가 있어야 한다. 많이 설교를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핵심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설교본문이 하나 이상의 테마를 포함할수도 있지만 그럴때는 설교를 나누어 해야 한다. 설교는 명확한 하나의 촛점으로 가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설교를 들은 성도에게 핵심을 이해했는가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루는 준비를 잘하지 못하고 설교를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날은 스스로 다 안다. 아내는 그날 설교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하지만 나도 몰랐다. 그날의 경험은 오랫동안 중요한 도전이 되었다. 메인 아이디어가 무엇인가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③ 설교 전개의 역동성

어던 종류의 설교이든지 효과적인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역동성있는 반전 토론이 있고 무엇보다 명확한 결론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원고 작성의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효율적인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글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대의 언어로 설교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루한 설교원고를 마귀와 대적하듯이 하라.

④ 강해와 적용의 균형

본문에 대한 모든 설명을 '강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것을 '적용'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면 강해와 적용이 어느정도 균형을 가져야 하나? 나는 50 대 50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근거는 바울서신이다. 에베소서 1-3장 교리적으로 접근하고 4-6장 교회안에서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적용을 다룬다. 골로새서 1-2장은 교리적으로 접근하지만 3-4장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내용으로 강해와 적용이 반반이다. 로마서도 1-11장은 교리적인 부분이며 12-16장은 적용인 윤리부분이다.

본문은 충실한데 적용이 없는 설교도 있다. 그런 설교는 주석이지 설교가 아니다. 본문 해설없이 하는 적용은 성경적 근거가 취약하다. 어떤 유형의 설교를 하든지 강해와 적용의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⑤ 해답으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이름은 어떤시대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설교의 촛점으로 선택해야 할것이다. 사도바울은 신학적인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설교했다. 그리스도를 잃어버린다면 설교가 아니라 스피치로 전락한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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