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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소장이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감동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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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0-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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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이 지난 1월 28일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했다. '새롭게 하소서'는 임동진 목사와 고은아 권사가 사회를 보는 대표적인 간증 프로그램이다. 이후 기자와 만난 김동석 소장은 방송에서 다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김동석 소장은 유권자 운동과 더불어 일본 위안부 결의안과 한미간 비자면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운동을 하다보니 연방의원들과 관계를 하게되고 한국과 연관된 연방의원들을 위한 한국방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9년부터 한해에 4명씩 5년동안 진행된다.

아들이 순직하며 받은 돈으로 교회부지 사고
아버지가 순직하며 받은 돈으로 교회건축

지난해 방문한 4명의 의원중에는 ’애니 팔레오마바네가(Eni Faleomavaega)‘ 미국하원 아태위원장등이 포함됐다. 김동석 소장은 아태위원장과 일주일을 같이 한국을 동행하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태위원장은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다. 주일에는 미 8군 채플에서 예배를 보고 간증도 했다. 김동석 소장은 그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김동석 소장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조만식과 같이 장로였다. 전쟁이 나자 할아버지는 순교를 했다. 아버지는 남쪽에서 자리잡았지만 고향을 떠나 힘드니 교회를 잊고 살았다. 하지만 김 소장의 큰형의 전도로 아버지는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을 거듭나게 한 큰아들을 특히 사랑했다. 육사를 졸업한 큰아들 김충석 중위는 임관한지 1년만에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팀스프리트 작전에서 순직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는 완전히 회개를 했다. 선대의 신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하나님에 충성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6남 3녀중 가장 소중히 여기던 아들을 데려감으로 정신차리게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눈에는 가정이 안보이고 교회만 보였다. 당시 교회당은 초가집이었는데 아들의 순직금을 교회건축 부지를 먼저 샀다. 아버지는 월급을 타도 교회 전도사 사례를 먼저 주고 집에 가져왔다. 아버지는 교회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벽돌이다. 아버지는 물이 있는 개울가에 텐트치고 혼자서 8천장의 벽돌을 만들었다. 시골 국민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교사들이 설을 쉬러 다 간 사이에 학교를 지키다 숙직실에서 순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옷을 보니 다 꿰맨 것이었다. 자식들이 새 속옷과 양발을 사다주면 모두 교회의 전도사에게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순직금으로 교회땅을 구입했고, 아버지의 순직금으로 교회를 건축했다. 그 교회가 강원도 화천군 산내면 광덕리에 있는 광덕교회이다.

아태위원장이 이런 김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일정을 취소하고 국립묘지에 있는 김 소장의 큰형 묘지를 방문했다. 아태위원장은 눈물을 흘리며 한미합동훈련에서 순직한 형은 한미관계의 발전을 위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공관 관저에서 만찬을 할때 김 소장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아태위원장에게 전북대 박사학위를 전하기 위해 전북지사가 왔을때, 그는 다시 김소장에 대해 언급하고 이를 박종률 CBS 특파원이 듣고 CBS 방송의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게 됐다.

신앙으로 돌아온 김동석 소장

김동석 소장은 춘천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있을때 운동권에 속했다. 교회를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보았다. 김 소장이 신앙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킬때 였다. 방해세력이 많았으며 생명의 위협도 느끼는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하며 새벽기도에도 나가게 되었다. 뉴저지 초대교회에 출석하면서 이재훈 목사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김동석 소장의 동생은 늘기쁜교회 김홍석 목사이다)

CBS의 방송을 보고 안창의 목사가 김 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에는 무서움을 느끼고 날카롭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같이 보인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한미비자 면제와 위안부문제등을 한인들과 한국을 위해 일하면서 모태신앙의 뿌리를 회복한 것이다. 김 소장은 "신앙보다 신념에 집착한 과거를 회개하면서 방황하다 제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김 소장에게 특별히 어머니의 기도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어느날은 어머니는 전화를 하여 가까운데 차를 세워라하시고 기도를 해주셨다. 어머니 기도는 나에게 제일 살아있는 기도이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기도로 유지됐다"고 말했다.

김동석 소장과 유권자센터

유권자센타는 1992년 4.29 폭동을 계기로 미국 주요도시에서 시작한 ‘30년 프로젝트’이다. 미전국적으로 93년에 같은 생각하여 논의한후 96년에 등록을 했으니 이제 17년이 됐다. 하지만 김동석 소장이 있는 뉴욕만 남았고 다른지역은 힘들어 활동을 멈추었다. 최근 김동찬씨가 뉴욕센터의 새로운 소장으로 부임했으며, 김동석 소장은 상임이사로 미주전역 네트워크 구성과 워싱톤 DC를 집중적으로 맡게 된다.

그동안 유권자 센터는 몇가지 큰 프로젝트를 해냈다. 가장 먼저 1996년 5%밖에 되지 않던 한인 평균 투표율을 2006년 40%대로 올려 미국사회에서 한인파워를 크게 성장시켰다. 또 한미간 비자면제 문제, 위안부 결의안등을 추진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킹을 만들고 있다. 김동석 소장은 "유권자등록 만큼 중요한 것이 2010년 센세스 조사이다. 그것을 위해 데스크 포스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동석 소장은 "한인은 미국에서의 삶을 성공해야 한다. 한국에 가서 국회의원이 된 박지원은 한인의 성공케이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동석 소장은 "앞으로 주사업은 한인동포 특히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미국에서 모범시민으로 인정받고 그 인정을 바탕으로 한인들을 보호하고 모국인 한국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레서 한인교회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

혹시 김동석 소장이 여러 미국 정치인과 만나면서 나중에는 시의원 또는 시장 또는 연방의원등 정치에 진출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김 소장의 꿈은 그것보다 훨씬 거대하다.

김 소장은 신의 조직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유태인 조직인 에이팩(AIPAC) 처럼 한인들과 한국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을 꿈꾸고 있다. 미국의 정치권을 쥐락펴락한다는 최강의 시민로비단체인 에이팩은 대통령도 부르면 온다. 매년 열리는 컨퍼런스를 위해 1만 달러 이상 기부금을 낸 회원만 7만명일 정도이다.

에이팩은 5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인유권자센터는 17년이다. 제 2의 김동석 제 3의 김동석이 나온다면 40년뒤에는 한인들은 유태인들 처럼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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