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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목사] ② 마이크 비클에 대한 의문점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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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1-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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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4개 단체에서 공동주관하는 신사도운동 대응전략 세미나가 1월 13일(목) 오후 1시 금강산 연회장에서 열렸다. 먼저 김재성 목사는 "신사도운동의 신학적 문제와 교회의 입장"에서 연구발표를 했다.

김재성 목사는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로 현재 필라이대위 위원장으로 있다. 김 목사는 웨스터민스터 신대원에서 Ph.D.,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Th.M 학위를 받고 한국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김재성 목사는 자녀가 다니는 교회에서 IHOP을 간다고 해서 IHOP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장로교 목사가 지적하는 타교단의 신학문제가 아니라, 미국교회 심지어 오순절계통의 A/G교단에서 신사도운동을 문제시 하고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김 목사는 부흥회를 하듯히 확신있는 발표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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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목사(필라 이단대책위원회 위원장,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

2.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 중심 진리의 실종

이미 앞에서 IHOP '국제기도의 집‘에 관계된 사역에서 마이크 비클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왜 그의 신학이 잘못되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처음 그의 선지자 사역의 부르심을 이야기 하는 목회 초기부터 마이크 비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순종하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힘을 발휘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대부분의 성령운동가들에게 발견되는 문제점은 성령론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 균형있게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기실 성령운동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야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가지게 되면, 구원의 확실한 이해와 풍성한 하나님의 마이클 비클과 그의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가르침 가운데는 하나님에 대한 혼돈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가?

정통 기독교는 ‘사도신경’ ‘니케야 신조’ ‘칼세톤 신경’ 등에 요약되어 나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성취,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과 인격성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마이크 비클과 그 주변의 선지자들은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십자가와 부활, 그의 재림과 성도의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정도에서 벗어났다. 은총에 대한 보장을 깨닫게 되어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 위에 설 수 있다.

마이크 비클의 설교와 저서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이처럼 빈약한 신학적 토대위에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서 체험한 것들을 어설프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근본과 기초들을 어떻게 어디서 정립하였는지 사실 모두 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속내를 전부 다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마이크 비클은 IHOP'국제기도의 집‘을 운영하면서 예언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비클의 청년기 목회사역은 신비주의 은사파 교회를 모델로하여 “캔자스 시티 펠로우십”을 설립한 것인데, 존 윔버의 빈야드와 결합하면서 “메트로 빈야드 교회”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 와 연결되어 집회를 인도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토론토 블레싱’에 쏟아지는 신학적 비판을 감안한 나머지, 그는 캔자스시티 선지자들로부터 독립하고, 그의 사역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었다. 그리고 존 윔버가 받아들여서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원래는 미국에서 카나다로 건너가서 그쪽의 빈야드 운동에서 나온 "늦은비" (the Latter Rain)를 사역의 핵심요소를 변형가미한 뒤, 24시간 7일 기도운동을 중점으로 하는 IHOP“국제 기도의 집”을 만들었다.

마이크 비클이 한동안 몸 담았던 빈야드 운동은 원래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오순절파 교단에서 성장한 척 스미스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포스퀘어” 교단 신학교인 라이프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하고, 17년간 목회자로 일하다가 떨어져 나와서 독립했다.63)

존 윔버는 재즈 음악가로 살다가, 회심하여 방언과 예언 운동에 참여하던 중 1964년에서 1970년까지 섬기던 퀘어커파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교회에서 ㅤㅉㅗㅈ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갈보리 채플에 합류하여 그들과 같은 노선을 걷다가 다시 또 병고치는 사역에 치중해서 갈라서게 되었다. 존 윔버의 치유사역을 체험하게 된 피터 와그너를 만나서 1974년부터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수학하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64)

빈야드 운동은 퀘이커파와 달리, 1940년대 미국 오순절파에서 활약하던 윌리엄 브랜험, 오럴 로버츠, 캐터린 쿨만 등 세 사람의 신비적인 치유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빈야드 운동은 오순절 교단에서 이단성을 파악하고 추방한 ‘늦은비’ 운동에서도 영향을 입었는데, 카나다에서 “늦은비” (the Latter Rain) 운동이 일어나서 그 위세를 떨치게 되었지만 정통 교회에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가 영향을 받은 존 윔버 등은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양태론’으로 빠진 삼위일체 이단의 전통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특히 브랜험이 삼위일체를 거부하여 이단으로 정죄를 당하면서도, 끝가지 자신의 이념을 바꾸지 않았던 것에서 일종의 특수한 연계성과 전통을 가진 것으로 자부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오순절 운동가들 중에서, 삼위일체를 따르는 은사파가 있는 반면에, 보다 급진적으로 한분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단일신론적 오순절파 (Oneness Pentecostals)라고 부르는 그룹이 내려오고 있다.65) 오순절파의 신론이 두 그룹으로 갈라진 것이다. 삼위일체론적 오순절파와 단일신론적 오순절파는 각각 자신들의 근거를 1906년 아주사에서 시작된 방언 은사자들에게서부터 나온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오순절 은사주의에서는 성령의 인격성과 구원의 적용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은사만에 치우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이크 비클은 성령의 역할은 ‘기름부음’이요, 자신에게 예언의 능력 정도로만 생각한다. 근의 부흥운동가들을 살펴보면, 한심하리만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개념정립이 빈약하다. 성령은 강조하면서도 그저 하나님의 능력, 특이한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고만다. 그 성령께서 구원의 적용자이시며, 우리의 보호자가 되심을 잊어버리고, 성령에 게 순종하려 하기 보다는, 능력을 사용하고 명령하려고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은 한분 참되신 하나님의 본성 안에 영원히 서로 구별되는 세 인격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던 때에, 하늘에서는 성부의 음성이 들리고, 머리 위로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면서, 구원사역에 나서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의 전통을 물려받은 교회들은 항상 삼위일체 신학을 주장하여 왔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깍아내리는 것이다. 성경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단이요, 이 외의 항목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오점들이다.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단일신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오순절파에서는 영적인 엘리트주의와 이단적인 영적 변질상태로 기울어져 있다. 과연 하나님의 단일성 (Oneness)을 강조하는 자들은 정작 세례를 줄 때에는 누구의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단일성을 강조하다가 삼위일체론으로 전향한 목사의 고백에서 나온 말이다.66)

하나님의 단일성을 믿는 미국 내 가장 큰 교단이 ‘연합 오순절 교회’ (the United Pentecostal Church, 약자로는 UPC) 인데, 이들은 성경의 핵심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으므로, 사실상은 참된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정통교회들과 복음주의 교회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는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오순절파 교회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단임을 말하지 않고 있음이 참으로 일관성이 없는 일이요, 참담하다는 생각 뿐이다.67)

3. 마이크 비클은 예언을 받는 하나님의 선지자인가?

마이크 비클은 예언운동을 일으키는 새로운 질서의 주인공이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없고, 그는 예언자도 아니다. 그가 하고 있는 소위 예언이란 것들은 모두 다 사람에 대해서 하는 일종의 속임수이다. 그는 밥 존스가 임명한 선지자일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예언을 드러내는 종이 아니다. 현대 교회에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이 하늘로부터 직접 신비적인 계시를 받아서 직분을 맡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사역자들의 권위와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주님께서 친히 ‘기름부으신다’는 표현이나 주장들은 모두 다 구약시대의 일들이고, 그런 선지자들이라 하더라도 기록된 말씀을 능가할 권위와 권세도 없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거나, ‘계시’를 받았다 해서 그에 따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런 일은 영적인 횡포요 위협이며, 바리새인들이 하던 일들이다.68)

교회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한다 (계3:22).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으로 감동을 받은 종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시고, 그것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신사도 운동에서 나온 계시와 예언의 능력을 가진다는 선지자의 회복이 바로 근본적인 왜곡임을 알아야 한다.69) 이미 풀러신학교에서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을 끌여들여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왜그너의 지속적인 활동이다.70)

예언이란 무엇인가? 누가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서 비밀스러운 뜻을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라는 말인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영감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71)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서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다. 민수기 12장 6절에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라고 하셨고, 신명기 18장 9-22절에서도 이 선지자 직분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예언자는 자신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서 사용되어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다.72)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매체 (human media)이다. 그는 받은 것 (dictation)만을 말한다.73)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따라서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는 분이시며, 그 예언자가 말한 진리에 대해서 그 분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74) 이처럼 주로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선지자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나비’ (nabi)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자이다.75)

동시에 ‘로에’ (roeh)라는 단어가 사무엘에 경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비젼이나 계시를 ‘본다’ (sees)는 뜻이다.76) 그래서 앞일을 내다 보는 자 (seer)이다.77) “그가 보았다” (이사야 1:1, 2:1, 13:1, 29:10-11, 아모스 1:1, 미가 1:1, 하박국 1:1) 는 표현에서 선지자 직분에 포함되는 특별한 형태의 계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선지자들이 ‘본다’는 측면은 예레미야 38:21, 에스겔 1:3-4, 하박국 2:1-2 등이며, 본 것을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참된 예언은 이미 앞에서 받은 예언들과 일치되는 것이지만 (신 18:21-22, 13:1-3), 거짓 예언은 참된 예언을 파괴 (perversion)시켜버린다. 그래서 참된 예언은 거짓 예언과 구별되어야 한다.78)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과 동일한 맥락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세상에 악의 권세를 정복하러 오시는 승리에 관해서, 위로하며 권고하고, 예측하는 말씀을 전달하는 자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예언자들의 위치와 지위는 사도들보다 아래에 있으니,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교회에서 하나님이 지명한 첫째는 사도요, 다음이 예언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이다”고 되어있다. 고린도전서 14장 29절에 따라서, 예언들은 먼저 거짓됨이 없는가에 대해서 영들을 분별해 보도록 하였으며, 그 기준은 로마서 12장 6절에 나오는 대로 “믿음의 분수”이다. 특히, 영어 성경에는 “analogy of faith"로 표기되는 데, 이는 예언이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것인가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철저히 점검해야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은 오직 사도들에 의해서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다. 최고 선지자요, 교사이신 예수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과 모략을 완전히 우리에게 알려주셨다.79)

마이크 비클은 누가 무슨 이유로해서 선지자, 예언자, 하나님의 종으로 임명했고 교회의 사역자로, 목사로 세웠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런 구원역사의 예언가라고 증거하는가? 그의 가르침들은 성경이 전하는 “믿음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 그의 모든 사역이 목표지점으로 지향하고 나타내는 것은 예언자로서, 선지자로서 마이클 비클이라는 자신의 명예만을 널리 알리려는 “운동“에 빠져있다. 그의 설교와 사역에서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초점이 드러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마이크 비클의 이름과 명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강조하는 바는, 온전한 예수님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시작한 새로운 질서, 신부, 기름부음, 마지막 때 등이다.

밥 존스가 주님의 천사로부터 들은 바를 마이크 비클에게 전해주었는데, “진실로, 너는 주님의 선지자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로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믿음 안에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라는 첫 번째 사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둘째, 사도가 아니라면, 신약성경의 재현이나 연속된 예언이 아니다.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것들은 분명히 모두 다 성경에 나와 있다. 하지만,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다 성경적인 것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미래에 관하여 말씀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너무 쉽게, 경솔하게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추정해버리고 있고, 더구나 그런 은사를 가진 자에게 복종하며 접근 하려는 경향이 젊은이들에게 더욱 강하다.

기독교인으로서 성도들이 ‘느낌’이나, ‘감정’, ‘정신적인 자극’, ‘책임을 지려는 의지적인 결단’, ‘영적인 충만함’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80)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사람의 상상을 초월해서 얼마든지 기적적으로 역사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앙의 체험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이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지해야 된다는 것이다.81) 그리고, 이런 인간들의 감정적이며, 영적인 체험현상을 계시로 혼돈하거나, 착각하는 혼란에 빠져서는 안된다.82)

성경에 나오는 이적과 기적과 방언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하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든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동일한 은사와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모두 다 능력과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전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그래서 하나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사용하실 사람들을 예비시키시고, 그들이 고난과 핍박과 역경을 감내하면서 역사 속에서 일하게 만드셨고, 힘을 주셨던 것이다.

마이클 비클과 그 주변의 예언자들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특별하신 부르심을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하셨고, 기적들을 체험하게 하셨나를 잊어버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주의적인 환상과 착각에 빠져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전체 역사 속에서 사용된 예언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기적적인 증표들과 은사들은 구원 역사의 특정한 기간에 극히 제한적으로 등장한다.83) 수 천년의 긴 역사 속에서 수 백 년 동안 아무런 계시도 주시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특수한 언약적 계시의 새로운 단계가 도래할 때에는 집중적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를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둠의 세력들에 의해서 멸절당할 위험이 있을 때에, 특별히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지시와 예언이 주어졌다. 모세를 세우시고 출애굽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시기에 가장 많은 이적과 예언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정착하는 단계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계시가 필요했다. 엘리야와 엘리사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특별한 권능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그러나 예레미야, 오바댜, 말라기, 아모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선지자들의 경우에는 기적이나, 이적적인 사건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예언이나 권능을 행하는 특별한 기적들은 모든 선지자들에게 규범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아니었다. 특별한 예언과 기적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새로운 상황들이 시대에 따라 발생하므로 일시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기적들과 이적들이 주어진 이유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2). 바울과 바나바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셨다” (행 14:3).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신 때에 특별 계시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긴급하신 간섭이 나타났다: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18-20).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은 이런 예언과 표적들과 이적들과 기사 등 특이한 현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진정한 사도적 사역의 확증적인 증표로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성에대해서 확고한 증거를 제시한다: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 (고후 12:12)이라고 말하였다. 사도적인 사역과 그에 대한 특별한 확증으로서 부여된 은사의 현상들이 있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3-4)

사도들은 모든 성도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증거를 놓는 토대가 되는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세워나가는 기초석으로서 새로운 계시를 확증하는 표시로서 성령의 나타남을 제시하였다. 이런 은사들은 최우선적이 기능자체가 한시적인 성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은사들이 오직 사도들에 의해서만 행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도적인 복음과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증을 주기 위하여서 성령의 증거들을 수반하는 독특한 기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새로운 계시의 신뢰성을 뒷받침했고, 그로 인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흥왕하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2:8-12)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신 까닭에 결코 폐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해준 것들은, 즉 방언, 예언, 지식 등은 미래에, 장차 재림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지식을 갖게 되어지는 때가 오면, 더 이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어린 아이는 성숙하지 못해서 ‘자기 중심적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적적인 은사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거울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온전한 것이 오는 것은 재림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그 사이에 성경이 완성되면서, 점차 온전한 것이 성경 하나로 집대성 되었다. 84)그래서 초대교회의 지침이 되는 성경의 충분성이 주어졌다 (딤후 3:16-17). 하나님의 계시는 각 시대마다, 각 단계마다 언제나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계시의 절정이 나타났고, 신구약 성경 한권으로 집약되어졌다. 성경은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서 온전히 그분을 신뢰하며 온전히 그분께 순종하기 위해서 말씀하신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서 세워졌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가장 중추적인 교회 직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다. 사도들이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사도라는 직분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사도들과 함께 사역하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도 점차 사라졌다. 3세기 이후로는 오직 교사들만 남아있게 되었다.”85) 따라서 오늘날 일부 오순절의 은사를 중시하는 기독교 교단들이 주장하는 “예언은사의 회복”이라는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요, “열광주의자들과 광신주의자들에게 이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다.“86)

계시를 받는다는 특별 은사가 사도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어진다면,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는 가르침을 훼손시키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즉흥적이며, 일시적인 개인의 체험이나, 어떤 특수 상황 중에 주어지는 예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에서 나오는 변함없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따라서 성경을 훼손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셋째, 마이클 비클은 하나님의 사도들에 의해서 주어진 예언과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주시는 조명(illumination)의 차이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신학적인 혼돈에 빠져 있다.87)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알도록 계시의 성령을 가지기를 기도하였다 (엡 1:17, 참고 마 16:17). 사도적인 계시가 영속적인 권위를 가진다면, 개인 성도들이 받는 계시는 주관적이며, 혼돈적일 경우가 많다.88) 예언에 대한 가르침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적인 오류와 거짓 예언에 속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검의 기준은 인간의 판단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고,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책이기 때문이다.

일부 예언 은사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그루뎀의 해석은 전혀 신빙성이없다. 그의 어설픈 분석에 따르면, 예언은사에 두 종류가 있는 바, "높은 수준의 예언"은 사도들과 선지자들 시대에 종결되었지만, "낮은 수준의 예언"은사는 지금도 지속된다고 하였다.89) 사도행전 11:28절에 아가보가 흉년을 예언한 것과 21:10-11에서 사도 바울의 결박을 예언한 것을 구별해서, 후자의 경우는 예언을 했지만 사도 바울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낮은 수준의 예언은 일부 맞을 때도 있고, 틀리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는 주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성경해석이다.90) 사도 바울의 결박을 호소하는 아가보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사도행전 28장 17절에,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다.” 누가는 아가보의 예언을 기록하면서 바울의 미래에 일어날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마이크 비클의 경우, 성령님의 영감에 관하여는 전혀 상관도 없이, 오직 사람들에 관한 예언들을 말하면서 공포와 두려움, 기대와 허황된 업적 등을 자랑하면서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견고히 하려는 의도에 뒷받침이 되는 이야기들만을 강조하였다. 마이크 비클이 바라보는 교회는 자신의 에언 앞에 모두 다 머리를 조아리는 집단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고, 그분의 가르침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 비클이 알려주는 ‘계시’와 ‘예언’에 따라서 좌우되는 사이비 왕국이다 그의 비젼과 꿈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의 영웅심과 엘리트주의에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4. 젊은이들을 사역의 중심에 두는 전략적 간교함

IHOP에 몰려가는 한국 젊은이들을 염려하지 ㅤㅇㅏㅎ을 수 없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교회의 기둥이다. 그런데 아직 분별력이 없을 때에 헛된 것에 속아넘어가게 되면 참된 교회생활의 고난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사탄은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단의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는 거짓 기독교이자 헛된 가르침은 마이크 비클이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전략 가운데서 드러난다. 국제 기도의 집은 두 부류, 즉,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과 아주 발전이 느리고 평범한 기독신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적인 사역을 강조하고 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장래에 대한 환상과 망상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이크 비클이 주도하는 ‘운동’과의 관계성이다.

캔사스 “국제기도의 집”에 관계 된 예언자들은 “늦은 비 운동”과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에서 입증하려는 현상적인 것과 아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은 앞에서도 밝혔다. ‘늦은 비’와 오순절 성령의 세례라는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일부 정도를 벗어난 이단적인 예언운동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호감이 넘치는 신앙심을 부추기고 있다. IHOP '국제 기도의 집'에 있는 선지자들은 이들 젊은 세대가 일어나게 되어지면, 사도 행전에 나오는 기적보다 “10,000” 배 이상의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죽지도 않을 것이묘, 죽임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예수님이 처음 시작했다면, 이들 젊은이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자신의 육체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말의 충분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으로서 행동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91)

이들의 교회관은 분파주의적인 엘리트주의다. 마이크 비클과 그의 선지자들은 그들만의 모임에 대한 정당성을 위해서 기성교회를 비판한다.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괴한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 교회가 성숙하지 못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교회가 나타나기 까지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이 땅위에 심었는데, 모든 남녀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알파 처음 아들이요, 여러분의 자녀들은 오메가 마지막 자녀들이다.

마이크 비클은 한결같이 예수는 시작이요, 우리와 젊은이들의 세대가 마지막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는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그 일의 마지막이다”92) 이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시작하신 분이며,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며, 세상의 알파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세상은 끝이 나며, 영적 전쟁도 끝이 난다. 그리스도가 없이 되는 일이란 없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하고, 우리 인간들이 마치는 일이란 무엇인가? 삼위일체 대한 이단 가운데 쉬운 용어로 ‘양태론’(modalism)이라고 알려진 것과 흡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로마에서 198년부터 220까지 살았던 사벨리우스 (Sabellius)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은 단 하나의 존재에 귀속되어 있다고 보았다.93) 결국 성자와 성부는 일시적인 양태에 불과하고,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영원하다. 그래서, 성부 단일신론(Monarchianism)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의 유니테러인파와 같다. 구약은 오직 성부 하나님만의 시대였고,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있었으며, 사도행전 이후로는 성령으로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다라고 하였다.94)

이런 양태론적인 구분은 ‘세대주의적 양태론’ (dispensational modalism) 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살아가는 시대이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관계가 없게 된다. 지금 우리 새대에는 예수는 없고, 마지막 세대이므로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은, 마이크 비클에게는, 기독론이 실종된 상태이다. 이것은 성부 유일신론 (Unitarianism)과도 관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알파 운동과 자신들의 오메가 사역을 주장하는 것은 로마서 8:19절을 완전히 곡해해서 인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고대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이 세상의 가장 마지막까지 가지는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만물의 절정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재림신앙에 대해서 강조하는 구절이다.

마이크 비클이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예언 운동에는 하나님의 신성이나 계획은 대수롭지 않게 본다. 이처럼 사람들의 운동은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강조되어지고, 하나님의 신적인 계획과 그분의 통치를 변질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이단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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