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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천 목사 "다음 세대 신앙 전수를 위한 교육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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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11-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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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초 열린 미주크리스천신문(발행인 장영춘 목사)이 주최하는 26회 세계 한인목회자 세미나에서 김혜천 목사(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가 "다음세대에 그리스도를: 성경적 신앙전수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강의내용은 17일자 뉴욕중앙일보(기사보기 클릭)에 한페이지로 소개됐으며, 큰 호평을 받았다. 아멘넷은 미주크리스천신문과 중앙일보, 그리고 김혜천 목사의 협조를 얻어 세미나 전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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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jpg오늘 우리의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다. 특별히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해 주기를 원하는가? 어떤 사람은 오염되지 않는 지구를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적인 유산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많은 재산을 남겨주고자 한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전해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모였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는 위기상황에 있는 교회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전략과 현재의 문제점들을 분석했다. 다른 강의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들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봄을 통해서 왜 우리가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전해 주기 위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는지 현재의 상황과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로, 성경의 모델들을 통해서 과연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가능한 여부를 성경의 성공과 실패를 통한 케이스들을 살펴보고, 셋째로 본문을 통해서 구체적인 신앙 전수의 원리를 찾아보고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새기게 되기를 원한다.

이 세미나에서 다루는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 배경과 역사적인 내용의 일부를 격주로 미주크리스쳔신문에 실리는 내가 쓰는 ‘크리스쳔의 눈으로 본 세상’ 에 이번 주 신문에서 다루었다.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나는 성령님의 능력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고 우리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지속적인 승리를 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또한 우리가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흥을 더 주고 싶어하시는 줄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세대마다 필요한 은혜를 주셨듯이 우리의 상황을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 있음을 믿는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여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기를 원한다. 또한 오늘의 강의를 교회적인 전략이 아니라 부모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정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또한 남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 무엇인가? 나의 감당할 몫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서론과 배경

먼저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이라는 주제에서 말하는 세대란 무엇인가?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세대를 표현한다. 나는 이미 3년전에 본 세미나에서 세대의 변화를 미디어의 변천을 통해서 구별해 보았다. 세대는 미디어에 따라서 구전시대, 인쇄시대, 영상시대로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회학자들이 제시하는 것 처럼 '가족세대(family generation)'과 '문화적 세대(cultural generation)' 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성경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하는 한 세대의 길이는 시대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40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전략과 교훈을 살피기 전에 오늘날 세대를 어떻게 구분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가족세대가 있다. 가족세대란 어머니의 첫 자녀와 딸의 첫 자녀 사이의 평균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이 세대는 시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현대화, 산업화, 서구화의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들이 생각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의식구조의 변화로 오는 결과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과 생활패턴의 변화에 따라서 여성의 임신이 연기되는 추세이다. 즉 세대의 길이가 길어진다. 요즈음은 20년에서 30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2008년 미국은 25년이었는데 이것은 1970년 이후 3.6년 증가된 것이다. 또한 독일은 24년에서 2008년에 30년으로 증가했다. 세대의 연장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핵심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문화적 세대가 있다. 20세기 이후의 세대의 일반적인 구분은 먼저 1) Lost Generation: 1914년 즉 1차 세계 대전에 싸웠던 사람들을 지칭한다. 2) Great Generation: GI 세대라고도 한다. 주로 1901년-1924 년 사이에 태어나서2차 세계대전을 싸우고, 경제 대공황 겪었던 세대이다. 3) Silent Generation: 1925년-194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아버지들이 1차 세계대전 싸웠던 세대이다. 대공황을 겪을 때에 어린아이들 이었다.

4) Baby Boom Generation: 1946년-1964년에 태어난 사람들로서 2차 세계대전 후 출생한 세대이다. 출생율 증가시대이다. 많은 아이가 태어남으로 사회의 구조와 정책의 변경을 가지고 왔다. 5) Generation X: 1960년대-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6) Generation Y: 1970년대 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이다. 밀레니엄 세대, Millennials, Generation Next, Net Generation, Echo Boomers 등으로 불리운다. 7) Generation Z: Generation I, 혹은 인터넷 세대라고 불리운다. 1990년 이후로 태어난 세대이다. 각 세대들은 공통된 특징들을 공유한다.

지금과 다음의 세대는 위기의 세대이다. 벼랑 끝 세대이다. 복권 Lotto의 세대이다. 우리에게 나쁜 결과를 줄줄 알면서도 쾌락을 원하고 도박을 즐기는 세대이다. 설교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원한다. 책망이나 질책은 부담스럽다. 각종의 중독과 학대와 싸운다. 마약, 담배, 술, 약물중독은 쾌락을 위해서 사용한다. 성의 노예시대이다. 십대 임신율, 유산, HIV, AIDS 등은 십대를 공격한다.

AIDS 는 젊은이들의 사망의 첫번째 요인이다. 매해 1200만명이 성병에 걸린다. 미국의 경우 5명중 1명이 성병에 감염되어 있다. 이들의 미래는 불안하다. 미국 경제도 세계의 경제도 매우 위태롭다. 사회보장제도도 보장되지 않는다. 수명의 연장에 따라서 이들이 부양해야할 부담은 더 커진다. 갈수록 직장 얻기가 더 힘들고 미래의 전망은 결단코 밝지 않다. 미국이 더이상 세계 최강의 나라로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이 보인다. 반면에 인터넷과 컴퓨터로 무장한 자신만만한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자녀들의 세대인 Z 새대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첫째로 이들은 기술에 대한 실력과 이해력이 있다. 디지탈 원주민이라고 부를 정도로 디지탈 세대이다. 인터넷, MP3, 스마트폰으로 무장된 세대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에 비만의 시대이다. 앞으로 이들이 자라며 발생할 성인병의 변화에 이미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둘째로 이들은 사회적이다.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위에서 이루어진다. 익명성 가운데 나누는 사회성이다. 나쁜면도 많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이번에 중동과 아프리카를 휩쓰는 민주화 혁명의 중심에 바로 디지탈 시대의 전사들 Y 세대가 있었다. 이들은 SNS 를 통하여 세계를 바꾸는 변화의 주역이 되어 있다. 이들은 가상세계의 보이지 않는 관중들 앞에서 자기의 비밀을 나눈다. 물론 역반응으로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기 사생활의 공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로, 이들은 멀티 태스킹 세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시에 여러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역기능이 있다. 여러가지의 것을 동시에 하려 하니까 깊고 복잡하고 뒤엉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받지 못했다. 그리고 AADD(Acquired Attention Deficit Disorder)로 고통을 당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TV를 보면서 자란 세대가 주의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조사된 바와 같다. 넷째로, 이들은 속도감을 중시한다. 멀티태스킹을 하려니 속도가 빠른 것을 좋아한다.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으로 자라온 세대이다. 참지 못한다. 기다리지 못하는 세대이다.

이런 특징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태도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바나리서치의 2008년도의 보도에 의하면 베이비붐어 들에 비하여 25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더욱 더 많은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했다. 젊은이들의 공공장소에서 욕설은 베이비붐어보다 약 4배나 많고, 거짓말은 6배, 술취함은 4배, 보복은 2.5배 등 도덕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고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중생했다는 청소년들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교회의 출석이나 소그룹의 출석율의 변화가 확 뜨일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는 눈에 쉽게 띄이지 않는다. 하지만 신앙의 질은 눈에 뜨이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나리서치가 지난 12년 동안 계속 조사하여 비교한 결과이다. 특별히 예수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미래를 결정짓는 특성에 대한 관심의 저하는 눈에 뜨일 정도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연령으로 비교한 성도와 불신자의 비율은 나이가 적은 세대로 갈 수록 눈에 뜨이게 떨어지게 된다. 60대 이상은 성도와 불신자의 비율이 77:23 인데 비해서 10대 20대는 60:40으로 떨어진다. 문화적 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에 미래 세대는 갈수록 성도의 숫자가 더 적어진다는 말이다.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2004년도에 보고된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는 심각하다. 1987년에 주일학교 학생들은 전 성도들의 50%이었다. 그만큼 미래가 밝았다. 하지만 2004년에는 27%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개선되지 않으면 2030년에는 주일학교는 성도들의 7.5%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2년전 미주한인목회자세미나에서 보고한 것 처럼 영국교회의 문제를 보면 우리의 다음 세대의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하다. Peter Briely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교회는 100년전에는 전 인구의 80%가 성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에는 7.5%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런 추세의 변화가 없으면 2040년에는 전인구의 0.5%가 성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충격적이다. 이것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적 모델

시간 관계상 교육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약하고자 한다. 종교개혁이후로 진정한 의미의 신앙교육이 행하여지게 되었다. 미국은 실용주의를 선택함으로 현재의 미국교육의 심각한 현실을 낳게 되었다. 우리는 기독교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잊지 말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신앙의 전수에 대한 성경의 예가 있는가? 물론이다. 성경에 보면 신앙전수에 대한 수 많은 성공과 실패가 기록되어 있다. 주님의 관심이 지대하심을 보여준다. 이번 세미나에서 모세와 여호수아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모세의 시대는 출애굽의 세대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세대이다. 모세의 세대가 실패의 시대인가? 물론 이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지키지 못한 실패의 세대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다음세대의 교육은 성공한 세대가 되었다. 여호수아 세대는 자기의 믿음을 지킨 세대이다. 가나안 정복을 이룬 세대이다. 우리는 정복과 점령의 의미가 다른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복은 일시적이지만 점령은 정복한 땅을 계속 소유하고 누리는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 세대는 정복은 했지만 누림에서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의 세대를 본받기를 원하는가? 모세의 세대인가? 아니면 여호수아 세대인가? 둘 다 아니다. 우리는 모세 세대의 승리와 여호수아 세대의 승리를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사사기2장의 여호수아 다음 세대의 이야기는 슬픈이야기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 한다. 10절은 그 세대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그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의 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을 보고 Gary Inrig 는 2세대 증후군(the second generation syndrome) 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하면 1세대는 비전과 열정이 있지만 2세대는 이것을 일상으로 받고 1세대의 비전과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부모의 열정과 헌신이 있지만 그 자녀는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고, 손자시대에는 무관심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고 하겠다.

가족세대와 문화적세대에 나는 하나를 더하고 싶다. 그것은 신앙적 세대이다. 신앙적 세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가족세대처럼 혈통적인 것도 아니고, 문화적세대 처럼 시대적 특징을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특징을 따라서 개인과 가정과 세대를 구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적 세대는 무엇인가? 신앙적 제3세대 증후군을 말하고자 한다. 간단히 표현하면 제1세대는 거룩하다. 제2세대는 종교적이다. 하지만 제3세대는 하나님을 떠나는 현상이다. 즉 1세대는 헌신되었으나, 2세대는 타협하고, 3세대는 타락하는 가족세대나 문화적 세대의 모습을 말한다. 신앙1세대, 2세대, 3세대의 특징을 25가지씩 정리하였다. 슬라이드를 참조하시면 좋겠다. 자세한 설명은 시간관계상 약한다.

하지만 신앙적 세대에는 방향성으로 볼 때에 두가지 패턴이 나타난다. 1) 하나는 약해지는 3세대 증후군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에서의 경우이다. 엘리와 아들 브니아스 그리고 그 손자 이가봇 역시 슬픈 3세대 이야기이다. 이가봇은 영광이 떠났다는 뜻이다. 얼마나 가슴 깨어지는 일인가? 다윗과 솔로몬과 르호보암도 역시 약해지는 3세대이다. 하지만 2) 강해지는 3세대 증후군도 있다. 강한 믿음이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유지되고, 타락하거나 약해지지 않는 더 강한 믿음으로 발전하는 패턴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잇는 세대는 강해지는 3세대 증후군의 발전적인 아름다운 모습이다. 로이스와 유니게와 디모데 역시 사모할 강해지는 3세대이다. 디도데는 어머니와 외조모의 신앙의 유산을 이어 받았다. 여기에 디모데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 아버지들이 신앙적 세대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 정신차리고 깨어나야 한다.

신앙의 1세대의 특징은 놀라운 역사와 사역을 이루신 하나님을 안다. 2세대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역사와 사역을 안다. 3세대는 하나님도 모르고 놀라운 역사도 모르는 세대이다. 여기서 우리는 3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1) 먼저 나는 어느 세대인가? 이것은 가족세대를 의미하는 것 만은 아니다. 나의 신앙의 특징은 어느 세대의 신앙적 특징을 나타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다음은 나의 자녀는 어느 세대인가? 3)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디에 속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세대를 나눌 때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성경은 사람을 말할 때에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더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2장과 3장은 3종류의 사람을 말한다. 1) 육에 속한 믿지 않는 사람과, 2) 믿지만 갓난아이인 육신에 속한 사람, 3) 그리고 마땅히 되고 누려야 할 신령한 사람의 3종류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에 4종류로 나눌 수 있다. 1) 구원받은 사람(the saved) 2) 구원받지는 못했지만 교회 문화권 속에 있는 사람(the churched) 3) 구원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문화권 밖에 있은 세대와 사람(the unchurched) 4) 우리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the unreached) 이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교회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교회의 문화, 신앙의 문화가 필요하다. 유대인의 절기 준수에 대한 명령이나 여러가지 예식이 갖는 축복과 능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복음은 문화 이상의 것이다. 교회 문화권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소위 the unchurched 이다. 문화화가 필요하지만 문화화 자체가 복음화나 구원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기독교 문화권은 세속화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서구의 선교의 실패도 복음보다는 문화를 전파하려고 해서 실패한 것이라는 지적을 수용해야 한다. 유대교도 문화화가 있었지만 생명을 잃어서 예수님의 지적을 받은 것 처럼 복음을 율법화 해 버렸다. 마찬가지로 교회안에서도 신앙적 2세대 3세대 증후군이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밖은 복음을 모르는 세대(the unreached)로 이미 전락했다.

현대의 안타까운 문제는 기독교 가정의 어려움이 있다. Tom Bisset 은 라는 책에서 교회를 떠나는 자녀들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4가지로 설명하지만 시간 관계상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복음을 능력을 예수를 경험하지 못해서 이다. 그들이 부모의 삶에서 복음을 능력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자신의 삶에서 예수를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안에 기독교 가정 안에 있기에 도리어 복음에 대한 무감각증이 올 수 있다.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의 복음은 종교가 아니다. 복음이 죽으면 종교화가 된다. 화석화 되는 신앙이 되면 안된다.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 예수님의 족보나 열왕기서를 살펴보면 부모와 자녀간의 신앙의 전수에 대한 4가지 패턴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1) 악한 아버지 밑에 선한 아들이 난다. 할렐루야이고 축복이다. 2) 선한 아버지 밑에 악한 아들이 난다. 3) 악한 아버지 밑에 선한 아들이 난다. 4) 악한 아버지 밑에 선한 아들이 난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의 족보나 성경의 족보들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 많다. 먼저,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또한, 성공했다고 교만할 필요가 없다.

또한 실패했다고 그것이 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다. 악한 아버지 밑에 선한 아들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향한 신앙전수의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이 더 중요하고, 거기에 진정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늘 실패했지만 약속에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지켜 주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앙망한다.

물론 통계적으로 볼 때에 선한 부모 밑에 선한 열매가 맺힐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자녀들과 부모들의 신앙생활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런데 양쪽부모가 다 신실하고 활동적일 때에 자녀가 93% 신앙생활한다. 부모 둘중에 한쪽만 신앙생활을 잘해도 자녀의 73%가 신앙생활 한다. 양쪽 부모가 믿되 비활동적인 경우에는 자녀의 53%가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부모님들 두분 다 신앙생활에 비활동적이면 자녀의 오직 6%가 신앙생활한다. 너무도 분명한 교훈이 있는 결과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데 장애물들이 많이 있다. 이미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의 어릴 때와 전혀 다른 세계, 한번도 와 보지 못한 세계이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대차에 대한 극복, 다양한 언어권에 속한 우리들의 언어의 극복, 개인주의의 극복, 세속주의 물결을 이김, 현대의 문화와 종교인 포스트 모던니즘에 대한 이해와 대처가 필요하다. 현재의 문화는 이미 포스트 크리스쳔 문화이다. 음악과 영화와 인터넷과 할리우드에는 뉴에이지 전도사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듭 언급되지만 부모들의 신앙생활이다. 여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극복의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 세대 신앙 전수를 위한 교육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는 성공한 신앙전수의 예들과 실패한 신앙전수의 예들로 가득하다. 하나님이 얼마나 다음 세대에 신앙전수를 원하시는지 느낄 수 있다. 이런 풍성한 자료는 우리로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원리들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기를 원한다. 이제 마지막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다음 세대 신앙전수를 위한 성경적인 원리를 살펴보자.

다음 세대 신앙 전수를 위한 교육원리

신명기 6:1-9은 우리에게 세대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한다. 먼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의 스파트타, 아네네의 교육이나, 로마의 교육은 국가를 위한 사람을 만드는데 있었다. 오늘 우리의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게 해야 하는가?

본문 6:4-5에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 함께 읽어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사랑이다. 내가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도구가 되는 것이다. 지식이 아니다, 감정이 아니다. 다 필요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마음이 하나님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 속에 모든 것이 풀려진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사랑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 본문의 말씀으로 명령하셨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초점이다. 다음세대의 신앙전수는 한마디로 하면 자녀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번째로,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원리는 경험의 원리(The Principle of Experience)이다. 그들로 경험케 해야 한다.

경험의 원리는 성경전체를 통해서 발견하는 교육원리이고 신앙계승의 원리이다. 목표는 자녀로 경험케 하는 것이다. 무엇을 경험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어떻게 하는가? 잠언 22:6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두가지로 볼 수 있다. 1) 어렸을 때에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2)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게 되는 축복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아는 말씀이고 또한 사회적인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현대의 상황도 역시 증명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 처럼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는 교육의 방법이다. 어렸을 때에 매주일 교회를 출석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오직 26%가 지난 6개월동안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를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61%가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청소년 때의 통계를 보아도 그 패턴이 같다. 청소년 때에 교회에 매주일 출석한 사람들의 19%만이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청소년 때에 교회에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던 사람의 69%는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릴 때의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보여 준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고등학교까지는 교회를 가지만 대학과 함께 교회를 떠난다.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본문 2절에 보면 신앙전수의 4세대가 나온다. 1) 나의 세대이다. 모세의 세대이다. 2) 너의 세대이다. 말씀을 받는 가나안 정복을 준비하는 여호수아의 세대, 우리의 세대이다. 3) 네 아들의 세대이다. 4) 네 손자의 세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본문 신명기 6:9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라 하셨다. 너의 세대 즉 여호수아 세대를 향한 명령이다. 모세의 관심은 4세대에 있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의 관심이다. 그런데 4세대의 신앙전수는 ‘너의 세대’로 부터 시작한다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하면 먼저 너의 세대가 경험하라 는 명령이다. 모세의 관심은 제일 먼저 너의 세대 즉 여호수아 세대에게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너의 세대인 부모인 우리의 세대에게 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하지 않고는 다음 세대가 없다. 다시 말하면 신앙전수의 실패는 나의 신앙적 실패에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젊은이들의 실패는 어디에 있는가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적 실패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현대의 특징은 아버지 없는 세대이다. 1995년도에 청소년의 문제는 아버지 없는 사회(fatherless society)화 되어져 가는데 있다. 아버지 없는 사회가 갖는 특징의 문제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이것은 흑인사회나, 라틴계나, 동양계를 위시한 전 세대 그룹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니 이 세대의 문제이다. 아버지 없는 사회이기에 role model 이 없다. 본받을 사람이 없다. 지도하고 품에 안아줄 사람이 없다. 여기에 대한 많은 연구와 결과가 이미 밝혀져 있다.

어떻게 극복케 하는가? 먼저 나의 세대가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고 보여 주는데 있다. 다른말로 하면 나의 세대의 순종이 없이는 다음 세대의 순종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다음 세대로 경험케 해야한다. 다음세대로 기도를 경험하게 하고, 기도 응답을 경험하게 하고, 헌신을 경험하게 보여주고, 말씀을 경험하게 해야한다.

시간 관계상 깊이 나눌 수 없지만 두가지 전략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멘토링이고, 다른 하나는 코칭이다. 자녀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사랑케 하기 위하여서는 멘토링이 필요하다. 성경에 보면 신앙의 세대를 일으킨 수 많은 멘토들의 이야기를 증거한다. 예수님이 가장 위대한 멘토이시다. 엘리야는 엘리사로 하나님을 경험케 했다. 바울은 디모데를, 바나바는 마가를, 바나바는 바울을, 모세는 여호수아의 멘토 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앙계승의 4세대를 말한다. 소위 디모데 원리이다. 신앙의 4세대는 무엇인가? 바울과 디모데와 충성된 사람들과 또 다른 사람들로 이어지는 신앙계승의 전략이다.

Next Generation Leader 의 저자인 앤드류 스탠리는 다음세대의 지도자의 5가지 요소 중의 하나로 코칭(Coaching)을 강조했다. 코치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관찰하고 지시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코치는 나쁜 습관을 고쳐주고 좋은 습관을 길러준다. 선수가 좋은 코치를 만나면 기량이 놀랍게 증진된다.

다음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는 우리에게 다음 세대 신앙전수의 모델을 제시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여호수아의 롤모델(role model) 이고, 멘토(mentor) 이고, 코치(coach)이다. 모세의 경험이 여호수아의 경험이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다음세대 지도자 여호수아가 세워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을 그치자. 신앙전수는 일차적으로 아버지 어머니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누가 제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 목사인 나는 목사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간 오래전 조사이긴 하지만 1998년도의 한 조사에 의하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목사님이 27%, 기독교 믿음이 48%, 친구가 51%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영향력은 78%이다. 눈에 보이든지 보이지 않던지 부모의 영향력은 아직도 엄청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하자. 먼저 내가 경험하고 자녀들이 경험할 수 있는 열린문을 열자.

둘째로,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원리는 노출의 원리(The Principle of Exposure)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 자꾸 노출시켜야 한다.

자녀들이 노출된 것이 무엇인가? 온통 세상의 미디어, TV, 인터넷, 헐리우드, 게임… 등이다. 이 세대의 큰 위기가 노출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노출되어 있는 문화는 세속적이고, 충동적이고, 뉴에이지적이고, 사탄적인 문화이다.

학교 교육은 지식을 가르쳐도 도덕이나 윤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성경을 제하고, 기도를 제하고, 십계명을 제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다른 모든 세상의 철학과 생활양식은 말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자녀들은 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TV 에 노출되어 있다. 하나님을 제외한 교육의 열매들을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인 큰 문제화가 되었다. 쾌락의 세대이고, 마약과 자살과 우울증이 판을 친다. 하나님을 버리니 정체성의 문제로 헤멘다. 유산과 미혼녀의 문제, 청소년 임신의 문제는 심각하다. 매해 백만명 이상의 십대가 임신한다. 매 31초마다 한명의 청소년이 임신하는 셈이다. 에이즈는 젊은이 사망원인의 1위이다. 성병은 매해 천이백만명이 걸린다. 여자 5명 중에 한명이 성병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2/3는 25세 미만이다. 이 리스트를 더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성경은 바른 것에 대한 노출을 명한다. 본문 7절은 분명하다. 노출의 원리이다. 어디에서? 집에서, 길에서 이다. 어떤 경우에? 앉았을 때, 행할 때, 누웠을 때, 일어날 때 이다. 어떻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이다. 부지런히 라는 원어의 뜻은 날카롭게 하다. 찌르다는 뜻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두번 말하다. 반복하다 라는 뜻이다. 말씀을 자꾸 반복하여 가르치라는 명령이다. 자녀들을 말씀 앞에 자꾸 노출시키라.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자꾸 노출시키라 하셨다.

이 노출의 현장이 어디인가? 학교이고, 가정이고, 교회이고, 모든 장소요, 모든 경우이다. 특별히 가정의 context 에서 명령하셨다. 우리가 자꾸 말씀에 노출되고, 자녀들을 자꾸 말씀에 노출시켜야 한다.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고는 결단코 듣지 않는다.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배우기를 원하지만 자녀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듣고 배우기 때문이다.

셋째로,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원리는 환경의 원리(The Principle of Environment)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물론 자녀들이 공부할 교육관, 교실, 체육관의 투자도 귀하다. 필요하다. 우리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설비에 대한 투자는 약한 적은 교회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 환경의 원리는 꼭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외부 시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모든 현장들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등 자녀들의 관여하는 모든 현장을 말한다. 신체적인 환경 뿐 아니라, 감정적인 것, 영적인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매우 다양하다. 슬라이드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시간상 일일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 세대 문화의 특징은 매우 다양하다. 오늘의 문화는 구전시대와 인쇄시대와 영상시대가 공존한다. 혼돈의 시대이다. 글로발 시대이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이다. 다원화의 시대이고 종교 다원주의가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이다. 그 와중에도 극단주의가 존재한다. 세속화의 물결로 교회와 세상의 차이가 무너졌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편향적이고 세속적인 교육은 도덕과 가치관이 없는 교육으로 실패한 것 처럼 보인다.

특별히 자녀들의 생활 영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포스토모던니즘이다. 포스토모던니즘은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 절대성을 부인하고, 종교다원주의로 흐른다. 이런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녀들은 자라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환경의 원리는 8절에 나타난다.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서 표를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하신다. 이마는 사고력, 생각을 말한다. 왼팔은 율법이 행위의 원리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문설주와 인방에도 글을 쓰고 매어 달아 놓아서 드나들면서 보고 부딪히면서 그 의미를 기억하게 하는 환경을 말한다. 아버지가 모범을 보인다면 그 영향력은 더욱 더 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활동의 지침으로 삼으라 하신다. 열렬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교훈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환경을 만들고 모든 경우에 하나님 사랑을 교육하는 기회로 삼으라 명하신다.

강의의 결론

이제 강의를 맺으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방법들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사용하자 (딤후2:15, 빌2:12). 2)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살전5:17; 렘33:3). 3) 지혜롭고 경건한 상담과 조언을 해 주어야 한다 (잠24:6). 4) 성령의 능력을 절대 의지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한두가지 전략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이 필요하다. 과감한 선택과 결단과 희생이 필요하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1) 강의를 듣는 모든 분이 지금 우리의 현재의 교육적 위기 상황에 대하여 위기 의식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여기에 참석한 평신도 지도자들은 그래도 건강한 교회들에서 오신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정말로 어려운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도 다른 민족처럼 복음을 다시 받아야 하는 나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깨어나야 한다. 2) 또한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언약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는 나이가 너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 일들은 감당되어야 한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손을 얹고 축복하자. 가장은 가정의 제사장이다. 기도하는 모습도 보이고, 성경 읽는 모습도 보이고, 봉사하는 모습도 보이고, 헌신하는 삶을 보여 주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인생의 여정을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를 듣는 마음이 어떠한가?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과업을 시작할 수 있는가? 나는 나이도 많고 힘도 없는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나? 느헤미야 1장의 대처를 기억나게 한다. 3가지 먼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로 먼저 울자.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다. 느헤미아는 예루살렘이 훼파당한 소식을 듣고 울었다. 울면서 금식했다. 울면서 기도했다.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다.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도 우셨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는 여인들을 향하여 너희와 너희 자손을 위하여 울라 하셨다. 울 때에 살려주시는 역사가 있다. 예레미아의 눈물은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서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세워지게 되었다. 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어거스틴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쓰임을 받게 되었다.

자녀들을 살리기 원하는가 먼저 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한다. 사랑의 눈물, 안타까움의 눈물, 통곡의 눈물이 다음 세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먼저 회개하자. 내가 하지 못한 것 회개하자. 내가 무관심했던 것 회개하자. 오늘날 교회와 우리와 다음 세대의 모습은 바로 나의 죄악과 무관심 때문이었다. 진실한 회개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는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와 긍휼을 구하는 사람을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회개의 눈물이 필요하다. 셋째로, 먼저 내가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신앙전수의 3대 원리를 실천해야 한다. 적용을 확장시켜야 한다.

과연 20년후의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될까? 30년 후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는 다음 세대에 다음 세대를 계속적으로 세워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쇠약의 퇴로를 걸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지금 이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맡기신 감당해야할 사명이다. 신앙전수의 3E 의 원리를 적용하여 실천하여 다음 세대에게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위대한 인물들로 세우는 역사를 감당하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세대가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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