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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사랑" 발행인 조국환 목사 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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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5-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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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넷은 "빛과 사랑" 발행인 조국환 목사를 인터뷰하고, 59살에 늦둥이로 목사가 되고 "빛과 사랑"을 처음 발행하게 된 과정과 멈춤 없이 17년 동안 월간지를 발행한 뒷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2005/10/04

미국오기전 35년간을 수학교사로 젊은 시절을 보낸 77세인 조국환 목사는 개척교회를 담임한다는 심정으로 월간 선교지를 발행한다며 "3천명 이상의 성도가 구독자이니 뉴욕에서 가장 큰 개척교회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17년 동안 40만부 정도의 발행된 "빛과 사랑"을 발간하면서 조 목사는 "책이 안 나오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전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라 오직 가위와 풀을 이용하여 편집하며 우송까지도 혼자 담당하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기자는 조 목사외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월간지를 발행하며 오히려 내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데서 해답을 찾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건강해 보이시는데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1928년 전라남도 목포 출생으로 현재 77세이다. 건강하니까 열심히 뛰어다닌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고는 있다.

어떻게 미국에 오셨습니까?

한국에서 수학 선생님을 35년간 했다. 광주고등학교, 목포상고, 세레지오 고등학교, 서울 계성여고를 거쳐 학원계로 진출했다. 대일학원 초창기 멤버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교재를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강의를 했으며 인기가 좋았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이 학원을 못하게 하고 광주사태가 터지는 등 환경이 악화되자 미국으로 왔다. 처음 미국에 와서는 수학 과외를 했다. 공부한 학생들이 일류대학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등 결과가 좋았다.

엉뚱한 질문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하게 됩니까?

수학은 누구나 잘하게 되어 있다. 차근차근 공부하여 기초를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기초를 다지지 않고 건너뛰기 때문에 문제이다. 서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도 중요하다. 쉽게 가르쳐 학생들이 취미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

한국에서는 천주교 신자였다. 전도조직인 "레지오마리에"의 전국조직 회장으로도 일했고 학교에 다닐 때에도 교무주임과 교감을 맡는등 리더십이 있었던것 같다.

어떻게 목회자가 되셨습니까?

미국와서 영어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성경을 통해 영어공부를 하면 일석이조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1982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는 성경도 영어도 잘 몰라 영어로 수업하는 신학개론을 낙제했다. 다음 학기 때부터 정식으로 공부를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30-40대라서 자식나이였다.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래서 공부하는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당시 음악가 정명훈 어머니가 같이 공부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아 크게 위안도 되고 자극도 되었다.

신학교 시절을 특히 기억나는 것은?

59세때 목사안수를 받았다. 순복음신학교에서 뉴욕신학대학으로 옮겨 졸업하고 한국예장 합동 측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뉴욕으로 문서선교사로 파송되었다. 당시 뉴욕에 부흥사로 오신 김형철 목사의 도움이 컸다. 뉴욕초대교회 김승희 목사가 뉴욕신학대학 1기 동문회장이고 내가 2기 동문회장을 역임했다. 이병홍 목사, 권오현 목사, 한세원 목사 등이 당시 신학교 교수였다. 신학교 다닐때 시험본다면 외우는 것이다. 수학과는 공부방식이 다르다. 그런 것이 마음에 안들어 나중에 내가 신학교 교수가 되었을 때는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응용한 것을 이용하는 리포트를 많이 냈다.

어떻게 "빛과 사랑"을 발행하게 되었습니까?

1988년 내 회갑날 "빛과 사랑" 창간기념예배를 가졌다. 그전에 샬롬문서선교회를 만들고 선교회에서 발간하는 형식이었다.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 하지 않았다. 집사람은 뒤늦게 목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편생활을 오래해서 책을 만드는 것을 잘했다. 목사가 되어 은혜를 받아 은혜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른 목회자들이 안하는 부분을 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빛과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으신 이유는?

"빛과 사랑"은 빛은 진리이고 사랑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낸다. 신앙은 단지 믿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생활에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정착하는 바램으로 샬롬문서선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빛과 사랑"의 발간 목표는 무엇입니까?

"빛과 사랑"은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이다. 크리스천 일상생활에 필요한 신앙의 양식을 제공한다. 편집의 목표는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과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삶을"이다. 따라서 안 믿는 사람에게는 믿게 하는 전도의 역할을 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빛과 사랑"을 하시면서 많은 보람도 있었을 텐데?

감옥 선교하시는 분들이 재소자들에게 책을 전해주어 그들에게서 책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많이 받았다. 또 병원 환자들은 책을 읽고 위로를 받고, 선교에 관한 간증을 통해 선교사를 돕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중국병원 선교하시는 목사님은 무의촌에 의료소를 1만 불을 들여 14곳을 세웠는데 그중 4곳이 "빛과 사랑" 독자가 세운 것이다. 이번에 간증문 상을 타신 분들도 여기저기서 간증집회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내을로만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은혜를 받은 사람의 글을 많이 실고 있다.

"빛과 사랑" 운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매월 3천부의 책을 찍는데 유료 구독자는 1백 명도 되지 않는다. 여러 단체와 교회로 메일로 보내고 있다. 현재 20군데 교회에서 후원을 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후원하시는 분들도 있다. 책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자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유료구독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경제적인 타산이 맞지 않는다. 내용을 복음과 은혜 중심으로 하여 독자에게 성령의 역사 일어나도록 하겠다. 경제적인 이익을 보고 발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대로 꾸준히 보급하고 있다. 어떤 때는 하도 힘이 들어서 중단하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달이면 기적적으로 재정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계속 발행하게 되었다. 현재도 4달분의 출판비가 밀려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빛과 사랑" 발행 17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처음 1년을 하니 2만 불의 빛이 지었다. 렌트비도 못내고 유틸리티 비가 계속 밀려 나갔다. 잘나가던 학원 강사의 아내였던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 했다. 나를 도우기 위해 이산가족이 되어 LA에서 조카를 돌보아 주는 생활을 5년 동안 했다.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하나?"하는 억울한 생각을 했지만 책이 안 나오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책의 많은 내용이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내가 그것에서 은혜를 받고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비싼 식당보다는 중국음식점에 들어가게 된다. 인건비가 들지 않고 혼자서 편집과 발송까지 다 담당해왔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을 텐데 특히 기억이 나시는 분은?

그동안 셀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유니콘인쇄의 이종섭 사장은 무료로 매월 칼러 표지를 찍어주고 있다. 동방복음선교회(대표 이병익 장로)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고, 후원교회와 개인후원자들에 감사드린다.

언제까지 직접 "빛과 사랑"을 발행하실 예정입니까?

60살에 시작할 때는 10년 동안 하겠다고 했는데 칠순이 어느덧 지나가고 이제는 팔순까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드면서 내가 은혜를 받고 있고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은혜의 체험을 담은 책을 통해 은혜를 전달하는 중개 역할을 하니 보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건강도 주셨다. 나는 "빛과 사랑"을 발행하는 것을 조그만 개척교회를 한다고 생각한다. 3천명 이상의 성도가 구독자이니 뉴욕에서 가장 큰 개척교회가 아닌가?

"빛과 사랑" 발전계획은 있으십니까?

그동안 40만부정도의 "빛과 사랑"이 세상에 나누어 졌다. 이제는 기업의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이 더 잘 발전 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처음에는 이사회를 조직하려고 했는데 샬롬선교회 전에 모 단체에 관련이 되었는데 이사들이 밥 먹을 때는 모이고 회비도 제대로 안내는 것을 보고 이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사회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동안 노력도 많이 했다. 뉴욕교협 주소록을 중심으로 장로가 있는 교회 320군데에 반응도 볼겸 무료로 책을 보내고, 불신자용으로 책을 신청해달라고 했으나 한군데도 응답이 없었다.

문서선교를 하시는데 선교에 대한 철학이 있으실 것 같은데?

선교는 선교대상자의 필요에 따라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선교지 사람이 주가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다면 진정한 선교라 할 수가 없다. 다 같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요즘은 문서와 인터넷, 그리고 문화로도 선교를 많이 한다. 문화선교는 중요하다. 세속문화속에 기독교문화를 세우는 것이 전도가 아닌가? 문화선교기관을 바르게 세워 재능 있는 사람을 양성하여 영화/연극등 문화선교도 많이 해야 한다. 또한 뉴욕은 국제도시이므로 다른 민족에게도 선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뉴욕선교의 특징이다. 비행기타고하는 선교도 중요하지만 현지선교도 중요하다.

이번 열리는 창간기념감사예배에 대해 한 말씀?

매년 창간기념감사예배를 드려왔다. 작년에는 성경을 암송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올해는 간증문 시상식을 한다. 이번 시상식에는 LLM 오케스트라 등 찬양연주팀들도 출연한다. 현대교회에는 찬양도 중요하고 시상식에는 즐거움이 넘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빛과 사랑" 창간 17주년 감사찬양예배 및 간증문 시상식

"샬롬문서선교회"가 발행하는 월간 문서선교지인 "빛과 사랑"이 창간 17주년(2005년 10월 207호 발행)을 맞이하여 오는 9일(주일) 오후 6시 베이사이드장로교회(이종식 목사)에서 감사찬양예배 및 간증문 시상식을 가진다. "빛과 사랑"이 모집한 간증수기 공모에는 믿음상 이홍은 권사(혜천대학부설유치원 명예원장), 소망상 채에스더 목사(플로리다 지구촌사랑의교회 무숙자교회), 사랑상 남상수 목사(워싱톤과 메릴랜드 예수촌 침례교회)등이 수상한다. 이날 찬양예배는 베이사이드교회팀, LLM오케스트라등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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