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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배 집사 "판사가 느낀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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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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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새천년교회(장규준 목사)는 12월 18일(주일) 오후 5시 새천년 명사초청의 시간을 통해 전경배 집사(믿음으로 사는 교회, 뉴욕주 판사)를 초청하여 젊은이들에게는 비전을 심어주고 신앙인에게는 은혜를 나누는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장규준 목사는 "마지막 시대에 믿음의 가문을 세우고 다음세대를 영적 전문가로 세우기 원합니다. 특히 가정, 젊은이, 다음세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역하는 교회입니다. 새천년 명사초청을 통하여 이일을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전경배 집사의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인 전병창 목사이다. 전 집사는 초기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생활 그리고 로스쿨에 진학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했다. 또 12년 검사생활과 13년 판사생활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지를 간증했다.

전 집사의 간증은 청소년에게는 도전을 신앙인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간증의 키워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겸손'이다. 다음은 간증 내용이다.

초기 이민생활의 어려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제가 특별하기 보다는 유별한 직장을 가지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한 사람을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는지 말씀을 드리고 싶다. 검사와 판사, 공무원으로 25년 일했다.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잘한다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25년간 같이 해주심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뉴욕에 산지가 39년째 정도된다. 11살인 1973년도에 이민을 왔다. 그때는 지금같이 한국분이 많지도 않아 한국사람을 보면 반가웠다. 한국에서 공부잘하는 학생이었는데 뉴욕에 오니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별볼일 없는 학생이 되었다. 그때부터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이 내성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요즘 조기유학을 반대한다.

그런데 아들을 보면 자기가 왕이다. 아들녀석을 보면 한국에서 놀던 내 모습을 본다. 지금과는 달리 미국에 왔을때 학원도 이민선배도 만나기 어려웠다. 처음 이민와서 부모님들이 이민가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아셨겠는가. 부모님들은 세자녀들을 미국에서 키우는 방법을 몰라 힘들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다 보니 중학교 시절이 다 지나갔다. 그리고 스타이븐슨 고등학교에 붙었다. 그런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하는지를 잘 몰랐다. 초창기 이민자들은 60년대 공학, 70년대 의학, 80년대 법학, 90년대 경영학, 2천년대는 사업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나도 의대나 법대를 가야 하는지 고등학교때 아이디어가 없었다. 부모님은 좋은 대학을 강요했다. 그것에 반발하여 장발에다 깡패같이 하고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 근처에 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목적없던 대학시절의 방황

목표가 없었지만 부모님들은 하버드대학교 이야기를 많이 했다. SAT와 학교성적이 좋았다. 그래서 붙을줄 알았다. 배짱으로 좋은 7개 대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하버드에 떨어졌다. 나중에 스타이븐슨 모교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옛날에 왜 공부를 잘하고 SAT도 거의 만점인데 1-2개 합격하고 다 떨어졌는지 이유를 알았다.

내 외모가 제대로가 아니니 선생님의 추천서가 잘나올수가 없었다. 나는 자신감이 넘쳐 원서마감 하루전에 지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에세이도 타자가 아니라 손으로 쓰고 보냈다. 한두군데 됐는데 존스합킨스에 합격했다. 의대를 가려고 했다. 2주간 의예과를 다녀보니 의사는 아무나 할 것이 아니었다. 실험실 냄새에 질려 2주후 전공을 철학과 정치학으로 바꾸었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대학교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한인신문에 하버드등 아이비리그 6대 대학에 동시합격같은 기사가 나면 걱정이다. 그 학생에게 큰 시험이 될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대학교 들어가는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졸업'의 영어단어는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학교에 돈을 몇십만불을 바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면 종이한장 준다. 졸업했다는 것만으로 받는 것이 없다. 얼마나 학교에서 얻는가가 중요하다. 대학교 4년동안 편하게 다니면서 아깝게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줄수 있는 많은 것을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받아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고 제대로 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맏아들이 하버드에 떨어져 부모님이 쇼크를 먹고 실망했다. 나는 자녀에게 기대를 안한다. 부모님이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여서 실망을 한 것을 보아 내 실망을 감당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놈은 어느 정도이면 감사할줄을 알고 그 이상 많은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회 30년 성가대 지휘와 검사생활 시작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하신일이다. 대학 2학년때 학교근처 한인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서 지휘를 할사람이 없었다.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하다보니 내가 성가대 지휘자가 됐다. 재미있고 은혜가 있어 좋았다. 19살때인 대학 2학년부터, 지금 49세까지 30년동안 지휘자로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셨다. 공부를 안하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와서 보니 30년동안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대학교 4학년이 되니 졸업한후 무엇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도 중반 미국의 대부분 학생들은 특별히 할일이 없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로스쿨 지망이었다. 그런데 대학교때 놀았더니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하버드에 두번째 떨어졌다. 로스쿨은 자신이 없어서 10군데 넘게 지원했고, 3분의 2는 붙어 뉴욕의 포담 로스쿨에 갔다. 영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법에도 관심도 없고 이러다가 무엇을 할수있겠느냐고 고민했다. 변호사가 되어 한인사회에서 계약서나 리스를 작성하기는 싫었다.

고민하는 가운데 우연히 연방검찰청에 인턴을 하러갔다. 그때 뉴욕시장이었던 줄리아니가 검사장으로 있었다. 연방검사들이 하는 일을 보니 마피아 보스를 잡고 금융불법자들을 구속하고 재판하는 대단한 일을 했다. 너무나 신이 나서 검사를 하겠다고 결정하고 연방검찰청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곳은 졸업하자 말자 안받아주고 2년간 판사밑이나 로폼에서 일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졸업하자 말자 연방검찰청은 안되지만 지방검찰청은 가능했다. 맨하탄 검찰청에 지원했다. 인터뷰를 5번이나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로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통과하여 마지막 검사장과 인터뷰를 하여 합격했다. 1987년에 25세의 나이로 한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합격됐다. 당시 검사장은 내가 잘할까 고민이 많았다. 영어도 잘못하지만 너무나 검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기회를 주었다.

겸손한 검사생활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하니 머리가 너무 컸다. 대학교와 대학원에 떨어지고 교만한 것을 하나님이 많이 깨우쳐 주셨기에 겸손해졌다. 그런데 사람이 교활하므로 검사되고 잘나가니 내가 잘해서 그런것이라고 머리가 점점 커졌다. 재판은 배심제이니 배심원들을 움직여야 한다. 변론하며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잘해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보이니 거짓을 하지 않겠지 하고 유죄를 많이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어깨와 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커졌다. 내 약점중 하나는 교만한 것인데 거만하기 쉬운 직장을 주셨음을 불평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잘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해주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고 일을 재미있게 했다.

동양계 갱단담당 검사로

80년대에는 살인사건도 많았다. 지금은 한해 6백여건이지만 80년대에는 한해 천명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살인 전담검사가 됐는데 검사 30명이 24시간씩 돌아가면서 그 날 일어난 살인사건을 담당했다. 내가 맡은 날이면 아무리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다 내 사건이 된다. 그래서 내가 담당할때면 제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특히 동양계 갱단 담당을 10년동안 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고, 한 갱단 멤버를 살인죄로 기소했는데 감옥에서 나오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 멤버가 가석방으로 나오기전 여전히 나에게 복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걱정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하나님에게 다 맡겼다. 사람이 걱정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12년간 검사생활을 하며 느낀것은 내가 들어갈때 500명의 검사중 동양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아직도 거의 없다. 검사하려면 말을 잘해야 하고 법정에서 싸워야 한다. 한국사람에 적당하다. 그러나 월급이 적어서 지원을 많이 안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는 사람을 돕고 범죄와 싸우는 일이므로 직업 만족도가 높다.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검사에서 판사로

평생 검사를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12년 검사했으면 판사하라고 추천하여 판사임명을 도전을 해 보았다. 당시 한국인 판사가 뉴욕에 없어 신청을 한것에 도움이 됐다. 마침 줄리아니 시장이 동양인 검사출신을 찾고 있어 판사임명이 되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판사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만하고 자아도취가 되기 쉽다.

내가 법정에 가면 법대 바로위에 큰 글자로 "In God We Trust"가 있다. 판사가 하나님의 신뢰를 가지고 올바른 판결을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움직여 올바른 판결을 내려줄것을 믿습니다"라고 해석한다. 그 문구를 보면 하나님이 판사 머리위에 올라가 계시므로 자연스럽고 좋은 법정구조라고 생각한다.

당직을 할때면 몇분사이에 구속 또는 불구속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때면 하나님이 해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결정한다. 여러군데에서 판사일을 하고 처음에는 경범죄를 다루는 일을 하다가, 다음에는 가정법원에서 일했다. 지난 7년간은 브루클린 지방법원에서 중죄재판만 하는데 살인등 강력사건을 많이 다룬다. 브루클린은 살인사건이 가장 많은 곳이다. 심한 범죄자는 사회에 못나오도록 종신형도 많이 선고한다.

판사가 느낀 하나님의 사랑

판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관찰했다. 정말 악의 극을 달리는 사람도 잡혀오면 양같이 순해지고 불쌍하게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앞에 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런 사건을 다루면서 깨닫는 것은 그런 범죄자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죽이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나 범죄자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다 그만그만한 사람들이다. 누가 크게 잘난것도 못난것도 아니고 같은 죄인인데 하나님의 은혜때문에 큰 사랑을 받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만끽하고 살면서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판사일을 하면서 신앙이 많이 깨어나는 것 같다. 어릴때 아버지가 목회를 했다. 교회를 건성으로 다녔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것도 없고, 설교를 들으면 목사이전에 아버지이므로 잘 안들렸다. 이제 아이들을 키워보니 백만분의 일이나 하나님을 알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랑을 깨닫게 된다. 남아있는 인생동안 신앙생활을 잘해보려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대통령하면서 겸손할수 있으세요?

검사 12년과 판사 13년을 했다. 아직 연방판사직은 안열어 주셨지만 여러모로 나를 사용하실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는 이것밖에 안풀어주시는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다 이해할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하신다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크게 사용하시려는 계획이 있스심을 안다.

브루클린 법원에서 배심원을 뽑을때 60-70명을 부르면 20-30개국 이민자들이 온다. 완전히 유엔기관이다. 그들이 들어오면 동양인 판사가 말은 미국 판사같이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가끔 본다. 한국사람으로 긍지를 가지고 매일 일한다. 퀸즈 법원장이 친한 친구인데 퀸즈에 오라고 한다. 하지만 퀸즈에 오면 한인 피고인을 보아야 하는 것이 싫다. 은퇴할때 까지 브루클린에서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성가대 지휘자로 사용하시고 잘못한것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시고 그것을 토대로 아이들을 키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나는 음악도 좋아하고 지휘도 하는데 노래는 못한다. 언제나 공평하시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까운 자리에서 두번 만났다. 3년반전 당선직후와 몇달전에 동포간담회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것을 못물어보았다. 대통령하면서 겸손할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판사도 그렇고 권력이 있을수록 더 겸손하고 조심하고 그런 태도와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

제가 섬기는 교회 노진산 담임목사와 자주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도토리 키재기같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는데, 다음에는 이 대통령에게 대통령하면서 겸손할수 있느냐고 꼭 물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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