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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목사 ① 좌경화된 기독교이단사이비 대책기관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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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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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최근 뉴욕 교계는 사이비 이단연구 및 대책 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온갖 부정적인 언론 시비로 소모적인 논쟁을 일삼고,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상대방을 흠집 내어 소중한 인격을 파괴하며, 반기독교적인 분위기가 만연하여 쓰나미처럼 위험수위에 이르게 된 것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뉴욕은 LA 지역과는 달리 한인사회가 매우 보수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와 경제, 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측면에서도 매우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는 지역적인 장점과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독특한 대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인 특수한 성향으로 볼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사이비 이단 척결위원회 목회자들은 이단 연구실이 아닌 이단대책과 대처방안의 실질적인 행동으로서 기독교 이단인 구원파(박옥수)의 대대적인 포교활동과 메트로포리탄(metropolitan) 지역의 대형집회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반대 시위를 했고, 한국교회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무서운 사이비 이단집단인 신천지의 침투에 대해서도 정보입수나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단 대책이나 대처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은 객관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고무적으로 효력 있게 잘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Kansas State에 소재한 국제기도의 집(IHOP)과 관련된 뉴욕 N교회의 목사 사임 과정에서 대두된 신사도 운동에 대한 신학적 비판과 IHOP에 관한 2011년 1월 뉴욕 세미나를 쟁점으로 매우 어설프지만 공명심을 최대한 발휘하여 확산된 것이 기독교 이단 연구 및 대책에 대한 폭넓은 기폭제로 작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미주의 4개 이단연구단체가 주축이 되어 더욱 효과적인 이단 대책 사역을 목적으로 세력 확장과 서로 연대구축을 하기 위해 소위 세계한인기독교 이단대책 총연합회(약자-세이총)가 유령처럼 갑자기 출범되어 그 절정에 달했습니다. 물론 일부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인 특정 언론도 호기를 만난 듯이 대중들의 관심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하여 사업상 전략적인 이득을 생각하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는 안중에도 없이 분별력 없는 저돌적인 언론 게임에 적극 협력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최근 들어 갑자기 사이비 이단대책위원회가 미주에서도 동서를 막론하고 그 세력을 확장해 가며, 기독교 안에서도 많은 혼란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점이 매우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한국 근대사에 역사적인 공헌을 세웠고, 국가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던 민주주의 투쟁운동도 처음엔 독재정권에 맞서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호소하는 순수한 동기로부터 발단이 되었지만, 그 목적과 방법을 달리하는 불순한 사람들이 가담하게 되자, 결국은 좌경화로 뿌리 깊은 국가적 암초가 형성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남한 전역이 불법시위와 파괴, 무질서와 방종, 국가적인 발전에 발목을 잡는 미래 없는 반국가적 독초들이 싹을 내며, 국가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갈등과 좌절 속에서 소모적인 국가운영체제와 안전을 상실한 대 혼란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사이비 이단대책기관 안에서도 좌경화의 거센 파도로 인한 영적인 손실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게 됩니다.

목회자가 교회 사역에는 안중에도 없고, 영혼구원에 무관심하며, 열심히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전하기에 바쁘기보다는 부분적인 꼬투리를 잡아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기에 열심이며, 끌어내리고 망가뜨리며, 분별력 없는 인격살해를 일삼고, 세계선교에 비전대신 흙탕물을 끼얹는 좌경화된 기독교 원수들이 독버섯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사이비 이단연구기관에 몸담아 있는 목회자들은 아래와 같은 객관성 있는 경고에 대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반드시 귀를 기울일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믿는 바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안에 영혼구원(전도)하는 일에 정체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반기독교의 확산과 사단의 교묘한 전략에 휘말리는 이단정죄 풍조가 속히 사라져서, 영적인 무기력과 붕괴(collapse)현상에서 일어나 적극적인 진리의 변증자들이 되도록 도전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경고의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이미 언론을 통해 건전한 생각과 의견들을 제시한 분들의 글을 참고했고, 또한 이단대책에 관한 자료들과 본인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미주에서 태동된 사이비 이단대책위원회도 새로운 것은 없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와 같은 사이비 이단대책 및 척결 기관들이 한 손에 권력을 쥐고, 한 손엔 언론을 장악하여 한국교회에 대해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갖가지 횡포와 협박, 정치적 압력 등을 일삼아 자신들의 소정의 목적을 쟁취한 사례들이 일반화되어 폭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교회에 피해를 관망만 할 수 없어 소위 “이단연구”라는 책 후편이 될 만한 “이단사냥꾼(감별사)의 속성”이라는 흥미 있는 책까지 한국에서는 출간되어 읽혀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미주에서도 그대로 복사가 됩니다. 좋은 일들은 전파되는 속도가 느리고, 나쁜 일들은 미주에 상륙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잘해나가던 뉴욕교협의 사이비 이단대책위원회가 이단에 대한 대책을 자체적으로 잘 수행해나갔는데, 마치 중병에 걸려있던 남 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반(反)앗수르 동맹을 강화할 외교적 목적으로 예물공세와 메시지를 보내온 바빌로니아 왕의 사신에게 왕궁의 보물고와 군사시설, 그리고 창고의 모든 것을 보여줌으로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과시하여 자신을 좀 위대한 왕으로 증명해보려고 했던 것처럼, 결국은 자신을 과시하고 증명하려는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패된 시궁창으로 쉽게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칭 국제적 조직이라고 하는 세이총과 손을 잡고, 세력구축 기반을 거짓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이슬람 선교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중동지역을 대상해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단체 인터콥과 최 바울 목사에 대한 신학사상을 문제 삼아, 사역 자체(비전스쿨)를 방해 또는 공갈협박으로 금지시키며, 개인적인 인신공격을 넘어서 흠집을 내고, 아예 끌어내리려고 결사적으로 총집중하여 큰 물고기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것은 마치 마피아조직 같은 느낌을 들도록 하기에 충분합니다.

결국은 조직의 힘을 연대해서 이단 사냥꾼 역할을 하겠다는 속셈인데, 이 조직에 아무 영문도 모르고 이단척결에 대한 조직이니까 적어도 여기에 소속이 된다면 이단소리는 안 듣겠지? 안도의 숨과 함께 조직 명단에 이름이 자의반 타의반 올라간 목회자들도 있고,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대부분 나열되어 있습니다. 물론 세이총의 말을 빌린다면 “조직의 정비”가 불가피한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조직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마치 시리아 정부군이 민간정부군과 싸움을 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주고 외국인 군대를 모집하는 것과 같은 “세이총” 또는 “진목연”이라는 조직을 보면서 목회자들이 너무 할 일이 없고,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유령처럼 나타난 이 조직과 이단 사이비대책이라는 기관의 활동 목적은 그동안 문제시했던 IHOP의 신사도 운동과 일반적으로 이미 오래 전에 사장(死藏)되어 모든 성도들이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김 기동 씨의 베뢰아 귀신론을 폭넓게 적용하여 중동 이슬람권 선교사역의 전문가인 최 바울 목사와 인터콥을 이단시 하고, 여기에 관련된 정치적 이득에 걸림돌이 되는 특정인들을 정치판에서 한번 꺾어보겠다는 것이 조직 활동의 대 사명이요, 조직의 목적이라고 공공연히 그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과 영적인 불모지에 선교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목회하는 목회 현장은 쑥대밭이 된 채로 방치해 놓고, 이단 사냥꾼으로 역사적인 소명을 받아 남을 정죄하고, 전 세계의 교회들을 실시간 감시하는 체제로 그 조직이 결정하는 이단성과 사이비 집단들을 무력으로 심판하려는 듯이 용맹을 떨치며, 뉴욕과 동부지역을 강타해 보려고 시도했던 유령단체들이 뉴욕의 이단 사이비대책기관과 불행한 운명의 손을 잡고, 출범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사실, 인터콥의 최 바울 선교사뿐만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과 단체들을 이단시하여 업적의 목록에 기록하고, 그것을 직업적인 빌미로 삼아 경제적 이득과 세속적인 명예를 챙기고자 하는 최초 인류의 시조 아담의 속성과 같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세계 최대 선교단체인 국제예수전도단(YWAM)도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바리새적인 이단사냥꾼(이단감별사)들이 강박적인 싸이코패스의 병적인 인격살해 속성을 가지고 안티기독교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국 예수전도단은 1961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받은 오대원(David E. Ross) 선교사 부부에 의해 창설되어 한국 복음화와 젊은이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국제적인 선교단체입니다.

매우 우려가 되는 것은, 왜 이렇게 짧은 기간에 기독교 사이비 이단연구 및 대책 기관들이 언론에 굉장한 단체처럼 위장을 하고, 위협을 하고 있는지? 이는 그 사역의 동기와 결과에 있어서 기독교 복음전파에 역행하는 매우 불순한 동기로서의 신앙적 좌경화로 그 길을 자처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신학사상이나 교리적인 측면에서 바른 교회를 지향하는 순수한 동기 보다는 정치적인 불순한 동기가 뒤에 도살이고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은 바른 교회를 한 번도 목회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로서 목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면 하루아침에 정치목사로 전락되기 쉽습니다.

본론

1. 세이총이나 진목연 조직이 결정하는 이단판정 기준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교회나 단체가운데 인간이 공공연하게 교주(자칭 하나님)의 위치에 군림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탈취한다든지? 아니면 가르치는 교리나 신학사상이 복음에 역행하거나, 잘못된 신앙관으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황폐해지든지, 행실이 선하지 않든지? 라면 몰라도 이단사이비 정죄판결을 밥 먹듯이 가볍게 하는 행위는,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정치적이고 물리적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고, 자신들에게 이단사이비를 재판할 수 있는 꽤나 괜찮은 실력자들 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애써서 증명하고 싶은 충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단 기준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으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교파적으로 조직된 이단대책위원회는 이미 공인된 공회 기관인 소속교단에서 사이비 이단으로 정죄 받은 집단들에 대하여 대책을 세우고, 교인들을 그 이단으로부터 보호하며, 이단에 대한 연구나 추적은 하되 그 자료를 소속교단으로 넘기면 교단 차원에서 신중한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겠지요. 왜 공회에서 이런 결정적인 이단문제가 다루어져야 하는가 하면, 그 교단 상회 기관이 그 교단에 소속된 교회나 사람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고, 소속 교단마다 신학적인 특성들이 조금씩 다르며, 신학적 표현들이 교단마다 다르다는 것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단이다” “이단이 아니다”하는 판단은 공회에서 다루는 문제이지 사이비 이단대책위원회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할이 뒤바뀌어지면 그야말로 사이비 이단대책위원회가 사이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회재판에 의해서 이단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 중구남방으로 오합지졸이 모여서,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는지?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도 몇 사람이 작명된 이단대책 조직이라는 이름 하나 가지고, 발표된 유일한 성명서 한 장으로 이단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은 아이들 장난하는 것 같고, 병정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상식적으로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신학을 제대로 배웠고, 기본실력을 갖추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목회자들은 이단대책 조직의 활동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분위기일 따름입니다. 더욱이 세이총의 이단 판결의 정신과 방향에 대한 아래의 7가지 발표문은 탁상공론이고, 이론은 그럴싸한데,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a. 교회는 이단의 영혼을 치유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하나님 나라 확장이나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b. 이단 사이비 집단으로부터 변호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기독교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신학적 사고가 짧으면 독선적이고 일방통행이다).
c. 이단 판정위원들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이단 사이비 대책과 관련된 인물들이 목사로서의 학문적인 소양과 인품과 신앙양심,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전혀 나타나 보이지를 않는다).
d. 이단 판정을 해제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소속된 기관이나 교단에서 더 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상설기구를 고등법원처럼 만들어 놓고, 또 다시 정치적인 이득과 세속적인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가?).
e. 이단 판결에서 정치적인 세력(돈과도 관련)의 개입은 제거되어야 한다(30년의 이슬람 연구 및 전문적인 노하우와 650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콥과 같은 유일한 선교단체를 자체적으로 연구해 보지도 않고, 인터넷 성명서나 종이 몇 장으로 무리하게 상대를 매몰시키고자 하는 만용을 보면 정치적인 이득을 노리려는 속셈으로 볼 수밖에 없다).
f. 이단 판결은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언론에만 의존할 뿐, 건전한 신학적 사고와 성경지식을 가지고 이단 대처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g. 이단 규정과 해제는 공의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당사자들은 공의회의 위임이나 지도를 전혀 받지 않고, 이단 사이비종교 척결 활동을 불법적으로 벌이고 있다).

2. 사이비 이단연구 전문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 교협산하 이단 대책위위원에서 이단 세미나를 개최하기 위하여 이단 전문 강사를 초청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사이비 이단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적인 학문은 없습니다. 그냥 비교종교학 정도이지 이단을 연구하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단을 연구하기 보다는 바른 진리를 연구하고, 성경을 연구합니다. 바른 신학의 기초를 닦기 위해 교의학(Systematic Theology)을 잘 공부해 놓으면 이단은 자연적으로 분별이 되고, 진리가 아닌 것을 가려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이비 이단전문가는 따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단을 연구하고 묵상하다보면 자신이 이단에 빠질 확률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신앙생활에서 불이익을 가져옵니다. 마치 김 기동씨의 베뢰아 귀신론이 보통 감기만 들려도 귀신과 관련되었다고 하니까 자연적으로 귀신을 많이 묵상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귀신이 평생 동안 그를 괴롭힐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시고 구원의 언약에 신실하신 좋으신 하나님을 많이 묵상해야지, 사탄의 졸개들을 묵상하면 흑암의 권세 아래서 늘 불안하고 고통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교인들에게도 강단에서 이단에 대한 설교와 이단에 대한 공부를 1년 이상 집중적으로 계속 한다면. 성도의 삶에서 구원의 즐거움이나 영광스러운 복음전파와 선교하는 사명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단사상은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 놓으면 나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잘 훈련되면 이단에 대해 가르치지 않아도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지혜의 성령께서 이단 사상을 판단할 수 있도록 분별력을 주십니다. 만일 이단 전문가라고 하면서 성경말씀과 기초신학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분별력이 없어 스스로 이단 사상에 빠질 우려가 높습니다. 자신의 허약한 신학과 교리의 잣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해 놓으면 더 많은 다수가 이단 사상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이비 이단대책 사역은 떠벌리며 흥분해서 대처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은밀하게 전략을 세우고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복음으로 충만해야 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더욱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과 은밀한 기도의 골방이 누구보다 더 확고해야 합니다. 사단의 술책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교활한지도 잘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진리로 충만하면 비진리가 무엇인지? 이단이 어떤 집단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이단연구 전문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누구든지 전기밥솥만 있으면 전기 플러그를 사용하여 맛있는 밥을 잘 지을 수가 있는 것과 일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단을 판별할 수 있는 영적인 지각이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열려있습니다.

3. 기독교 이단연구 및 대책 협의회가 정말 인기 있고 권세 있는 기관인가?

기독교 이단척결에 대한 기관들을 살펴보면 그 명칭 사용이 대략 서너 가지로 압축됩니다. 기독교 이단을 연구하는 학회 기관과, 이단대책을 마련하고 이단 척결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며, 논의하는 협회나 위원회가 있습니다. 또한 이단문제를 상담해 주는 상담소와 상담소 협의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이단을 척결하는 일에 있어서는 기독교 공의회나 개인과 단체기관에서 이단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인력도 필요하고, 정확한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전략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여 실제로 행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기독교 이단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초대교회나 중세 기독교 교회사에도 각종 이단들이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농부가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나중에 보면 가라지도 함께 자라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 악한 사탄이 가라지도 뿌리게 되어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한국 기독교 초창기부터 기독교를 흉내 낸 국내의 교주(자칭 하나님)들을 대상으로 이단척결운동이 시작되었으며, 한국교회에서 이단척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복음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 동기는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보호하고, 위장된 거짓 교회를 폭로함으로써 성도들을 이단 사이비 집단으로부터 미혹당하지 않게 하며, 교회가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지상에서의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 이단척결을 위해 공회가 아닌 개인적인 자격으로 한국교회에 공헌했던 시대적 인물들이 있는데, 아래의 세분을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이단척결운동에 평생을 바쳐 큰 업적을 세웠던 국제(한국)종교문제연구소 소장 고(故) 탁 명환교수는 개인 연구소를 만들어 이단척결을 위해 피를 흘리기까지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당시 무서운 교주들을 상대로 싸웠던 기독교 이단척결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결국 사이비종교집단 신도들에 의해 수십 차례 테러를 당해오다가 지난 1994년 2월 괴한(임홍천)에 의해 피습당해 57세의 나이로 순교자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고인이 되신 탁 명환 교수에게도 사사로운 시비 거리와 부정적 이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죽음은 한국기독교 역사에 길이 기념될소중한 희생이며, 순교적 사명을 다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직에 봉직하면서 각종 비교종교학 강연을 통해 학문적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담대히 이단 교주들의 거짓 사상에 맞서 싸웠던 신 사훈 박사도 훌륭한 당대의 이단 척결 운동가였다고 사료(思料)됩니다. 그리고 구원파 집단(권신찬과 유병언 사장)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구원파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해 준 대전침신대학 정 동섭 교수도 자신의 저술과 강연, 그리고 산 간증을 통해 한국기독교 이단과 사이비척결에 크게 공헌한 훌륭한 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이단척결 운동에 대한 특별한 소명의식은 탁 명환 교수의 순교의 피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극히 정치적인 불순한 동기와 인간적인 열정, 그리고 자기 의(義)와 자기 증명(證明)에 심취된 나머지 기독교 이단 감별사로서의 갑작스런 출현은 단순히 긍정적인 면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위 사이비 이단종교 척결운동에 대한 불타는 사명감이 명분에 불과할 뿐, 사명보다는 자리를 탐하는 정치놀음과 비윤리적 행동(돈과 공명심, 인격살해)도 서슴없이 행하는 파렴치한 부정적 결과를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이비 이단 척결운동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단과 사이비집단을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앙, 문화적 측면과 선교학적 관점, 실천신학적인 관점과 목회적인 윤리와 도덕성, 신앙인격과 지도자의 자질 면에서 폭넓게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종합적인 학문성과 영적 분별력이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도 매우 의심해야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이단 감별 기준이 오직 성경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고, ‘교단과 각자의 교리’와 ‘주관적인 신학사상’과 ‘정치적인 속셈과 계산’, 그리고 ‘개인적인 영예와 이득’이 기준이 되어 ‘정통과 이단’을 분별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종 기독교 이단사상과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며, 전도의 문이 점점 좁아지는 시점에서 이단감별을 하는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조용하며, 은밀하고 지혜롭게 이루어져야할 일이지? 권세와 위력을 과시하며, 일부 언론사의 반기독교적인 기사를 근거자료로 하여 거짓과 술수와 오만함으로 기독교인들의 낯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옳은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극치요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Theology)의 학문적인 소양과 신앙 양심도 없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도 믿지 않고, 선교에 대한 불씨도 그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직업적인 일부 신학자들의 편향된 조잡한 글을 인용하여 이단과 사이비 집단을 척결하겠다고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스스로 허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행위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언론에 이미 공개된 글들이라서 자신들이 스스로 반기독교인(Anti Christian)이요, 반기독교(Anti Christianity)요, 반교회(Anti Church)단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30년 이상 마지막 복음의 불모지인 이슬람선교에 기반을 닦아놓은 선교단체를 골리앗으로 비유하여 궁극적으로 그 단체를 무너뜨리는 목적이 이단 사이비 대책 집단들의 전략이라면 뉴욕과 뉴저지 어느 곳에서 이단 세미나를 개최한다 해도 관심이 점점 식어질 것이요, 그 사이에 틈을 타서 진짜 이단들이 뉴욕 뉴저지에서 자유롭게 활개를 치는 진풍경이 불원간 도래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처럼 분별없는 열정이나 이기적인 야망과 결합된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에게 도움을 주는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사실 이단 사이비 척결을 빙자한 언론 매체의 반기독교적인 Anti 역할과 세속적인 힘겨루기와 이단 사이비대책 기관들의 연대의식에 대해 그들은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공회에서 “법이요”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진리가 아니면 아무리 세력을 과시하고 연대해도 수호할 수가 없는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어떤 개인이 고독하게 싸울지라도 반드시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연대해서 물리적인 힘과 기(氣)싸움으로 진리를 수호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유치하고 허약한 행동이며, 그것 또한 예수님의 방법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단사상과 사이비종교집단이 발생하는 원인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될 사안들입니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적, 국가적, 범세계적으로 시대가 혼란하고 혼탁할 때에 여러 신흥종교와 집단이 생겨났고, 신흥교주가 출현하여 민심을 동요케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부끄럽게도 이단사이비종교집단이 기성교회의 제도적 부패와 타락, 성경해석의 오류, 자유주의 신학과 변질된 신앙사상, 교회와 교인들의 무사안일주의, 이탈된 믿음생활로 인한 혼란을 틈타 유리방황하는 과정에서 기인하여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정죄의 마음보다 그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앞서야하고, 이단으로 분류해서 사냥하고 죽이려는 목적보다 이단성 있는 사람들을 구해내는데 그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단감별을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이단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이단 사이비 전문인도 있고, 기독교 이단감별사로서 윤리 도덕적인 그물에 걸려 자신 스스로가 정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기독교 진리의 대변자로 굳게 서지 못하면 잔인한 이단 사냥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부단히 성찰하여 끊임없이 배움의 자리에 있지 않고 이탈하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형제가 형제를 살해하는 카인과 아벨의 사건을 재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보도된 의처증 환자에 대한 사건이지만, 부인과 함께 자고 있는 자가 외간 남자인줄 알고 어둠속에서 살해했는데, 알고 보니 처제(아내의 여동생)였다면 당신은 이 억울함과 비통함, 그리고 그 죄 값을 어떻게 얼마나 치러야 되는지? 를 깊이 생각이라도 해 보셨습니까?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종교는 이미 그 기준이 충분히 자료로 공개되어 있고, 구태여 연구를 하지 않아도 금방 분별할 수 있는 우리 몸 안에 이물질(異物質)과 같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 애쓰고 연구해서 마치 종교 마피아적인 기관이나 조직이 언론에서 힘의 논리로 이단이라고 밀어붙이면 즉시, 이단제품이 만들어지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이단 사이비대처는 연대해서 힘을 과시하거나 자랑거리로 삼고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대중들의 심리전을 이용하여, 권세를 남용하며 협박 내지는 특정 개인을 흠집 내고 인격살해를 하는 추악한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 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자신부터가 소속교단이나 기관단체에 충실하고, 혹시 개인적으로 타인에게서 이단감별이 감지되면 소속 교단을 통해 공회가 상대에게 질의서를 보내거나 진척이 없으면 해당 소속 공회에 질의서를 보내어 시정을 요구하거나 조사를 의뢰하는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단 대처를 은밀하게 해 나가야지 떠벌리면 실수도 많고, 법정공방으로 소모적인 피해를 입게도 되며, 언론에 또한 부정적인 기독교 이미지로 부각되어 세상이 온통 이단교회들로 가득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므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지상과제에 전략상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과연 그 피 끓는 열정이 누구를 위함이며, 누구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4. 기독교 이단 사이비종교 척결운동을 위한 올바른 정신과 자세는 무엇인가?

한국 기독교역사는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가 흠뻑 젖은 피의 역사였습니다. 지금도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의 순교자적 사명 따라 복음의 진리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결사적인 정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의 역사는 세계 열방을 향하여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사명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위해 숭고한 피를 흘렸던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진리 수호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전략적인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절).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종교를 척결하는 올바른 자세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이단을 척결하는 바른 자세이며,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무런 기독교 이단 판단기준도 없이 사소하고 미미하며, 흠집용 신학사상 문제나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개인의 신앙적 체험, 정치적인 감정, 그리고 선교현장의 문화적인 이해와 성경해석과 적용에 관한 차이점까지 모두 이단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사실 이단성이 없는 개인이나 교회, 기독교 기관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이단은 몸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될 암세포요, 이물질(異物質)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뉴욕에 초청되는 한국의 무수한 강사들을 너무나 쉽게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재판관의 위치에서 남을 무너뜨림으로 쾌감을 느끼려고 하는 병적인 작태를 교계의 분위기를 보아서라도 이젠 중단해야할 시점에 온 것입니다. 실제로 깊이 알고 보면 이단 사이비를 척결하겠다는 장본인들의 학문적 소양과 신학적인 사고력이 어느 정도 기준에는 도달해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 증거로서 적어도 비교 종교학 강의나 무엇이 이단 사이비 집단인지? 에 대한 강의를 직접 할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강사를 데려와 세미나를 열거나 일부 언론사의 검증되지 못한 기사를 근거자료로 이단 판정을 결의하며, 불의하고 좌경화된 자칭 기독교 언론과 결탁하여 무가치한 싸구려 논쟁으로 교계를 매우 혼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세이총”이니 “진목연”이니 단체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몇몇 인물들이 거짓과 권모술수, 날조된 비방과 공명심을 발휘하여 세속적 정치 연대를 도모하며, 결과적으로 반기독교적인 활동으로 전도의 문을 막고, 선교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으며, 오히려 이단 사이비 집단의 발 빠른 서식을 적극적으로 안전하게 방치해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체계를 세우고, 전도의 문을 여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없으며, 영혼 구원하는 일에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함부로 주 안에서의 형제나 신앙가족에 대해 이단 정죄를 하거나 사역을 적극 지원하지 못할망정 방해를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너무 자주 이단성을 거론하거나 일반적인 생각과 견해를 특별한 사건인양 문제를 제기한다면 진작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해서 믿는 자들조차 무관심하게 될 것이고, 무감각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시시 때때로 돌출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 때문에 진작 가져야 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신앙이 우리에게서 점점 식어진 것처럼, 이단 대처 방안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나 그 대상이 일반화되고 보편성을 갖게 된다면 이단 사이비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이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신학적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신학적 깊은 사고력과 지식이 없어서 잘못된 편견을 갖고 함부로 이단정죄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선교 현장(mission field)의 몰이해로 인하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현장 선교사들을 실제로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영혼 구원하는 일이 어떤 개인이나 어떤 교회에 국한되어 실효성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동역하는 유기적이고도 총체적인 합동작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전도대상이나 지역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불모지에서 최전선의 철의 장막을 뚫고, 어두움의 영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최전선 위험한 지역에 파견된 현지 선교사들, 말씀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사람, 양육하고 보양하는 사람, 보살피는 사람 등등 역할이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하나님 나라 확장사역은 총체적인 Networking으로 서로 존중하며,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궁극적인 열매를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활동하는 몇몇 이단 연구회나 이단 대책 위원회는 과연 그 조직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보호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연대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피를 흘리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에 역행했던 바리새인들과 주후 1세기에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과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당시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이단으로 척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면에서 우후죽순처럼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단 사이비대책 위원들이나 이단 연구회에 몸담고 있는 분들은 이제라도 심각성을 가지고, 의미 있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단 사이비를 척결하겠다고 호헌장담하며, 비겁하고 유치한 신학 논쟁과 이단 사냥꾼의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무서운 기독교 이단이요 사이비인 신천지 집단들이 뉴욕에만도 300명이 서식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162St. & 45Ave.에 위치한 신천지 집단의 활동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버젓이 맹활약하며 전통교회 교인들을 미혹하여 끌어가고 있습니다. N교회의 경우 교회 내부의 혼란을 틈타서 아예 집중적으로 그곳이 신천지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진작 싸워야할 대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엉뚱한 곳을 이단성 대상으로 지목하고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니, 이대로 나간다면 이단 사이비 포교활동에 간접적으로 일조하고 있는 좌경화된 기독교 이단 대책 단체들은 후일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고, 이에 못지않게 기독교 언론으로서 공범에 가담하여 이를 지원한 사이비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도 뉴욕과 뉴저지 인근 교계의 불신임을 받아 자멸할 것임을 또한 미리 경고하는 바입니다.

5. 좌경화된 이단연구 대책기관의 인터콥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

1) 선교단체인 인터콥과 최 바울 선교사를 이단(異端)이 아닌 “이단성(異端性)이 짙은 단체”라고 애를 쓰면서 음해 공작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이단이라고 해서 떠들어대 봐야 신실하고 의식 있는 목회자들은 아무도 호응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적으로 최 바울 선교사의 책 내용에서도 이단에 관한한 확실한 증거가 없고, 최 바울 선교사의 신앙인격이나 사역의 열매가 더 이상 상종하지 못할 정도로 추악하거나 교주 냄새가 전혀 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교회와 신학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최 바울 선교사를 잘 알고 있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음해 공작하는 무리들 보다는 적어도 훨씬 신앙인품이나 도덕성이 탁월하고, 선교의 열정이나 사역, 기본적인 신학사상이 매우 건전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에게 다가가기에 적합한 지도자임이 점점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콥과 최 바울 선교사의 이단성은 현재도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실성과 정직성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시비를 걸고넘어지는 것이 신학사상(神學思想)문제입니다. 그것은 이원론 사상이니, 세대주의니, 베뢰아 귀신론이니, IHOP의 신사도 운동 등등에서 조금이라도 닮은 불건전한 신학사상과 공통분모를 애써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이론과도 같습니다. 만일 최 바울 선교사에게서 위에 나열한 대로 각종 불건전한 이단성과 신학사상이 조금이라도 발견되어 모두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일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이단을 만들기 위해 가능성 있는 이론에 최대한 집착한 것이지, 정확하게 이단의 뿌리를 알고 그 사실을 발견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서투른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는 가설적인 전제 속에서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한 과정을 상상의 날개를 펴고, 모든 원숭이로부터 인간과 비슷한 공통된 모습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위의 2)번에서 나열한 불건전한 신학사상은 일반 성도들도 대개는 신학적인 용어에 익숙해 있지 않을 뿐이지, 다 알고 있는 신학사상입니다. 그래서 일반 교인들도 극단적으로 육체나 물질은 악하고, 영이나 비 물질은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구원의 계획을 인간의 역사와 시간과 공간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귀와 그의 졸개들(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아와 질병으로 사고로 폐망으로 생각과 지각을 혼미케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단과 귀신들 보다 더 능하신 야훼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갖고 선한목자로서 우리를 매순간 인도하고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4) 또한 오늘날에는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 야곱의 12아들(12지파),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12제자들(사도들)과 같은 특정인물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제사장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며,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고, 예언자나 선지자의 정신을 가지고 사역을 한다는 것이며, 사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위임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영광스럽게 수행해 간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신도들도 이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그 수준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견해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실제로 본인들도 그러한 용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단성 운운하는 것은 흠집을 내려는 목적에 불과하지 선한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증거가 됩니다.

5)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의 신학과 다르면 모두 '사탄의 종'이고 '적 그리스도'이고 '거짓 선지자'이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양식 있는 학자라면 그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언사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대해 그러한 식으로 매도를 해왔습니다. 그런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달라스 신학교나 탈봇 신학교는 세대주의 신학교이기 때문에 모두 이단이나 사이비집단이며, 스윈돌(Charles Swindoll), 맥아더(John MacArthur, Jr.), 위어스비(Warren Wiersbe), 크리스웰(W.A. Criswell)등도 모두 이단이거나 사이비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책을 출판하거나 읽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세대주의를 매도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의 세대주의 이해는 실제 세대주의자들의 견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과연 그들이 세대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서 그런 말을 하는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남에게 들은 지식에 근거해 그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 갈 때도 많이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의 문제는 5%에 불과합니다.

계약신학자들도 세대주의자들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불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약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비판만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견해가 다른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먼저 시도한 뒤에, 그 신학이 갖는 장점과 문제점을 언급해야만 합니다. 세대주의와 계약신학과의 관계는 이단 대 정통신학의 관계가 아니라 정통신학 안의 신학적 차이임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보수 신학계에서 상호대립 관계에 있는 두 신학 조류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학문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세대주의자들은 너무 지나치게 친(親) 이스라엘 입장이고, 그 반대자들은 지나치게 반(反) 이스라엘 입장으로서 무관심 또는 냉소적입니다. 서로 간에 신학적인 차이로 인하여 양극 현상을 빚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두 신학 조류가다 보수 신학계로서 각기 장점이 더 많지, 단점이 더 우세한 것은 아닙니다.

6) 사이비 이단분별 기준은 진리의 성경말씀이 표준이 되고, 이미 공회(公會)가 마련한 공식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좌경화된 이단 대책기관들은 사이비 이단 분별 기준을 사이비 이단집단들과 불건전한 몇몇 신학사상에 표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확실한 이단적인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거나 유사한 것 같아 보이면 모두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판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이 매우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원판(성경)으로 주물을 구워야지? 이미 나와 있는 물건(현실)을 가지고 복사를 하다보면 결국엔 엉뚱한 결론이 나옵니다. 원숭이를 묵상하다가 사람에게서 원숭이 닮은 것을 찾아내는 경우와 같습니다. 인터콥을 음해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원숭이를 닮은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7) 이단성이 짙은 비전문가들이 신학사상을 다루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그 짧은 편협한 신학의 잣대로 사람을 정죄하고, 매장시키고, 인격살해를 하기 쉽지만, 신학의 전문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점진적인 신학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 확장과 복음 전파하는 사역을 음으로 양으로 원활하게 학문적으로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신학은 바른 신앙관을 정립해 주고, 바른신앙은 바른 생활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8) 신학(神學)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합니다. 신학사상이란? 계시된 성경말씀의 범위 안에서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해 점진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의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백성들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정리된 이론인 것입니다. 모든 이론과 학문이 그렇듯이 이론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먼저이지요.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실제의 사건을 옛날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 1:1-2). 그러므로 구원의 실제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이것을 다시 후대에 사람이 이론으로 정리한 것이 신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사소하고 미미한 신학사상의 차이점을 가지고, 상종 못할 이단성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학문적으로 옹졸한 작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9) 신학사상과 이단사상은 엄연히 다릅니다. 신학 사상은 교단마다 조금씩 다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신학사상은 해석과 적용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혹 불건전한 신학사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놓고 확대해서 이단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콥과 최 바울 선교사의 신학사상이 그렇게 불건전하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더욱이 인터콥 선교회를 이단성이 짙다고 문제 삼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도 어떤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신학적인 학문의 깊이와 내용과 신학적인 색깔을 검증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자신이 성장해온 신학적 배경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이단이다” 또는 “이단이 아니다”가 아닌 “이단성이 짙다”라는 표현은 대부분 정치적인 발언일 뿐입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불리한 위기상황에서는 몸을 피신할 수있어야 하니까 자신 없는 어중간(於中間)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정치는 사람을 살리는 정치이지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정치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살해하고야 말지요. 현재 인터콥과 최 바울 선교사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집단은 사이비 이단 척결과 진리수호라는 명분 아래 한 개인의 인격을 살해하고, 이 세대에 가장 취약한 중동선교의 밝아오는 여명을 이단 정죄라는 죄악의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도 중동 이슬람 지역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거나, 그 지역의 땅도 밟아본 경험이 없다면, 그리고 그런 나라에 단기선교 차원에서라도 그 민족을 가슴에 품고, 선교의 현장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함부로 사악한 입을 열어 전문선교사를 이단성이 있다고 매도할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선교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학사상도 콩 나라 팥 나라 논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현장을 위해서 신학이 지원되어야합니다.

11) 그렇다면 무엇인가? 단순히 이단성이 있다고 여론화시켜서 여기에 관련된 정치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계산입니다. 이것은 마치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와 같은 이상 기후변화로 오는 자연 재해를 인하여 길가의 모든 차량들이 파괴되기를 바라면서 자동차 산업에 더 많은 매출을 꽤해 보겠다는 성공심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단 정죄의 끊임없는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실은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뉴욕에서 정치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곤욕스럽게 하려고 정치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번 기회에 사이비 이단대책이라는 대 명제를 가지고 업적을 올려 정치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이단 만드는 공장 공사판 하나 수주하여 평생 권좌를 누리고, 정치적인 입지를 든든히 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12) 중국 본토의 내륙지역 교회들은 영국의 웟치만 니의 심취주의 사상 때문에 신앙의 본질이 훼손되어 심각할 정도로 이러한 사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 모든 교회들이 그들을 이단이라고 적대시하며 상종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신학사상에 관계된 문제라면 우리 뉴욕교계에도 얼마든지 잘못된 사상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사상에 관계된 문제를 모두 이단이라고 한다면 이단이 주변에 너무나 많아집니다. 예를 든다면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불건전하기 때문에 이단이고, “사도행전의 재현”이라고 해도 이단이고,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축사(逐邪) 행위도 모두 “귀신론”에 저촉되기 때문에 다 이단이라고 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일천 마리의 제물”로 해석하지 않고, “일천 번의 제물”로 해석하여 “일천 번의 헌금제도”를 도입하고, 헌금을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교회들도 모두 이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단 정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장본인들도 불건전한 신학사상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13) 교회와 선교는 불가분리의 관계인데, 만일 지역교회에서 인터콥 선교헌신자로 작정을 했든지, 또는 지역교회에서 이로 인하여 담임목사에게 물의를 일으켜 미성숙함을 보였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뛰쳐나와 인터콥으로 들어갔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서 지역교회가 손해를 입었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터콥과 최 바울 선교사가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단으로 정죄될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인 수평이동을 받는 모든 크고 작은 교회들은 다 이단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평이동 때문에 교인들을 대거 흡수한 교회들을 향하여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선교의 원동력(Motivation)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망정 선교기관에 의뢰하여 선교 훈련을 받게 하고, 선교 헌신자로 선교지에 단기선교를 한번 다녀오게 하며, 지속적으로 인터콥과 관계를 맺고 선교 비전을 키워나가는 것이 어떻게 이단으로 분리되는 조건이 되는지?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14) 우리는 종종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영적으로 해석을 하려고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The Bible)은 그저 고전(古典)에 불과할 뿐, 현실적으로 역사에 아무런 메시지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구속사적(救贖史的)인 안목이 없이 너무 자의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해석하려는 오류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대역사 가운데 분명히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인문과학적인 측면에서 정직하게 연구하려고 하지 않고, 뜬구름을 잡듯이 영해(靈解)하려고 하거나, 현실과 거리가 먼 시공간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는 모두 배제하려고 하는 모순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전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지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인양 해석하는 자세는 오히려 이단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다분히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15)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에 관한 용어 사용이 과연 이단성이 있는가? 이러한 용어는 성경신학적(聖經神學的)인 용어이며, 선교신학적(宣敎神學的)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중동지역의 이슬람 전문선교단체인 인터콥의 선교사 650명뿐만 아니라 모든 대부분의 중동지역 선교사들과 여기에 관련된 국내외를 망라한 선교신학자들, 그리고 중동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도 “10/40 Window”라는 선교용어와 함께 오늘날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광범위한 선교용어가 되었습니다. 어떤 무식한 신학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Back to Jerusalem)라는 구호에 대해서 이단성이 있는 용어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16) “백 투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은 의미상 단순한 표현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이러한 용어는 종말론적(Eschatological)인 용어이기도 하고, 선교현장(mission field)의 용어이기도 하며, 유대인들도 결국엔 구원받는다는 언약적 개념에서의 선교 전략적인 용어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귀환” “예루살렘에서의 역사의 종결 지점”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의 회복(되돌림)” “예루살렘을 향한 역방향(逆方向) 선교” “선교의 종착지점” “복음의 시작 지점과 땅 끝” “복음의 서진(西進)”과 같은 모든 세대를 망라하여 사용되는 다양성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의 개념이 시온니즘(Zionism)처럼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예루살렘 귀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복음이 마지막 그곳까지 전해진다.” 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을 고토로 귀환시키는 일인 “알리야”라는 본래의 뜻도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귀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심”으로 그들의 운명(구원)이 바꾸어지는 것을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열심으로 복음이 그곳에도 전해진다는 말입니다.

17) “지금이 예루살렘 시대이다.”라고 외치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도 단순히 세대주의 차원에서 시대를 구분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동안 무관심하고 편견을 가졌던 유대인들에게도 우리 이방인으로서 열심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자는 그런 취지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유대인”이라고 함은 히브리 민족의 야웨 하나님 신앙을 전수해온 정통파 유대인 랍비(Rabbi)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안에 있는 모든 분파를 초월한 그 땅의 민족으로 이해를 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정통파 유대인 Rabbi들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되면 더욱 폭발적인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변화되면, 아랍권(이슬람)에도 복음이 신속히 확산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18) 그리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예언서의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이미 이루어진 부분도 있고, 아직 미래의 사건으로 남아있는 성취되지 않은 종말론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역사적으로 성취되어졌지만 또한 점진적으로 성취될 이중적인 언약의 내용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된 내용들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에 이미 일어난 성취된 사건이면서도 또한 아직 장래에 될 종말론적인 약속도 남아있다는 예언의 내용인데, 이러한 특징적인 예언서가 곧 에스겔서입니다.

19) 에스겔은 BC 624년에 사독 계열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로 태어났으며(겔 1:3; 40:46; 44:15),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B.C. 594년부터 52세가 되던 B.C. 572년에 이르기 까지 22년에 걸쳐 예언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시공간의 제한 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총 망라하여 영원한 현재 속에서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야웨 하나님을 대변하는 파수꾼(경계병)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했던 충성된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서는 포로기간 전후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열방에 대한 다양한 예언, 그리고 종말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내용 중 전반부는 대체로 이사야(1-39장)나 예레미야와 유사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그에 따르는 심판과 경고와 회개를 언급하기 때문에(겔 1-32장)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역시 이사야(40-66장)나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에 대하여 다루고 있어서(겔 33-48장)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소망적이며, 승리와 기쁨에 찬 분위기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의 핵심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 이유는 더럽혀진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고, 백성들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에게 함락(B.C. 599년) 된지 12년 곧 B.C. 587년에 받은 예언(겔 33-39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층에 대해 실망한 하나님은 장차 메시야를 통해 친히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극적인 최후 승리가 상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25년 곧 B.C. 574년에 받은 예언인 에스겔 40장부터는 수많은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대규모의 성전 재건을 위한 길을 예비할 것이고, 환상을 통하여 장래의 성전과 갱신된 예배의식, 그 땅의 구분 등 아직 완전한 성취를 미래에 남겨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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