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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목사 세미나 "목회자의 정체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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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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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회장 김금옥 목사)은 신경림 목사 초청 목회자 세미나를 3월 26일(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뉴욕순복음연합교회(양승호 목사)에서 열었다. 세미나는 뉴욕교협(회장 양승호 목사)이 공동주최했다.

강사 신경림 목사는 남편이 시무하는 워싱톤감리교회(이승우 목사) 협동목사로 있으며, 웨슬리 신학대학원 부총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다음은 세미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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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신경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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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교수보다 목회가 어렵다. 학교는 문제학생이 있어도 졸업을 하고 나가지만 교인들은 졸업을 안한다. 힘든 목회를 잘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존경한다. 웨슬리신학교는 괜찮은 신학교이다. 감신은 미국안에 13개가 있는데 사이즈로 보아서는 제일 큰 신학교이다.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목회자의 첫 정체성은 인간

현재 휴직중이다. 그럴때가 아닌데 어쩔수 없었다. 생각하니 아팠던 때가 참 많았다. 약해서 골골한 무남독녀이다. 아파 휴학을 2번이나 했고 죽을 고비를 몇번 넘겼다. 하지만 지난 20년은 튼튼하게 살았다. 지난 7년간은 부총장 타이틀을 맡으며 바쁘게 살았다. 몸이 아파 2월말에 휴직했다. 잊고 있었던 것은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고 쉬운것을 잊고 있었다. 그동안 경고가 있었다. 중간에 아팠지만 몇일 쉬고나면 멀쩡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경고를 알아 차렸어야 했다. 내가 신이 아니고 인간이고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의 기본은 우리는 인간이다. 옛날의 저처럼 나는 지금 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기전에 정신차리라. 한계가 우리에게 반드시 있다. 그 한계는 어느날인가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다. 그것은 언제든지 찾아올수 있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인정하고 현명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것은 진리이다. 아프지 않으면 모른다.

목회자의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주제이다. 목회자의 정체성을 보기위해 나의 정체성을 먼저 생각해보자. 우리는 목회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인간됨을 무시하고 목회자인줄만 알고 살면 대형사고가 터진다. 인간이고 또 목회자이며 두가지를 다 알고 살아야 사고를 안치고 살수가 있다.

첫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떠오르는데로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세미나에서 왜 정보만 주면 되지 왜 변화시키려 하느냐고 따진다. 교육은 변화이다. 정보만 주면 소용없다. 티칭은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학문적인 이야기 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은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둘사이의 대답은 비슷할수도 다를수도 있다. 어떤것은 맞고 어떤것은 틀릴수도 있다. 남들이 나를 제대로 봤을수도 있다. 다른 가능성은 남들에 판단에 귀를 기울이거나 의존할수도 있다. 나의 정체성이 정말 내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교인, 배우자, 자녀, 사회)가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정체성으로 삼고 있을수도 있다.

다른 사람(교인, 배우자, 자녀, 사회)의 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남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그 기대를 절대로 채울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절대 할수가 없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잘못하면 정신분열이 될수도 있다. 그들은 무책임하게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절대로 모든 기대를 충족시킬수 없다. 요구함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목사라는 소리가 듣고 싶고, 좋은 부모라는 평판을 받고 싶고, 괜찮은 아내라는 소리를 누구에게서나 듣고 싶으면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특히 우리 한인 '코리안 어메리칸'은 이중잣대를 다 맞추고 살 운명이다.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이 원하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과 한국에 간적이 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갔다오니 한국의 관계자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준비를 철저히 하여 일년전에 한국과 연락하며 준비를 했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뒷소문이 나쁘다. 다음에 한국에 갈때는 인기관리를 위해 그렇게 안하고 다녀오니 학교에서 난리를 친다. 왜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안가르쳐 주느냐는 것이다.

10년전에 시민권을 받았는데 선서하는 날이 이사회로 잡힌 날이다. 3년전부터 잡아놓은 날이다. 시민권 선서하러 가야하니 총장이 말해서 이사회 시간을 오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선서하고 가니 기립하여 박수하고 환영의 허그를 했다. 집에 들어가니 남편은 '매국노'라고 한다. 너무 당황했다. 한쪽은 축하하는데 한쪽은 매국노라고 한다. 우리는 국제결혼 한 것이라고 남편이 선언했다.

여성 목회자의 분투기

남편 공부시키기 위해 미국에 왔다. 영어도 제대로 못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접시닦고 청소하고 애들도 돌보고 남편이 공부하는 것을 돕고, 남편이 한인교회를 하니 착한 사모를 하려니 바쁘다. 우연히 남편다니는 학교에서 한과목을 얻어들었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공부하고 졸업하고 연합감리교에서 안수를 받았다. 안수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회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 한인이 97명인데 79명이 남편교회를 다니는데 옆에다 개척을 못했다. 미국인 교회를 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80년에 미국와서 그때가 84년 봄이다. 영어문제가 있고, 미국 목회경험도 없고, 미국문화도 잘모르는데 어느 미국교회가 나를 사용하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교회 담임목사 자리가 났다. 교인들과 인터뷰를 하러 갔다. 감리사가 먼저 들어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 나왔다. 미국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다. 질문중 하나는 "남편이 한인교회를 한다. 한국여자는 남편을 도와야 한다는데 어떻게 할것인가. 남편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손을 떼겠는가"를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그 대답이 안나왔다. 그리고 "내가 안수를 받은 것은 한교회를 위해 한민족을 위해 받은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해 받은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교회에서 담임이니 이 교회에 대해 내 책임은 완수하겠다. 하지만 남편교회를 외면하겠다고 대답을 못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교인들이 나를 받기로 했다. 감리사가 오히려 나보고 NO해도 된다고 했다. 교인들이 난리치니 목회의 초년병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목회를 시작했다. 두 미국교회이다. 문을 닫으려던 교회이다. 전해에 성도들이 키를 감리사에 주고 문을 닫겠다고 해서 일년만 더기다려라고 한 교회이다. 내가 말아먹어도 큰 문제없는 교회이다. 강단에 첫주일에 서니 마이크가 내얼굴을 다 가린다. 교인의 최연소가 52세이다. 그런 교인들과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최악이다. 그런 관념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목회를 했다. 우리 도시 신문에 아시아 여자가 백인교회 담임했다는 기사가 났다. 잘못하여 교회를 말아먹으면 다시 크게 신문날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사람을 쓰지말자고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열심히 했는데 목회가 잘되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나를 욕했다. 사모이면 되었지 잘났다고 목사하느냐 고 했다. 목사와 사모들도 내가 이기적이라고 기피했다. 사모로서 조용히 섬겨야 하는데 자기가 목사라고 나설려고 하는것이 이기적이라는 것. 남편교회의 교인들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미국교회애 홀랑갔다고 나를 탓했다. 그런데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들 행복하지 않으니 나도 행복하지 못했다.

가장 힘든것은 나보고 나쁜 여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여자가 되고 싶어 많이 노력했다. 남편교회 교인들이 집에 와서 집안은 잘 섬기는지 뒤질까봐 항상 정리하고 다녔다. 영어로 설교하고 미국교회 목회하느라 너무 힘든데 애들도 신경을 써야 했다. 남편에게 내가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것이다. 남편 교회에 반주자가 없기에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일주일동안 연습시켜 반주를 시켰다. 좋은 여자소리를 듣고 싶어서 죽으라고 노력했는데도 나쁜 여자라고 했다. 그것이 힘들었다.

육체와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미국교회 목회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생각하니 해야 할것이 너무 많았다. 교회일도 준비해야 하고, 애들 체육복을 빨아야 하는데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TOP 사인앞에서 서있다 앞에 있는 트럭을 받고 싶었다. 받으면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생각도 안해도 될 것 같다는 괴로운 마음이었다. 못느끼고 쉬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정체성을 찾게 된 반전

힘든 가운데 1년전 신청한 영성아케데미에 가게 되었다. 미국교회에서 설교하고, 남편교회 성가연습시키고, 영성아케데미에 가려니 늦었다. 늦었기에 뛰어 나가는데 남편이 "우리 저녁은?" 하고 물었다. 가다가 눈물이 났다. 영성아케데미에서는 혼자 아무 생각도 없이 있어라고 하는데 그런적이 없어 불편했다. 앉아서 울다가 호수에서 예수님 모습을 보았다. 내가 너무 힘드니 예수님을 보면서 울다가 왜 예수님이 가만히 계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예수님이 울고 계셨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나를 보고 울어주시는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 울어줄 만큼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우리는 정보적으로는 그런 말을 많이 듣지만 마음속에 와 닿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시는 모습을 보는 순간 확 느껴진다. 나는 이런사람이라고 막 신났다.

저녁세션을 마치면 독방을 주고 침묵하라고 한다. 저녁예배부터 새벽까지 침묵하는데 어두운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한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일 필요가 없어.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될수 없어. 나는 하나님의 딸이야 그것이면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 삶이 반전되었다. 아카데미 과정을 마치고 성찬식을 하는데 내가 주기도문을 한국말 노래로 부르게 되어 있었다. 정말 제가 주기도문을 불렀다. 미국사람들도 다 울었다. 은혜로운 성만찬이 되었다. 이렇게 삶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바뀌니 남들도 바뀌었다. 미국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는 지적을 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창조적으로 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자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남들이 안했다고 하면 창조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에 사는 한인은 한국사람도 미국사람도 아닌 존재같지만 한편으로 미국사람도 한국사람도 모르는 것을 알고 생각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도 그 반전의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

왜 그렇게 힘들었느냐? "Shame"

왜 그렇게 힘들었는가. 공부를 하고 보니 그것이 'Shame'이다.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건강한 'Shame'도 필요하다. 창피해야 하는 것은 창피해야 한다. 건강한 'Shame'은 한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다음에 잘할수 있으면 건강한 'Shame'이다. 해로운 'Shame'은 내가 문제이며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에 수치감을 느끼는 것은 해로운 'Shame'이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해로운 'Shame' 이야기이다.

'Shame'은 다른 사람의 기준을 따라갈수 없을때 중압감으로 나는 안맞다고 말한다. 'Shame'은 이전에는 잘 몰랐다. 죄의식만 사람을 망치는 줄 알았. 죄의식은 행동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Shame'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 내부에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모르면 처방이 안된다. 'Shame'이 깜깜한 속에서 세력을 넓히고 커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길때 변화가 가능하다. "나는 문제야, 무엇을 하겠어, 그 모양 그 꼴이지" 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잘하려 해도 안된다. 어떤 일을 잘못할때 'Shame'을 가지면 'Shame'때문에 다음 일을 더 못하게 만든다. 점점 더 나쁘게 상황을 만든다. 더 많은 'Shame'이 생기고 괴로워하고 악순환이 거듭되게 한다. 희망을 빼앗아가고 절망하게 만든다. 이것은 깊이 감추어져 대부분 사람은 'Shame'이 있는지 모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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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e의 증상
By Jane Middelton-Moz

1.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2. 극히 수줍어 하거나, 금방 당황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이 곧 문제라고 생각한다.
3. 자기가 어떻게 노력하더라도 상황은 안달라질것이라고 포기한다.
4. 누가 충고하는데에 대해 강력하게 변명하려 든다.
5. 자신이 비난 받지 않기위해 남을 먼저 비난한다.
6. 모든 잘못이 늘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사과한다.
7.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할지라도 늘 외로워 한다.
8. 자기가 믿는 바를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하려고 한다.
9. 자기 자신을 추하다거나 결점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10. 모든일을 하려면 완벽하게 하든지 아니면 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11. 우울증이 있다.
12. 거짓말을 잘한다.
13. 끓임없이 일하거나 먹거나 물건을 사들이거나 술을 마신다.
14. 남에게 무조건 의존하거나 혹은 절대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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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리스트에서 'Shame'이 몇개나 해당되는가. 만약 해당이 없는 분은 천국에 적합하지 이 세상에 적합한 분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누구나 'Shame'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람은 특히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사람은 안따라가면 튄다고 욕을 먹는다. 한국식당에서 다르게 음식을 3개 시키니 주인이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문화에서 살아왔다. 목회자는 더 많이 느낀다. 목회자에 대한 기대가 보통사람에 대한 기대보다 높다. 주님도 하기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기대한다. 주님도 화내셨는데, 우리에게 절대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 누구나 'Shame'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으면 살 것인가, 아니면 'Shame'은 내버려두고 자유롭게 하나님이 창조하신대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라.

왜 우리에게 'Shame'이 생겼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과 교리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해석들이 잘못된 것들이 있다. 그래서 'Shame'을 가진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무조건적인 희생"이다. 여러분중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분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된다. 희생은 필요할때 해야지 무조건 하라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해 생각을 정립해야 한다. "죽기까지 참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도 불쑥하고 나는 왜 이런가 'Shame'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도 참지 않아야 할 것을 참지 못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기도하면서 "벌레만도 못한 우리"라고 한다. 우리는 벌레보다 낫다. 말이 씨가 된다. 자꾸 벌레보다 못한 나라고 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그런말을 하지말라. 세뇌가 무섭다. 공공연하게 당연하게 그런 말을 쓰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Shame'에 영향을 받게끔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학이 아직도 이런것이 있다. 부흥회를 했다. 외국 선교사님이 그 부흥회에 방문하여 교인들이 울며 기도하자 왜 그런가 물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가슴아파서 운다고 하자 이해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울었다. 우리의 죄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흘째도 그러자 선교사가 '한국에서는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안배웠나요' 라고 물었다. 가슴을 치며 통회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한다. 어느 아버지가 자녀가 항상 가슴치고 울며 사는 것을 원할것인가. 아버지는 잘못했다고만 하지말고 행복하게 새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무조건적인 희생, 죽기까지 참는 것은 다 실패한다.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원하시는가. 우리가 실패하고 슬프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실패했구나 힘들지. 고생했다. 괜찮아. 내가 알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것을 목회자들이 알고 교인들에게도 전해주어야 한다.

'Shame'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정의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알기는 하는데 말썽부리는 교인이나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한다. 남편이 20여년간 목회한 사람들이 이것밖에 안되면 목회실패라고 속상해 한다. 내가 문제 교인의 이름을 세라고 하니 10명이다. 수백명의 교인중에 열명때문에 속상하고 실패했다고 하면 안된다. 예수님때도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도 목회에 성공하셨는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미 정의하셨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다.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 최고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시고 'Shame'도 없었다. 원래는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Shame'이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불순종의 죄를 지었다. 뱀이 와서 하와를 유혹한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불순종의 죄를 지었다. 그런데 이미 하와의 상태는 하나님과 같이 된 상태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뱀이 와서 이것을 먹어야 하나님같이 된다고 할때 '나는 하나님같이 창조된 사람'이라고 하며 뱀을 쫓아버렸어야 했다. 그런데 안쫓아버리고 죄를 지었다.

자신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자기가 누군지를 착각하면 죄를 짓는다. 정체성의 문제이다. 원죄의 원인이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월트만 신학자는 '교만'이 아니라 '불신'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해 주신것을 못믿는 것이 불신이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못믿는 불신이다. 하나님이 자기모습대로 창조했는데 못믿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하와의 범죄행위는 정체상의 문제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잘못알게 되면 넘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잘하느냐. 하나님에게 물어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와가 자신이 있었다면 스스로 잘알았다면 안넘어갔을 것이다. 스스로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우리도 벌레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면 넘어간다. 우리도 부족한것만 생각하면 넘어간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니 채우려다 보면 무리한다. 세상적인 것으로 채우려 한다. 그 죄를 지은 결과 때문에 수치를 느끼지 않고 하나님답게 사는 축복을 놓치고 만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이 정체성인가 아니면 타락한 모습이 정체성인가. 본래의 모습이 정체성이다. 타락한 모습은 죄의 결과이다. 타락한대로 벌을 받은대로 산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깨진다. 본래의 모습대로 사는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것은 정체성의 변화가 아니라 회복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닌 어떤것으로 변화하려면 어렵고 불가능할수도 있다. 하지만 본래 우리가 가진것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러운 것은 닦아 내면 된다. 세상에서는 어떻게 변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려고 하면 하와같이 죄를 짓고 유혹에 빠진다. 원래 모습을 회복하면 된다.

'Becoming'이 아니라 'Being'이다. 'Becoming'은 끓임없이 더하게 되고 자기가 가진것을 불만하게 되고 공허하고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사탄이 우리들에게 노리는 것이다. 절대로 그 것에 빠지면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마틴루터도 'We are Good'이라고 했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므로 선한 행위를 할수 있다. 선한 행위를 해야 선한사람이 된다면 아무도 할수가 없다. 선하게 만들어 주신것을 믿고 살면 선한것을 할수 있게 된다. 존재가 먼저이다. 콩심는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믿으시기 바란다. 어느 누가 아니라 해도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존재와 행위중에서 존재가 더 중요하다. 'Being'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고 살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행위로는 불가능하다. 사도 바울은 'Being'을 믿었다. 바울의 사역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할수 없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믿으면 이루어지는데 안믿으면 사탄의 유혹에 빠질수 밖에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었다. 칭의를 받았다. 잘못을 탕감하여 주셨다.

로마에 소문이 났다. 어느 수녀가 하나님을 자꾸 본다는 것이다. 교황에게 부탁하여 진짜 하나님을 보았는지 판정을 부탁했다. 교황이 수녀를 만나 인터뷰하는데 수녀는 자기도 하나님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교황이 지혜를 냈다. 사람만 모르고 하나님이 아는 죄가 있는지를 물으라고 했다. 얼마후 수녀가 와 "하나님은 기억을 못하신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이다. 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데 우리가 바보같이 못받아들인다. 진리를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진리를 가르켜 주시려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잘못된것에 억눌려 살지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말고, 우리도 기억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헨리 나우헨은 "자유케 된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산다. 시간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제 못했던 일도 오늘하고 어제 잘못한 것도 오늘 고칠수 있다"고 했다. 얻은 자유로 기쁨을 선택한다. 푹풍우가 와도 해는 있다. 흐린것을 알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기쁨은 반드시 있다. 자유로운 것을 가지고 기쁨을 선택한다. 자유롭게 된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산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희망을 가진다. 성공하는데 얼마나 가야 성공인가. 점점 더 성공하고 싶어한다. 하면 더 할려고 하기에 사실은 성공이라는 것에도 기쁨이 없다. 진정한 성공은 기쁘게 사는것이다. 고통과 아픔이 삶에 있어도 두려워 하지 않고 껴안으면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을수 없다. 실패가운데 기쁨을 찾으며 누리며 사는것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주의종이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

목회자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이것의 답은 누가복음 1장 38절 마리아의 고백에서 찾았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의 결과가 좋은 것을 알므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마리아는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몰랐다. 그 결론이 자신의 죽음이나 패가망신이 될수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리아가 이러한 이야기를 할수 있었을까?

마리아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나는 주의 종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만약 마리아가 아이를 낳으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수도 있었을텐데 여러가지 다 생각하면 어떻게 예수님을 낳을수 있었겠는가. 마리아는 "나는 주의 종이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대로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들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가 중요하다. 정체성은 세미나에 있을때만 알면 별 도움이 안된다. 평소에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루만 따져도 많은 결정을 한다. 그 결정은 평소가진 생각에 근거하여 한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으로 되드는가 결정이 되고 미래가 결정된다. 정체성 그리고 가지고 있는 생각 또 그것에 의한 결정들 그리고 결과는 다 연결된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좌우된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 별볼일없는 결정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작은 결정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룬다.

평소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평소에 자기를 누구의 것이라고 생가하고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삶을 모든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누구인가는 전적으로 우리를 만드신 분에게 달려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그 분의 뜻과 계획에 달려있다. 그렇게 살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분의 은혜에 달려있다. 주의 종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 삶의 이유이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우리 삶의 목표이자 결론이다.

그런데 종이 너무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 주인이 곤란하고 불편하다. 종이 자기 계획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이것도 곤란하고 도움이 안된다. 특히 리더십 세미나에 가면 우리에게 분명한 비전을 가지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직장 인터뷰에서 이런것을 물어보고 그런것이 없다고 하면 떨어진다.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고 그래야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주의 종이라는 분명한 자기파악, 그리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확고한 의지가 아니라 확고한 믿음이다. 이 두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이끄시고 하나님이 결론내어 주신다.

나는 대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목사감이 아니었다. 학교다닐때 유명한 애들이 많이 나왔는데 나는 전혀 유명하지 않았다. 친구 하나가 고등학교 다닐때 부터 교수되려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고 교수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는데 나도 몰라서 대답하기 힘들어하는데 친구 하나가 "우리는 우리 계획대로 된 것이고, 제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것인가 봐"라고 했는데 명답이다. 나는 계획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에 처음 올때 오늘의 내가 된것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내 바램은 접시닦아 남편을 공부시켜 한국돌아가 남편이 교수되거나 목회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 어떻게 살다보니 남편은 박사하려고 왔는데 아직도 안되었는데 내가 목회학 박사가 되었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꿈도 안꾸었던 것이다. 만일 20여년전에 미국에 와서 미국 신학교에서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했다면 기가 질려서 다 포기했을 것이다.

나는 믿는 배경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사람을 사용하여 일을 하실까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게서는 나같은 사람도 들어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이실려 하는 것 같다. 이 사람도 이만큼 하면 너희는 더 많이 할수 있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 나를 들어서 사용하신다.

위스콘신에 이런 실화가 있다. 운전하다 가다가 길을 잊어버려 농가에 들어가 농부에게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농부는 "너는 길을 잃지 않았다. 내가 너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아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 우리는 어디로 갈지몰라 갑갑해 해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시기에 하나님은 안갑갑하시다.

해야 할 일이 안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려면 안보이고 잘안될때가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이미 하고 있다. 그런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다보면 일은 반드시 있다. 하나님의 세상에, 하나님의 회사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다. 굳이 남이 하는 일을 따라하려고 하지말고 내가 필요한 일을 찾아서하면 일을 얼마든지 할수 있다. 우리손에 들고 있는 지도와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을 잡으라. 그러면 꿈도 꾸지 못했던 곳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하실것이다.

우리의 계획도, 우리의 가정도, 그 결과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우리의 약함도, 우리의 두려움도, 우리의 자랑도, 우리의 강함도 하나님에 맡기십시다. 주의 종이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 이것이 우리의 평소의 생각이고 매순간의 고백이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목표가 되고 모든 결정의 근거가 되고 그리고 마지막 호흡을 내실때 우리의 결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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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신경림 목사

학력

1976 감리교 신학대학교 졸업
1988 개렛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1993 웨슬리 신학대학원,목회학 박사
1999 하버드 대학교 MLE 과정 수료
2005 미 연합감리교 영성 아카데미 2년 과정 수료

경력

1988-1990 메모리얼 미연합감리교회 담임
1991-1995 웨슬리 신학대학원 공동체 담당 학장
1995-현재 웨슬리 신학대학원 부총장
1999-2003 워싱턴 정신대 문제 대책 위원회 이사장
1995-현재 웨슬리 신학대학원 및 여러 신학교에서 강의
1990-현재 워싱톤감리교회(이승우 목사)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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