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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목사 "대형교회 청빙을 두번이나 거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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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2-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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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예수사랑교회(정철웅 목사)는 4월 27일(금)부터 3일간 김용훈 목사(버지니아 열린문장로교회)을 초청하여 새봄 말씀축제를 열었다. 김 목사는 마지막날 리더십 세미나를 인도했다. 다음은 긴 여운을 남기는 세미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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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김용훈 목사

부름받아 쓰임받는 것은 참 축복인데 참 쉽지 않다.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목사가 주일에 넥타이를 두개 매고 강대상에 올랐다. 하나는 밝은 색, 하나는 진한 색 넥타이이다. 교인들이 혼란스러워 했고 예배후 물어보니 목사가 밝은 넥타이를 매면 밝다고 뭐라고 하고 어두운 낵타이를 매면 어둡다고 해서 아무리해도 만족을 시킬수 없어 두개를 다 매고 왔다고 대답했다. 부름받고 쓰임받는 것이 굉장히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어렵다.

우리 교회에 오는 분중에는 불신자도 있지만 예수믿다가 상처받고 오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처음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나를 가만 내 버려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전교회에서 섬기다가 상처받고 여기와서 말씀받고 회복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회복되지 않고 섬김의 자리에 서면 사람을 살리지 않고 사람을 숨막히게 할수 있다. 부름받아 쓰임받는다는 것은 너무 힘들어 사람들이 피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택하고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쓰임을 받을때 누리는 말할수 없는 축복이 있다. 세상에서도 귀한 것 치고 희생안하고 수고없는 것이 없다. 부름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원리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구약성경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언약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아 웃사라는 사람이 즉사하니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지만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언약궤를 가져와서 석달동안 오벧에돔의 집에다 두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집안에 복을 주셨다고 나온다. 교회를 섬기면서 그런것을 많이 본다. 어떤때는 우리는 좀 단기간에 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세대를 지나면서 성실하게 신실하게 섬겼던 종들을 갚는다. 주위에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신학교 다닐때 미국에 유명한 목사 자녀들과 같이 공부를 했다. 그때 믿음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보고 자란다는 것이 이렇게 큰 축복이구나 하는것을 깨닫았다. 나는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아버지와 같은 때 예수를 믿었다. 부름을 받고 신학교에 가서 그것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친구는 2-3대 목사집안이라는데 저의 아버지는 이제 집사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보고 자란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목회를 할수 있을까요"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 탁월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우리의 연약함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오히려 내가 많이 가지고 강하고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많기에 사용하시지 않을때가 많다.

부름받아 쓰여보지 못한 사람이 누릴수 없는 축복이 있다. 확실한 것은 부름받고 쓰인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막중한 책임이 따라온다. 성경에는 부름받아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쓰임받는 것에 대한 격려도 있지만 경고의 말씀도 꽤나 많다. 누가복음 12장 48절을 보면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나온다. 야고보서 3장 1절에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라고 나온다.

사실 교회에서 목사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섬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 목사에게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4시반에 일어나 아내와 아침먹고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온다. 많은 시간을 일하기에 시간당 받는 돈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통계도 있다. 리더로서 심긴다는 것은 물론 많이 섬겨야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교회집사와 나를 비교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기대하신다. 교회에서 섬기는 것을 장로가 집사와 비교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신다.

부름이 축복되려면 목적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부름이란 축복과 함께 책임이 같이 온다. 부름이 축복이 되기위해 섬기면서 잊기 쉬운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름이 축복되려면 목적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 사역의 목적이 무엇인가. 목적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자꾸 잊어버리니 문제이다. 목적은 주님이 높으심을 받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칫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나도 높아지고 주님도 높아지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라는 식이다.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주님이 높아지고 나는 낮아지는 것이다. 나도 덩달아 높아지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2장 4절에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라고 나온다. 자기를 부르신 그분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목표가 확실해 지면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을 극복할수 있게 된다.

부름을 받은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은 자기과시이다. 자꾸 내가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이 사용하는 교회가 되려면 자꾸 내려놓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아니면 쓰임받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 물은 흘러야 신선한 물이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위치에서 다음 위치로 흘러지지 않으면 고이게 된다.

일년에 한번 바자회를 하는데 한번은 웃지 못할일이 일어났다. 바자회를 준비하며 다툼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김밥을 어떻게 싸야 하는가 이다. 김밥을 쌀때 밥의 양이 얼마나 되어야 하고 안에 들어가야 할 내용물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를 놓고 싸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꼭 정석이 아니어도 되는 것을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부탁했다. 꼭 내식대로 해야한다고 하면 안된다. 나도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가끔 듣지만 자기가 너무 강하기에 열심은 하지만 옆의 사람은 다 쓰러진다.

우리 교회에서 아름다운 일이 한번 있었다. 성경에 사도행전때 보고 처음 본다. 교회역사상 별로 없는 일이다. 우리교회에 영어권 교회가 있는데 장년이 7-800명이 모인다. 대학생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젊은 전문인들이 주로 모인다. 영어권 교회에서 10년을 섬긴 담임목사가 나를 찾아와 부목사와 담임목사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성경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그랬다. 바나바가 바울을 발굴하고 어떤 싯점에 보니 '바나바와 바울'에서 '바울과 바나바'로 이름의 순서가 바뀐다. 이름이 바뀐 것은 누가 리더인가를 말해준다.

영어권 담임목사가 와서 담임목사를 바꾸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일반적으로 리더십 교체는 문제가 없을때는 안하는 것이다. 한참 교회가 부흥하는데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은 교인들을 돌보는 은사가 있는데. 밑에 있는 부목사는 비저너리이며, 지금 교회가 필요한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 아니라 강력하게 다음 단계로 끌고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부목사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당회가 그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5년전에 담임목사를 교체했으며 영어권 교회가 건강하게 잘 자란다. 그리고 그 영어권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다. 리더십은 꽉 잡고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통로가 되면 안된다. 리더십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면 축복이 마음껏 흘러나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열린문교회의 오늘은 그런분들이 있어서 된 것이다. 33살때 교회에 부임해 보니 예배당의 좋은 자리에 연세가 많은 분들의 지정석이 있었다. 그래서 새교우가 오면 힘드니 흩어져서 앉아달라고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들어주었다.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왔다. 분포도를 보면 건강하지 않은 교회는 나이많은 분들이 많고 젊은이가 없는 역삼각형이다. 건강한 교회는 항아리 모습이다. 어른들이 있어야 교회가 안정되지만 중간층이 많아야 한다. 40-50대가 많고 그리고 20-30대 청년들도 있어야 한다. 우리교회도 처음에는 역삼각형인데 항아리로 변했다. 교인들이 내가 중심이 아니라 교회가 영혼을 살리고 주님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장소가 되기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희생하여 지금의 교회로 하게 되었다.

교회이름이 처음에는 '한인정통장로교회'였다. 그 이름은 그분에게는 의미있는 이름이었다. 워싱톤지구에서 가장 큰교회였다. 교회가 양적성장을 하는 가운데 담임목사가 신앙적 색채가 안맞는다면서 교회를 나와 신앙의 색채가 같은 사람들과 모여서 세운 교회이다. 교회이름을 보면 한마디로 한국 사람아니면 오지마라, 정통아니면 오지마라, 기독교인 아니면 오지마라, 기독교인 중에서도 장로교인 아니면 오지마라 라는 의미가 있다. 그 4가지가 안되면 그 교회에 못오는 것이다. 교인들이 이름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이름을 바꾸는데 부임하고 8년이 걸렸다. 그분들은 애착을 가지고 권리를 다포기하고 나온 분들이다.

부임하고 신앙생활을 같이 하면서 도전을 했다. 교회가 무엇때문에 존재하는가. 그 교회이름이 좋고 나쁨을 떠나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에게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는가. 장로들이 아들같은 목회자가 와서 주장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려놓음이 있을때 하나님이 물고를 터주시고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한인정통장로교회'에서 '열린문장로교회'로 극에서 극으로 간 것이다. 그 이름을 택할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때문이었다. 리더십에 있어 그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이것이 누가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인가.

어릴때 교회를 안다녀서 그렇지 저도 전도사 생활을 다합하면 30여년이 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30여년 정도되면 저도 보는게 있다. 어떤 목사님들은 다 자기과시를 한다. 죄송하지만 다 자기를 나타낸다. 목적을 상실한것이다. 무엇때문에 하나님이 그자리에 세웠는지 중요한 기본적인 목적을 잃어버린것이다. 섬기면서 그 질문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목적을 혼동하면 열심히 수고했지만 주님앞에 섰을때 꽝이다. 헛수고이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은 두려운 말씀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주의 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 열심히 했지만 수고는 수고대로 했지만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불법을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일을 한 것이다. 자기가 영광을 받은 것이다.

천국에 대한 조크가 많이 있다. 어느 목사가 천국에 갔다. 주님을 인터뷰하기위해 기다리는데 아는 집사님들이 앞에 있었다. 집사님이 주님앞에 가니 주님이 흥분해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집사를 허그했다. 목사는 집사가 왔는데 저정도이면 목사인 내가 가면 어떨까를 기대하면서 갔다. 그런데 주님이 가만히 앉아서 "너 왔니" 하셨다. 목사가 너무 섭섭하여 "주님, 집사가 왔는데 버선발로 뛰어나왔는데 목사가 왔는데 왜 안일어나십니까"라고 물었다. 주님은 "내가 일어나면 네가 내자리에 앉을까 봐 그렇다"고 했답니다.

웃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실 주님이 일어나지도 않는데 밀쳐내고 앉은 사건들이 교회안에 많이 있다. 목적을 상실하면 목적을 혼동하면 헛수고하게된다. 부름이라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고 있는가를 계속 점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는지 두가지 점검 시스템

첫째는 하나님의 결정을 최선으로 받아들일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이다. 주인이 종들의 능력을 알고 능력에 따라 각각 다르게 달란트를 주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기분이 안좋았을 것이다. 보기에는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다른 사람은 더많이 주고 자기는 왜 하나만 줄까 라고 불만을 가질수 있다.

교회안에서 그런 웃지 못한일이 많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겠다. 주님이 여러분을 평생 서리집사로 주를 섬기라면 기쁨으로 섬기겠는가. 주님이 결정하셨기에 최선이라고 받아들이고 똑같은 열정으로 장로로 피택은 안되었지만 같은 열정과 기쁨으로 섬길수 있겠는가. 이민교회가 많은 아픔을 당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저도 아이들까지 합하여 2백명이 채 안모일때 장로라면서 집사까지 30여명을 끌고 왔다. 주일 장년출석 150명인 교회에 30여명 새교우가 오면 대단한 것이다. 그날 그 장로님에게 전화해서 "우리교회에 내규가 있는데 타교회에서 임직을 받은 분이 오면 피선거권을 가지는데 7년이 걸리는데 괜찮으냐. 그렇다면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주부터 안나왔다. 그렇게 했기에 섬기는 교회에서 지난 20년동안 한번도 그런일때문에 아픔이 없었다. 저는 주위 동료들에게 그렇게 오면 받지말라고 말한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러 오겠다고 계급장 떼고 오는 사람은 받을수 있겠지만, 계급장을 달고와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목사들이 너도나도 받아주니 이민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하나님이 서리집사로 섬기는 것에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면 장로가 안되어도 같은 기쁨과 열정으로 할 수 있겠는가. 냉철하게 그것이 섬김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인가를 대변한다. 가치관이다.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누구를 섬기는가가 중요하다. 역할이 무엇인가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그 역할을 하는가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같은 비서라고 해도 작은 회사의 비서와 대통령의 비서는 같지 않다. 무엇이 다르게 하는가. 무엇을 섬기는 것인가가 다르게 한다. 여러분은 주님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부르시던 같은 열정으로 섬길수 있는가.

둘째는 사람들이 안알아주어도 하나님의 칭찬만으로 만족할수 있는가. 디모데후서를 보면 기독교인은 누구인가. 특히 부름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밝히는데 경주자의 비유가 나오고 군인의 비유가 나오고 뒤에는 2장 6절에는 농부의 비유가 나온다. 왜 사도 바울은 하나만 가지고도 설명할수 있었는데 3개나 비유를 사용했는가. 마지막 농부비유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라톤에서 골찌하는 사람에게도 박수를 쳐준다. 그러나 농부는 새벽일찍 나가 해가 질때 허리가 휘어 들어와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없다. 바울은 우리가 농부라고 말한다. 디모데 형제에게 우리가 농부임을 잊지 말자고 말할때 그 의미가 들어가 있다. 박수는 주님앞에 설때 받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박수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 유혹과 끓임없이 싸워야 한다. 한번 이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그런 경험을 했다.

2년전에 한국 대형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저는 10년전에 이민교회 대형교회에서 청빙이 왔을때 기도하면서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대형교회에서 청빙이 왔는데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 "주님, 사람이 이것밖에 안됩니다" 하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역할로 최선을 받았다고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섬길수 있는지 (떨리는 목소리) 그것이 내 섬김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인지를 가장 객관적으로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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