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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옥 목사 "여성에 대한 비성서적 사고 정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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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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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넷은 지난 1월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남침례 교단 신학교에서 30년동안 교수생활을 한 김경옥 교수의 강의내용의 소개했다.

김 교수의 강의내용중 "여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아담이 남성이라고 생각하면 큰일난다. 아담은 인류, 사람이다. 하나님은 생기를 넣어주신 아담 즉 사람을 보시고 혼자있는 것이 보기좋지 않으시니 공동체를 위해 이브라는 배우자를 만드셨는데 그때 비로서 남성과 여성이 구별된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안목에서 잘못 왜곡되게 해석할수도 있다"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남성 성도 또는 님성 목회자로 보이는 독자들이 이에 대해 비난적인 반응을 보였다. 몇가지 반응을 소개한다.

"여성목회자협의회에서 주관한 행사라 그분들을 향한 메세지라 해도 성경에 써 있는 진리를 이렇게 해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이브(여자)는 아담(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드셨다 말씀하십니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 2: 23)' 또,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딤전 2: 12-15절 참조)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자는 교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란 것이거나, 성경공부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닐테지요. 주관하는 자리 즉, 교회에서 총책임 리더격인 목사 안수를 받아서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까지는 탐하지 마라...그런 뜻일 텐데요."

"아무리 여성이 역사 이래로 피해자의 입장이라도, 손해 본 일이 많더라도... 명백한 성경의 진리를 이런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분쟁 중에 가난한 사람이 억울한 경우가 많다고,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편들어서는 안 되듯이... '진리'는 '정의'의 선제조건입니다."

"'우리가 아는 아담이 남성이라고 생각하면 큰일난다.' 이 말은 기독교 역사와 신학을 뒤집는 언급이다. '이브라는 배우자를 만드셨는데 그때 비로서 남성과 여성이 구별된것이다.' 이 말은 마치 아담이 남,녀 양성을 가진 존재처럼 말하는 것으로 매우 큰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

0303.jpg이에 대해 김금옥 목사(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초대회장 역임)은 이러한 반응들은 비신학적이며 성차별적인 댓글이라며 유감을 표하며 "누가 '돕는 이(helper)'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여성 목회자들의 입장을 소개했다. 다음은 기고글의 내용이다.

구약성경에서의 여성과 남성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창세기에는 "돕는 배필"이라는 구절이 두 번 나오는데 어떤 분들은 돕는 배필은 "여자는 남자를 돕는 사람 또는 조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본다.

아직까지도 많은 성경주석에서도 "남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태어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하신 고린도전서 11:8-9 의 말씀을 빗대어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돕는 자라는 것을 마치 전체 성서의 입장인 것 같이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린도전서 11:11)"와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린도전서 11:12)"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아직도 한인 기독교 공동체에 남아있는 가부장적 유교전통인 남존여비와 남성우월주의의 관점에서 창세기 2:18, 20에 나오는 말씀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을 격하시키는 해석을 감안하여 최근에 나온 RSV(Revised Standard Version)의 개정판인 NRSV(New RSV)는 이러한 창세기 2:18, 20의 해석을 감안하여 "파트너로서의 돕는 이"라고 토를 달아 번역을 하였다. 옥스포드 주석성경에는 "돕는 이(히, ezer, 에이제어, 돕는 배필)" 라고 하는 이 단어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종속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다"라고 주를 달아 이 성경이 여성의 위치를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고 있다.

여호와의 창조질서를 성서적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의 창조는 성경에 창세기 1장과 2장에 다른 방법으로 말해지고 있고 서로 다른 것 같으나 상호 보완적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닮은 사람 즉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영적 닮음 즉 인간의 본질과 속성에서 그 측면을 본 것으로 사물을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와 말, 눈, 귀, 마음을 주셨고 사람에게 분별력을 주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세계를 청지기로서 살펴볼 것이다. 남녀에게 같이 주어진 책임은 창조된 창조물의 안녕과 잘 돌보는 것, 지나치게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고,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창세기 1:26-28(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은 인간들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남녀모두에게 복을 주시고, 같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리와 책임을 명령 받았다. 이 명령은 남자와 여자에게 같이 부여되었는데 인간은 출산을 통해 번성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동시에 창조된,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부여한 "다스린다"는 명령에는 남자 또는 여자가 남자, 여자, 아이들을 다스린다 라는 말이 없다. 인간은 인간을 다스릴 수 없고, 다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청지기로서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리와 책임을 명령 받은 것뿐이다.

창세기 2장(2:4b-25)의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인간의 창조로부터 시작되는데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창조된 사람(아담, adam, human/ person)은 남성(male)을 의미하는 'ish(남자)'가 아니라 인간을 의미하는 'adam(인간, man/human)'이다.

2:7 And the Lord God(YHWH), God formed human/man(인간, adam) of the dust of the ground (히, adamah, soil 흙) and he blew into his nostril the breath of life, and the human(인간) became a living being/soul.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땅(soilground)에 대한 인간(man/human)의 관계는 'humus(히, adamah 흙 soil)'에서 첫번째 '인간(히, adam 아담)'을 창조하였다. 'adam (히,아담, 인간)'은 'adamah(히, 아다마, 흙)'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서 'adam(인간)'은 23절에서 남녀의 성별이 구별되면서 처음으로 '남자(iysh)'와 '여자(ishshah)'를 의미하는 단어가 동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성별로 남자인, 그의 이름이 아담인 아담에게서 여자가 창조되었다는 말은 잘못된 해석이고, 히브리어로 말하여지는 '아담(adam)'은 인간이라는 뜻이지 남성이라는 의미도 아담이라는 남자의 퍼스트 네임인 이름이 아니다. 창조된 여자는 아담(인간)에게로 데려갔으나 아담이라는 남자에게 데려간 것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
22절: YHWH, God, built the rib that he had taken from the human(adam),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human(히, adam 아담). (The Schocken Bible: volume #1: 모세오경)
22절 – And the rib, which the Lord God has taken from man(Adam 아담, 인간), made he a woman, and brought her unto the man (히, adam 아담).

'adam(히, 아담, man 인간)'은 'adamah(히, 아다마, soil 흙)'으로 부터 창조된 피조물로서 인간 'adam(히, 아담)'은 23절에서 남녀성이 구별되면서 남자 'iysh(히, 이쉬)'와 여자 'ishshah(히, 이쉬샤)'를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시니라.
23: The human(person) said : This time, she(this- one) is it! Bone of my bones, flesh from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isha, for from Man/ish she was taken.(The schoken Bible: 모세오경)
23절 - And Adam(아담, 인간)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여자) hall be called Woman(히, 'shshah 여성 female), because she was taken out from Man(히, 'iysh, 남성 male).

동역자 관계인 여자와는 그러므로 인간의 갈빗대에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동등성이지 종속성을 암시하고 있지 않다. 남성은 자신을 "adam(아담, 인간)"에서 "여자(ishshah)" 에게 동역자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남자(ish)" 라고 다시 이름을 지음으로서 여자에게 자신이 동역자 관계임을 표현한다.(Harper Collins’s NRSB p.8). 성경은 여자와 남자와의 관계는 "동역자 관계" 일 뿐(alongside, corresponding to him) "종속적인 관계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2:18의 우리 말로 "돕는 이" 또는 "돕는 배필"이라고 번역된 이 말은 히브리 성경에서는 "돕는 이" 또는 "도움(help, helper)"이라는 뜻의 'EZER(히, 에이제어)'로서 한 단어로 된 명사이다. 이 "돕는 이" 라는 뜻의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20번 나오는데 다음의 구절들 (창2;18, 창2:20, 출18:4, 신33:7, 신33:26, 신33:29, 시20:2, 시33:20, 시70:5, 시115:9, 시115:10, 시115:11, 시121:1, 시121:2, 시124:8, 시146:5, 사30:5, 겔12:14, 단11:34, 호13:9)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이 말하는 에이제어(돕는 배필, 돕는 이)의 예를 몇 곳에서 보자.
"여수분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널 도우시려고 (에이제어가 되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도다 (신33:7)";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네게 돕는 이, 에이제어를 보내주시며)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고 (시20: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나의 에이제어)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마소서 (시70:5)";
"우리의 도움(에이제어)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로다 (시124:8)".

이 구절을 읽어 보면 창세기 18, 20 외에 이사야, 다니엘, 에스겔을 제외한 15곳은 모두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도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꼭 주셔야만 하는 도움을 쓸 때 '에이제어'를 사용한다. 다른 곳에서는 '에이제어'가 없는 이는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의미도 갖고 있다(사30:5, 겔12;14, 단11:34). 그러므로 구약에서 '에이제어'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도우심, 이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도움을 뜻한다. 이 말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속한다는 종속의 의미, 조수의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히브리인들은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돕는, 돕는자" 라는 말에는 전에도 말했지만 그 의미는 "적합한 도움을 주는 자"라는 뜻으로 남자를 돕는 여자의 위치로서의 돕는 자, 돕는 배필이라는 전통적인 이해와는 달리 창조질서에 나타난 남녀의 관계성은 어떤 사람은 주된 존재, 상대편은 이차적, 보조적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도와준 것 같은 "적극적으로, 필수적으로 뛰어난 돕는 도움"을 뜻하며 거기에는 양편의 대등(동등)성과 상호성의 의미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으며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하나님의 도움같이"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이고 절대적이며 필수적인 도움을 주는 동반자의 관계를 말한다. .

2:18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I will make him a helper(돕는 이, 에이제어) corresponding to him
2:20 아담이 그를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but for the human there could be found no helper(돕는 이, 에이제어) corresponding to him.(The Schocken Bible:모세오경 vol.1))

"배필, kenegdo" 는 그 의미가 짝을 맞출 때 두 편이 꼭 맞는다는 말로 두 편의 대등성과 상호성의 의미가 강하게 암시되는 단어이다. 즉 "돕는 배필(ezer kenegdo)"이라는 말은 전통적 이해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창조질서에서 남녀의 관계성은 주된 존재와 보조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성과 상호성의 관계를 나타내며, 소극적이 아닌 하나님의 도움같이 적극적 필수적 도움을 주는 동반자, 파트너쉽 관계이다. 돕는 배필이라는 오해를 산 이유는 해석상으로 적합한, 알맞은 보조자 내지 내조자의 의미로 해석되어왔기 때문이다. 참된 인간관계는 누가복음 6:31이 말하듯 서로 대접하는 관계, 상호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2:18, 20 에서 이러한 독특한 뜻이 담긴 'ezer(에이제어)'라는 말을 쓴 것은 예외라기 보다 이 단어를 통하여 하나님이 "돕는 이"로 만든 이브는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하여 주는, 그 도움이 없이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관계를 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기자가 소개한 여성은 종속이 위치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같은 도움을 실현시키는 존재로서 이다.

이 창세기의 말씀도 가부장적 문화로 여겨지는 구약성경의 문화와 일치된 것으로 인식되어 여성의 위치는 남성의 위치만 못한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것으로 격하하는 것은 성서에 기초한 가르침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의 여성과 남성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남성 제자만 둔 것이 아니다. 여성 제자도 두셨는데 여성 제자를 두는 것은 그 당시에 전무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복음의 경우는 여성의 처지에 대하여 특별한 목자의 심정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바울의 글에서도 그의 초기 편지를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라고 나온다. 이러한 이 위대한 선언이 담겨있는 편지가 쓰여진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은 같이 밥도 안 먹는 사이였고, 당시 인구의 2/3가 종으로 주종관계가 사회의 현실이었고, 남자와 여자 사이가 유별한 시대였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결혼식 때마다 신부나 특히 여성하객들의 얼굴을 찡그리고 불쾌하게 만드는 에베소서 5:22-33을 읽어보면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함으로 마치 부부의 관계가 주종관계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 5:25)"는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할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성에게 남편을 향한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죽기까지가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주의 백성을 위하여 죽으셨던 것 같이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갈 3:28; 고전 12장-14장; 엡 5;21),에서 부부로서의 남녀의 역할은 외부에 나타난 남성, 여성으로(male or female sex)의 성적 특징이나, 생식능력, 또는 종교적, 문화적, 혹은 사회적 성별에 따른 역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남녀각자에게 주어진 제자직과 성령의 은사에 의한 것이다. 또 그리스도안에서의 남녀의 관계는 가부장적 관계가 아니라 은사중심, 제자직 중심의 관계이다.

그런데 에베소서 5:22-33절 바로 앞에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성경 RSV (1946-), NEB(1961NT), Le Nouveau Testament… de 1 'Ecole Biblique de Jerusalem (1958), Le Nouveau Testament, Traduction de Louis Segond (Nouvelle Revision 1962)에 보면 21절은 22-33절과 함께 읽게 되었다. 그러므로 21절부터 읽으면 여지는 복종만 하고 남자는 사랑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복종하는 관계 속에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이 된다.

에베소서 5장 22절의 동사 "복종하라"는 희랍어 사본에는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절은 대부분의 희랍어 사본에서는 새로운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으나 21절의 "복종하라"가 이것을 지배하는 동사이다. 그러므로 (복종하라). 아내들이여(22절) (남편에게, 주께 하듯), 피차 "복종하라(21절) (경외함으로, 그리스도를)" 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리차드 크뢰거.캐더린 크뢰거 공저, 신혜수번역, "여성과 안수": 하나님께서 부르신 여장로, Justice for Women Committee, 여성목회부, 미국장로교, 1992 p.47 도표)

성경의 장(chapter)과 절(verse)의 구분은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장(chapter)수는 13세기 켄터베리 대주교가 되고 존 왕의 손에서 마그나카르타를 뺏은 일화로 유명한 Stephen Langton가 만들었고, 절(verse)는 16세기에 로버트 스테파누수(에티엔)가 "마상에서 (여행 중에?) 고안했다"고 전해짐으로 장이나 절에 매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종종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브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와 같은 디모데전서 2:11-14에 있는 말씀이 성경전체의 가르침인 것 같이 주장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른 성경보다도 쓰여진 연대로 후에 포함되었다.

남존여비의 유교전통의 영향과 여성

여성 목회자를 목사로 안수하고, 교회의 담임목사로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여성목사를 설교자로 강단에 세우는 일에 대하여, 아직도 많은 교회나 교단이 여성목회자, 여성장로의 문제를 당면과제로 안고 있는 이유는 성서나 신학의 문제이기보다는 한국문화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여성에게 교회의 지도권을 주지 않고,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적인 입장도 아니고 오히려 남존여비의 유교전통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래 전 NYTS의 한진희 구약학 교수(프린스톤 M.Div, Ph.D)가 그의 글 "돕는 자"에서 쓴 내용이다.

"한국교회의 여성의 문제는 이만열 교수의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1980)"가 보여주는 대로 한국 기독교가 구한말 한국여성의 정당한 위치를 위하여 싸워 공헌한 바를 생각하면 교회가 여성을 격하시키고 정당한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복음 안에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으로 돌아가는 "조상의 망령된 행실"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서재필씨의 1897년 12월 31일에 서울의 정동예배당에서 있었던 연설이다. "구라파 각국에서는 남녀를 같은 학문으로 교육시키고 남녀를 동등권을 준 것은 이미 몇 백 년 전에 작정한 일인고로 국부 민강하여 복음이 장원 한지라, 대한인민도 남녀를 같은 학문으로 교육하고 동등권을 두어 전국이 복음을 누리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도 이 여성 문제에 임하여 하나님은 여성을 누구의 조수로 만든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축복의 특별한 복음의 전달자로 부르신 것을 기억하고 또 여성의 교회지도자로서의 위치는 현대문화를 따르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말씀의 가르침이고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역사인 것을 기억하자."

가부장적이고 남녀 성차별인 유교의 가르침은 여성은 자기를 희생하고 남편인 남성을 도와주는 것으로 그가 세상에 나가 성공하도록 힘을 다하는 것이고 그 후에는 성공한 그의 부인으로 부부가 같이 그의 옆에 서서 남편의 위치나 지위에 걸맞게 대우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뜻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남녀 성차별의 불평등한 남녀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동등하고 같이 함께 짐을 지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종속의 관계가 아니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유교문화의 남존여비와 남녀 성차별제도는 한인여성들이 쓰여지지 않은 지식과 은사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야에서 사장되고 소외되었다. 과거 수백년 동안 그들이 가진 그 많은 재능들이 여성이라는 한가지 이유로 숨겨지고 꽃피지 못했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남녀 성차별적인 성경해석과 그에 대한 차별, 제약이나 억압의 경험은 여성 목회자들이나 교회 안과 밖의 한인여성들에게 '한(恨)'을 경험하고 '한(恨)'을 품게 만들었다. 이제는 '한(恨)'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여성들에게 국한하지는 않지만 억압, 차별 강요된 순종과 이에 따른 좌절감과 분노를 가진 사람들을 말할 때 "한을 가졌다", "한을 품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속병, 화병으로 발전하는데 아직도 오늘을 사는 여성들에게 속병, 화병이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한국에서 여성이 대통령 선거에서 52%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미국에는 여성 국무장관 3명이 1980년대부터 금년까지 연속으로 20년간을 국가에 봉사하였는데 클린턴 대통령 당시 알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키신저 국무장관 다음으로 유능하고 훌륭한 장관이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한인여성 변호사, 신학교에 여성 신학생들이 거의 절반이다. 본인이 소속한 미국장로교 뉴욕시노회는 많은 여성들이 목사(teaching elder) 또는 장로(ruling elder)로서 회장, 여러 위원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목사후보생, 목사로서 콜링을 받고 목사안수를 기다리는 여성목회자들이 많다.

1982년도 신학연구와 시찰을 위해 미국에 있었던 연세대 구약과 교수이며 감리교 목사였던 김찬국 박사가 쓴 글 중 일부이다. "신학교 마다 다르겠지만 여성의 수가 거의 절반으로 육박하고 있으며", "성서해설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남자우위의 의식구조와 사회구조 속에서 편협된 여성관으로 배워왔던 지난 날의 남성중심의 성서해석의 약점을 시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에 여성신학자들이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다시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부성과 모성의 양면성을 함께 부각시켜주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21세기의 한인교계는 다양성, 포괄성, 평등성의 세계, 상호협력과 상호보완의 인간관계여야 한다. 여성에 대한 모든 비합법적이고 비성서적이었던 사고방식은 정정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남녀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변화되어야 한다. 주님의 지체를 구성하는 지체로서 어느 한 지체가 아프면 몸의 전체가 다 같이 아프다. 다른 한 지체가 찔려 피가 나고 아픈데 몸의 다른 지체는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의 어느 하나가 아프면 다른 곳들도 아프고, 당연히 아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모른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모든 남녀 목회자들은 주님의 지체의 한 부분들이다. 이제는 주의 다른 지체들이 아프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김금옥 목사
정신과 전문의, 에버그린장로교회 담임목사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초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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