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담임목회한 송병기 목사가 회개설교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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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05-15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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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대뉴욕복음화대회 2차 준비기도회가 5월 14일(화) 뉴욕초대교회에서 열렸다. 송병기 목사(뉴욕목양장로교회)는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본문으로 "제자삼는 목회'라는 제목의 말씀을 부흥회 강단에 선 것 처럼 열정적으로 전해 감동을 주었다.
얼마전 목양교회 30주년을 맞이한 송 목사는 설교를 통해 목회의 최대과제는 제자삼는 것인데, 교회성장에 열심이었지만 교인들을 제자삼는 것에 소흘한 지난 목회를 회개했다. 또 성령의 능력을 강조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남의 이야기는 감동이 없다. 자신의 경험과 각오를 혼신을 다해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송병기 목사
예수님은 부활하신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일이 바로 제자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목회의 최대과제는 제자를 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오해가 없어야 한다. 교회를 사업적인 면에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건물을 크게 올려 예배당을 세웠다고 훌륭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봉사하고, 구제하고, 사회정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다. 교회와 교인들은 자선단체도 아니고 정치집단도 아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교회의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 교회는 구제사업도 해야 하고, 예배도 드려야 하고, 선교도 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목표는 제자삼는데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회의 목표가 지금 어디에 있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성장 목표를 세우고, 새벽기도, 총동원 계획을 세우고, 헌금 목표액도 세우고, 건축계획도 세우는데 열심이었지만 교인들을 제자삼는 목표는 세우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제자 삼는다는 것은 가르치고 전수받은 것을 다시 가르칠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제자라고 한다. 내가 나의 삶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교육이 일어나야 한다.
제자삼는 것이 교회의 핵심가치인 것을 깨닫고 세례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지금까지 교회에 다녔으니 세례를 주자고 하면 적당히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예수 영접모임을 하면서 세례공부를 철저히 시켰다. 숙제도 시키고, 시험도 치고, 간증도 하게 했다. 그 때 간증을 들으면 공부한 새신자가 그동안 공부하지 않은 집사보다 훨씬 신앙지식이 정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세례는 중요하다.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첫 원리가 세례라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해야 한다. 설교만을 가지고 교인은 되어도 제자는 안된다. 설교는 신앙을 유지시키지만 교육은 제자를 삼아준다.
지금까지 나의 목회를 반성해 보면 나는 목회를 교인을 모으는데 힘썼지만 교인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즉 교인들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목사 자신이 주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 후에 발견할수 있는 것은 목사나 교인들은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쉽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 중에 예수닮기를 원하고 거기에 목표를 걸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라. 만일 목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과 함께 일생동안 싸우고 괴로워하며 목회한다고 상상해 보라. 만일 우리가 천국에 갔을때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내서 기도해주고 심방해주고 돌 본 사람들이 천국에 안들어 온다면 나는 일생동안 헛수고를 한 것이다.
모든 생산품에는 합격품이 있고 불량품이 있는데, 불량품은 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교인이라는 합격품 생산에 대해 전혀 비전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내 교인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세례를 주고, 적당히 집사 직분을 주고, 적당히 장로를 세웠다. 순종하고 목자를 잘받들고 헌금을 많이 하면 좋은 교인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루시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는 것이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비전이셨다. 제자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전송되었고 오늘날까지 교회의 신앙이 된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당시에 그토록 따르고 열광하는 무리들과 함께 지내시고 기적이나 보여주고, 구제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사건으로 우리에게 전송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제자들에게 전 사역을 투자하신 것이다. 제자가 없이는 예수님은 없다. 예수님은 다른 일보다 제자들과 보내시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제자되는 자 만이 주님과 진실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을 세우시고 가르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다. 우리처럼 선교센터를 세우고, 장로와 권사를 세우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삼는 일에 생명을 거셨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최대 과제는 제자삼는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3년동안 활동하실때 에수님의 뒤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다.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따랐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을 모이는 큰교회를 세워 교회성장을 과시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소수의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우게 하시어 오늘날 교회의 모형을 이루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제자가 되지 않고는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큰교회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는 눈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몇명이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저는 오랜 세월 부끄러운 목회를 해 왔다. 그것은 교인들에 대한 비전이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교인이 전도하여 등록하면 심방하고,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채 죽을때까지 데리고 있는 목회였다. 이것을 깊이 회개하고 반성한 이후에 교인이 등록하면 한 인간에 대한 양육계획을 세웠다. 설교는 순간순간 감동받으면 된다. 그러나 교육은 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라!
본문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것은 제자삼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의 본질을 오해하며 목회를 했다. 교회성장에 목표를 두고 새벽기도, 총동원 주일, 교회건축등 부수적인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내 역량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목표와는 상관없었다.
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시키지 못함을 요즈음 깊이 반성한다. 제자는 배울뿐만 아니라 배운것을 전수시키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이다. 섬기러 오신 많은 사람들에게 대속물로 오신 예수님을 배워야 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귀신을 쫓으며, 병을 고치고, 천국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놓쳐 버렸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성령은 어느 한 교파에 해당하는 소유물로 알았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따라갈 힘을 얻는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그리스도인이 된다. 겉은 똑 같아도 다르다. 성령께서 안계시면 행할수 있는 능력이 없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동안 교인들을 모으는데만 힘을 썼다. 제자를 만들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세계인류의 구원을 이루는데 기여를 못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지 못했는가. 난 전통교회에서 자랐기에 성령을 받으면 큰일나는줄 알았다. 성령받으면 이단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힘이 있고 행할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다. 아볼로 처럼 성경에 능통하나 사람을 바꿀수 있는 능력인 성령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인들을 도덕적인 사람을 만들었을뿐 그리스도인은 만들지 못했다. 회개한다. 목사는 교인들을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얼마전 목양교회 30주년을 맞이한 송 목사는 설교를 통해 목회의 최대과제는 제자삼는 것인데, 교회성장에 열심이었지만 교인들을 제자삼는 것에 소흘한 지난 목회를 회개했다. 또 성령의 능력을 강조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남의 이야기는 감동이 없다. 자신의 경험과 각오를 혼신을 다해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송병기 목사
예수님은 부활하신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일이 바로 제자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목회의 최대과제는 제자를 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오해가 없어야 한다. 교회를 사업적인 면에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건물을 크게 올려 예배당을 세웠다고 훌륭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봉사하고, 구제하고, 사회정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다. 교회와 교인들은 자선단체도 아니고 정치집단도 아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교회의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 교회는 구제사업도 해야 하고, 예배도 드려야 하고, 선교도 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목표는 제자삼는데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회의 목표가 지금 어디에 있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성장 목표를 세우고, 새벽기도, 총동원 계획을 세우고, 헌금 목표액도 세우고, 건축계획도 세우는데 열심이었지만 교인들을 제자삼는 목표는 세우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제자 삼는다는 것은 가르치고 전수받은 것을 다시 가르칠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제자라고 한다. 내가 나의 삶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교육이 일어나야 한다.
제자삼는 것이 교회의 핵심가치인 것을 깨닫고 세례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지금까지 교회에 다녔으니 세례를 주자고 하면 적당히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예수 영접모임을 하면서 세례공부를 철저히 시켰다. 숙제도 시키고, 시험도 치고, 간증도 하게 했다. 그 때 간증을 들으면 공부한 새신자가 그동안 공부하지 않은 집사보다 훨씬 신앙지식이 정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세례는 중요하다.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첫 원리가 세례라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해야 한다. 설교만을 가지고 교인은 되어도 제자는 안된다. 설교는 신앙을 유지시키지만 교육은 제자를 삼아준다.
지금까지 나의 목회를 반성해 보면 나는 목회를 교인을 모으는데 힘썼지만 교인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즉 교인들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목사 자신이 주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 후에 발견할수 있는 것은 목사나 교인들은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쉽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 중에 예수닮기를 원하고 거기에 목표를 걸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라. 만일 목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과 함께 일생동안 싸우고 괴로워하며 목회한다고 상상해 보라. 만일 우리가 천국에 갔을때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내서 기도해주고 심방해주고 돌 본 사람들이 천국에 안들어 온다면 나는 일생동안 헛수고를 한 것이다.
모든 생산품에는 합격품이 있고 불량품이 있는데, 불량품은 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교인이라는 합격품 생산에 대해 전혀 비전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내 교인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세례를 주고, 적당히 집사 직분을 주고, 적당히 장로를 세웠다. 순종하고 목자를 잘받들고 헌금을 많이 하면 좋은 교인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루시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는 것이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비전이셨다. 제자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전송되었고 오늘날까지 교회의 신앙이 된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당시에 그토록 따르고 열광하는 무리들과 함께 지내시고 기적이나 보여주고, 구제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사건으로 우리에게 전송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제자들에게 전 사역을 투자하신 것이다. 제자가 없이는 예수님은 없다. 예수님은 다른 일보다 제자들과 보내시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제자되는 자 만이 주님과 진실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을 세우시고 가르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다. 우리처럼 선교센터를 세우고, 장로와 권사를 세우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삼는 일에 생명을 거셨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최대 과제는 제자삼는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3년동안 활동하실때 에수님의 뒤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다.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따랐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을 모이는 큰교회를 세워 교회성장을 과시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소수의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우게 하시어 오늘날 교회의 모형을 이루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제자가 되지 않고는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큰교회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는 눈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몇명이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저는 오랜 세월 부끄러운 목회를 해 왔다. 그것은 교인들에 대한 비전이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교인이 전도하여 등록하면 심방하고,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채 죽을때까지 데리고 있는 목회였다. 이것을 깊이 회개하고 반성한 이후에 교인이 등록하면 한 인간에 대한 양육계획을 세웠다. 설교는 순간순간 감동받으면 된다. 그러나 교육은 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라!
본문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것은 제자삼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의 본질을 오해하며 목회를 했다. 교회성장에 목표를 두고 새벽기도, 총동원 주일, 교회건축등 부수적인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내 역량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목표와는 상관없었다.
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시키지 못함을 요즈음 깊이 반성한다. 제자는 배울뿐만 아니라 배운것을 전수시키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이다. 섬기러 오신 많은 사람들에게 대속물로 오신 예수님을 배워야 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귀신을 쫓으며, 병을 고치고, 천국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놓쳐 버렸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성령은 어느 한 교파에 해당하는 소유물로 알았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따라갈 힘을 얻는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그리스도인이 된다. 겉은 똑 같아도 다르다. 성령께서 안계시면 행할수 있는 능력이 없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동안 교인들을 모으는데만 힘을 썼다. 제자를 만들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세계인류의 구원을 이루는데 기여를 못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지 못했는가. 난 전통교회에서 자랐기에 성령을 받으면 큰일나는줄 알았다. 성령받으면 이단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힘이 있고 행할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다. 아볼로 처럼 성경에 능통하나 사람을 바꿀수 있는 능력인 성령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인들을 도덕적인 사람을 만들었을뿐 그리스도인은 만들지 못했다. 회개한다. 목사는 교인들을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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