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참된 교회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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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05-10-1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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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크리스천 및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목회자 이재철 목사(100주년 기념교회)가 후러싱제일교회(김중언 목사)의 30주년 기념부흥회를 2005년 10월 13일(목)부터 16일(주일)까지 인도하고 있다. 이재철 목사는 "복음과 교회의 연결고리(요 21:1-25)"라는 제목으로 4일 동안 강해식으로 진행한다.
13일(목) 저녁 8시 30분 열린 첫날 집회는 예배당을 만원을 이룬 가운데 열렸으며 이재철 목사는 40여분동안 조용하지만 확신있는 목소리로 말씀을 전했다. 예배가 끝난 후 김중언 목사와 입구에 서서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이날 참가한 고등학생들은 이목사의 말씀을 듣고 목사가 되겠다고 결신하는 등 복음의 진수를 보여준 말씀으로 참가한 교인들에게 변화를 주었다.
김중언 목사는 이재철 목사를 "소개가 필요없는 훌륭하신 목사님이다. 목사님이 오신다고 하니 많은 문의전화가 왔다. 3년 만에 미국에 오셨다"고 소개 했다. 아래는 말씀 요약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교회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복음이 중요한 것이다. 교회가 교회자체를 중요하게 여길때 교회는 이기적 집단이 된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교회는 복음 때문에 중요하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제도도 아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이곳은 예배당일 뿐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바로 교회이다. 만약 이러한 고백없이 세워진 교회가 있다면 교회가 아니다. 그러면 동일한 고백아래 교회가 세워졌다면 왜 모든 교회가 동일하지 않나?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총론에 지나지 않는다. 총론은 분명한데 각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그런 일이 일어 날수 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은 매우 중요하다. 4복음서의 마지막 장이다. 그곳에 결론이 다 들어가 있다. 그다음에 교회역사를 밝혀주는 사도행전이 시작된다. 따라서 21장은 바로 복음과 교회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땅끝에 관심을 두고 부담감으로 살아간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이 부활후 제자들을 땅끝으로 보내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라 하셨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이었고 그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갈릴리는 그들의 삶의 현장이요 터전이었다. 그러면 주님이 왜 그들을 땅끝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보냈는가?
만약 자기 삶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땅끝 증인이 될 수 없다. 내 삶의 현장에서 역할 하는 체 살아가는 연기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삶의 제사를 원하신다. 삶의 현장에서 먼저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갈릴리는 히브리어로 "고리"라는 의미가 있다. 땅끝은 아프리카나 지구 반대쪽 나라가 아니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가면 지금 서있는 이곳이 땅끝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교회로 살아가야 한다
교회인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결코 수도원이 아니다. 심산계곡도 아니며 허허벌판도 아니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교회로 살아가야 한다. 주일 하루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쫓아 살아야 한다. 큰 교회란 교인이 많음과 제도에 달려있지 않다. 성도가 얼마나 진리를 쫓아 사는지 달려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제물을 드리면서도 욕망을 쫓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뉴욕에 나타날 때 백인, 흑인, 동양인이 "할렐루야"라고 외치면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눈물을 지을 것인가? 그 답은 자신들이 다 안다. 욕망의 논리로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진리만이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
교회가 무력하고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교회가 진리를 쫓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바다에 침몰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과연 우리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과연 그리스도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구분하지 않는다.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의 유혹은 거대한 바다와 같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돈이 더욱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다. 참된 교회가 되어야 주님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내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를 믿으시는 주님의 믿음에 비하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다. 주님은 배신을 했어도 믿음을 주시는 분이다. 나를 믿는 주님의 믿음을 깨달아야 한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중 하나인 이영표 선수와 대화할 기회가 있어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4강에 들어 갈수 있었나?"고 질문한 적이 있다.
이영표 선수는 "프로는 몰래 몸을 던질 수도 사릴 수도 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실력 이상의 투혼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선수에 대한 믿음이다. 히딩크 감독은 전반전에 출전한 선수를 부상 등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교체를 하지 않는다. 전반전에 충분히 기회를 주고 전반전이 끝나서야 선수를 교체한다.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4강의 가장 큰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믿고 내가 그 믿음에 응답할 때 진정한 금자탑이 세워지지 않겠나?
하나님을 현재형으로 기억하자
이 세상에는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게 만들면 욕망의 바다에서 진리의 등대로 살아 갈수 잇다. 성도들이 주일에만 예수를 만나고 예배당을 나가면 주머니에 예수님을 넣고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알고 예수님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아무리 영성훈련을 받아도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생각하면 영성이 없는 것이다. 간증집회는 과거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현재형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성경공부하고 나가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은 과거형이 된다. 예배당 안 만의 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현장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현재형이며 내일도 현재형이다. 주님이 현재에 있다고 깨닫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교인과 프로그램이 많아야 좋은 교회가 아니고 주님이 현재형으로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그런 교회만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주님을 안 따르고 욕망의 법칙을 따르면 큰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빈손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것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화려했던 로마는 오늘 폐허가 된 유적지 밖에 없다. 오늘도 무엇인가 세상의 것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능력으로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산산조각 났을 때 현재형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애들아"하고 불렀다. 현재형 주님이 우리를 부를 때 아이들의 심정으로 대답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믿음의 성숙은 주님 앞에 어린아이의 심정을 잃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
내가 혼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넘어진다. 서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주님 앞에 아이가 될 때 삶의 현장에서 현재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30년 동안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안다. 많이 했다고 생각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생각하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30주년을 통해 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아야 하며 현재의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교회가 아이의 마음을 가질 때 앞으로 30년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참된 교회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실패와 절망의 경험을 통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순종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낮고 낮은 마음이 필요하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건져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건져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허공에 산 것이며 건져 올린 사람만이 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건져 올릴 수 있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그것을 건져 올릴 수 있다. 내 욕망으로 건져내려고 하면 그물인 교회가 찢어진다. 좋고 나쁜 교회는 예배당에서 가려지지 않는다. 살인자도 예배당 안에서는 분위기로 순간적으로 거룩할 수 있다. 참된 교회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13일(목) 저녁 8시 30분 열린 첫날 집회는 예배당을 만원을 이룬 가운데 열렸으며 이재철 목사는 40여분동안 조용하지만 확신있는 목소리로 말씀을 전했다. 예배가 끝난 후 김중언 목사와 입구에 서서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이날 참가한 고등학생들은 이목사의 말씀을 듣고 목사가 되겠다고 결신하는 등 복음의 진수를 보여준 말씀으로 참가한 교인들에게 변화를 주었다.
김중언 목사는 이재철 목사를 "소개가 필요없는 훌륭하신 목사님이다. 목사님이 오신다고 하니 많은 문의전화가 왔다. 3년 만에 미국에 오셨다"고 소개 했다. 아래는 말씀 요약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교회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복음이 중요한 것이다. 교회가 교회자체를 중요하게 여길때 교회는 이기적 집단이 된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교회는 복음 때문에 중요하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제도도 아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이곳은 예배당일 뿐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바로 교회이다. 만약 이러한 고백없이 세워진 교회가 있다면 교회가 아니다. 그러면 동일한 고백아래 교회가 세워졌다면 왜 모든 교회가 동일하지 않나?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총론에 지나지 않는다. 총론은 분명한데 각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그런 일이 일어 날수 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은 매우 중요하다. 4복음서의 마지막 장이다. 그곳에 결론이 다 들어가 있다. 그다음에 교회역사를 밝혀주는 사도행전이 시작된다. 따라서 21장은 바로 복음과 교회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땅끝에 관심을 두고 부담감으로 살아간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이 부활후 제자들을 땅끝으로 보내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라 하셨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이었고 그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갈릴리는 그들의 삶의 현장이요 터전이었다. 그러면 주님이 왜 그들을 땅끝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보냈는가?
만약 자기 삶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땅끝 증인이 될 수 없다. 내 삶의 현장에서 역할 하는 체 살아가는 연기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삶의 제사를 원하신다. 삶의 현장에서 먼저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갈릴리는 히브리어로 "고리"라는 의미가 있다. 땅끝은 아프리카나 지구 반대쪽 나라가 아니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가면 지금 서있는 이곳이 땅끝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교회로 살아가야 한다
교회인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결코 수도원이 아니다. 심산계곡도 아니며 허허벌판도 아니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교회로 살아가야 한다. 주일 하루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욕망의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쫓아 살아야 한다. 큰 교회란 교인이 많음과 제도에 달려있지 않다. 성도가 얼마나 진리를 쫓아 사는지 달려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제물을 드리면서도 욕망을 쫓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뉴욕에 나타날 때 백인, 흑인, 동양인이 "할렐루야"라고 외치면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눈물을 지을 것인가? 그 답은 자신들이 다 안다. 욕망의 논리로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진리만이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
교회가 무력하고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교회가 진리를 쫓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바다에 침몰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과연 우리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과연 그리스도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구분하지 않는다.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의 유혹은 거대한 바다와 같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돈이 더욱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다. 참된 교회가 되어야 주님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내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를 믿으시는 주님의 믿음에 비하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다. 주님은 배신을 했어도 믿음을 주시는 분이다. 나를 믿는 주님의 믿음을 깨달아야 한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중 하나인 이영표 선수와 대화할 기회가 있어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4강에 들어 갈수 있었나?"고 질문한 적이 있다.
이영표 선수는 "프로는 몰래 몸을 던질 수도 사릴 수도 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실력 이상의 투혼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선수에 대한 믿음이다. 히딩크 감독은 전반전에 출전한 선수를 부상 등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교체를 하지 않는다. 전반전에 충분히 기회를 주고 전반전이 끝나서야 선수를 교체한다.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4강의 가장 큰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믿고 내가 그 믿음에 응답할 때 진정한 금자탑이 세워지지 않겠나?
하나님을 현재형으로 기억하자
이 세상에는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게 만들면 욕망의 바다에서 진리의 등대로 살아 갈수 잇다. 성도들이 주일에만 예수를 만나고 예배당을 나가면 주머니에 예수님을 넣고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알고 예수님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아무리 영성훈련을 받아도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생각하면 영성이 없는 것이다. 간증집회는 과거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현재형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성경공부하고 나가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은 과거형이 된다. 예배당 안 만의 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현장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현재형이며 내일도 현재형이다. 주님이 현재에 있다고 깨닫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교인과 프로그램이 많아야 좋은 교회가 아니고 주님이 현재형으로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그런 교회만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주님을 안 따르고 욕망의 법칙을 따르면 큰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빈손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것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화려했던 로마는 오늘 폐허가 된 유적지 밖에 없다. 오늘도 무엇인가 세상의 것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능력으로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산산조각 났을 때 현재형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애들아"하고 불렀다. 현재형 주님이 우리를 부를 때 아이들의 심정으로 대답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믿음의 성숙은 주님 앞에 어린아이의 심정을 잃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
내가 혼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넘어진다. 서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주님 앞에 아이가 될 때 삶의 현장에서 현재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30년 동안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안다. 많이 했다고 생각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생각하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30주년을 통해 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아야 하며 현재의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교회가 아이의 마음을 가질 때 앞으로 30년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참된 교회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실패와 절망의 경험을 통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순종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낮고 낮은 마음이 필요하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건져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건져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허공에 산 것이며 건져 올린 사람만이 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건져 올릴 수 있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그것을 건져 올릴 수 있다. 내 욕망으로 건져내려고 하면 그물인 교회가 찢어진다. 좋고 나쁜 교회는 예배당에서 가려지지 않는다. 살인자도 예배당 안에서는 분위기로 순간적으로 거룩할 수 있다. 참된 교회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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