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은 온누리교회의 이스라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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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3-11-27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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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SJ가 주최한 이스라엘 성경세미나가 10월 31일(목)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뉴욕한민교회(주영광 목사)에서 열렸습니다. 뉴욕교협이 후원한 집회의 강사는 김인식 목사(웨스트힐장로교회)와 송만석 장로(온누리교회, 한이 성경연구소 대표)였습니다. 이 세미나 전후 뉴욕과 뉴저지의 교회들에서 연속으로 이스라엘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세미나를 주최한 KCSJ(Korean Christians for Shalom Jerusalem)은 지난 8월 뉴욕에서 열렸던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을 주최했던 기관입니다.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은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에서 한국에서 온 1백여명과 뉴욕의 일부 크리스찬들이 모여서 유대인들을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반 대체신학을 중심으로 한 KCSJ의 선언문에 대한 아멘넷 기사에는 많은 반대의견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이 어렵게 준비되는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기도와 열정으로 집회는 준비가 되었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협조를 요청하는 주최측에 유대인들은 집회의도에 의심의 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플러싱에서 집회를 열 유대회당이 정해지지 않아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집회가 열리고 한인 크리스찬과 유대인들과 손을 잡고 하나가 됩니다.
올해 집회의 열매가 있습니다. 내년 6월에 브루클린에서 5천여명의 유대인들이 모이는 대형집회에 초청되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후에는 뉴욕의 유대인 회당에서 올해와 비슷한 집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톤 DC에서도 유대인들을 위한 집회를 엽니다.
이스라엘 세미나에서 오전에는 김인식 목사가 먼저 강의를 했으며, 오후에는 송만석 장로가 교재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인식 목사는 왜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김 목사가 유학을 와서 28년전에 교회를 개척하기 전 부터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되면서 자연히 이스라엘 회복과 유대인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팀이 생겼습니다. 풀러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다 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처음에는 선교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을 보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회복과 유대인 구원이 교회의 큰 사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후 송만석 장로의 부인인 김혜리 권사가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할때 부부가 웨스트힐장로교회에 출석함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더욱 큰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후에 송만석 장로의 강의에 앞서 영상으로 고 하용조 목사의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가 진행됐습니다. 로마서 강해중 11장 부분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듣고 지난 8월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한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두 목사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가 대체신학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두 분의 목사보다 먼저 반 대체신학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사상을 가진 송만석 장로가 온누리교회 장로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보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대체신학은 한국교계에서도 논란거리입니다. 많은 개신교회는 대체신학을 믿습니다. 하지만 온누리교회 같이 그렇지 않은 교회와 목사들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고든 콘웰 신학대학교 명예 총장인 월터 카이저 박사는 대체신학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뜨거운 찬반논쟁이 오갔습니다.
하용조 목사는 로마서 11장 강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온누리교회를 큰 교회로 축복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 목사는 많은 나라를 선교하듯이 이스라엘도 선교하는 나라중 하나로 끼워넣는 정도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마귀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라는 열쇠로 열어야 이방인이라는 자물쇠가 열리는데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회복하지 않고 절대로 이방인만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강조했습니다.
KCSJ는 자신들이 주최하는 이스라엘 세미나는 세대주의나 백투예루살렘도 아닌, 성경을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온누리교회나 대체신학에 대해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기를 기대하며, 하용조 목사의 '로마서 강해 40 실패와 성공'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로마서강해 40 실패와 성공
성경에 나타난 메세지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주제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왜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이 되었을까. 신비스럽다. 또 한가지 지금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으며 2천년동안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인류역사상 가장 고난을 받은 민족이다. 6백만이 학살을 당했고 나라없이 전세계를 방황하고 나그네로 살아왔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없어지지 않고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있는 민족이 되었다. 그것이 신비스럽다.
마귀는 우리의 눈을 가리워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정치적인 군사적인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게함으로 이스라엘을 여러나라중의 하나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많은 나라를 선교하듯이 이스라엘도 선교하는 나라중 하나로 끼워넣는 정도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마귀가 우리의 눈을 가리게 한 것이다.
어떤 교회든지 가보면 이스라엘 선교를 이야기 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선교를 이야기 하는 교회는 많이 있지만, 이스라엘을 가지고 기도하고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비전을 가진 교회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 드물고 미국도 드물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영적인 이스라엘, 하나님의 축복의 근거로서의 이스라엘을 보지 못하도록 마귀는 일하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구원의 클라이막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서에서 제일 배척을 받는 장이 9-11장 까지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의 클라이막스가 여기에 있다. 로마서 1-8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구원이다. 9-11장까지는 온 인류의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온 인류의 구원이다. 따라서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 구원이 짝이 맞아야 역사의 종말이 온다. 구원의 완성이 온다. 이스라엘 선교,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없으면 선교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선교가 끝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이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민족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 별 상관없고, 이스라엘이 강원도 땅덩어리 만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는 이방 대 이스라엘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이다. 모든 이방들이 한 덩어리이고 이스라엘이 한 덩어리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영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창립때 부터 이스라엘에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것은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특권이었다. 온누리교회를 큰 교회로 축복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저는 오늘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한다. 이스라엘 회복과 이스라엘 구원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남은 자로서 일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 민족은 복받을 것이고, 그 교회는 복을 받을 것이고, 그 개인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 하는데 이스라엘만은 안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주에 11장 첫머리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다. "이스라엘 실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대답은 무엇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영원한 실패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직도 중동에서 세계 뉴스의 촛점을 항상 몰고 다니고 있다. 참 신비스러운 이름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마지막 말세에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시고 찾으신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생각할수 있다.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은 이방인을 자물쇠로 본다면 이스라엘은 열쇠이다. 열쇠로 열어야 자물쇠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절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회복하지 않고 이방인만 구원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방인을 구원하는 뜻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실족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셨다. 그래서 온 이방인이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그 실족하고 실패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시겠는가. 아니다. 반드시 다시 찾으신다. 예수님을 죽인 이후에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메시아를 배척한다. 그곳은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자라셨고, 기적을 베푸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땅이다. 그런데 지금 가보면 십자가가 없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그들은 지금까지 메시아를 배척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그렇게 배척해서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과 똑 같다. 택한자는 반드시 구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했고 실수했어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부르시고 회복하시고 인류 역사의 완성에 대단원을 내리게 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을수 있는가. 엘리야 시대때 하나님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않은 자 7천명을 남겨두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셨던 것 처럼 지금도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안믿고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이방인의 남은 자들, 성령받은 우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는 것이다.
11절을 보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은 실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기득권 불신앙 불순종 오만때문에 메시아를 죽이고 말았다. 메시아를 환영하거나 영접하지 않았다. 실패한 것이다. 실족한 것이다. 그런데 11절을 보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실패하기는 했는데 그 실패가 멸망이나 끝이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족한 것은 분명히 잘못했다. 실족은 단에서 미끌어 진 것이다.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망하기 까지 실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실패가 하나님을 떠나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실패가 아니라 믿는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다보면 실패하고 실족하고 탕자가 될때가 참 많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죄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지 않다. 여러분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말것이다.
11절 중간에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가게 되었다"라고 나온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데 하나가 넘어지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간다. 이런 것 처럼 이스라엘의 실패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급속도로 퍼져 간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급속도로 소아시아로 간다. 바울이 1-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중앙아시아로 복음이 간다. 이어 소아시아를 떠나서 배를 타고 지중해 에게해를 넘어 빌립보로 가게 된다. 그리고 복음은 학문과 철학의 도시 아덴, 상업의 중심인 고린도, 종교와 예술의 도시인 에베소로 가게 된다.
세계중심인 로마까지 복음이 침투해 들어가고 마침내 로마의 국교가 된다. 그리고 전 유럽이 복음화가 된다. 이것이 마치 도미노 현상과 똑 같다. 누가 어떤 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전 이방인들에게 2천년동안 바람처럼 찾아오신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 한국까지 온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무엇때문인가.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비스러운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사도행전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 전도를 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 회당을 찾아 동족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메시아를 전했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눈을 막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바울을 위협했다. 그 복음이 할 수 없이 누구에게로 갔는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방인들에게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복음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정신없이 복음을 받아들인다. 이것을 놓고 사도행전 13:46에서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사도 바울은 할 수 없이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패의 이유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오만과 불순종과 불신앙과 종교적인 기득권 때문에 그들이 매를 맞았지만 그 결과 이방인 여러분과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2절)"
이스라엘의 실패는 세상의 부요함이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부유함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로 올 것인가. 기가 막힌 것이다. 이스라엘이 만약 예수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면 전세계가 지진이 일어난다. 이스라엘의 실패도 이방인에게 이런 축복을 주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잘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키셨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 처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키셨다. 그런것을 안다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금 형편이 없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형편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형편이 없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사막같은 이스라엘을 위해 눈물로 권면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도와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이스라엘을 돕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이스라엘의 실패로 말미암아 이방인이 구원받는 정도라면, 그들이 충만할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역사의 마지막 때에 그들이 일어난다.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11장의 결론이다. 구원의 결론이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3-14절)"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것과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같이 차이가 있다. 우리들이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것은 그리 큰 갈등이 없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이 개나 돼지 같은 이방인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고 죽는다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인 감정이 용납을 하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내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으며, 이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렇기에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방인의 모든 교회와 이방인에게 부탁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희생당하지 않았느냐, 실패하지 않았느냐, 넘어지지 않았느냐. 그래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한 사람도 믿지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민족때문에 이렇게 속이 상한다. 내가 이방인들을 섬기는 것 처럼, 여러분들에게 부탁한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를 좀 해 달라. 망한 내 민족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강팍한 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좀 해달라. 헌금을 좀 해달라,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이다.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는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중에서 몇이라도 구원받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너희 이방인들은 이렇게 많이 예수를 믿지 않느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지 않느냐.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다. 예수믿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사도바울의 마음이다. 참 신비스럽게 생각한다. 온누리교회 창립때 부터 이스라엘 선교를 했는데 교회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로 공부를 계속 해 오면서 드디어 이런 결론에 오게 된 것이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절)"
오늘날 여러분의 개인적인 실패가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기를 축복한다. 개인적인 실패와 실수때문에 좌절하지 말라.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구원이 되었다면 여러분의 실패와 좌절도 하나님께는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란다. 또 하나 축복의 비밀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한 축복을 더해 주실것을 믿는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세미나를 주최한 KCSJ(Korean Christians for Shalom Jerusalem)은 지난 8월 뉴욕에서 열렸던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을 주최했던 기관입니다.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은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에서 한국에서 온 1백여명과 뉴욕의 일부 크리스찬들이 모여서 유대인들을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반 대체신학을 중심으로 한 KCSJ의 선언문에 대한 아멘넷 기사에는 많은 반대의견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샬롬 예루살렘 페스티발'이 어렵게 준비되는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기도와 열정으로 집회는 준비가 되었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협조를 요청하는 주최측에 유대인들은 집회의도에 의심의 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플러싱에서 집회를 열 유대회당이 정해지지 않아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집회가 열리고 한인 크리스찬과 유대인들과 손을 잡고 하나가 됩니다.
올해 집회의 열매가 있습니다. 내년 6월에 브루클린에서 5천여명의 유대인들이 모이는 대형집회에 초청되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후에는 뉴욕의 유대인 회당에서 올해와 비슷한 집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톤 DC에서도 유대인들을 위한 집회를 엽니다.
이스라엘 세미나에서 오전에는 김인식 목사가 먼저 강의를 했으며, 오후에는 송만석 장로가 교재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인식 목사는 왜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김 목사가 유학을 와서 28년전에 교회를 개척하기 전 부터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되면서 자연히 이스라엘 회복과 유대인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팀이 생겼습니다. 풀러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다 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처음에는 선교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을 보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회복과 유대인 구원이 교회의 큰 사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후 송만석 장로의 부인인 김혜리 권사가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할때 부부가 웨스트힐장로교회에 출석함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더욱 큰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후에 송만석 장로의 강의에 앞서 영상으로 고 하용조 목사의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가 진행됐습니다. 로마서 강해중 11장 부분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듣고 지난 8월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한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두 목사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가 대체신학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두 분의 목사보다 먼저 반 대체신학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사상을 가진 송만석 장로가 온누리교회 장로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보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대체신학은 한국교계에서도 논란거리입니다. 많은 개신교회는 대체신학을 믿습니다. 하지만 온누리교회 같이 그렇지 않은 교회와 목사들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고든 콘웰 신학대학교 명예 총장인 월터 카이저 박사는 대체신학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뜨거운 찬반논쟁이 오갔습니다.
하용조 목사는 로마서 11장 강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온누리교회를 큰 교회로 축복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 목사는 많은 나라를 선교하듯이 이스라엘도 선교하는 나라중 하나로 끼워넣는 정도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마귀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라는 열쇠로 열어야 이방인이라는 자물쇠가 열리는데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회복하지 않고 절대로 이방인만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강조했습니다.
KCSJ는 자신들이 주최하는 이스라엘 세미나는 세대주의나 백투예루살렘도 아닌, 성경을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온누리교회나 대체신학에 대해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기를 기대하며, 하용조 목사의 '로마서 강해 40 실패와 성공'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로마서강해 40 실패와 성공
성경에 나타난 메세지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주제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왜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이 되었을까. 신비스럽다. 또 한가지 지금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으며 2천년동안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인류역사상 가장 고난을 받은 민족이다. 6백만이 학살을 당했고 나라없이 전세계를 방황하고 나그네로 살아왔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없어지지 않고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있는 민족이 되었다. 그것이 신비스럽다.
마귀는 우리의 눈을 가리워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정치적인 군사적인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게함으로 이스라엘을 여러나라중의 하나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많은 나라를 선교하듯이 이스라엘도 선교하는 나라중 하나로 끼워넣는 정도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마귀가 우리의 눈을 가리게 한 것이다.
어떤 교회든지 가보면 이스라엘 선교를 이야기 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선교를 이야기 하는 교회는 많이 있지만, 이스라엘을 가지고 기도하고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비전을 가진 교회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 드물고 미국도 드물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영적인 이스라엘, 하나님의 축복의 근거로서의 이스라엘을 보지 못하도록 마귀는 일하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구원의 클라이막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서에서 제일 배척을 받는 장이 9-11장 까지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의 클라이막스가 여기에 있다. 로마서 1-8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구원이다. 9-11장까지는 온 인류의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온 인류의 구원이다. 따라서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 구원이 짝이 맞아야 역사의 종말이 온다. 구원의 완성이 온다. 이스라엘 선교,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없으면 선교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선교가 끝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이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민족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 별 상관없고, 이스라엘이 강원도 땅덩어리 만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는 이방 대 이스라엘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이다. 모든 이방들이 한 덩어리이고 이스라엘이 한 덩어리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영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창립때 부터 이스라엘에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것은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특권이었다. 온누리교회를 큰 교회로 축복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저는 오늘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한다. 이스라엘 회복과 이스라엘 구원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남은 자로서 일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 민족은 복받을 것이고, 그 교회는 복을 받을 것이고, 그 개인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 하는데 이스라엘만은 안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주에 11장 첫머리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다. "이스라엘 실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대답은 무엇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영원한 실패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직도 중동에서 세계 뉴스의 촛점을 항상 몰고 다니고 있다. 참 신비스러운 이름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마지막 말세에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시고 찾으신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생각할수 있다.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은 이방인을 자물쇠로 본다면 이스라엘은 열쇠이다. 열쇠로 열어야 자물쇠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절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회복하지 않고 이방인만 구원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방인을 구원하는 뜻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실족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셨다. 그래서 온 이방인이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그 실족하고 실패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시겠는가. 아니다. 반드시 다시 찾으신다. 예수님을 죽인 이후에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메시아를 배척한다. 그곳은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자라셨고, 기적을 베푸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땅이다. 그런데 지금 가보면 십자가가 없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그들은 지금까지 메시아를 배척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그렇게 배척해서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과 똑 같다. 택한자는 반드시 구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했고 실수했어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부르시고 회복하시고 인류 역사의 완성에 대단원을 내리게 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을수 있는가. 엘리야 시대때 하나님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않은 자 7천명을 남겨두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셨던 것 처럼 지금도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안믿고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이방인의 남은 자들, 성령받은 우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는 것이다.
11절을 보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은 실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기득권 불신앙 불순종 오만때문에 메시아를 죽이고 말았다. 메시아를 환영하거나 영접하지 않았다. 실패한 것이다. 실족한 것이다. 그런데 11절을 보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실패하기는 했는데 그 실패가 멸망이나 끝이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족한 것은 분명히 잘못했다. 실족은 단에서 미끌어 진 것이다.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망하기 까지 실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실패가 하나님을 떠나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실패가 아니라 믿는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다보면 실패하고 실족하고 탕자가 될때가 참 많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죄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지 않다. 여러분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말것이다.
11절 중간에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가게 되었다"라고 나온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데 하나가 넘어지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간다. 이런 것 처럼 이스라엘의 실패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급속도로 퍼져 간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급속도로 소아시아로 간다. 바울이 1-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중앙아시아로 복음이 간다. 이어 소아시아를 떠나서 배를 타고 지중해 에게해를 넘어 빌립보로 가게 된다. 그리고 복음은 학문과 철학의 도시 아덴, 상업의 중심인 고린도, 종교와 예술의 도시인 에베소로 가게 된다.
세계중심인 로마까지 복음이 침투해 들어가고 마침내 로마의 국교가 된다. 그리고 전 유럽이 복음화가 된다. 이것이 마치 도미노 현상과 똑 같다. 누가 어떤 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전 이방인들에게 2천년동안 바람처럼 찾아오신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 한국까지 온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무엇때문인가.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비스러운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사도행전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 전도를 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 회당을 찾아 동족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메시아를 전했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눈을 막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바울을 위협했다. 그 복음이 할 수 없이 누구에게로 갔는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방인들에게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복음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정신없이 복음을 받아들인다. 이것을 놓고 사도행전 13:46에서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사도 바울은 할 수 없이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패의 이유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오만과 불순종과 불신앙과 종교적인 기득권 때문에 그들이 매를 맞았지만 그 결과 이방인 여러분과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2절)"
이스라엘의 실패는 세상의 부요함이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부유함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로 올 것인가. 기가 막힌 것이다. 이스라엘이 만약 예수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면 전세계가 지진이 일어난다. 이스라엘의 실패도 이방인에게 이런 축복을 주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잘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키셨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 처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키셨다. 그런것을 안다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금 형편이 없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형편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형편이 없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사막같은 이스라엘을 위해 눈물로 권면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도와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이스라엘을 돕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이스라엘의 실패로 말미암아 이방인이 구원받는 정도라면, 그들이 충만할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역사의 마지막 때에 그들이 일어난다.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11장의 결론이다. 구원의 결론이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3-14절)"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것과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같이 차이가 있다. 우리들이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것은 그리 큰 갈등이 없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이 개나 돼지 같은 이방인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고 죽는다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인 감정이 용납을 하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내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으며, 이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렇기에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방인의 모든 교회와 이방인에게 부탁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희생당하지 않았느냐, 실패하지 않았느냐, 넘어지지 않았느냐. 그래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한 사람도 믿지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민족때문에 이렇게 속이 상한다. 내가 이방인들을 섬기는 것 처럼, 여러분들에게 부탁한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를 좀 해 달라. 망한 내 민족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강팍한 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좀 해달라. 헌금을 좀 해달라,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이다.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는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중에서 몇이라도 구원받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너희 이방인들은 이렇게 많이 예수를 믿지 않느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지 않느냐.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다. 예수믿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사도바울의 마음이다. 참 신비스럽게 생각한다. 온누리교회 창립때 부터 이스라엘 선교를 했는데 교회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로 공부를 계속 해 오면서 드디어 이런 결론에 오게 된 것이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절)"
오늘날 여러분의 개인적인 실패가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기를 축복한다. 개인적인 실패와 실수때문에 좌절하지 말라.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구원이 되었다면 여러분의 실패와 좌절도 하나님께는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란다. 또 하나 축복의 비밀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한 축복을 더해 주실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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