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칠 목사 인터뷰, "한국교회 이미지 훼손은 목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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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6-05-17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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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치마폭같이 성도들이 안도하는 분위기의 교회'와 '동산같이 풍부하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교회'를 향해 바람이 불고 있다. 뉴욕을 중심으로 '좋은 목자의 동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조정칠 목사(73)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산처럼 신선한 목회자이다. 조 목사는 한인교회를 향하여 뜨거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뒤에는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2006/05/17
조정칠 목사는 대뉴욕지구한인목사회 회장(16,17대)을 역임했으며, 한국 신용산교회와 이민교회에서 50년간 사역하다 2003년 은퇴했다. 조 목사는 <어머니 목회학>, <목사는 개를 좋아하는가?>등 2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50년의 목회경험을 통해 한국교회를 진단해 주시죠?
교회는 많은 사람이 올수 있도록 좋은 이미지가 살아 있어야 한다. 잘 가던 집이라도 그 집의 이미지가 훼손되면 그 집에 안 가게 된다. 지금의 교회 이미지에 대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신령한 기관이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물이다. 교회의 좋은 이미지가 자꾸만 퇴화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이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니 교회에 자세를 갖추고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교회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느낀다. 나도 목사이지만 오늘날 교회에 하나님이 계신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회의가 하나님이 임재의 반증일수는 있다. 한인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한 것 같은 모습이 회복될 때 참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세상의 악습이 교회에 다 들어와 있다. 교회가 치사하고 더러워 졌다. 세상의 악습대로 교회에서 명예 한자리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교회에 어디 명예가 있는가? 옛날에는 서로 자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엎드려 사정하여 적임자를 시켰다. 적임자가 아닌 사람이 감투 쓰고 온갖 짓 다하는 악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이런 교회의 모습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목사에게 책임이 있다. 오늘날 목사의 모습이 어떠한가? 목사가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을 못주니 교인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못한다. 하나님을 못 느낀 사람들도 교회에 와서 목사를 보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의 사명이 제대로 안되면 목사가 오히려 교인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목사가 교회에 오는 길을 막아 올 사람을 못 들어 오게 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할 시대가 왔다. 실제로 반성하는 소리도 많다.
하지만 반성하는 것도 정말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통곡대회라는 것은 너무 사치스럽다. 자신이 먼저 회개하며 울면서 다른 사람을 동참하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동시에 "다 같이 웁시다" 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코미디다. 교회가 놀이마당으로 변하고 있다. 종교를 빙자한 많은 놀이가 교회에서 일어난다. 진정한 신앙문화가 아니라 이상한 종교참여로 교회의 치부가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교인들도 변해야 할텐데?
교인들이 잘 살아서 오히려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생활이 어려울 때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며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양식을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대박을 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구하는 것이 달라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아버지와 자녀로서의 신앙의 틀이 하나님이 없어도 먹고 살수 있다는 관계로 바뀌었다. 교회에 잘 믿는 사람의 기준이 산만해 졌다. 옛날에는 주일성수, 십일조 등 몇 가지의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교회에 종교적인 바람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인 기능을 기대하고 오는 교인들이 많아 졌다. 현대교회는 자녀교육, 정보교환 등의 도움을 준다. 사회안에 교회만큼 효과적으로 휄로우십이 되는 곳이 없다. 교회의 종교의 기능보다 사회의 기능이 확대되면 안된다.
교회내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자매로 보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같은 교인을 하나님이 택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 사랑이 증발되어 없는 시대에 산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예수가 피로 산사람이라고 누가 믿는가? 돌아서면 주는 없다. 허상들이 있다. 교인들이 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우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은?
이런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시원한 그늘이 있고 생수가 있으며 새소리가 들리고 좋은 공기가 있는 동산 같은 교회가 있는가? 오염된 세상에서 교회에 가면 사람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님은 병신이 들어와도 그날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예우를 해주었다. 예수님은 거지 병신 다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병신들이 들어와 정상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 곳인데 멀쩡한 사람이 들어와 병신이 된다.
교회의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교회가 교인들을 진정으로 환영을 안한다. 교인들은 사회에서 상처와 불화가 많다. 교회에 가면 맑은 물가에 발을 담그는 시원한 안위가 필요하다. 모두 그런 안위를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교회가 그것을 안한다. 교회는 상처가 많은 시대에 상처를 씻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소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평생도록 병자들 돌보기다가 가셨다.
교회에 병자가 들어올 수 없고 들어와도 대우를 못 받는다. 교회가 안위와 소망 그리고 평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 사람대우를 받고 싶은데 쉽지 않다. 교회는 평등한 곳이며 높고 낮음이 없는 곳인데 많은 목사들이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머리나 꼬리는 다 같이 같은 몸이다. 예수님은 꼬리(나중)가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꼬리를 가르치고 교회는 머리를 가르친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는데 교회는 부자가 되면 복을 받았다고 한다. 교회처럼 차별하는 곳이 어디에 있나? 교회가 차별을 깨뜨리고 교인을 우대하고 삼기는 교회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엄연한 차별이 있다.
요즈음 경영학수준의 리더십을 내세워 교회를 몰고가고 싶은 지도자의 과잉된 열정과 충성도 문제이다. 교인을 몰고 가면서 끝없이 교인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 리더의 자부심이고 자랑이다. 리더가 힘차게 깃발 들고 나가며 성취감을 과시하는 병적인 욕망에 성도들은 멍들고 상처받는다. 목회자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양들을 혹사시키지 마라. 그냥 놔두라. 박자가 느리고 템포가 느리더라도 나중에 속도가 조절되어 온다. 강제로 속도 맞추려고 하지 마라.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독특하신데?
교회는 메세지가 있는 곳이다. 교회는 메세지를 주고 메시지를 받으려고 오는 것이다. 모임자체가 형식적인 순서를 지키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주일에 모인 것은 떡을 나누기 위해서 이다. 예배의 말씀이 떡이다. 말씀을 나누어 줄때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얼마만큼 만족을 하는가? 메세지가 문제이다. 교인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 목사의 메세지이다.
세상은 많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현대인의 감각속에 썰렁하다. 먹는 척하지만 교인들이 안 먹는다. 먹으면 먹는 만큼 효과를 낸다. 설교가 내용보다 격식만 갖추면 교인들이 안 먹는다. 목사는 설교를 안타까워하면서 태워 누룽지처럼 교인들에게 주어라.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에 맞을까 상황에 맞을까 고민하며 애간장을 태워야 한다. 잘 익은 것은 물을 부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고 튀겨도 맛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이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이런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셔서 지금은 뭔가 운동이 일어나야겠다는 열망을 같이 느낀다. 우리의 삶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어떤 설교보다 중요하다. 증거하려고 해도 오늘날 같이 조직적인 사회에 자란 사람에게 그냥하지고 하면 안된다. 상당한 우리의 지혜를 모아 움직여야 한다. 교회마다 동산을 만들고 없는 사람도 같이 동산을 만들어 동산의 바람을 불게 했으면 한다.
수백 명 모이는 조직이 아니라 작은 힘이라도 잘해야 한다. 이런 운동이 확산되기 바란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잠재하고 있는 강력한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은혜의 단비를 적혀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모습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교회를 회복하자! 성도들의 삶의 질을 은혜 안에서 전부 회복하자. 교회 안에 자유를 주자, 모든 사람이 교회를 통해 인격적으로 평등적인 대우를 받게 하자. 모든 사람의 상처를 교회를 통해 치유 받게 하자. 교회 안에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스타를 만들지 말자.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그런 축복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몇 마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조정칠 목사는 대뉴욕지구한인목사회 회장(16,17대)을 역임했으며, 한국 신용산교회와 이민교회에서 50년간 사역하다 2003년 은퇴했다. 조 목사는 <어머니 목회학>, <목사는 개를 좋아하는가?>등 2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50년의 목회경험을 통해 한국교회를 진단해 주시죠?
교회는 많은 사람이 올수 있도록 좋은 이미지가 살아 있어야 한다. 잘 가던 집이라도 그 집의 이미지가 훼손되면 그 집에 안 가게 된다. 지금의 교회 이미지에 대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신령한 기관이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물이다. 교회의 좋은 이미지가 자꾸만 퇴화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이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니 교회에 자세를 갖추고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교회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느낀다. 나도 목사이지만 오늘날 교회에 하나님이 계신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회의가 하나님이 임재의 반증일수는 있다. 한인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한 것 같은 모습이 회복될 때 참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세상의 악습이 교회에 다 들어와 있다. 교회가 치사하고 더러워 졌다. 세상의 악습대로 교회에서 명예 한자리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교회에 어디 명예가 있는가? 옛날에는 서로 자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엎드려 사정하여 적임자를 시켰다. 적임자가 아닌 사람이 감투 쓰고 온갖 짓 다하는 악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이런 교회의 모습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목사에게 책임이 있다. 오늘날 목사의 모습이 어떠한가? 목사가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을 못주니 교인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못한다. 하나님을 못 느낀 사람들도 교회에 와서 목사를 보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의 사명이 제대로 안되면 목사가 오히려 교인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목사가 교회에 오는 길을 막아 올 사람을 못 들어 오게 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할 시대가 왔다. 실제로 반성하는 소리도 많다.
하지만 반성하는 것도 정말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통곡대회라는 것은 너무 사치스럽다. 자신이 먼저 회개하며 울면서 다른 사람을 동참하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동시에 "다 같이 웁시다" 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코미디다. 교회가 놀이마당으로 변하고 있다. 종교를 빙자한 많은 놀이가 교회에서 일어난다. 진정한 신앙문화가 아니라 이상한 종교참여로 교회의 치부가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교인들도 변해야 할텐데?
교인들이 잘 살아서 오히려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생활이 어려울 때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며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양식을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대박을 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구하는 것이 달라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아버지와 자녀로서의 신앙의 틀이 하나님이 없어도 먹고 살수 있다는 관계로 바뀌었다. 교회에 잘 믿는 사람의 기준이 산만해 졌다. 옛날에는 주일성수, 십일조 등 몇 가지의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교회에 종교적인 바람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인 기능을 기대하고 오는 교인들이 많아 졌다. 현대교회는 자녀교육, 정보교환 등의 도움을 준다. 사회안에 교회만큼 효과적으로 휄로우십이 되는 곳이 없다. 교회의 종교의 기능보다 사회의 기능이 확대되면 안된다.
교회내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자매로 보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같은 교인을 하나님이 택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 사랑이 증발되어 없는 시대에 산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예수가 피로 산사람이라고 누가 믿는가? 돌아서면 주는 없다. 허상들이 있다. 교인들이 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우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은?
이런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시원한 그늘이 있고 생수가 있으며 새소리가 들리고 좋은 공기가 있는 동산 같은 교회가 있는가? 오염된 세상에서 교회에 가면 사람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님은 병신이 들어와도 그날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예우를 해주었다. 예수님은 거지 병신 다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병신들이 들어와 정상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 곳인데 멀쩡한 사람이 들어와 병신이 된다.
교회의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교회가 교인들을 진정으로 환영을 안한다. 교인들은 사회에서 상처와 불화가 많다. 교회에 가면 맑은 물가에 발을 담그는 시원한 안위가 필요하다. 모두 그런 안위를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교회가 그것을 안한다. 교회는 상처가 많은 시대에 상처를 씻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소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평생도록 병자들 돌보기다가 가셨다.
교회에 병자가 들어올 수 없고 들어와도 대우를 못 받는다. 교회가 안위와 소망 그리고 평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 사람대우를 받고 싶은데 쉽지 않다. 교회는 평등한 곳이며 높고 낮음이 없는 곳인데 많은 목사들이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머리나 꼬리는 다 같이 같은 몸이다. 예수님은 꼬리(나중)가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꼬리를 가르치고 교회는 머리를 가르친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는데 교회는 부자가 되면 복을 받았다고 한다. 교회처럼 차별하는 곳이 어디에 있나? 교회가 차별을 깨뜨리고 교인을 우대하고 삼기는 교회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엄연한 차별이 있다.
요즈음 경영학수준의 리더십을 내세워 교회를 몰고가고 싶은 지도자의 과잉된 열정과 충성도 문제이다. 교인을 몰고 가면서 끝없이 교인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 리더의 자부심이고 자랑이다. 리더가 힘차게 깃발 들고 나가며 성취감을 과시하는 병적인 욕망에 성도들은 멍들고 상처받는다. 목회자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양들을 혹사시키지 마라. 그냥 놔두라. 박자가 느리고 템포가 느리더라도 나중에 속도가 조절되어 온다. 강제로 속도 맞추려고 하지 마라.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독특하신데?
교회는 메세지가 있는 곳이다. 교회는 메세지를 주고 메시지를 받으려고 오는 것이다. 모임자체가 형식적인 순서를 지키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주일에 모인 것은 떡을 나누기 위해서 이다. 예배의 말씀이 떡이다. 말씀을 나누어 줄때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얼마만큼 만족을 하는가? 메세지가 문제이다. 교인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 목사의 메세지이다.
세상은 많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현대인의 감각속에 썰렁하다. 먹는 척하지만 교인들이 안 먹는다. 먹으면 먹는 만큼 효과를 낸다. 설교가 내용보다 격식만 갖추면 교인들이 안 먹는다. 목사는 설교를 안타까워하면서 태워 누룽지처럼 교인들에게 주어라.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에 맞을까 상황에 맞을까 고민하며 애간장을 태워야 한다. 잘 익은 것은 물을 부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고 튀겨도 맛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이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이런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셔서 지금은 뭔가 운동이 일어나야겠다는 열망을 같이 느낀다. 우리의 삶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어떤 설교보다 중요하다. 증거하려고 해도 오늘날 같이 조직적인 사회에 자란 사람에게 그냥하지고 하면 안된다. 상당한 우리의 지혜를 모아 움직여야 한다. 교회마다 동산을 만들고 없는 사람도 같이 동산을 만들어 동산의 바람을 불게 했으면 한다.
수백 명 모이는 조직이 아니라 작은 힘이라도 잘해야 한다. 이런 운동이 확산되기 바란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잠재하고 있는 강력한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은혜의 단비를 적혀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모습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교회를 회복하자! 성도들의 삶의 질을 은혜 안에서 전부 회복하자. 교회 안에 자유를 주자, 모든 사람이 교회를 통해 인격적으로 평등적인 대우를 받게 하자. 모든 사람의 상처를 교회를 통해 치유 받게 하자. 교회 안에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스타를 만들지 말자.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그런 축복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몇 마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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