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영 목사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 / RCA 연합성회
페이지 정보
성회ㆍ2014-04-05 00:00관련링크
본문
RCA 대뉴욕지구 한인교회협의회(회장 조대형 목사) 연례행사인 연합성회가 4월 4일(금)부터 3일간 뉴욕신광교회(강주호 목사)에서 열렸다. 3일간 성회는 회원교회들이 돌아가며 순서를 맡았다. 주일 성회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4명의 타민족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강사 임채영 목사
강사는 임채영 목사(서부성결교회). 임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웨슬리신학교에서 공부한후, 1991년부터 교회를 개척하여 미국과 한국에서 담임목회를 해 왔다. 임채영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3명의 인물을 통해 명품 인생을 사는 방법을 전해주었다. 3일간의 성회에서 "이름값 하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삭개오, "고난을 복으로 바구는 인생"이라는 설교를 통해 야베스, "세상을 바꾸는 거룩한 인생"이라는 설교를 통해 요셉의 삶을 다루었다.
첫날, 임채영 목사는 누가복음 19:1-10을 본문으로 "이름값 하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성도들이 잘아는 삭개오에 대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몇가지 핵심 주제를 잡아 말씀을 전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열린 성회에 참가한 RCA 교단 목사와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기위해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처럼 은혜와 열정이 있있다. 임 목사는 말씀후 통성기도를 인도하기도 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삭개오의 불안감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권력이 있었으며 또 부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권력과 돈을 이미 가진 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으며 마음에는 알수 없는 공허감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다. 그는 세리장이라는 권력을 얻기위해 친구와 이웃들을 잃어버렸다. 소외의 더 깊은 뿌리속에는 영적인 소외, 하나님과의 단절된 불안감이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하고 허무할때 뿌리속으로 들어가면 영적인 문제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관계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인생을 흔들만한 위급한 일이 닥쳐오면 비로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드러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공허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파스칼은 인간의 영혼속에는 그 어떤것으로 채워질수 없는 하나님만으로 채워질수 밖에 없는 구멍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영적인 블랙홀이라고 한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수 없는,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 그리고 원하는 것들을 다 얻어도 행복해질수 없는 것은, 우리안에 결코 하나님외에 채워질수 없는 영적인 공허감이 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기위해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
삭개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가야 하겠다는 갈급함이 생겼다. 이것이 축복의 시작이다. 문제는 삭개오가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유명인사인 삭개오가 체면을 벗어던지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갈급함이 삭개오에게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오는데 여러분들도 여기에 왔다. 문제는 오늘 여러분들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안타깝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이자리에 나오지만, 예수님을 못보고 사람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키가 작거나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않아서이다. 오늘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 뒤에서 왜 예수님이 안보이느냐고 한숨쉬는 자리에 앉아있으면 안된다.
여러분들은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오늘 내가 예수님 말씀을 듣기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을 다 제거할것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뽕나무에 올라가지 않고는 예수님을 볼수 없다. 온전히 예수님을 보기위해서라면 그 어떤 다른것을 다 뒤로하고 오늘 내가 나무위로 올가가야 한다. 예수님과 여러분이 단둘이 만날수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
나무위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다가 오셔서 삭개오 이름을 부르셨다. 나무위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삭개오의 마음은 어땠을까. 성경을 보면 마음속에 감동이 되는 부분은 예수님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베드로야, 마리아야, 삭개오야, 나사로야... 예수님은 인류를 한덩어리로 보지 않으시고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보아주신다. 우리 개개인의 처지를 이해하시고 우리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불러주신다.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때 그때부터 마음에 감동이 있을 것이다. 내 공허한 마음속에 있는 눈물과 내가 왜 여기 나와있는지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그리고 불러주신다.
다시 보면 우리는 삭개오가 고민이 있어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나온줄 알았는데, 여기에서 완전히 바뀌어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나온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있는 삭개오 한사람을 위해서 찾아오셔서 불러내시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잃어버린 자에서 찾은 자로 만들어 가신다. 예수님의 사랑이다.
이것이 신앙이 아닐까. 내가 나온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예수믿은 것 같은데 신앙의 철이 들고 보면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들어주시고 불러주신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다른 종교는 비슷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점은 출발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사람부터 출발한다. 내가 도를 잘닦고 나부터 시작해서 신에게 나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내가 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가운데 둘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움직임으로 이땅에 하나님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이땅에 오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부터 모든 우리의 신앙이 출발한다. 이것을 모르니 자꾸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찾고있다. 기독교 신앙은 나로부터 출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십자가이고 예수님이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온것은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니 나온것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자리에 우리가 나온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시다. 내 의지가 아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나올수 있었다. 다윗도 양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왕이 되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믿는자를 핍박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하나님이 그를 불러주시니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 신앙이 근거이다. 오늘 우리가 나올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구원은 내 열심때문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뭔가 잘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흔들리는가. 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가.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기때문이다. 내 모습을 보니 예수믿는 것인지 안믿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러고도 구원받았다고 할수있겠는가 라는 사단의 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인하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럼으로 내 죄가 사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내가 죄사함 받았고 구원받았다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바로 그것에 있다. 혹시 그것을 놓치고 살고있지는 않은가. 내가 나온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셨고,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소명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목사로 불러주신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서 때려치고 싶은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포기할수 없는 이유는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시작하면 내가 포기하면 되는데, 내가 시작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만둘수 없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곳에 데려다 놓으셨다. 목회만 그런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 둘수 없는 이유는 이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부르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놓으려고 해도 놓을수 없는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RCA 뉴욕교협 2014 연합성회
[동영상] RCA 연합성회 강사 임채영 목사
▲강사 임채영 목사
강사는 임채영 목사(서부성결교회). 임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웨슬리신학교에서 공부한후, 1991년부터 교회를 개척하여 미국과 한국에서 담임목회를 해 왔다. 임채영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3명의 인물을 통해 명품 인생을 사는 방법을 전해주었다. 3일간의 성회에서 "이름값 하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삭개오, "고난을 복으로 바구는 인생"이라는 설교를 통해 야베스, "세상을 바꾸는 거룩한 인생"이라는 설교를 통해 요셉의 삶을 다루었다.
첫날, 임채영 목사는 누가복음 19:1-10을 본문으로 "이름값 하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성도들이 잘아는 삭개오에 대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몇가지 핵심 주제를 잡아 말씀을 전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열린 성회에 참가한 RCA 교단 목사와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기위해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처럼 은혜와 열정이 있있다. 임 목사는 말씀후 통성기도를 인도하기도 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삭개오의 불안감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권력이 있었으며 또 부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권력과 돈을 이미 가진 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으며 마음에는 알수 없는 공허감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다. 그는 세리장이라는 권력을 얻기위해 친구와 이웃들을 잃어버렸다. 소외의 더 깊은 뿌리속에는 영적인 소외, 하나님과의 단절된 불안감이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하고 허무할때 뿌리속으로 들어가면 영적인 문제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관계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인생을 흔들만한 위급한 일이 닥쳐오면 비로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드러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공허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파스칼은 인간의 영혼속에는 그 어떤것으로 채워질수 없는 하나님만으로 채워질수 밖에 없는 구멍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영적인 블랙홀이라고 한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수 없는,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 그리고 원하는 것들을 다 얻어도 행복해질수 없는 것은, 우리안에 결코 하나님외에 채워질수 없는 영적인 공허감이 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기위해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
삭개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가야 하겠다는 갈급함이 생겼다. 이것이 축복의 시작이다. 문제는 삭개오가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유명인사인 삭개오가 체면을 벗어던지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갈급함이 삭개오에게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오는데 여러분들도 여기에 왔다. 문제는 오늘 여러분들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안타깝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이자리에 나오지만, 예수님을 못보고 사람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키가 작거나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않아서이다. 오늘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 뒤에서 왜 예수님이 안보이느냐고 한숨쉬는 자리에 앉아있으면 안된다.
여러분들은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오늘 내가 예수님 말씀을 듣기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을 다 제거할것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뽕나무에 올라가지 않고는 예수님을 볼수 없다. 온전히 예수님을 보기위해서라면 그 어떤 다른것을 다 뒤로하고 오늘 내가 나무위로 올가가야 한다. 예수님과 여러분이 단둘이 만날수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
나무위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다가 오셔서 삭개오 이름을 부르셨다. 나무위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삭개오의 마음은 어땠을까. 성경을 보면 마음속에 감동이 되는 부분은 예수님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베드로야, 마리아야, 삭개오야, 나사로야... 예수님은 인류를 한덩어리로 보지 않으시고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보아주신다. 우리 개개인의 처지를 이해하시고 우리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불러주신다.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때 그때부터 마음에 감동이 있을 것이다. 내 공허한 마음속에 있는 눈물과 내가 왜 여기 나와있는지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그리고 불러주신다.
다시 보면 우리는 삭개오가 고민이 있어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나온줄 알았는데, 여기에서 완전히 바뀌어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나온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있는 삭개오 한사람을 위해서 찾아오셔서 불러내시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잃어버린 자에서 찾은 자로 만들어 가신다. 예수님의 사랑이다.
이것이 신앙이 아닐까. 내가 나온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예수믿은 것 같은데 신앙의 철이 들고 보면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들어주시고 불러주신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다른 종교는 비슷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점은 출발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사람부터 출발한다. 내가 도를 잘닦고 나부터 시작해서 신에게 나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내가 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가운데 둘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움직임으로 이땅에 하나님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이땅에 오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부터 모든 우리의 신앙이 출발한다. 이것을 모르니 자꾸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찾고있다. 기독교 신앙은 나로부터 출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십자가이고 예수님이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온것은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니 나온것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자리에 우리가 나온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시다. 내 의지가 아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나올수 있었다. 다윗도 양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왕이 되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믿는자를 핍박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하나님이 그를 불러주시니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 신앙이 근거이다. 오늘 우리가 나올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구원은 내 열심때문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뭔가 잘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흔들리는가. 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가.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기때문이다. 내 모습을 보니 예수믿는 것인지 안믿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러고도 구원받았다고 할수있겠는가 라는 사단의 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인하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럼으로 내 죄가 사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내가 죄사함 받았고 구원받았다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바로 그것에 있다. 혹시 그것을 놓치고 살고있지는 않은가. 내가 나온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셨고,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소명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목사로 불러주신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서 때려치고 싶은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포기할수 없는 이유는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시작하면 내가 포기하면 되는데, 내가 시작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만둘수 없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곳에 데려다 놓으셨다. 목회만 그런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 둘수 없는 이유는 이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부르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놓으려고 해도 놓을수 없는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RCA 뉴욕교협 2014 연합성회
[동영상] RCA 연합성회 강사 임채영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