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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수 목사 “뉴욕한인교회 약사” / 뉴욕한인교회 8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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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6-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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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1일 뉴욕 타운 홀에서 삼일절 제 3주년 기념 대회가 있었다. 기념 대회 직후 조선 독립 운동을 지원하고 있던 킴버랜드 여사의 사무실에서 기념식 평가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킴버랜드 여사의 제안으로 교회 창립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삭크만 목사가 자신이 목회자로 있던 "매디슨애비뉴감리교회"에서 예배하도록 제안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3월 또는 4월 어느 날 임종순 목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렸다. 40여 명 교인들의 대부분이 유학생들이었다.

1923년 4월 15일에 건물(459 W. 21 Street)을 구입하고 첫 입당 예배를 드렸다. 교회 이름을 지금도 우리 교회의 공식 명칭인 "Korean Church & Institute"라고 했다. 그 이후 현재의 위치(633 W. 115th St. New York, NY 10025),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건너편 골목에 작은 건물 절반을 사서 1927년에 이사 왔다. 처음 교회 창립 과정 및 새 건물 구입 과정에서 뉴욕연회의 재정적 지원과 감리교 인사들의 협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1920-30년대에 뉴욕한인교회는 뉴욕 한인들의 조국 독립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때 각종 한인 모임의 중심지 역할을 우리 교회가 해 내었다. 1960년대 이민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뉴욕 지역뿐만 아니라 동북부 지역에 교회라고는 우리 뉴욕한인교회 하나뿐이었다(약 40년 간). 자랑스러운 전통, 배달겨레의 민족 교회로서의 위상을 세웠다.

1920년대 인종 차별의 설움과 1930년대 대공황의 위협으로 힘든 생존을 버텨온 뉴욕한인교회는 그 작은 4층 건물에 20여 명의 유숙자들을 두고, 그들의 삶의 문제를 도왔다. 교회가 자랑하는 옛날 교인들 대부분이 이 기간의 교인들이다. 그때는 유학생들 혹은 유숙생들이었으나 후일 한국에 돌아가 지도적 인물들이 된 사람들이 많다. 조병옥, 김활란, 박마리아, 박은혜, 박인덕, 장리욱, 안익태 등이 그들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한 시대를 엮어 가는데 공과를 남긴 이들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뉴욕한인교회를 거쳐갔다(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몇 차례 방문). 지금도 낡은 교회당 안에 들어가면, 그런 이들의 음성을, 그들의 기도 소리를 들었을 벽과, 그들의 눈물을 마셨을 마루가 새삼 엄숙한 느낌을 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들고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로서 오늘도 우리들에게 무언의 말을 하는 것 같다.

제 1대 담임 임종순 목사(1922-1923년) 이래, 15대 장철우 목사에 이르기까지 세월만도 81년이요 담임 목사들만도 15대를 거듭한다. 최근에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은 아무래도 제11대 담임 (1975-1988년)이었던 최효섭 목사와 12대 담임 차원태 목사(1988-2000)일 것이다. 둘 다 널리 알려진 설교자들이었는데, 이에 반하여 교회 분열이란 미증유의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은, 참으로 하늘이 우리 교회를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경륜이었을 것이다.

최효섭 목사 재임 시에는 이민법의 도움으로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만하탄 둘레에 흘러 들어와, 처음으로 주일 예배 출석 인원이 400여 명을 넘어섰다. 예배 공간 확보를 위해 세인트힐다학교(St. Hilda School) 채플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1960-70년 대에도 여전히 우리 교회는 뉴욕 일원의 한인 모임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신학자들 다수가 이때 교회의 성경공부를 지도했다(김이곤, 김득중, 서중석, 김홍기, 한완상, 한호석, 한성수, 등등). 또한 당시 김병서 교수의 인도로 '청년부 사상 강좌'를 열어, 여러 학자들 혹은 지식인들이 다각도로 신학 및 사상 강좌를 펴서, 청년부의 진취적 시야를 여는 큰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많은 음악인들이 이때 교회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뉴욕 목요 기도회'의 역할도 괄목할만하다. 한승인 장로를 비롯한 뉴욕 지역 진보적 인사들이 모여 1975년 6월 조직한 '뉴욕 목요 기도회'는 매월 교회 지하실에 모여 20여 년 동안 조국의 민주화 투쟁을 위해 기도하고 활동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반정부 단체의 대표로 여겼을 정도였다. 김재준, 함석헌, 문동환, 이우정, 백기완, 김찬국, 한완상, 김대중 등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45만 뉴욕 지구 한인 동포들의 대표성을 갖는 '뉴욕한인회'도 그 처음은 뉴욕한인교회에서 시작하여 한동안 모든 모임의 장소는 물론 중심인물들이 대부분 본 교회 교인들이었다.

14대 담임 한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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