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목사 "제4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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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06-10-2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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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한지 489주년 기념일이다. 해마다 개신교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기념예배도 드리고 여러가지 기념행사도 가진다. 이러한 일들은 종교의 압박과 부패를 일신하여 새롭게 한 루터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일이지만 단순히 과거지사를 돌이켜 보는 것에 그친다면 아무런 의의가 없다고 본다. 지난날의 역사를 거울삼아서 오늘의 교회가 행여라도 지난날 못지않게 부패 일로를 걷고 있다면 과감히 개혁을 단행하여야 교회가 살아서 교회 구실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첫번째 종교개혁은 주전 621년에 유다왕 요시야 때 일어났다. 요사야 왕은 즉위한지 18년만에 성전에서 율법서(신명기)를 발견했으며, 그 책에 의하여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이 개혁의 특징은 예루살렘을 유일의 제사 장소로 정하고, 지방의 모든 제단과 산당들을 파괴한 일이다.(신 12:13-14, 왕하 23: ).
지방의 산당들이 우상 숭배의 악풍에 감염되어지므로 우상을 타파하고 유일신관을 확립함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의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같은 요시야 왕의 개혁정신을 철저히 발전시키고 계승시키므로써 예루살렘 중심의 예배를 강조하고, 제사장의 직권을 확립하고 제물의 규정 및 성결 생활을 강화하게 되었다. 두 번째 종교 개혁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부패한 교권주의자들을 채찍으로 몰아냄으로써 일대 혁신을 일으킨 일이다(마 21:12-17 참조). 그 당시의 부패상은 제물의 규정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겼으며, 제사장의 직권을 남용 내지는 악용했던 일로서 백성들을 억압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이사야서 56장을 인용하며 저들의 죄악을 책망하였다. “내가 그를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세번째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일어난 마틴 루터의 혁명이다(1517.10.31). 직접적으로는 당시의 교황이었던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판매한 일에 근거했던 것이었으며, 루터 자신이 로마서를 강해하는 가운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신앙의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종교개혁의 삼대 원리를 내세웠다. 성서의 권위, 이신득구, 인개위제사가 그것이다. 이 삼대 원리는 오늘날 모든 교회들의 존립의 세 기둥과 같은 것이다.
네번째 종교개혁(제 4의 종교개혁)은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인 것이다. 피흘려 이루어놓은 종교개혁, 피와 땀으로 사수하며 전승해 준 신앙을 우리는 숙연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언필칭 생명의 말씀이라 말하는 성경은 과연 현대 교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으며 행사하고 있는가? 장로교 12신조 가운데 그 첫번째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니라”고 했는데 과연 그 신조는 교회 안팎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성경제일주의가 금전제일주의나 권력제일주의 또는 향락제일주의에 깔려서 천대를 받고 있지나 아니한 것인지?
초현대식 예배당을 호화롭게 지어놓고 남의 교회 교인들을 유치하기에 급급하여 목사가 강단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면 성경은 이미 사문서(死文書化)된 것이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런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여 열심히 성경 공부에 참여한다 해도 실제 일상생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수고와 열심이 다 허사인 것이다.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자. 나 개인의 신앙 상태는 이대로 좋은 것인가? 내 가정과 우리 교회는 불신사회로부터 빈축을 사며 지탄을 받고있지나 아니한가? 시대의 변천과 흐름에 따라 신앙도 많이 변질되어 가고, 여러가지 잘못된 사상이 독버섯처럼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서 자라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을 단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준 신앙의 선조들은 온갖 박해를 당하면서도 작은 힘으로나마 이 사회를 변혁시켜 왔는데 현대 교회는 엄청난 힘과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회에 끌려가고 있으며 세속화 일로를 달려가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세속적인 잠에서 깨어나 개혁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 제4의 종교개혁의 과업을 완수하여 참된 신앙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성철(원로목사)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첫번째 종교개혁은 주전 621년에 유다왕 요시야 때 일어났다. 요사야 왕은 즉위한지 18년만에 성전에서 율법서(신명기)를 발견했으며, 그 책에 의하여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이 개혁의 특징은 예루살렘을 유일의 제사 장소로 정하고, 지방의 모든 제단과 산당들을 파괴한 일이다.(신 12:13-14, 왕하 23: ).
지방의 산당들이 우상 숭배의 악풍에 감염되어지므로 우상을 타파하고 유일신관을 확립함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의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같은 요시야 왕의 개혁정신을 철저히 발전시키고 계승시키므로써 예루살렘 중심의 예배를 강조하고, 제사장의 직권을 확립하고 제물의 규정 및 성결 생활을 강화하게 되었다. 두 번째 종교 개혁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부패한 교권주의자들을 채찍으로 몰아냄으로써 일대 혁신을 일으킨 일이다(마 21:12-17 참조). 그 당시의 부패상은 제물의 규정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겼으며, 제사장의 직권을 남용 내지는 악용했던 일로서 백성들을 억압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이사야서 56장을 인용하며 저들의 죄악을 책망하였다. “내가 그를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세번째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일어난 마틴 루터의 혁명이다(1517.10.31). 직접적으로는 당시의 교황이었던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판매한 일에 근거했던 것이었으며, 루터 자신이 로마서를 강해하는 가운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신앙의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종교개혁의 삼대 원리를 내세웠다. 성서의 권위, 이신득구, 인개위제사가 그것이다. 이 삼대 원리는 오늘날 모든 교회들의 존립의 세 기둥과 같은 것이다.
네번째 종교개혁(제 4의 종교개혁)은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인 것이다. 피흘려 이루어놓은 종교개혁, 피와 땀으로 사수하며 전승해 준 신앙을 우리는 숙연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언필칭 생명의 말씀이라 말하는 성경은 과연 현대 교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으며 행사하고 있는가? 장로교 12신조 가운데 그 첫번째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니라”고 했는데 과연 그 신조는 교회 안팎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성경제일주의가 금전제일주의나 권력제일주의 또는 향락제일주의에 깔려서 천대를 받고 있지나 아니한 것인지?
초현대식 예배당을 호화롭게 지어놓고 남의 교회 교인들을 유치하기에 급급하여 목사가 강단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면 성경은 이미 사문서(死文書化)된 것이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런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여 열심히 성경 공부에 참여한다 해도 실제 일상생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수고와 열심이 다 허사인 것이다.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자. 나 개인의 신앙 상태는 이대로 좋은 것인가? 내 가정과 우리 교회는 불신사회로부터 빈축을 사며 지탄을 받고있지나 아니한가? 시대의 변천과 흐름에 따라 신앙도 많이 변질되어 가고, 여러가지 잘못된 사상이 독버섯처럼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서 자라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을 단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준 신앙의 선조들은 온갖 박해를 당하면서도 작은 힘으로나마 이 사회를 변혁시켜 왔는데 현대 교회는 엄청난 힘과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회에 끌려가고 있으며 세속화 일로를 달려가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세속적인 잠에서 깨어나 개혁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 제4의 종교개혁의 과업을 완수하여 참된 신앙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성철(원로목사)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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