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 열정과 간증의 콘서트 펼쳐 "내 영혼이 은총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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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6-10-2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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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뉴욕교회(김남수 목사)는 10월 22일(주일) 젊은 예배에 윤복희 권사(온누리교회)를 초청하여 감동있는 콘서트를 열었다. 윤 권사는 이름을 바꾼 프라미스 공연인 "His Life"에 출연하기 위해 12월 다시 뉴욕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윤 권사는 프라미스 주인공인 브룩스등과 만나 동역을 하기로 한 것.
순복음뉴욕교회의 젊은 예배를 시작하며 안진성 전도사가 인도하는 6인의 찬양팀은 수준높은 찬양을 인도했다. 젊은 예배임에도 "윤복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많은 성인 성도들이 참가하여 자리를 가득 매웠다. 김남수 목사는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라며 그냥 "윤복희"라고 소개했다.
환갑을 이미 보낸 윤 권사는 1시간 여 동안 강력한 카리스마적인 표정과 압도하는 가창력으로 회중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
마이크를 받아든 윤 권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라며 하나님이 지은 세계를 찬송하기 시작했다. 회중들은 숨을 죽이고 윤 권사의 찬양을 들었다.
두 번째 곡은 "하나의 밀알". 이 곳은 "성령을 받고 처음 부른 곡"이라고 소개했다. 윤 권사는 콘서트는 왠만한 부흥회보다 더 크고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관절과 골수 깨고 밀려 들어왔다.
윤복희 권사는 "성령을 받고 지난 30년 동안 세상노래가 아니라 뮤지컬을 했습니다. 그리고 27년동안 막달라 마리아를 했습니다"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 역의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라며 골고다의 언덕에서 숨을 잃어가는 예수님과 같이하는 연기와 찬양을 하는 윤 권사의 눈에는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회중석에서도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은 콘서트를 통해 전한 윤복희 권사의 간증이다.
주님이 찾아오기 전에는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지만 성령이 찾아와서는 내가 이기적이고 못된 것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것을 정확히 안 것은 76년 2월27일 이다. 전주에서 마지막 공연지인 대구로 가는 차에서 자동차의 뒷 샤프트가 부러져 차가 공중에서 3바퀴를 돌고 분리대 저쪽으로 떨어졌다.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은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운전수와 뒤통수를 부딪쳐 멍든 것 외에는 아무 상처가 없었다. 차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성령이 들어오셨다. 그 느낌은 새벽이슬보다 섬세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보혈의 맛이었다.
우리가 아무 이상 없자 경찰들이 너무 놀라했다. 그리고 대구까지 경찰차를 태워주었다. 호텔에서 멍을 없애기 위해 생고기를 멍든 자리에 붙이고 앉아 있는데 그냥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기를 붙인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비가 내리는 것, 거리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사랑한다며 안았다.
주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다음부터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극장에 공연을 하러가니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에 서니 세상노래를 부르기가 싫었다, 그래서 영어로 "어매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나는 5살부터 무대에 섰으며 20살 이전에 결혼하는 등 성숙했다. 63년 한국을 떠나 외국인을 상대로 TV공연 등을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한국말이 짧았다.
새마을 기차를 타고 사울로 올라오는데 기차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잘못을 다 보여주시고 회개를 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계속 엉엉 울었다. 낙태한 것이 살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스님에게 "하나님이 안에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어릴때부터 진 죄를 고백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눈물을 흘렸다.
75년 방송출연할때 사회를 보신 분이 곽규석 목사였다. 비행장에 가는 나에게 노란봉투를 주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열어보니 작은 성경책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읽지 않았다. 성령을 받은 날 그것이 생각이 났다. 다음날 아침 곽 목사에게 전화를 할려고 하니 먼저 전화가 걸려왓다. 11시에 아세아 연합신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햇는데 긴장하여 9시부터 나가 기다렸다. 곽 목사님이 젊은 전도사와 같이 왔는데 그분이 바로 하용조 전도사였다.
성령을 받고 그 다음날 아세아연합신학교 2층에 올라가 성경책을 처음 펴니 그렇게 글씨만 가득있는 책은 처음 보았다. 사도행전을 읽고 엉엉 울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고 나의 이야기를 2천 년 전에 하셨는지 놀랐다. 그때 처음 부른 찬송이 "내 영혼이 은총입어"이다.
미국에 있는 매니저에게 "Born Again" 해서 성경공부하니 미국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용조 전도사는 3년동안 나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공부를 하던 우리들은 주일이면 갈 때가 없어 공부하던 아시아연합신학교 공부하던 방을 빌려 연예인교회를 시작했다. 그 해말 "새롭게 하소서" 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공연등을 통해 교회를 지을 땅을 구해 교회를 지었다.
하용조 목사님의 권유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아버지도 뮤지컬을 제작하던 분이었다. 하기는 싫었지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 다음부터 계속 선교 뮤지컬을 했다. 뮤지컬은 제작비도 부족해 출연료도 없었다. 공연을 하려고 하니 돼지 머리에 고사를 지내려고 해서 반대했다. 대신 하용조 목사를 불러 예배를 드렸다. 그다음부터 30년 동안 뮤지컬계에는 고사가 없어졌다.
성령받기 전에는 죄속에서 살았다. 소박을 맞은 적도 잇다. 피터팬 공연시 열병에 걸렸는데 MBC에서 국제가요제에 참가하기를 부탁했다. 내가 영어가 되니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을 가사로 적었다. 그것이 "내가 너의 등불이 될께..."라는 가사를 가진 "여러분"이다.
곡이 길고, 종교적이라고 방송국에서 문제를 삼자 안한다고 했다. 당시 대상을 받기로 한사람이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 나는 전국에 처음 생방송 가요제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생방송은 내용을 짜르지 못하지 않는가? "여러분"으로 그랑프리를 받았다. 2절은 영어로 불렀는데 12명 심사위원중 7명이 영어권 신자여서 내게 100점을 주어 내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아 2번을 불렀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순복음뉴욕교회의 젊은 예배를 시작하며 안진성 전도사가 인도하는 6인의 찬양팀은 수준높은 찬양을 인도했다. 젊은 예배임에도 "윤복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많은 성인 성도들이 참가하여 자리를 가득 매웠다. 김남수 목사는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라며 그냥 "윤복희"라고 소개했다.
환갑을 이미 보낸 윤 권사는 1시간 여 동안 강력한 카리스마적인 표정과 압도하는 가창력으로 회중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
마이크를 받아든 윤 권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라며 하나님이 지은 세계를 찬송하기 시작했다. 회중들은 숨을 죽이고 윤 권사의 찬양을 들었다.
두 번째 곡은 "하나의 밀알". 이 곳은 "성령을 받고 처음 부른 곡"이라고 소개했다. 윤 권사는 콘서트는 왠만한 부흥회보다 더 크고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관절과 골수 깨고 밀려 들어왔다.
윤복희 권사는 "성령을 받고 지난 30년 동안 세상노래가 아니라 뮤지컬을 했습니다. 그리고 27년동안 막달라 마리아를 했습니다"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 역의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라며 골고다의 언덕에서 숨을 잃어가는 예수님과 같이하는 연기와 찬양을 하는 윤 권사의 눈에는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회중석에서도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은 콘서트를 통해 전한 윤복희 권사의 간증이다.
주님이 찾아오기 전에는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지만 성령이 찾아와서는 내가 이기적이고 못된 것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것을 정확히 안 것은 76년 2월27일 이다. 전주에서 마지막 공연지인 대구로 가는 차에서 자동차의 뒷 샤프트가 부러져 차가 공중에서 3바퀴를 돌고 분리대 저쪽으로 떨어졌다.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은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운전수와 뒤통수를 부딪쳐 멍든 것 외에는 아무 상처가 없었다. 차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성령이 들어오셨다. 그 느낌은 새벽이슬보다 섬세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보혈의 맛이었다.
우리가 아무 이상 없자 경찰들이 너무 놀라했다. 그리고 대구까지 경찰차를 태워주었다. 호텔에서 멍을 없애기 위해 생고기를 멍든 자리에 붙이고 앉아 있는데 그냥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기를 붙인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비가 내리는 것, 거리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사랑한다며 안았다.
주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다음부터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극장에 공연을 하러가니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에 서니 세상노래를 부르기가 싫었다, 그래서 영어로 "어매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나는 5살부터 무대에 섰으며 20살 이전에 결혼하는 등 성숙했다. 63년 한국을 떠나 외국인을 상대로 TV공연 등을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한국말이 짧았다.
새마을 기차를 타고 사울로 올라오는데 기차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잘못을 다 보여주시고 회개를 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계속 엉엉 울었다. 낙태한 것이 살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스님에게 "하나님이 안에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어릴때부터 진 죄를 고백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눈물을 흘렸다.
75년 방송출연할때 사회를 보신 분이 곽규석 목사였다. 비행장에 가는 나에게 노란봉투를 주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열어보니 작은 성경책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읽지 않았다. 성령을 받은 날 그것이 생각이 났다. 다음날 아침 곽 목사에게 전화를 할려고 하니 먼저 전화가 걸려왓다. 11시에 아세아 연합신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햇는데 긴장하여 9시부터 나가 기다렸다. 곽 목사님이 젊은 전도사와 같이 왔는데 그분이 바로 하용조 전도사였다.
성령을 받고 그 다음날 아세아연합신학교 2층에 올라가 성경책을 처음 펴니 그렇게 글씨만 가득있는 책은 처음 보았다. 사도행전을 읽고 엉엉 울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고 나의 이야기를 2천 년 전에 하셨는지 놀랐다. 그때 처음 부른 찬송이 "내 영혼이 은총입어"이다.
미국에 있는 매니저에게 "Born Again" 해서 성경공부하니 미국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용조 전도사는 3년동안 나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공부를 하던 우리들은 주일이면 갈 때가 없어 공부하던 아시아연합신학교 공부하던 방을 빌려 연예인교회를 시작했다. 그 해말 "새롭게 하소서" 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공연등을 통해 교회를 지을 땅을 구해 교회를 지었다.
하용조 목사님의 권유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아버지도 뮤지컬을 제작하던 분이었다. 하기는 싫었지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 다음부터 계속 선교 뮤지컬을 했다. 뮤지컬은 제작비도 부족해 출연료도 없었다. 공연을 하려고 하니 돼지 머리에 고사를 지내려고 해서 반대했다. 대신 하용조 목사를 불러 예배를 드렸다. 그다음부터 30년 동안 뮤지컬계에는 고사가 없어졌다.
성령받기 전에는 죄속에서 살았다. 소박을 맞은 적도 잇다. 피터팬 공연시 열병에 걸렸는데 MBC에서 국제가요제에 참가하기를 부탁했다. 내가 영어가 되니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을 가사로 적었다. 그것이 "내가 너의 등불이 될께..."라는 가사를 가진 "여러분"이다.
곡이 길고, 종교적이라고 방송국에서 문제를 삼자 안한다고 했다. 당시 대상을 받기로 한사람이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 나는 전국에 처음 생방송 가요제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생방송은 내용을 짜르지 못하지 않는가? "여러분"으로 그랑프리를 받았다. 2절은 영어로 불렀는데 12명 심사위원중 7명이 영어권 신자여서 내게 100점을 주어 내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아 2번을 불렀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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