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탁 구명위원회 전 대표 변천수가 보는 이한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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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6-12-17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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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한탁씨 관련 사건이 집중 재조명 되고 있다. 불을 질러 자신의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이한탁씨의 재심 청원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받아들여진 것. 지난 1989년 7월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에 의해 1급 살인과 방화 혐의로 기소된 이한탁(72세)씨는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1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은 <변천수의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한 이계선 목사가 보내 온 글이다. 이 목사는 "요즘 17년전 일어났던 이한탁 사건이 다시 동포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있다. 재심운동을 벌린 것이다. 그래서 회고록 뒷쪽의 이야기를 앞으로 당겨서 연재한다"라고 말했다.(변천수 회고록은 고려서점, 한국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4. 범인의눈동자-이한탁사건
방학을 맞이한 뉴욕의 여름은 무더웠다. 사람들은 푸른 계곡을 찾아 포코너 쪽으로 피서길을 떠났다. 산과 숲 과 계곡으로 유명한 포코너는 뉴욕의 여름피서지이다. 포코너 숲속에는 뉴욕 순복음교회의 기도원이 있었다. 대학생 김아미(가명)는 포코너 기도원에 가기로 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숲속에서 기도와 명상을 즐기고 싶었다. 교회에서 언니 언니하고 따르는 이지은이를 만났다.
“아미 언니, 나도 아빠하고 포코너 기도원에 가요. 언니도 같이 가줬으면 좋겠네”
“응, 나도 기도원에 가려고 하던 참이였는데 지은이와 동행하게 돼서 잘 됐네”
지은이는 얼굴이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재원 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샤프해서 그런지 정서불안을 앓고 있었다. 너무 과민하고 너무 과격 할때가 많았다. 신경질을 부리다가 가장집물을 내던지기도 하여 가정에서는 골치덩어리였다. 학교공부도 정상적이 아니였다. 그건 똑똑한 딸들이 한 번씩 겪어야 하는 홍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 이한탁씨는 이런 딸을 이해하는데 좀 부족했다.
“얘야 지은아, 넌 도대체 뭐가 부족하고 뭐가 불만 이냐? 마음껏 공부 할수있지, 자동차도 있지, 그만하면 됐지 무슨 불만이야? 너는 복이 겨워서 불만인 모양이구나. 아빠는 말이야 네 나이 또래 때...”
그 순간 꽥 소리를 지르면서 지은이가 아빠 말을 가로채고 나왔다.
“아빠, 또 그말 하려고 그러지요.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수십리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철도고등학교를 국비장학학생으로 다녔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면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했…’ 또 그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지요. 아빠 제발 저 좀 내버려둬요. 아빠 엄마가 가만이 내버려 두면 시간 지나면 저절로 낫게 돼요. 그런데 아빠가 자꾸만 들볶아 대면 저는 미쳐버리든가 죽어 버릴 거예요”
그러나 이한탁씨는 딸을 그냥 내버려 둘수가 없었다. 병원엘 데리고 가고, 보약을 먹이고, 상담실을 찾아 다녔다. 그러면 그럴수록 지은이의 증세는 더 악화돼갔다. 생각다 못한 이한탁씨는 딸을 기도원으로 데리고 가서 특별안수기도를 받기로 했다. 하나님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한탁씨 부녀와 아미는 교회 벤차를 타고 포코너 기도원으로 달려갔다. 수십 만평짜리 숲속에 있는 기도원에는 중앙에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있고 작은 숙소들이 숲속에 숨어있었다. 이한탁씨 일행은 기도원 정문을 지나 왼쪽 숲속에 있는 숙소를 배정 받았다. 목조로 된 집인데 오래돼서 판자 집처럼 약해 보였다.
다음날 지은이는 특별안수기도를 받았다. 기도원원장 목사와 남자세명이 한조가 되어 5시간동안 안수기도를 했다. 안수기도는 머리나 아픈곳에 손을 얹고하는 기도다. 안수기도로 안되면 안찰기도(按察祈禱-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하는 기도)를 한다. 안찰기도에 몸이 아픈 지은이가 몸을 비틀면서 일어서려고 하면 세명의 장정들이 달려든다. 손발을 묶다시피 힘으로 눌러버리고는 안타기도(按打祈禱 -손바닥으로 따귀 때리듯 때리는 기도)에 들어간다. 기도를 해도 안되면 목사는 “사탄아 물러가라! 지은이를 괴롭히는 사탄 귀신아 물러가라!” 외치면서 구타기도(毆打祈禱) 로 들어가기도한다. 5시간 동안의 특별기도로 지은이는 초주검상태가 돼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이한탁씨는 안쓰럽다 못해 미칠 지경 이었다. 어쩌면 지은이보다도 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건 기도가 아니라 고문이야 고문! 남산 중앙정보부 고문이지!)
이한탁씨는 딸을 데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아미는 지은이의 안수기도가 너무 끔찍스러워 지은이의 옆방에 있기가 거북스러웠다.
(숙소에서 잘게 아니라 성전에 가서 철야기도 하면서 지은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아미는 그날 밤 성전에서 밤을 새웠다. 지은이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아미는 깜짝 놀랐다. 숙소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이 턱밑에 차도록 숙소 앞으로 달려온 아미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거센 불길에 휩싸인채 숙소가 타면서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데 이한탁씨가 우두커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놀라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 지은이는 어디 있어요?”
“저기 저안에...”
이한탁씨는 무표정하게 손가락으로 불타고 있는 집안을 가리켰다.
아미는 부르짖었다.
“아저씨, 왜 지은이를 구하지 않고 여기에 서있어요?”
“불타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그래요?”
그럴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한 아미는 이한탁씨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때 아미의 눈과 이한탁씨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아미는 깜짝 놀랐다. 몸이 움찔하면서 뼈마디가 떨려왔다. 나이트 메어를 만난 것처럼 기절할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미는 헛것을 본것처럼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말을 잃어버렸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허공만 바라봤다. 그러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도 했다. 경찰조사이건 친구이건 이한탁씨 얘기만 나오면 “나는 몰라요 나는 몰라요”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이한탁사건의 최초의 목격자인 김아미는 이한탁사건의 최대피해자다. 아미는 그후 다니던 대학교공부를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한체 40넘은 처녀로 늙어가고 있다. 직장생활도 불가능하다. 뉴욕을 떠나 뉴저지 채리힐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다. 죽은 지은이의 귀신이 덮어 씨워서 그럴까? 지은이를 죽인 범인의 눈동자를 봐서 그럴까? 아미는 지금도 이한탁사건의 악령에 사로잡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아미 말고 또 한사람의 피해자가 있다. 그는 5시간 특별기도로 지은이를 괴롭혔던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얼마후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이런일이? 탐정소설같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다시 불난집으로 돌아간다. 교인들이 달려오고 소방차와 경찰이 달려와 보니 숙소는 완전히 잿더미가 돼있었다. 불에 타죽은 지은이는 재가 된채 망부석처럼 꼿꼿이 앉아있었다. 다비식(茶毘式)을 올려 불에 타죽은 고승처럼 재로 앉아 있었다. 경찰이 손을 대자지은이의 재몸은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지은이는 이렇게 불에 타죽었다.
경찰은 지은이의 아버지 이한탁씨를 방화 살인범으로 구속했다. 정신질환의 딸을 고치러왔다가 5시간의 안수기도로 고통을 당하는 걸 보고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린 이한탁씨가 불을 질러 죽게했다는 것이다. 증거로 휘발유통을 제시했다.
이한탁씨는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임을 주장했다. 휘발유통은 곤로용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다보니 불이 난지라 얼떨결에 일어나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노라고 말했다. 불길이 험하여 딸을 구하러 들어 갈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한탁사건은 매스컴을 타고 한인사회를 강타했다. 모른체 할수가 없었다. 이한탁씨가 졸업한 철도고등학교 동창생을 중심으로 “이한탁 구명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들은 발이 닳도록 뛰어 다녔다. 그래도 진척이 없자 뉴욕한인회에 위임해 버렸다. 뉴욕 한인회장 김재택박사는 이걸 한인인권위원회장인 나에게 떠 넘겼다. 나는 억지 춘향으로 “이한탁구명위원회”를 맡게 됐다.
위원회를 열면서 나는 이렇게 천명했다.
“이한탁구명위원회나 위원장인 나에게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파악하여 나름대로 연구해야 할것입니다. 우선 이한탁씨를 면회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정황이 나를 뜨겁게 만들면 올인하여 미 주류사회를 파고들어가 주류사회언론의 협조를 얻어내어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려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이 형성되지 않으면 구명위원장직을 맡지 않겠습니다”
나는 먼저 뉴욕 순복음교회의 김남수목사를 찾아갔다. 김남수목사는 이한탁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한탁씨부녀가 교회 교인 인데다가 교회기도원 숙소에서 불이나 지은이가 타 죽었다. 이한탁씨 주장대로 누전으로 불이난 걸로 되면 막대한 보상으로 교회가 날라 갈지도 모른다. 방화를 고집하면 교인 이한탁씨를 살인범으로 모는 꼴이 된다. 또 기도원 목사가 5시간동안이나 지은이에게 혹사안수기도 한것도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안수기도로 혹사당한 이한탁씨 부녀가 정신불안을 일으켜 방화살인이 났다고 수군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남수목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나는 김목사에게 부탁했다.
“이한탁집사는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같혀있고 김목사님은 여론의 감옥에 갖혀있습니다. 이 문제가 양쪽에서 원하는 대로 풀렸으면 좋으련만 사안이 복잡하여 나도 착잡하기만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동포사회에 서광이 비취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한탁씨부인과 이씨종친회장을 대동하고 팬실바니아에 있는 감옥으로 차를 몰았다. 이한탁씨는 종신형을 언도 받고 수감돼있었다. 4시간짜리 특별면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한탁씨는 자기를 살려주려고 달려온 나에게 성의가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살려달라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해야 하는데, 황금 동아밧줄을 내려 보내줘도 귀찮아하는 태도였다. 나를 취조관처럼 생각하는것 같았다.
“이것 보시오. 나는 당신을 구명하러온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해줄만한 숨겨진 이야기를 해줘야 우리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을 구하러 나설것이 아닙니까? 가슴을 열고 말해보세요”
내가 도리어 호소를 해봤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맥이 빠져 20분만에 면회를 끝내고 나와 버렸다. 이한탁씨 부인보고 대신 들어가서 달래보라고 했다. 그러나 부인이 들어가도 소용 없었다. 면회하다가 부부싸움을 하는지 고성만 오갈 뿐 이었다.
우리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코너 기도원을 들려봤다. 화재가 난 숙소와 똑같은 건물을 봤다. 6.25시절의 하꼬방 같은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에 불이 난 것이다. 누전사고냐 방화냐 하는 문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하꼬방에 불이나면 누구나 쉽사리 도망쳐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부질없어 보였다.
이한탁씨는 감형이 없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재심이 없는 확정형이다. 김대중대통령이 미국을 방문도중 이한탁 사건을 전해들었다. 청와대로 돌아간 김대통령은 당시 펜실바니아 주지사 톰릿지에게 이한탁재심 청원서를 보냈다. 톰릿지는 지금 국토안전장관으로 있는 부시의 오른팔이다. 펜실바니아 대법원은 톰릿지의 압력에 굴복(?) 재심 청원을 들어 주었다. 뉴욕에서는 버스를 대절하여 2백여명의 동포가 방청응원을 갔다. 그러나 재심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한탁 유죄. 방화살인범으로 종신형으로 확정!
이한탁은 구명 불능인가? 방법이 있다. 오제이 심슨처럼 하면 된다. 오제이심슨이 백인 부인을 살해한건 천하가 다 안다. 부인을 죽인 피묻은 칼을 찾아냈다. 죽이고 도망가는 걸 헬리콥터가 추적했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주고 일류변호사를 고용하자 살인범 심슨은 무죄로 풀려났다.
“여기 심슨의 지문과 피가 묻어 있는 칼이 있습니다. 심슨이 부인을 죽이는데 사용한 칼입니다”
검찰이 들이댔지만 변호사는 꿈쩍도 안했다.
“그런 소리 말아요. 진짜 살인범이 심슨의 칼을 훔처내어 슬쩍 심슨의 피를 뭍힌 후에 심슨의 부인을 살해 했을 수도 있지 않소?”
“경찰 헬리콥터가 도망가는 심슨의 자동차를 추적 촬영했오이다. 심슨이 꼼짝 없는 살인자이지요”
“도망가는게 무슨 범죄입니까? 헬리콥터가 죽이는 장면을 촬영했으면 몰라도...”
결국 지상최고의 변호사비를 받은 변호사드림팀은 심슨을 무죄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동부의 한인사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부부사채업자가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범인으로 검거된 천명수(가명)가 자백을 했다가 감옥에서 마음을 돌렸다. 경찰의 협박으로 거짓 자백했다고 우겼다. 그래도 종신형이 떨어지게 됐다. 그러자 천명수의 부모형제들은 그 유명한 오제이심슨변호사팀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몇배의 변호사비를 지불했지만 이기기만 하면 변호사비는 물론 변상금까지 나온다. 능력있는 변호사는 재판 때마다 목사님팀을 방청객으로 동원하여 배심원들의 눈길을 부드럽게 하는 기지를 발휘한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변호사비 재판비는 물론 십만달! 러가 넘는 보상금까지 받아냈다.
이한탁을 살려내야 한다. 우리는 그가 무죄이기 때문에 살려내자는 건 아니다. 그가 무죄인지 유죄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건 재판장의 몫이다. 우리는 이한탁이 동포이기에 살려내자는 것이다. 17년간 옥살이 하고있는 게 불쌍하니 살려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구명운동을 벌려야 한다. 판결전까지는 무죄원칙이 재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구명위원회가 재심을 신청하고 있으니 판결이 끝난게 아니다.
이한탁사건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다. LA의 이철수 사건처럼 무죄가 분명한건 서명이나 청원으로 구제 가능하다. 그러나 법정공방이 치열한 이한탁사건은 돈으로만 가능하다. 오제이심슨팀의 변호사를 사야한다. 수십만불이 들어야 할것이다. 한인사회는 개인을 위하여 그만한 돈을 모금하기가 힘들다. 이한탁의 가정이나 친지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다음은 <변천수의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한 이계선 목사가 보내 온 글이다. 이 목사는 "요즘 17년전 일어났던 이한탁 사건이 다시 동포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있다. 재심운동을 벌린 것이다. 그래서 회고록 뒷쪽의 이야기를 앞으로 당겨서 연재한다"라고 말했다.(변천수 회고록은 고려서점, 한국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4. 범인의눈동자-이한탁사건
방학을 맞이한 뉴욕의 여름은 무더웠다. 사람들은 푸른 계곡을 찾아 포코너 쪽으로 피서길을 떠났다. 산과 숲 과 계곡으로 유명한 포코너는 뉴욕의 여름피서지이다. 포코너 숲속에는 뉴욕 순복음교회의 기도원이 있었다. 대학생 김아미(가명)는 포코너 기도원에 가기로 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숲속에서 기도와 명상을 즐기고 싶었다. 교회에서 언니 언니하고 따르는 이지은이를 만났다.
“아미 언니, 나도 아빠하고 포코너 기도원에 가요. 언니도 같이 가줬으면 좋겠네”
“응, 나도 기도원에 가려고 하던 참이였는데 지은이와 동행하게 돼서 잘 됐네”
지은이는 얼굴이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재원 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샤프해서 그런지 정서불안을 앓고 있었다. 너무 과민하고 너무 과격 할때가 많았다. 신경질을 부리다가 가장집물을 내던지기도 하여 가정에서는 골치덩어리였다. 학교공부도 정상적이 아니였다. 그건 똑똑한 딸들이 한 번씩 겪어야 하는 홍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 이한탁씨는 이런 딸을 이해하는데 좀 부족했다.
“얘야 지은아, 넌 도대체 뭐가 부족하고 뭐가 불만 이냐? 마음껏 공부 할수있지, 자동차도 있지, 그만하면 됐지 무슨 불만이야? 너는 복이 겨워서 불만인 모양이구나. 아빠는 말이야 네 나이 또래 때...”
그 순간 꽥 소리를 지르면서 지은이가 아빠 말을 가로채고 나왔다.
“아빠, 또 그말 하려고 그러지요.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수십리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철도고등학교를 국비장학학생으로 다녔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면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했…’ 또 그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지요. 아빠 제발 저 좀 내버려둬요. 아빠 엄마가 가만이 내버려 두면 시간 지나면 저절로 낫게 돼요. 그런데 아빠가 자꾸만 들볶아 대면 저는 미쳐버리든가 죽어 버릴 거예요”
그러나 이한탁씨는 딸을 그냥 내버려 둘수가 없었다. 병원엘 데리고 가고, 보약을 먹이고, 상담실을 찾아 다녔다. 그러면 그럴수록 지은이의 증세는 더 악화돼갔다. 생각다 못한 이한탁씨는 딸을 기도원으로 데리고 가서 특별안수기도를 받기로 했다. 하나님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한탁씨 부녀와 아미는 교회 벤차를 타고 포코너 기도원으로 달려갔다. 수십 만평짜리 숲속에 있는 기도원에는 중앙에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있고 작은 숙소들이 숲속에 숨어있었다. 이한탁씨 일행은 기도원 정문을 지나 왼쪽 숲속에 있는 숙소를 배정 받았다. 목조로 된 집인데 오래돼서 판자 집처럼 약해 보였다.
다음날 지은이는 특별안수기도를 받았다. 기도원원장 목사와 남자세명이 한조가 되어 5시간동안 안수기도를 했다. 안수기도는 머리나 아픈곳에 손을 얹고하는 기도다. 안수기도로 안되면 안찰기도(按察祈禱-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하는 기도)를 한다. 안찰기도에 몸이 아픈 지은이가 몸을 비틀면서 일어서려고 하면 세명의 장정들이 달려든다. 손발을 묶다시피 힘으로 눌러버리고는 안타기도(按打祈禱 -손바닥으로 따귀 때리듯 때리는 기도)에 들어간다. 기도를 해도 안되면 목사는 “사탄아 물러가라! 지은이를 괴롭히는 사탄 귀신아 물러가라!” 외치면서 구타기도(毆打祈禱) 로 들어가기도한다. 5시간 동안의 특별기도로 지은이는 초주검상태가 돼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이한탁씨는 안쓰럽다 못해 미칠 지경 이었다. 어쩌면 지은이보다도 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건 기도가 아니라 고문이야 고문! 남산 중앙정보부 고문이지!)
이한탁씨는 딸을 데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아미는 지은이의 안수기도가 너무 끔찍스러워 지은이의 옆방에 있기가 거북스러웠다.
(숙소에서 잘게 아니라 성전에 가서 철야기도 하면서 지은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아미는 그날 밤 성전에서 밤을 새웠다. 지은이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아미는 깜짝 놀랐다. 숙소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이 턱밑에 차도록 숙소 앞으로 달려온 아미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거센 불길에 휩싸인채 숙소가 타면서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데 이한탁씨가 우두커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놀라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 지은이는 어디 있어요?”
“저기 저안에...”
이한탁씨는 무표정하게 손가락으로 불타고 있는 집안을 가리켰다.
아미는 부르짖었다.
“아저씨, 왜 지은이를 구하지 않고 여기에 서있어요?”
“불타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그래요?”
그럴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한 아미는 이한탁씨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때 아미의 눈과 이한탁씨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아미는 깜짝 놀랐다. 몸이 움찔하면서 뼈마디가 떨려왔다. 나이트 메어를 만난 것처럼 기절할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미는 헛것을 본것처럼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말을 잃어버렸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허공만 바라봤다. 그러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도 했다. 경찰조사이건 친구이건 이한탁씨 얘기만 나오면 “나는 몰라요 나는 몰라요”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이한탁사건의 최초의 목격자인 김아미는 이한탁사건의 최대피해자다. 아미는 그후 다니던 대학교공부를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한체 40넘은 처녀로 늙어가고 있다. 직장생활도 불가능하다. 뉴욕을 떠나 뉴저지 채리힐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다. 죽은 지은이의 귀신이 덮어 씨워서 그럴까? 지은이를 죽인 범인의 눈동자를 봐서 그럴까? 아미는 지금도 이한탁사건의 악령에 사로잡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아미 말고 또 한사람의 피해자가 있다. 그는 5시간 특별기도로 지은이를 괴롭혔던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얼마후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이런일이? 탐정소설같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다시 불난집으로 돌아간다. 교인들이 달려오고 소방차와 경찰이 달려와 보니 숙소는 완전히 잿더미가 돼있었다. 불에 타죽은 지은이는 재가 된채 망부석처럼 꼿꼿이 앉아있었다. 다비식(茶毘式)을 올려 불에 타죽은 고승처럼 재로 앉아 있었다. 경찰이 손을 대자지은이의 재몸은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지은이는 이렇게 불에 타죽었다.
경찰은 지은이의 아버지 이한탁씨를 방화 살인범으로 구속했다. 정신질환의 딸을 고치러왔다가 5시간의 안수기도로 고통을 당하는 걸 보고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린 이한탁씨가 불을 질러 죽게했다는 것이다. 증거로 휘발유통을 제시했다.
이한탁씨는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임을 주장했다. 휘발유통은 곤로용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다보니 불이 난지라 얼떨결에 일어나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노라고 말했다. 불길이 험하여 딸을 구하러 들어 갈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한탁사건은 매스컴을 타고 한인사회를 강타했다. 모른체 할수가 없었다. 이한탁씨가 졸업한 철도고등학교 동창생을 중심으로 “이한탁 구명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들은 발이 닳도록 뛰어 다녔다. 그래도 진척이 없자 뉴욕한인회에 위임해 버렸다. 뉴욕 한인회장 김재택박사는 이걸 한인인권위원회장인 나에게 떠 넘겼다. 나는 억지 춘향으로 “이한탁구명위원회”를 맡게 됐다.
위원회를 열면서 나는 이렇게 천명했다.
“이한탁구명위원회나 위원장인 나에게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파악하여 나름대로 연구해야 할것입니다. 우선 이한탁씨를 면회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정황이 나를 뜨겁게 만들면 올인하여 미 주류사회를 파고들어가 주류사회언론의 협조를 얻어내어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려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이 형성되지 않으면 구명위원장직을 맡지 않겠습니다”
나는 먼저 뉴욕 순복음교회의 김남수목사를 찾아갔다. 김남수목사는 이한탁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한탁씨부녀가 교회 교인 인데다가 교회기도원 숙소에서 불이나 지은이가 타 죽었다. 이한탁씨 주장대로 누전으로 불이난 걸로 되면 막대한 보상으로 교회가 날라 갈지도 모른다. 방화를 고집하면 교인 이한탁씨를 살인범으로 모는 꼴이 된다. 또 기도원 목사가 5시간동안이나 지은이에게 혹사안수기도 한것도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안수기도로 혹사당한 이한탁씨 부녀가 정신불안을 일으켜 방화살인이 났다고 수군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남수목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나는 김목사에게 부탁했다.
“이한탁집사는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같혀있고 김목사님은 여론의 감옥에 갖혀있습니다. 이 문제가 양쪽에서 원하는 대로 풀렸으면 좋으련만 사안이 복잡하여 나도 착잡하기만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동포사회에 서광이 비취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한탁씨부인과 이씨종친회장을 대동하고 팬실바니아에 있는 감옥으로 차를 몰았다. 이한탁씨는 종신형을 언도 받고 수감돼있었다. 4시간짜리 특별면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한탁씨는 자기를 살려주려고 달려온 나에게 성의가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살려달라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해야 하는데, 황금 동아밧줄을 내려 보내줘도 귀찮아하는 태도였다. 나를 취조관처럼 생각하는것 같았다.
“이것 보시오. 나는 당신을 구명하러온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해줄만한 숨겨진 이야기를 해줘야 우리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을 구하러 나설것이 아닙니까? 가슴을 열고 말해보세요”
내가 도리어 호소를 해봤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맥이 빠져 20분만에 면회를 끝내고 나와 버렸다. 이한탁씨 부인보고 대신 들어가서 달래보라고 했다. 그러나 부인이 들어가도 소용 없었다. 면회하다가 부부싸움을 하는지 고성만 오갈 뿐 이었다.
우리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코너 기도원을 들려봤다. 화재가 난 숙소와 똑같은 건물을 봤다. 6.25시절의 하꼬방 같은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에 불이 난 것이다. 누전사고냐 방화냐 하는 문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하꼬방에 불이나면 누구나 쉽사리 도망쳐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부질없어 보였다.
이한탁씨는 감형이 없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재심이 없는 확정형이다. 김대중대통령이 미국을 방문도중 이한탁 사건을 전해들었다. 청와대로 돌아간 김대통령은 당시 펜실바니아 주지사 톰릿지에게 이한탁재심 청원서를 보냈다. 톰릿지는 지금 국토안전장관으로 있는 부시의 오른팔이다. 펜실바니아 대법원은 톰릿지의 압력에 굴복(?) 재심 청원을 들어 주었다. 뉴욕에서는 버스를 대절하여 2백여명의 동포가 방청응원을 갔다. 그러나 재심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한탁 유죄. 방화살인범으로 종신형으로 확정!
이한탁은 구명 불능인가? 방법이 있다. 오제이 심슨처럼 하면 된다. 오제이심슨이 백인 부인을 살해한건 천하가 다 안다. 부인을 죽인 피묻은 칼을 찾아냈다. 죽이고 도망가는 걸 헬리콥터가 추적했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주고 일류변호사를 고용하자 살인범 심슨은 무죄로 풀려났다.
“여기 심슨의 지문과 피가 묻어 있는 칼이 있습니다. 심슨이 부인을 죽이는데 사용한 칼입니다”
검찰이 들이댔지만 변호사는 꿈쩍도 안했다.
“그런 소리 말아요. 진짜 살인범이 심슨의 칼을 훔처내어 슬쩍 심슨의 피를 뭍힌 후에 심슨의 부인을 살해 했을 수도 있지 않소?”
“경찰 헬리콥터가 도망가는 심슨의 자동차를 추적 촬영했오이다. 심슨이 꼼짝 없는 살인자이지요”
“도망가는게 무슨 범죄입니까? 헬리콥터가 죽이는 장면을 촬영했으면 몰라도...”
결국 지상최고의 변호사비를 받은 변호사드림팀은 심슨을 무죄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동부의 한인사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부부사채업자가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범인으로 검거된 천명수(가명)가 자백을 했다가 감옥에서 마음을 돌렸다. 경찰의 협박으로 거짓 자백했다고 우겼다. 그래도 종신형이 떨어지게 됐다. 그러자 천명수의 부모형제들은 그 유명한 오제이심슨변호사팀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몇배의 변호사비를 지불했지만 이기기만 하면 변호사비는 물론 변상금까지 나온다. 능력있는 변호사는 재판 때마다 목사님팀을 방청객으로 동원하여 배심원들의 눈길을 부드럽게 하는 기지를 발휘한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변호사비 재판비는 물론 십만달! 러가 넘는 보상금까지 받아냈다.
이한탁을 살려내야 한다. 우리는 그가 무죄이기 때문에 살려내자는 건 아니다. 그가 무죄인지 유죄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건 재판장의 몫이다. 우리는 이한탁이 동포이기에 살려내자는 것이다. 17년간 옥살이 하고있는 게 불쌍하니 살려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구명운동을 벌려야 한다. 판결전까지는 무죄원칙이 재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구명위원회가 재심을 신청하고 있으니 판결이 끝난게 아니다.
이한탁사건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다. LA의 이철수 사건처럼 무죄가 분명한건 서명이나 청원으로 구제 가능하다. 그러나 법정공방이 치열한 이한탁사건은 돈으로만 가능하다. 오제이심슨팀의 변호사를 사야한다. 수십만불이 들어야 할것이다. 한인사회는 개인을 위하여 그만한 돈을 모금하기가 힘들다. 이한탁의 가정이나 친지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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