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선 목사가 감옥에서 만난 박동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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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6-12-2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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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멘넷 칼럼니스트 이계선 목사(퀸즈평화교회)가 박동선 씨를 감옥으로 찾아가 면회하고 아멘넷에 기고한 글입니다.
박동선씨는 "이래 뵈도 제가 서울 연동교회 집사입니다"라고 말하고 은퇴 목회자를 위한 로뎀의 집에 2만5천불을 헌금한 것을 증언하기도 했다. 또 "제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존운동에 여생을 바치려고 합니다"라고 출감 후의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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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선“을 보러 갈 때처럼 나는 흥분했다. 결혼대상자를 처음 만나보는걸 첫선이라고 한다. 박동선씨를 책과 편지를 통하여는 만나봤지만 얼굴은 처음이니 첫선은 첫선이다. 후러싱에서 출발한 차가 허치슨 파크웨이를 따라 신나게 강변을 달리더니 50분후에 웨체스터구치소에 도착했다.
“주변의 숲과 나무가 아름답군요. 꼭 양떼들이 몰려다니는 초원에 세워진 알프스목장집처럼 멋져 보여요”
동행한 김여사가 소풍 나온 소녀처럼 떠들었다.
“그런 소리 마세요. 천하를 호령하는 맹수들도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쥐구멍만 찾는 곳이 감옥이랍니다. 여기는 기결수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구치소라서 감옥보다도 더 힘든 곳이지요.”
안내 차 온 노목사가 걱정했다. 화요일이라 변호사와 성직자만 면회할 수 있었다. 수속이 복잡했다. 몸에 지닌 것은 볼펜 하나까지 빼놓아야한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반인이 면회하는 수요일은 밖에서 한 시간이상을 기다리고 면회실에서 또 한 시간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넥타이는 물론 완전 무장해제를 하고 들어가지요. 면회 온 게 아니라 꼭 죄수가 되어 들어가는 기분이이에요. 그래도 변호사와 목사는 신사대접을 해줘 넥타이를 맬 수 있답니다”
면회실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박동선씨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주에 면회 왔을 때 박동선회장의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어요. 신장이식을 한데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아주 힘들어 하더라 구요. 더 악화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걱정하고 있는데 박동선씨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이 걸어오고 있었다. 워싱턴정가를 주름잡던 로비스트도, 허리웃의 미녀들을 거느리고 다니던 카사노바도 아니었다. 인간이 되어 걸어오고 있었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 박동선씨가 수형생활을 잘 견디고 있구나. 신앙생활에 열심 하여 천사들이 보호하고 있구나!)
초면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처럼 아주 반가웠다.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불암의 얼굴을 합성한듯 한 인상이었다. 맑고 밝고 가벼워보였다.
“밖에서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뜨거운 사랑 때문에 아직 히팅을 주지 않는 겨울감옥인데도 따듯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수술을 하고 40년째 당뇨를 앓고 있고 고혈압으로 언제 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목숨을 살고 있는데도 순간순간을 잘 이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시고 책까지 보내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요즘 팬레터를 받는 스타가 된 기분으로 행복에 묻혀 지낸 답니다”
편지와 책을 보내준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고 했다. 감옥생활의 어려움, 육신적인 고통을 얘기하던 박동선씨는 신앙간증을 시작했다.
“이래 뵈도 제가 서울 연동교회집사입니다. 3대에 걸친 기독교집안이지요. 잘나갈 때 제가 미션재단인 숭의학원을 인수한건 신앙의 사명감 때문이었지요. 저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누님은 서울 백병원원장 부인인데 영락교회장로이지요. 한경직목사님이 영락교회의 첫 번째 여성장로로 세우셨는데 아마 한국예수교장로회(통합)의 제1호 여성장로일 거예요.”
박동선씨는 아주 단순하고 순수한 성품이었다. 그래서 옥중에서 고생하면서도 한국에 있는 로뎀나무집의 딱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뜻 2만5천불을 헌금하기도 했다. 로뎀 나무집은 오갈 데가 없는 가난한 은퇴목사님들을 위한 안식처이다. 40분 넘게 이야기하던 그는 미안해했다.
“저 혼자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지요? 이제는 목사님이 말씀해주세요”
“아니에요. 더 하세요. 박선생님은 우리들 만날 때 말고는 이야기 할데가 없지요. 또 사실 우리가 선생님을 면회온건 설교하러 온게 아니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입니다. 그게 믿음치료의 원리이지요. 가령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말없이 듣기만 하신답니다.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아무말씀을 안하셔요. 그 대신 다 듣고 난후에는 기도한사람의 이야기를 몽땅 가져가버리는 거예요. 기도 이야기로 털어놓은 고통, 죄, 아픔, 문제, 병, 죽음을 예수님이 이야기 보따리채 짊어지고 가져가 버린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던 기도하면 다 해결되게 마련이지요.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이야기이니까요. 오늘 박선생님이 하신 아프고 쓰린 이야기들을 꼭 가슴에 품고 돌아가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풀어놓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문제가 해결 될 거예요! .”
심방기도회로 나는 내적 자유(행16:26)를 설교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매 감옥문이 열린 이야기다. 내적 자유는 참 자유, 완전한 자유, 외부의 어떤 감옥도 포승도 구속 할수 없는 절대자유다.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는 내적 자유를 얻게 된다. 내적 자유의 산실은 아이러니 칼 하게도 감옥이 최적의 장소다. 설교를 다 듣고 난 그가 말했다.
“목사님, 제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존운동에 여생을 바치려고 합니다. 화려하게 무대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서 시골에서 떠돌아다니는 노랫가락, 서민들의 이상한 춤사위, 옛 풍습 등, 사그러져 가는 무형의 전통들을 모아 보존하고 싶어요. 무형문화재야말로 민족고유의 숨결이 숨쉬고 있는 영원한 민족혼이니까요”
박동선씨는 우리보다도 더 한국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50년 넘게 미국의 상류사회에서 살았지만 시민권도 영주권도 거부했다. 그는 한국으로 보내야한다. 감옥살이를 해도 한국에서 감옥살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박동선본국보내기 청원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감옥에 있는 박동선씨 에게 따듯한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계속된 편지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Tongsun Park #188027
10 Woods Rd Valhalla NY 10595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박동선씨는 "이래 뵈도 제가 서울 연동교회 집사입니다"라고 말하고 은퇴 목회자를 위한 로뎀의 집에 2만5천불을 헌금한 것을 증언하기도 했다. 또 "제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존운동에 여생을 바치려고 합니다"라고 출감 후의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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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선“을 보러 갈 때처럼 나는 흥분했다. 결혼대상자를 처음 만나보는걸 첫선이라고 한다. 박동선씨를 책과 편지를 통하여는 만나봤지만 얼굴은 처음이니 첫선은 첫선이다. 후러싱에서 출발한 차가 허치슨 파크웨이를 따라 신나게 강변을 달리더니 50분후에 웨체스터구치소에 도착했다.
“주변의 숲과 나무가 아름답군요. 꼭 양떼들이 몰려다니는 초원에 세워진 알프스목장집처럼 멋져 보여요”
동행한 김여사가 소풍 나온 소녀처럼 떠들었다.
“그런 소리 마세요. 천하를 호령하는 맹수들도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쥐구멍만 찾는 곳이 감옥이랍니다. 여기는 기결수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구치소라서 감옥보다도 더 힘든 곳이지요.”
안내 차 온 노목사가 걱정했다. 화요일이라 변호사와 성직자만 면회할 수 있었다. 수속이 복잡했다. 몸에 지닌 것은 볼펜 하나까지 빼놓아야한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반인이 면회하는 수요일은 밖에서 한 시간이상을 기다리고 면회실에서 또 한 시간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넥타이는 물론 완전 무장해제를 하고 들어가지요. 면회 온 게 아니라 꼭 죄수가 되어 들어가는 기분이이에요. 그래도 변호사와 목사는 신사대접을 해줘 넥타이를 맬 수 있답니다”
면회실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박동선씨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주에 면회 왔을 때 박동선회장의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어요. 신장이식을 한데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아주 힘들어 하더라 구요. 더 악화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걱정하고 있는데 박동선씨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이 걸어오고 있었다. 워싱턴정가를 주름잡던 로비스트도, 허리웃의 미녀들을 거느리고 다니던 카사노바도 아니었다. 인간이 되어 걸어오고 있었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 박동선씨가 수형생활을 잘 견디고 있구나. 신앙생활에 열심 하여 천사들이 보호하고 있구나!)
초면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처럼 아주 반가웠다.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불암의 얼굴을 합성한듯 한 인상이었다. 맑고 밝고 가벼워보였다.
“밖에서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뜨거운 사랑 때문에 아직 히팅을 주지 않는 겨울감옥인데도 따듯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수술을 하고 40년째 당뇨를 앓고 있고 고혈압으로 언제 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목숨을 살고 있는데도 순간순간을 잘 이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시고 책까지 보내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요즘 팬레터를 받는 스타가 된 기분으로 행복에 묻혀 지낸 답니다”
편지와 책을 보내준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고 했다. 감옥생활의 어려움, 육신적인 고통을 얘기하던 박동선씨는 신앙간증을 시작했다.
“이래 뵈도 제가 서울 연동교회집사입니다. 3대에 걸친 기독교집안이지요. 잘나갈 때 제가 미션재단인 숭의학원을 인수한건 신앙의 사명감 때문이었지요. 저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누님은 서울 백병원원장 부인인데 영락교회장로이지요. 한경직목사님이 영락교회의 첫 번째 여성장로로 세우셨는데 아마 한국예수교장로회(통합)의 제1호 여성장로일 거예요.”
박동선씨는 아주 단순하고 순수한 성품이었다. 그래서 옥중에서 고생하면서도 한국에 있는 로뎀나무집의 딱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뜻 2만5천불을 헌금하기도 했다. 로뎀 나무집은 오갈 데가 없는 가난한 은퇴목사님들을 위한 안식처이다. 40분 넘게 이야기하던 그는 미안해했다.
“저 혼자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지요? 이제는 목사님이 말씀해주세요”
“아니에요. 더 하세요. 박선생님은 우리들 만날 때 말고는 이야기 할데가 없지요. 또 사실 우리가 선생님을 면회온건 설교하러 온게 아니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입니다. 그게 믿음치료의 원리이지요. 가령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말없이 듣기만 하신답니다.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아무말씀을 안하셔요. 그 대신 다 듣고 난후에는 기도한사람의 이야기를 몽땅 가져가버리는 거예요. 기도 이야기로 털어놓은 고통, 죄, 아픔, 문제, 병, 죽음을 예수님이 이야기 보따리채 짊어지고 가져가 버린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던 기도하면 다 해결되게 마련이지요.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이야기이니까요. 오늘 박선생님이 하신 아프고 쓰린 이야기들을 꼭 가슴에 품고 돌아가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풀어놓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문제가 해결 될 거예요! .”
심방기도회로 나는 내적 자유(행16:26)를 설교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매 감옥문이 열린 이야기다. 내적 자유는 참 자유, 완전한 자유, 외부의 어떤 감옥도 포승도 구속 할수 없는 절대자유다.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는 내적 자유를 얻게 된다. 내적 자유의 산실은 아이러니 칼 하게도 감옥이 최적의 장소다. 설교를 다 듣고 난 그가 말했다.
“목사님, 제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존운동에 여생을 바치려고 합니다. 화려하게 무대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서 시골에서 떠돌아다니는 노랫가락, 서민들의 이상한 춤사위, 옛 풍습 등, 사그러져 가는 무형의 전통들을 모아 보존하고 싶어요. 무형문화재야말로 민족고유의 숨결이 숨쉬고 있는 영원한 민족혼이니까요”
박동선씨는 우리보다도 더 한국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50년 넘게 미국의 상류사회에서 살았지만 시민권도 영주권도 거부했다. 그는 한국으로 보내야한다. 감옥살이를 해도 한국에서 감옥살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박동선본국보내기 청원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감옥에 있는 박동선씨 에게 따듯한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계속된 편지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Tongsun Park #188027
10 Woods Rd Valhalla NY 10595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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