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가 선한 이웃이 된 사연
페이지 정보
교계ㆍ2014-08-30 00:00관련링크
본문
누가 선한 이웃인가?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대표 김창열 목사)는 8월 25일부터 29일까지 롱아일랜드 소재 와일드우드 주립공원에서 섬머스쿨을 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여름성경학교 캠프를 열었다. 그 현장은 누가 선한 이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여름성경학교 캠프장에서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는 왜 쉽지 않은 어린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왜 사마리아인이 자처하고 선한이웃 사역을 시작했을까?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사역의 대상은 싱글 가정등 어려운 가정 어린이들이다. 김창열 목사는 불우한 환경속에 자랐다. 부자인 부모가운데 태어났지만 보증을 잘못서 가정이 풍지박산나고, 부모와 헤어져 어릴때 대부분을 큰누나가 젖동냥을 하면서 자랐다. 어려운 환경때문에 뒤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에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김 목사는 뛰어난 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어릴때 부터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실력이 더해져 회사의 인정을 받았다. 동남아 지역 지사장으로 부터 시작하여 미국에 오게 되었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던 김창열 목사의 눈에 첫 발을 내디딘 맨하탄은 마치 돈이 깔려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서 미국의 돈을 다 벌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한성교회에 출석할때 선교사 선교보고를 듣고 깨지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 그리고 사역의 동역자 방영순 사모를 만난다.
방영순 사모의 이력도 독특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어른 부흥회에서 참가했다가 콜링을 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릴때 잘 신앙교육을 시켜면 변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 사역을 시작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각 선교지를 돌며 어린이 사역을 셋업하는 것을 도왔다. 방영순 사모가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를 1회 졸업하고 나약대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모교의 영성훈련에 초대받아 갔다가 충만하게 찬양을 인도하던 김창열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두 청춘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며 결혼을 하게 된다.
부부는 17년전 결혼하고 베이사이드에 독채를 얻어 바로 어린이사역을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 자신과 같은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고아원을 꿈꾸었던 김창열 목사, 그리고 어릴때 주님을 영접하고 어린이 사역의 꿈을 키웠던 부부가 힘을 합한 것이다.
결혼하고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를 시작한지 1년만에 김창열 목사는 간의 병때문에 쓰러진다. 어릴때 힘들고 가난하게 지낸 것이 영향을 받은 것. 그리고 16년째 지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수차례 생명의 고비를 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도 들어야 했다. 이에 대해 김창열 목사의 간증이 인상적이다. 김 목사는 "다른 마음을 먹지말라고 하나님께서 불편하게 하셨다. 처음 어린이 사역을 시작할때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 잘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건강했다면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니 눈을 다른데 돌릴 여유가 없었다"고 간증했다.
김창열 목사의 심각한 지병도 선한 어린이 사역을 막지 못했다. 방 사모는 "부엌에 군대용 간이침대를 놓고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한번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쉰 적이 없다. 병원에서는 장례식 준비하라는데도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도 섬머스쿨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몇번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하나님은 부부에게 어린이 사역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을 주셨다.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는 자신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 와 있는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곳에서 좋은 조건으로 교육을 담당 부교역자으로 오라고 했지만 모두 거절할 수 있었다.
▲여름성경학교 캠프
현재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사역은 자비량에 가깝다. 그래도 건강한 방영순 사모가 돈벌어서 생활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162가 선교관 렌트비 3분의 2도 감당해야 한다. 여름성경학교 캠프를 열면서도 크레딧카드를 사용하면서 시작했다. 캠프는 바닷가가 인접해 있는 와일드우드 공원 숲속 캠프장에서 열렸다. 프로그램은 여름성경학교(VBS)가 중심이 됐다. 그리고 해돋이 구경하기, 밤의 별 세기, 바다에서 수영하기, 인근 농장에서 싱싱한 과일 맛보기 등 평생잊지 못할 시간들을 보냈다.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는 어린이날과 성탄절 일년에 두번 '해피 패밀리' 행사를 가진다. 이외에도 플러싱 162가에 선교관에서 방과후 학교, 토요학교, 섬머스쿨, 여름성경학교 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은 싱글 가정 어린이들이 70%인데 이제는 40%으로 줄었다. 대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인들, 개척교회 목사와 전도사등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주일이면 부모들이 일을 나가 혼자 있게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감사한 것은 섬기는 어린이 가정의 과반수가 예수를 믿지 않지만 섬김의 과정을 통해 가정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소개(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소개(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캠프장에서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는 왜 쉽지 않은 어린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왜 사마리아인이 자처하고 선한이웃 사역을 시작했을까?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사역의 대상은 싱글 가정등 어려운 가정 어린이들이다. 김창열 목사는 불우한 환경속에 자랐다. 부자인 부모가운데 태어났지만 보증을 잘못서 가정이 풍지박산나고, 부모와 헤어져 어릴때 대부분을 큰누나가 젖동냥을 하면서 자랐다. 어려운 환경때문에 뒤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에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김 목사는 뛰어난 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어릴때 부터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실력이 더해져 회사의 인정을 받았다. 동남아 지역 지사장으로 부터 시작하여 미국에 오게 되었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던 김창열 목사의 눈에 첫 발을 내디딘 맨하탄은 마치 돈이 깔려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서 미국의 돈을 다 벌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한성교회에 출석할때 선교사 선교보고를 듣고 깨지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 그리고 사역의 동역자 방영순 사모를 만난다.
방영순 사모의 이력도 독특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어른 부흥회에서 참가했다가 콜링을 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릴때 잘 신앙교육을 시켜면 변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 사역을 시작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각 선교지를 돌며 어린이 사역을 셋업하는 것을 도왔다. 방영순 사모가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를 1회 졸업하고 나약대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모교의 영성훈련에 초대받아 갔다가 충만하게 찬양을 인도하던 김창열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두 청춘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며 결혼을 하게 된다.
부부는 17년전 결혼하고 베이사이드에 독채를 얻어 바로 어린이사역을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 자신과 같은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고아원을 꿈꾸었던 김창열 목사, 그리고 어릴때 주님을 영접하고 어린이 사역의 꿈을 키웠던 부부가 힘을 합한 것이다.
결혼하고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를 시작한지 1년만에 김창열 목사는 간의 병때문에 쓰러진다. 어릴때 힘들고 가난하게 지낸 것이 영향을 받은 것. 그리고 16년째 지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수차례 생명의 고비를 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도 들어야 했다. 이에 대해 김창열 목사의 간증이 인상적이다. 김 목사는 "다른 마음을 먹지말라고 하나님께서 불편하게 하셨다. 처음 어린이 사역을 시작할때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 잘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건강했다면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니 눈을 다른데 돌릴 여유가 없었다"고 간증했다.
김창열 목사의 심각한 지병도 선한 어린이 사역을 막지 못했다. 방 사모는 "부엌에 군대용 간이침대를 놓고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한번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쉰 적이 없다. 병원에서는 장례식 준비하라는데도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도 섬머스쿨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몇번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하나님은 부부에게 어린이 사역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을 주셨다. 김창열 목사와 방영순 사모는 자신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 와 있는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곳에서 좋은 조건으로 교육을 담당 부교역자으로 오라고 했지만 모두 거절할 수 있었다.
▲여름성경학교 캠프
현재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사역은 자비량에 가깝다. 그래도 건강한 방영순 사모가 돈벌어서 생활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162가 선교관 렌트비 3분의 2도 감당해야 한다. 여름성경학교 캠프를 열면서도 크레딧카드를 사용하면서 시작했다. 캠프는 바닷가가 인접해 있는 와일드우드 공원 숲속 캠프장에서 열렸다. 프로그램은 여름성경학교(VBS)가 중심이 됐다. 그리고 해돋이 구경하기, 밤의 별 세기, 바다에서 수영하기, 인근 농장에서 싱싱한 과일 맛보기 등 평생잊지 못할 시간들을 보냈다.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는 어린이날과 성탄절 일년에 두번 '해피 패밀리' 행사를 가진다. 이외에도 플러싱 162가에 선교관에서 방과후 학교, 토요학교, 섬머스쿨, 여름성경학교 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은 싱글 가정 어린이들이 70%인데 이제는 40%으로 줄었다. 대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인들, 개척교회 목사와 전도사등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주일이면 부모들이 일을 나가 혼자 있게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감사한 것은 섬기는 어린이 가정의 과반수가 예수를 믿지 않지만 섬김의 과정을 통해 가정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소개(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이웃어린이선교회 소개(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