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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 및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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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4-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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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가득한 영광의 하나님’ 53장 찬송가의 작사자이며, 한국신학대학 학장 및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고 만수 김정준 박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예배와 특별출판 및 강연회가 11월 6일(목) 오전 뉴저지 예닮원에서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1부 기념예배에서는 김만우 목사가 말씀을 전했으며, 2부 특별강연에서는 노영찬 박사(George Mason 대학교 종교철학 교수)가 “김정준 신학이 한국과 세계 교계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또 드류신학대학원 예배·설교학 겸임 교수인 김남중 목사가 기념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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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 및 강연회

100주년 기념 출판으로 김정준 목사가 직접 쓴 자서전, 30개월간의 마산 요양소에서의 투병기와 병원목회 그리고 그를 만난 사람들의 진솔하고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담긴 "관에서 나온 사나이",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설교 13편 CD가 배포되어 참석한 모두가 김 목사의 삶과 신앙을 되새기게 하였다. 구입을 원하는 사람은 718-213-8645(김영호 목사)로 연락하면 가능하다.

김영호 목사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소개하고 “33년이란 긴 세월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에 일반적으로는 이미 잊혔을 스승을 위해 뜻 깊은 행사를 가졌으며, 김정준 박사를 살아생전에 한 번도 얼굴을 대한 적도 강의를 들은 적도 없는 30대 목사가 김정준 박사의 저서와 자료에 근거한 기념사로 참석한 모두에게 큰 감동을 불 일으켜 놀라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기념예배 정도가 아니라 '한국 신학의 세계화'에 촛점을 둔 특별강연이 시도되었다는 점, 미국의 행사계획이 알려지자 뒤늦게 한국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11월 6일 서울성남교회에서 개최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노영찬 박사(George Mason 대학교 종교철학 교수)는 김정준의 신학을 3 관점에서 세계 신학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첫째, 김정준 박사는 구약성서 학자로서의 한계와 신학자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서 더 깊은 차원에서 인간의 고통의 문제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폭 넓은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를 접하지 못했던 한국역사를 더 깊은 차원에서 고통의 해석과 그 고통의 승화를 경험하는 한국인의 토양을 깊이 이해했던 신학자였다. 둘째, 그는 단순히 학문적으로 한국의 한의 소리이해에 그치지 않고 민중 즉 그는 신학을 '머리로만 아니라 실재 우리의 '한'의 소리를 내보기 위해 한국적 시를 짓고 작사를 한 토착화와 민중위한 신학자였다. 셋째, 그는 삶과 학문을 둘로 보지 않았다. 삶 그 자체가 공부였다. 목회생활, 마산결핵요양소의 투병생활과 병원목회 경험은 학문하는 신학자들이 소홀이 하기 쉬운 경건의 차원을 잃지 않게 해 주었다. 그는 현대의 학문적 방법으로 신학을 연구했지만 그의 학문은 이성과 합리와 분석적 사고를 초월해서 인간의 감성과 직관과 영성의 중요성들 강조한 경건한 신학자였다. 노영찬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오늘 세계는 근대의 절정기였던 20세기를 벗어나 근대 후기인 21세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김정준 박사님의 삶과 가르침을 재음미하면서 21세기가 요구하는 목회자 상, 신학자의 상, 교역자의 상, 그리고 인간의 상을 찾아보아야겠다."

이어서 김남중 목사(뉴저지 드류신학대학원 예배·설교학 겸임 교수)는 기념사를 통해 김정준 박사의 삶과 그의 가르침의 특징과 우리가 이어 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새 방향제시했는데 기념사 전문을 소개한다.

故 김정준 박사 탄생 100 주년 기념사(김남중 목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단테의 신곡 첫 부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열심히 길을 걸어 왔는데, 인생의 절반 길에서 길을 잃고 가야 할 방향마저도 잃어버렸다는 단테의 고백은 우리 삶의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참으로 공감이 됩니다. 인생이 길이어서 그럴까요? 우리는 때때로 이 길을 잘 왔는지 그리고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곤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길을 알것 같은데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갈림길이라도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두 길을 모두 다 걸어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다보면 <누가 바른 길을 가르쳐주면 좋겠다!,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좋은 길의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인생의 길 안내자, 혹은 이정표로 올곧게 서있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스승'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스승은 이정표가 되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다가, 그리스도와 참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된, 우리의 스승, 故 김정준 박사의 1세기의 삶이 새겨져있는 이정표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가 안내하는 바른 길을 걷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故 김정준 박사의 이정표에는 1914.11.6-1981.2.3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시간과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던 67년의 시간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정표에는 67년의 삶을 한 글자로 보여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있을 당시였던, 1947 년 선한목자 10 월호에 게재된 김정준 박사의 시 “내가 죽는 날: 어느 요양원 동료가 나의 죽음에 대하여 묻기에 그 답으로 지은 글”의 첫 연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 이르니’ 찬송을 불러주오. 또 요한 계시록 20 장 이하 끝까지 읽어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는 이것을 새겨주오.‘임마누엘’ 단 한 마디만을!”

그렇습니다. 김정준 박사의 이정표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임마누엘”이라고 새겨져있습니다. 김정준 박사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유신독재라는 우리 역사의 가장 고단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3세에 결핵에서 폐결핵 6급(말기, 약과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단계), 그래서 폐 하나를 잘라내고 나머지마저 썩어가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좌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단테의 고백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을 평생 신뢰하며 살았던 사람, 바로 그가 김정준 박사입니다. 그러기에 <관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기적과 같이 폐결핵이 치유되었던 김정준 박사, 그리고 1953년 캐나다 유학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태풍을 만나 태평양에서 표류하다가 예정보다 25일 늦게 구사일생으로 귀국하였기에 <용궁에서 나온 사나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기도 했던 김정준 박사는 그의 나머지 33년의 인생을 세계 신학, 세계 교회와 교류하면서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을 비추는 <경건한 임마누엘의 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시인, 문필가, 독재에 항거한 경건의 예언자, 목회자, 설교자, 찬송가 작사자, 구약학자, 교수, 한국신학대학 학장,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교회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컬 운동가, 민족교회의 선구자, 교육행정가, 기독교 연합기관 이사장,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그는 방대한 학문 활동과 함께 신학교 육성 및 한국의 상황 신학인 민중 신학과 고난의 신학, 목민 신학등의 한국적 토착화 신학 수립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적 교류를 통한 교단 간의 협력체 발전 등에 크게 공헌하였고 ‘학문과 경건의 조화’, ‘목회와 선교를 위한 교육’이라는 신학교육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폐병을 앓는 중에도 요양원에 교회를 세울 정도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섬기고, 학생들에게 생활 신학과 경건생활을 강조했으며, 경건 훈련에 도움이 될 만한 기독교 고전을 번역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폐결핵에서 회복된 후, 김정준 박사의 고백대로 “다만 은총의 손길에 붙잡혀 산 인생”이었던 그의 나머지 33년의 삶의 행적은, 그의 호 “늦은 이삭이라는 뜻을 가진 만수(晩穗)”가 암시하듯, 익을 대로 익어 알맹이가 꽉 찬 늦가을의 벼 이삭처럼, 도저히 한 사람이 이루어낸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알맹이가 꽉 찬 엄청난 경력들과 어마 어마한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그러기에 김정준 박사의 이정표는 허망한 꿈을 쫓고 욕망을 채우며 살기에 인생의 길은 턱없이 짧고 부족하지만, 진리 안에서 바르고 참되게 살기에 인생은 충분히 긴 시간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67년의 기간을 허망한 욕망과 야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무한 인생의 속도와 평생을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경건한 사람의 인생 속도가 같을리 없음을 그의 임마누엘 신앙의 이정표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김정준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1년 2월에 마치 자신의 67년의 삶을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홀연히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였지만, 세계 신학과 세계 교회와 소통하면서, 한국 신학과 한국 교회의 미래를 거론할 때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임마누엘 신앙의 이정표>로 우뚝 서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참으로 많은 저작물을 남겼습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만 100권을 출판했으니 인쇄된 책으로 따져 6만 페이지가 되는 엄청난 분량입니다. 칼 바르트가 쓴 교회 교의학은 13권으로 9,185 페이지에 해당하는데 각주 부분에 깨알같은 글씨가 많아서 폰트 사이즈를 정상으로 하면 대략 2-3 만 페이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김정준 박사가 남긴 인쇄 분량이 마틴 루터와 칼 바르트의 인쇄 분량을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잠도 자지 않고 평생 의자 앞에만 앉아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철저하게 현실적 종말 혹은 실존적 종말 신앙을 지니고 시간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실로 은총으로 받은 제 2 의 인생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종말의 시간으로 살자.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라고 생각하자.>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 5 번 "운명"을 자주 들으며 그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마지막 시간인 것 처럼 최선을 다하며 보람있게 살았습니다. 그는 늘 편지를 받자마자 바로 정성이 담긴 답장을 보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그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임마누엘 신앙과 현실적 종말 신앙의 조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저는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설교를 할 때마다 그 시간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축복의 시간이라는 실존적 자각 속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인생들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고난으로부터 하나님에게 이르게하는 경건의 힘이 있음을 믿었고, 바로 그 경건으로부터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고난을 통한 경건의 훈련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실적 종말 신앙에 근거한 삶의 구체적인 적용을 제시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지, 정, 의를 겸비한 임마누엘 신앙의 증인들로서 교회와 민족과 역사를 섬기라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위로하고, 때로는 호랑이처럼 도전하는 예언자적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교기를 스스로 찢어 학생들에게 실과 바늘로 꿰메게하면서 <분단된 민족을 자네들이 이어주게, 분열된 교회들을 자네들이 일치시켜주게>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상징적인 예언자적 퍼포먼스로 멋스럽게 보여주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설교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원고 설교를 준비해서 등사기로 인쇄를 하여 설교 후에는 교인들에게 설교 원고를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삶에서 말씀을 번역하면서 살아가라는 그의 설교 신학과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기에 교회와 민족과 역사를 향한 그의 시선은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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