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엘킨스 목사 "수저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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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16-12-27 21:3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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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금) 열린 뉴욕목사회 컨퍼런스에서 헤더 엘킨스 목사(드류대학교 교수)가 ‘수저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성례전에 관한 내용의 자전적 강연을 했다. 통역은 같은 학교 안덕원 목사가 맡았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먹어야 한다. 누군가 우리를 먹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누군가 수저로 우리를 먹여주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의존하는 관계를 드러나게 해준다.
수저를 내밀어 먹이는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식탁을 베푸는 사랑과 친절을 확장하는 것이다. 수저를 사용하는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양육되었고 우리를 먹여준 손길의 축복을 상기시킨다. 즉 기억과 감사가 성례전적인 친교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상을 차린다. 어떻게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지 알게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은수저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가져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왜 수저 셋트를 가지고 왔는지 말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전쟁에서 만난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었으나 부대가 퇴각함에 따라 아이들과 헤어졌다.
나는 드류신대원 부학장으로 있으면서 수저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한국에 갔다. 한국에 가면 사진의 아이들을 찾거나 아버지가 수저를 가져오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83세의 퇴역군인인 아버지는 한국으로 왔다.
아버지를 비무장지대를 구경시켜드리며 아버지에게 수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은 기독교인의 무기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수저는 기독교인의 무기이다. 그것은 강력한 무기이다. 평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능력의 원천이며 주님의 명령인 “네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수저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가정에 있는 식탁에서 우리가 평화의 사도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 먹어야 하고, 인간의 삶은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주님의 형상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동해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됐다. 그 예배는 수저에 대한 예배였다. 나는 3개월 동안 한국의 수저에 대해 배웠다. 한국의 오랜 전통은 수저와 평생을 같이 한다. 한국의 수저는 미국에서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교인들에게 수저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내 설교는 수저처럼 간단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먹여주시고 기억하고 사랑한 사람에 대해 기억하자고 말할 예정이었다.
나는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먹여준 손길에 대해 축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의 식탁에서 수저의 비밀을 배웠다. 106세의 외할머니는 이제 남들을 먹여주는 것을 멈추고 받아먹게 되었다. 할머니는 앞을 볼수 없게 되자 제 손에 있는 수저를 더듬어 찾고 내손에 키스를 했다. 그것은 감사의 표시인 동시에 성례전적인 영감을 주는 것이다.
저는 교인들에게 아버지의 수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수저는 그리스도인의 무기라고 말해주었다. 교인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은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바구니를 앞에 두고 수저를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요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으로 만든 밥상보로 수저 놓을 곳을 표시했다.
모두 그곳에 수저를 놓았다. 한 아기엄마는 젖병을 놓기도 했다. 아기엄마는 아기가 복음으로 양육되기를 생명의 양식으로 커가기를 원했다.
갑자기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 성도는 바구니를 들고 “여기에는 141개의 수저밖에 없구나, 다른 2천개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했다. 목사님과 교우들은 그 의미를 찾을때까지 기도를 했고 의미를 찾게 되면 그들의 수저로 무엇을 할 것 이라고 이야기 했다.
수저들의 비전, 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무기, 그것은 우리의 과제이며 우리가 사수해야 할 우리의 전쟁터이다. 예수님, 그리스도, 부활하신 우리 대장은 우리에게 마지막 명령을 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먹어야 한다. 누군가 우리를 먹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누군가 수저로 우리를 먹여주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의존하는 관계를 드러나게 해준다.
수저를 내밀어 먹이는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식탁을 베푸는 사랑과 친절을 확장하는 것이다. 수저를 사용하는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양육되었고 우리를 먹여준 손길의 축복을 상기시킨다. 즉 기억과 감사가 성례전적인 친교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상을 차린다. 어떻게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지 알게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은수저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가져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왜 수저 셋트를 가지고 왔는지 말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전쟁에서 만난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었으나 부대가 퇴각함에 따라 아이들과 헤어졌다.
나는 드류신대원 부학장으로 있으면서 수저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한국에 갔다. 한국에 가면 사진의 아이들을 찾거나 아버지가 수저를 가져오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83세의 퇴역군인인 아버지는 한국으로 왔다.
아버지를 비무장지대를 구경시켜드리며 아버지에게 수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은 기독교인의 무기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수저는 기독교인의 무기이다. 그것은 강력한 무기이다. 평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능력의 원천이며 주님의 명령인 “네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수저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가정에 있는 식탁에서 우리가 평화의 사도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 먹어야 하고, 인간의 삶은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주님의 형상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동해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됐다. 그 예배는 수저에 대한 예배였다. 나는 3개월 동안 한국의 수저에 대해 배웠다. 한국의 오랜 전통은 수저와 평생을 같이 한다. 한국의 수저는 미국에서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교인들에게 수저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내 설교는 수저처럼 간단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먹여주시고 기억하고 사랑한 사람에 대해 기억하자고 말할 예정이었다.
나는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먹여준 손길에 대해 축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의 식탁에서 수저의 비밀을 배웠다. 106세의 외할머니는 이제 남들을 먹여주는 것을 멈추고 받아먹게 되었다. 할머니는 앞을 볼수 없게 되자 제 손에 있는 수저를 더듬어 찾고 내손에 키스를 했다. 그것은 감사의 표시인 동시에 성례전적인 영감을 주는 것이다.
저는 교인들에게 아버지의 수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수저는 그리스도인의 무기라고 말해주었다. 교인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은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바구니를 앞에 두고 수저를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요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으로 만든 밥상보로 수저 놓을 곳을 표시했다.
모두 그곳에 수저를 놓았다. 한 아기엄마는 젖병을 놓기도 했다. 아기엄마는 아기가 복음으로 양육되기를 생명의 양식으로 커가기를 원했다.
갑자기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 성도는 바구니를 들고 “여기에는 141개의 수저밖에 없구나, 다른 2천개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했다. 목사님과 교우들은 그 의미를 찾을때까지 기도를 했고 의미를 찾게 되면 그들의 수저로 무엇을 할 것 이라고 이야기 했다.
수저들의 비전, 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무기, 그것은 우리의 과제이며 우리가 사수해야 할 우리의 전쟁터이다. 예수님, 그리스도, 부활하신 우리 대장은 우리에게 마지막 명령을 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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