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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찬 목사, 3단계 기도와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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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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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목) 오전, 자마 중보기도 컨퍼런스  강사로 나선 장동찬 목사(뉴저지 베다니교회)는 "3단계 기도와 중보기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강의 요약이다.

탕자이야기를 보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큰일보다는 아들의 모습이 아들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다. 목회하면서 보니 자녀들은 부모의 날개이다. 어떤 부모는 그 날개로 공중을 나른다. 하지만 어떤 가정은 꺽어져 있다.

자식때문에 부모들이 울고 웃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 지치고, 또 그일이 자기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즈음 하나님께서는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 좀 보아라"하는 말씀을 하신다.

목회가 건강하고 균형있는 목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말씀으로 교리적인 갈증을 세워주고 중시하면 행동이 없다. 또 사역박람회등을 열며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를 하면 움직여 지는 것 같은데 모래성 같다. 이론과 행동의 발란스를 맞추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시간에는 쉽게 깨닫지 못하는 자기진단의 시간을 가진다. 자기도취, 기만에 빠져있는 성도들이 있다. 그런 중보기도자에게 좋은 자기진단의 기회를 준다.

예수만 믿고 기도하면 그것이 기도생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가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점검하라. 교회에서도 어떤 분이 열심이 있으며 감동을 주지만 어떤분은 열심이면 사건을 저지를까 걱정이 된다. 그런 교인은 하나님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된 사람이다.

어떤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할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을 시켜주시고 가나안이라는 목적의 땅을 보낸 여정을 통해 이해하고 적용하면 중보기도자로 견고하게 설수 있다.

현재 나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면 누가 욕해도 핍박을 받아도 비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당당할수 있고 겸손히 행할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교만할수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종으로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중보기도자는 자신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중보기도자의 위치는 첫째 애굽의 단계, 둘째 광야의 단계, 셋째 가나안의 단계가 있다.

애굽의 신앙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표적을 많이 행하셨다. 사람들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애굽에서의 신앙은 기능적인 차원에서 성령과 은사받고 기도를 즉각적으로 응답을 주신다.

애굽의 신앙에서 착각하는 것은 은사를 통해 내가 하나님과 가까우며 성숙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원에서 은혜를 받고 온 성도가 목사와 장로가 은혜가 없다고 이야기하기 쉬운 것이 애굽의 신앙이다.

애굽에서 이적을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기능적인 차원이다. 어린아이를 예로 든다면 어릴때는 부모와 사랑의 관계가 밀접하다. 부모는 약한 아이를 우선 돌본다. 그래서 애굽에서 기쁨과 사랑, 평안을 누리는 것도 주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나 중심의 관계속에 있다. 순진하게 있다가도 배만 고프면, 자기와 안맞으면 우는 것이 아이이다. 애굽의 신앙은 자기중심적인 아이와 같아 육(肉)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자기만족을 시켜주었을때 즉 젖을 주면 배불러 잔다. 가짜 젖을 물려주어도 빨며 잔다. 오늘날 성도들이 그렇게 취해 잔다.

교회도 창립부터 섬기는 분들이 만약 담임목사의 관심을 확인하기를 원한다면 젖꼭지를 무는 수준의 성도이다. 아이같은 성도들은 소리내어 울어 목사가 달려오게 하고 그것으로 목사의 사랑을 확인한다.

기도의 단계도 귀저기 갈아달라고 우는 것 처럼 나의 필요를 달라고 요구하는 애굽의 단계가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입장은 생각 안한다. 자신이 만족하면 웃으며 깊은 잠에 뜬다. 재롱도 피우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운다. 우리가 언제까지 그럴런 단계에 머물것인가? 지금 심각한 얼굴인 사람이 있다. 성장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직 젖병을 달고 있는 단계이구나는 것을 알고 놀라는가?

교회에 몇년 지나면 세례, 집사, 권사, 장로가 되며 열심히 하다보면 중요한 사역을 맡는다고 생각한다. 직분이 신앙의 성숙도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교회가 중병을 앓는다. 아직도 기저귀 젖병 신앙단계인데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가정, 나의 유익함, 나의 편안함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중보기도자가 아니다. 성숙해야 중보기도를 한다. 중보기도를 한다고 모여 자기 기도만 하면 중보기도자 될 수 없다. 이런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오래전이다. 하와이 코나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갔다. 마침 아이를 대학을 보내는 해였다. 그런데 엄마의 애뜻한 마음 때문에 걱정이 있었다. 아이를 위해 미리 기도를 해 주었다. "태평양에 돌을 던지듯이 자식을 내품으로 던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돌을 던지듯이 자식을 주님 품안에 던졌다. 그러니 하나님이 더 잘 챙겨주셨다.

중요한 것은 육신에 매여있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애굽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었지만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르고 기업으로 받을 땅이 아니었다. 기업받을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만 있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 체험했으니 가나안땅에 있는 줄 안다. 은사를 받고 개인적인 능력을 받으면 영적인 사람들이 되는가? 안된다고 할수 있다. 기적과 이적 표시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이지 그들의 육은 그대로 있다. 육신적인 소욕에서 벗어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이 광야이다.

사람에게 신령한 은사가 많이 임할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능적이다. 그것은 끝날때도 있다. 은사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성숙된 것이 아니다. 은사를 좋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은사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성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에게 신앙이 임하시게 하는 방법이 은사이다.

은사가 부어지는 곳은 영이 아니라 육체이다. 결국은 은사 능력을 받고 체험했다는 것이 영의 성숙도가 아니다. 방언을 한다고 나는 이정도 성숙된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마라. 광야를 거치지 않았다면 육성肉性)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신다.

여러분에 적용해 보자. 찬양인도자가 있다. 앞에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연습실에 가서 화가 나 지휘봉을 던지는 육성이 나오면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애굽적인 기도는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거나 결단을 많이한다. 후회하고 울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이단계를 통과하려면 환란, 고통, 좌절, 실패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순종을 통해서만 다음단계로 간다. 그래서 육신의 단계를 넘어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금식이나 절식이 도움이 된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성적인 것도 극복하지 못한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불행이 다가왔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성적, 명예욕도 절제하지 못한다. 할수만 있다면 애굽적인 단계에서 빨리 벗어나면 좋다. 애굽은 떠나야 하는 장소이다. 빨리 떠나면 좋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편안이 있으면 안 떠나려고 한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4백년동안 있게 했다. 사람들은 핍박을 받기 시작할때 깨닫게 되었다. 육체의 욕망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육에 속해 있는 가운데 영혼의 눈이 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육의 단계를 벗어 날수록 도움이 된다. 애굽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곳이라면 광야는 십자가 정화의 장소이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한다. 그것을 통해 승리의 삶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통해 가나안으로 가게 만드셨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본성은 세상사람이다.

광야의 신앙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곳, 속사람이 죽음을 경험하는 장소가 광야이다. 육신의 기본적인 생명유지외에는 육적인 요구가 거절된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이제는 훈련의 채찍을 드신 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광야를 통해 고집을 굴복시키고 자아를 굴복시키고 자아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해서는 때로는 채찍이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능력과 권세는 내가 순종 하는 만큼 온다.

마귀에게 순종하면 마귀의 권세가 임한다. 순종의 문제이다. 나의 욕체의 정욕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순종하는 권세와 능력이 임한다. 능력달라고 밤새도록 부르짖고 나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소용이 없다. 또 자신의 욕심으로 하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

왜 기도의 응답이 많이 없나. 이원리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주여! 주여!" 기도하지만 행동은 똑 같다. "어이구 저 집사는 기도한다고 하지말고 말이나 행동이나 고치지" 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순종이 중요하다. 순종하는 만큼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임한다. 성경의 예를 보아도 다윗은 형제가운데 뽑아 기름부으심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이었다. 그믿음으로 골리앗을 때려 눞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쓰기 전에 광야로 몰아 놓았다.

아들에게 쭟기고 혹독한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앞에서 마음이 합하는 자로 만드셨다. 물질, 애정, 성품훈련이 중요하다. 광야를 통해 그런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야곱과 사도바울에게도 광야의 시간이 있었다.

요즘 강단에서 교인이 듣기 싫어하므로 성경의 솔직한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에서 회개가 시작이고 근본이다. 또 강단에서 사라지는 다른 단어는 심판이다. 교회가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면 얼마나 재미있었고 위로를 많이 받았는지 하는 쇼가 되고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해 몸은 구원시키지만 영혼은 애굽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광야훈련을 통해 육신을 벗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럼면에서 고통과 환란은 기회이다. 고통은 선물이다.

고통을 기회로는 받아들이지만 선물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도선교사가 인도의 나병환자를 위해 사역을 했다. 하루는 불에다 감자를 굽고 있는데 감자가 불안으로 굴러 들어가자 한 나병환자가 자기손으로 불을 막 헤쳐 밖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고통을 모르는 그의 손에는 피가 난다. 선교사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얼나마 큰 축복인가하는 것을 느꼈다.

전능하신 한아님께서 왜 광야의 고통을 주시나? 자식도 오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 큰 아이가 넘어져 울고 엄마가 일으켜 줄때까지 기다리면 엄마가 큰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훈련이 필요했다.

나는 출애굽의 단계이구나하는 사람은 정신차리고 들어야 한다. 그단계는 그래도 성숙하는 단계일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힘으로 기도하며 순종하며 복종을 하기를 기다리신다. 광야는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광야는 응석이 통하지 않는다.

눈치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 이것을 다루어 지기를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처리할 장소가 광야이다. 자기변명, 자기연민, 자기합리화는 안 통한다. 자기연민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불쌍하지도 않는데. 능히 혼자서 일어설수 있는데 자기연민 가운데 빠진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혼자 일어선다.

그러면 어떻게 광야를 통과하는가? 그것은 침묵과 인내이다. 요셉이 형들과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했다면 감옥에서 우울증에 걸려 죽었을 것이다. 요셉은 침묵과 인내하며 하나님 만을 바라 보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영광을 이루시기 전에 빌라도등에 별소리를 다해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시고 원망하지 않고 이유를 대지 않았다. 광야의 훈련기간중 변명, 원망을 하면 광야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

가나안의 신앙

가나안이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가나안에서는 하나님과 연합을 경험한다.

애굽과 가나안은 기쁨을 경험하는 장소이다. 애굽과 가나안과의 기쁨은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체험도 양쪽에서 차이가 있다. 애굽에서는 나 중심, 자아중심이다. 가나안에서는 하나님 중심이다. 그분과의 온전한 연합이다. 그래서 가나안에서 성도들과 그리스도는 신랑과 신부와의 만남이다. 희생과 헌신이 들어있는 하나된 연합이다.

행복은 나의 평화와 모든 것에서 오지만 가나안에서의 기쁨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 나와 세상의 중간에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가 통과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예수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 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예수님이 하신것 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차원이다.

교회에서 연합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육체의 겉 옷에 싸여 있어 내가 좋으면 다 좋고 내마음에 안들면 목사도 다 소용이 없다. 다른 사람은 다 좋은 교회라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좋은 교회가 아니다.

성숙한 중보기도자가 되려면 영적 점검이 필요하다. 말만 중보기도자가 아니라, 우리교회에 중보기도 팀이 있다고 하는 것에만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이제 중보기도의 차원들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샘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바다가 된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 물인가?  연합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샘물인 동시에 바닷물이다. 자신이면서 동시에 주님과 하나이며 자신의 뜻이 주님의 뜻이며 주님의 뜻이 자신의 뜻이다. 많은 훈련과 환란을 통과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을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나의 소원은 주님, 당신이 나의 소원이다"고 말하고 나자신을 던질수 있는 사람이 되라.

어떤 때는 이론을 높이들면 엄청나 포기할수 있다. 하지만 목표와 뜻이 없으면 짐승같다. 높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자마는 분명한 뜻이 있다. 미국과 세계를 주님에 돌린다. 또 젊은이를 주님게 돌려드리는 것이다.

회개없이 말로만 하면 안된다. 집회에 더 많이 왔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성숙도가 올라가야 한다. 주님의 마음이 함께 전달되고 주님이 부흥을 일으킬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여러분들은 지금  다양한 단계를 거쳐가고 있다. 그러나 한순간 한순간이 축복된 순간이다. 인생의 최고의 좋은 때를 보내고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감사하며 순종의 기회를 삼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고난, 고통, 환란들이 있을수 있지만 무엇때문인가를 점검하여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삼아라. 그러면 가나안의 교회를 주기위한 것, 순종하는 자에 권세가 임한다.

사실은 과일나무 뿌리가 건강해야 좋은 과일을 맺는다. 빙산이 보이는 부분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안에 엄청나게 있는 것 처럼 신앙의 양상이 그렇다. 그것이 주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순종함으로 섬김으로 나타나고 나를 통해 뭇생명이 돌아오고 우리 중보기도가 하늘보좌에 전달되고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가 역할을 잘 담당하면 기쁜일이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을 통해 이끌어 가신다. 그들은 바로 기도의 사람들이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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