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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목사 "의인의 회중과 하나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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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5-01-28 00:00

본문

PCA 한인동북부노회 뉴욕시찰회는 매년 초에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교회연합 청지기 세미나를 1월 25일(주일) 오후 5시 뉴욕은총장로교회(오태환 목사)에서 열었다. "영광스러운 교회와 봉사생활"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김상태 목사(주님의교회)가 "의인의 회중(이사야 56:1-12)", 정상철 목사(뉴욕예본교회)가 "헌신의 삶(로마서 16:1-4)"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인도했다.

세미나는 인도 정민철 목사(뉴하트선교교회), 경배와 찬양 뉴하트선교교회, 기도 박상일 목사(뉴욕남교회), 세미나 1 김상태 목사(주님의교회), 특별찬양 뉴욕남교회 성가대, 세미나 2 정상철 목사(뉴욕예본교회), 기도회, 찬송 및 봉헌, 봉헌기도 및 축도 오태환 목사(뉴욕은총교회), 식사기도 구자범 목사(뉴욕광염교회)으로 진행됐다.

3.jpg다음은 김상태 목사가 인도한 "의인의 회중" 세미나 내용이다. 김상태 목사는 먼저 시편에 나타나는 의인의 회중이 누구인지를 다루고, 이어 의인의 회중이 거할 하나님의 집 즉, 교회 공동체에 대해 전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의인의 회중
(시편을 중심으로)


구약성경 시편에 나타난 '의인의 회중'은 과연 어떤 그룹을 지칭하는가? 그리고 그 회중(무리)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몇 가지 특징을 열거함으로 구약 시편에서 의인의 회중이라는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밝히고,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집에 대한 개념과 그 관계성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공동체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재발견하고, 우리들의 교회 공동체의 현주소와 미래의 영광의 실체를 생각해 봄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하려는데 오늘 강의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시편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의인의 회중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하고, 의인(the righteous)과 회중(the congregation)에 대한 의미를 살피며, 다윗이 그렇게도 기쁨과 감격을 함께 나눴던 대상들이 누구인지, 의인의 회중이 어떤 모임이었으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또한 이러한 의인의 회중이 거할 하나님의 집 즉, 교회 공동체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증언을 들어보려고 한다.

1. 시편을 중심으로 “의인의 회중”에 관한 다양한 표현들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 1: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시 14:5) "여호와여 주(당신)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당신)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 15:1-2)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 "주(당신)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 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당신)의 기이한 일을 나타내소서!"(시 17:7)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시 24:5-6)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 찌어다."(시 30: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시 42:4) "하나님이여 주(당신)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셀라)"(시 68:7) "주(당신)의 회중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시 68:10)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당신)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의 거하신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시 74:2절)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며, 둘러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시 89:7절)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 111:1절)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시 118:15절)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 찌어다."(시 149:1절)

2. 의인(the righteous)에 대한 의미는?

의인은 악인(중죄인)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시 1:5-6). 의인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시 1:1). 의인은 집단을 이루어 공존한다(시 1:5; 42:4). 의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킨다(시 68:7; 겔 13:9). 의인은 "정직한 자"를 가리킨다(시 11:1; 111:1). 의인은 "거룩한 자"를 말하며(시 89:7), "성도"를 지칭한다(시 149:1). 의인은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이다(시 24: 6). 의인은 "땅에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시 16:3). 의인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시 1: 2). 의인은 악인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서로 다른 운명을 부여받는다(시 1:5-6). 의인은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무리(떼)’로서 존재한다(시 42:4). 의인은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 곧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시1:6).

3. 회중(congregation)에 대한 의미는?

회중(congregation)은 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고 다수의 그룹을 말한다. 즉, 무리를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악인도 무리를 이루어 함께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된 것(눅 23:12)처럼 서로 원수 관계에 있던 사람도 악한 일에는 힘을 모아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악인이 그런 것처럼 의인도 집단을 이루어 공존한다. 아래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에 의하면 의인이 이루는 집단을 무리, 회중, 공회, 총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회중은 ‘company’라는 의미(떼, 모인 사람들, 친구, 단체, 회사, 회합 등)가 있으며, 또한 ‘generation’이라는 의미(세대, 자손, 일족 등)도 있다(시 14:5). 회중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회”를 가리킨다(겔 13:9). 회중은 “여호와의 장막에 유하며, 성산에 거하는 자들”이다(시 15:1-2). 회중은 “성일을 지키는 무리”를 말한다(시 42:4). 회중은 “성도들의 총회”를 의미하며, “성도들의 집회”를 의미한다(시 149:1).

4. 다윗이 그토록 감격을 나눴던 대상들은 누구인가?

다윗이 감격을 나눴던 대상들은 의인의 회중이었다. 의인의 회중은 악인의 집단과는 달리 악인의 꾀를 쫓거나, 죄인의 길에 서거나,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기 때문이다(시편 1:1). 이들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로서 거룩한 무리를 이루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여호와의 장막에 유하며, 성산에 거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의인의 회중과 함께 하나님과 은밀한 말씀의 교제 아래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고, 성일을 지키는 의인의 회중과 함께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의 영광의 빛 아래에서 그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감사하며,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의인의 장막에서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를 들었으며, 여호와의 권능과 거룩한 임재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감격을 나눴던 대상 즉, 의인의 회중은 곧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땅에 있는 성도의 무리요, 여호와께 복을 받고, 의(義)를 얻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거룩한 백성들이며, 성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집의 공적인 예배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의인의 회중의 몇 가지 특징들은 무엇인가?

최상의 행복한 사람들이다(시 1:5; 16:3; 신 33:3). 거룩하고 정직하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다(시 15:1-2; 111:1). 적어도 개인이 아니고 많은 무리를 형성한다(시 89:7). 하나님과 서로 알고 기뻐하는 무리들이다(시 14:5; 68:7, 10; 74:2). 하나님의 생명록(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된 자들이다(시 17:7). 하나님의 임재를 알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예배자들이다(시 24:5-6; 30:4; 42:4; 118:15; 149:1). 악인의 길처럼 절대 망하지 않는다(시 1:5).

결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 곧 ‘거룩한 의인의 무리’ 가운데 속한 한 지체임을 믿는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의인의 회중 가운데 속해 있어서 늘 그 무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공동체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의인의 회중에 속하고 꼭 붙어있기를 늘 사모하고,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죄를 멀리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늘 낭송하며, 결국은 영원히 망하는 악인의 길을 가지 않도록 힘쓰고, 조심하여 영원한 승리와 행복한 삶을 우리 함께 누리는 영광에 모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의인의 회중을 위한 하나님의 집
(이사야 56:1-1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를 진심으로 믿는 자라면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땅위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과 자녀들, 그리고 교회와 성직자들, 교단총회, 선교단체, 신학교 등등이 흠 없이 온전해져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멀리는 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속한 공동체만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생각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의인의 회중, 즉,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책임 있는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인의 회중이 모여 있는 영역인 하나님의 집은 과연 어떤 곳일까?

1. 왜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기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도 그렇다(엡 1:4).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도 그것이다(엡 5:27). 사도 바울도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살전 3:13). 사도 베드로도 그렇게 되기를 힘쓰라고 했다(벧후 3:14).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거룩해야 하고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전 3:16,17).

2.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이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You)나 ‘그’(He)가 변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집단 중의 하나인 ‘나’(I)가 변할 것을 추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손가락 5개 중에서 3개의 손가락은 항상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 자신’(myself)을 향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는 일종의 자부심과 편견을 가지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비신자들’ ‘이방인’ 또는 ‘이교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들을 깔보고 심지어는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차이는 단순히 세례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과 주일날 성경책을 끼고 교회를 출석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심지어는 동일한 기독교 안에서도 비본질적인 문제로 입장 차이가 다르다면 이를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극단은 기독교 자체의 진리체계와 신앙의 가치 체계까지 내려놓으면서 외부인들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이다. 다분히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회 집단의 사람들은 ‘사랑’과 ‘평화’와 ‘하나 됨’이라는 명목 아래 죄를 씻을 필요도 없이 교회로 들어오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이들에게는 ‘죄’니 ‘회개’니 ‘의’니 하는 개념이 모호하다.

3.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아버지 집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그토록 머물러 있고 싶어하시던 곳이 아버지의 집이다. 눅 2:41-50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12살 되었을때 유월절 절기에 참여하기 위해 부모와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모들은 ‘미아’라고 생각했던 아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던 사건이다. 부모들은 하룻길을 간 후에 아이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가 사흘 후에나 성전에서 랍비들과 성경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 예수를 발견했다. “어찌된 일이냐?”고 하니까 되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어떤 곳입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은 누구를 위한 집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추구하는가? 그럼 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추구해야 하는가? 이사야 56장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본문 5절에서 ‘내가 내 집에서’와 7절에서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기도하는 내 집에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집’은 일반적으로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이 문맥에서는 보이는 성전 그 이상의 뜻을 품고 있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어느 기독교 집단도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집’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칭하기도 하고 ‘하늘나라’로 불려 지기도 한다.

4. 하나님의 집은 과연 어떤 곳인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인정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가) 인간이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고, 기쁨이 넘치는 곳이다(56:7; 58:9,14). (7절)에서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내 집’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다. 언제나 무시로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는 열려있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신약성경에도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마 21:13; 막 11:17; 눅 19:46)이라고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은 언제나 열려 있고, 하나님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람도 이를 통제할 수 없고, 규제가 아예 없는 우리 아버지의 집이다. 히 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한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는데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고, 자기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그분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히 4:16)에서 약속해 놓은 대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성전은 결코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각종 상업행위와 마케팅 전략으로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나아가고 싶지만 조직과 눈에 보이는 것과 상업적인 마케팅 전략이 그 길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집’은 언제나 하나님과 막힘없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곳이다. 사 58:9에서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은 기쁨이 넘치는 곳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다. 하나님께서 기쁨의 원천이 되셔서 그 충만한 기쁨을 하나님이 친히 주시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대화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다. 사 58:14절에도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집’에는 의인의 회중이 많은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시 89:7).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 알고 기뻐하는 무리들이며(시 118:15), 새 노래로 야훼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하는 자들이다(시 149:1).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예배자 들이기 때문이다(시 118:15). (7절)에서 ‘번제와 희생’은 구약성경에서 하나의 예배 방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 즐겁고 기쁜 곳이다.

나) 각 사람의 이름과 존재가 결코 잊혀지거나 무시되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는(56:5) 곳이다. 사 56:5에서 “내가 내 집에서, 나의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들은 의인의 회중으로서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된 자들이며(겔 13:9),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이다(계 13:8).

다) 그곳은 영원한 평안의 집이요 안식하는 집이다(57:2). “의인은 죽을지라도 평안에 들어가며, 무릇 정로(正路)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고 했다. 사 57:20,21에 보면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安靜)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의인의 회중은 악인의 길처럼 절대 망하지 않는다. 악인은 영원한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도 못한다(시 1:5).

라) 그곳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는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곳입니다. 사 57:15에 지극히 높으신 분, 영원히 살아 계시며,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비록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나,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함께 있다.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회개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여 준다.”

마) 그곳에는 부족함이나 아픔도 없다. 사 58:11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런 이상적인 ‘하나님의 집’은 죽은 후에 저 하늘나라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것이 이 땅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중에도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5.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집은 누구를 위해 예비 되었을까?

‘하나님의 집’은 이방인도 고자(鼓子)도 들어 올 수 있고(3-4절), 이스라엘의 쫓겨난 본 자손들도 들어 올 수 있다(8절). 이 말씀은 신약성경 요 10:16절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牧者)에게 있으리라.” ‘하나님의 집’은 자격 조건에 있어서 그런 외부적인 제한이 없다(4-7절). 인종과 피부색, 성별이나 신분, 나이나 직업, 부자나 가난한 자, 존귀나 비천, 건강함이나 질병, 죄인이나 의인 등 그 어느 것도 제한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은 만인을 환영한다(7절).

그러나 필수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약’을 가감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서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6절에서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계약’(Covenant)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계약 백성으로서 그 계약을 가감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한 굳게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계약 백성으로서 그 분의 시간표 안에서 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4절). 2절과 6절에서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4절에서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또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6절에서 ‘야훼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이렇게 묘사된 본문들은 그 분의 시간표 안에서 사는 것을 가르치는 표현들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3절과 6절의 말씀처럼 계약을 받아들이고, ‘야훼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완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인에게 내어 놓으신 유일하고도 온전한 하나님의 ‘계약서’이다. 이 계약서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선포적인 불변의 약속이기도 하다.

과연 ‘하나님의 집’은 누구를 위해서 예비 되어있을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한 자들을 위해 예비 된 것이다. 요 14:1-4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너희는 내가 가는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예비하실 ‘하나님의 집’이 분명한 장소개념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하나님의 집’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종말론적으로 보면 분명히 한 장소가 예비 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현재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태도이다. 지구가 수평선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둥근형이다.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면 새로운 우주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는가? 우리 육안으로 어떻게 우주나 은하계, 천상의 영적 존재들의 세계를 다 볼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보이는 세계뿐 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창세기 1:8절의 하늘(the heaven)뿐만 아니라 창 1:1절의 하늘과 하늘들(the heavens)의 하늘도 창조하셨다. 우리의 육안으로 모든 것을 확인하려는 것은 역부족이며, 어리석은 행동이다.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집’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이 갈수록 희미하게 보일 것이고,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현실적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며, 마지막에 가서는 그 거룩한 땅(Holy Land)을 밟게 될 것이다.

6. 하나님의 집에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의인의 회중

이 세상에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의인의 회중’(the congregation of the righteous)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영광을 누리게 될까? 이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음 받고(57:15), 성령으로 확인 도장을 받아 하나님께 연합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최상의 행복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히 예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기꺼이 받아 주시고, 언제든지 만나주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성향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를 않는다. 예배란 아벨처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살며,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 분의 종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든 이 세상을 떠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이든 개의치 않고 떠나 있으나 그냥 있으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분의 방식대로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

결론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 믿는 우리가 속해 있는 그곳이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델 하우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집으로 초대되기를 바라신다.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사 56:8) 이 말씀이 신약성경 요한복음 10장 16절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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