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메시지: 최창섭 목사 "십자가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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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5-04-06 00:00관련링크
본문
제목: 십자가와 부활
본문: 고린도전서 15:1-4, 골로새서 3:12-15
설교자: 최창섭 목사(에벤에셀선교교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고,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을 말할 수 없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단계를 꼭 거쳐야 한다. 그래서 부활과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다. 여러분들이 진정 부활의 기쁨, 부활의 감격, 부활의 승리를 맛보기를 원한다면 먼저 십자가를 지는 일에 동참해야 될 것이다.
고린도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서로,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는데, 들려진 소식에 의하면 혼합주의적 신앙이 교회에 들어와 "십자가와 부활신앙"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의 모습 또한 불신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고전 15장을 통해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실 그때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때와 유사한 비 복음적 사상이 나타나 구원의 절대 진리인 복음이 크게 훼손당하고 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로, 혼합종교가 그럴듯하게 복음을 포장하여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내가 곧 길(The Way)이요 진리(The Truth)요 생명(the Life)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하셨다. 또한,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지 못하고 덕을 세우지 못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아 전도의 문이 점점 닫혀져 가고 있다.
본문 15:2-4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란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야함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십자가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4)
침례(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잘 상징하는 예식이다. 침례(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물에서 나오는 것은 죽음에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예식을 통하여 "나는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한 자"라는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침례(세례)를 받은 자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더러움과 악한 욕망과 탐심, 중상모략, 거짓말, 분냄 등."(골로새서 3:5-9). 우리가 예수를 잘 믿기 원한다면 죽여야 할 것들이 많다.
혈기가 죽어야 가정과 교회가 편안하다. 교만이 죽어야 겸손해 진다. 미움이 죽어야 사랑하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3년간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 영적훈련을 가졌다. 그곳에서 먼저 자기의 옛 사람을 죽이는 일에 힘썼다. 그 결과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사랑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 되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신다.
2. 고난을 잘 통과해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 주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시기, 질투, 모함, 조롱과 저주도, 로마 군인들의 악랄한 채찍과 희롱도, 빌라도의 거짓 재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좌편 강도의 야유도, 양손과 양발에 못박히시어 고통 중에서도 원망치 아니하시고 그 참혹한 고난을 기도하심으로, 사랑을 베푸심으로 통과하셨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시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는 원망대신 감사하게 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믿기 때문이다. 참혹한 고난 가운데서 기도함은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또한 악한 자들의 핍박속에서도 저주대신 사랑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면 축복만 추구하고 십자가의 고난은 면제받으려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값싼 신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하셨다.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다.주님은 물과 피를 다 흘리셨고, 그 귀한 생명까지 버리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이제 우리도 주님과 교회를 위해 싸구려 예수가 아닌 비싼 값을 치루고 예수 믿자.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도 비싼 값을 치루고 희생적으로 섬길 때 내가 섬기는 교회가 너무 귀해 보이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교회가 소중하게 여겨지면 절대 교회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때때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되었고, 주님을 더 잘 섬기게 되었다. 나아가 그 고난은 큰 영광으로 다가오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그러므로 현재 당하는 고난을 피하지도 말고, 고난에 절대로 항복하지도 말라. 고난의 십자가를 잘 지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3.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마태복음 28:1-10)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주님은 40일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11제자, 500여 형제 등에게 보이셨다(고린도전서 15:5). 또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 모두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함으로, 불안이 변하여 평안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고, 나아가 삶의 목적까지 철저히 바뀌었음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자들은 장차 우리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홀연히 변화되어 들림을 받는 역사도 있게 된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썪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린도전서 15:51-52)
2) 이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첫째로는, "위의 것"을 찿아 행하는 자가 되라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찿으라."(골 3: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에 동참한 자가 되었다면, 이제 위의 것, 즉 겸손, 오래 참음, 온유, 친절함, 관용과 용서, 도덕적 성결함, 감사,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골 3:12-15).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나?
3) 부활의 주님과 교회를 위해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 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8-19)
결 론:
우리는 2천년전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고 축하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기념과 축하만 반복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사심으로 인해, 그 주님을 믿어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입술만의 감사로 끝나서도 안될 것이다.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그분이 맡기신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의 바른 신앙의 고백이 될 수 있다. 이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담대하게 전파하여 주님 나라 건설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다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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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전서 15:1-4, 골로새서 3:12-15
설교자: 최창섭 목사(에벤에셀선교교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고,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을 말할 수 없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단계를 꼭 거쳐야 한다. 그래서 부활과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다. 여러분들이 진정 부활의 기쁨, 부활의 감격, 부활의 승리를 맛보기를 원한다면 먼저 십자가를 지는 일에 동참해야 될 것이다.
고린도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서로,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는데, 들려진 소식에 의하면 혼합주의적 신앙이 교회에 들어와 "십자가와 부활신앙"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의 모습 또한 불신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고전 15장을 통해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실 그때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때와 유사한 비 복음적 사상이 나타나 구원의 절대 진리인 복음이 크게 훼손당하고 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로, 혼합종교가 그럴듯하게 복음을 포장하여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내가 곧 길(The Way)이요 진리(The Truth)요 생명(the Life)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하셨다. 또한,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지 못하고 덕을 세우지 못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아 전도의 문이 점점 닫혀져 가고 있다.
본문 15:2-4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란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야함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십자가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4)
침례(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잘 상징하는 예식이다. 침례(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물에서 나오는 것은 죽음에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예식을 통하여 "나는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한 자"라는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침례(세례)를 받은 자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더러움과 악한 욕망과 탐심, 중상모략, 거짓말, 분냄 등."(골로새서 3:5-9). 우리가 예수를 잘 믿기 원한다면 죽여야 할 것들이 많다.
혈기가 죽어야 가정과 교회가 편안하다. 교만이 죽어야 겸손해 진다. 미움이 죽어야 사랑하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3년간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 영적훈련을 가졌다. 그곳에서 먼저 자기의 옛 사람을 죽이는 일에 힘썼다. 그 결과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사랑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 되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신다.
2. 고난을 잘 통과해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 주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시기, 질투, 모함, 조롱과 저주도, 로마 군인들의 악랄한 채찍과 희롱도, 빌라도의 거짓 재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좌편 강도의 야유도, 양손과 양발에 못박히시어 고통 중에서도 원망치 아니하시고 그 참혹한 고난을 기도하심으로, 사랑을 베푸심으로 통과하셨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시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는 원망대신 감사하게 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믿기 때문이다. 참혹한 고난 가운데서 기도함은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또한 악한 자들의 핍박속에서도 저주대신 사랑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면 축복만 추구하고 십자가의 고난은 면제받으려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값싼 신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하셨다.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다.주님은 물과 피를 다 흘리셨고, 그 귀한 생명까지 버리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이제 우리도 주님과 교회를 위해 싸구려 예수가 아닌 비싼 값을 치루고 예수 믿자.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도 비싼 값을 치루고 희생적으로 섬길 때 내가 섬기는 교회가 너무 귀해 보이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교회가 소중하게 여겨지면 절대 교회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때때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되었고, 주님을 더 잘 섬기게 되었다. 나아가 그 고난은 큰 영광으로 다가오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그러므로 현재 당하는 고난을 피하지도 말고, 고난에 절대로 항복하지도 말라. 고난의 십자가를 잘 지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3.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마태복음 28:1-10)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주님은 40일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11제자, 500여 형제 등에게 보이셨다(고린도전서 15:5). 또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 모두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함으로, 불안이 변하여 평안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고, 나아가 삶의 목적까지 철저히 바뀌었음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자들은 장차 우리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홀연히 변화되어 들림을 받는 역사도 있게 된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썪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린도전서 15:51-52)
2) 이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첫째로는, "위의 것"을 찿아 행하는 자가 되라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찿으라."(골 3: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에 동참한 자가 되었다면, 이제 위의 것, 즉 겸손, 오래 참음, 온유, 친절함, 관용과 용서, 도덕적 성결함, 감사,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골 3:12-15).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나?
3) 부활의 주님과 교회를 위해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 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8-19)
결 론:
우리는 2천년전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고 축하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기념과 축하만 반복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사심으로 인해, 그 주님을 믿어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입술만의 감사로 끝나서도 안될 것이다.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그분이 맡기신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의 바른 신앙의 고백이 될 수 있다. 이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담대하게 전파하여 주님 나라 건설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다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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