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뉴욕타임즈를 움직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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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5-06-0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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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권하면 오히려 문제의식을 갖는 나를 위해서 아내는 정말로 지혜로웠다. 아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너무 큰 틀에서만 논리적으로 설명하니까 정작 인격의 변화h는 어디에도 없다는 지적이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당신의 신앙은 너무 건조해서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믿음의 동질감을 갖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란 볼멘소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부부가 공유해야 할 신앙의 일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 거의 강의 수준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 아내의 문제 제기로 시작한 이야기 거리가 논점을 찾았고 토론을 거치면서 쉽지 않은 논쟁으로 이어졌지만 점차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아내와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을만큼 순 예배의 성실한 참가자가 되어 있었다. 아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창시절 그룹 공부로 축적해 놨던 그 신앙(성경)지식은 한 물 갔어도 이미 오래전에 간 것이란 의견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신데 나의 성경지식은 죽은 것 같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거의 일 년여 동안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쳤고 가까스로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3시간 이상을 진행하는 제자훈련 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3권짜리 제자훈련 교재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지금 마지막 10개월째 과정이다.
2007년도, 처음으로 워싱턴(연방의회)과의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미국의 정치권내 일본의 파워에 놀라게 되었다. 미국과 전쟁을 치렀으면서 그리고 현 일본의 아베 행정부가 그 전쟁의 전범자들의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미일관계의 밀착에 놀랐다. 나는 아베 행정부는 신사참배의 마귀권력이란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본의 자민당 권력이 그렇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워싱턴이 움직이는 방식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새삼스럽게 일본에 주목하게 되었다. 기독교문화권으로 융성한 미국의 심장부에 일본이 막강한 파워를 갖고서 위치해 있는 것이 정말로 늘 눈에 가시처럼 스트레스였다. 미국의 정치권이 일본의 실체를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연방의회에서의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의 추진이었다. 2007년에 우리는 인권문제로 그것을 연방하원에 제기해서 만장일치 결의안으로 통과를 시켰다.
그 이듬해에 ‘신조 아베’는 총리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결의안으로 인해서 미국과 일본관계가 훼손되었고 아베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신조 아베’는 절치부심, 2012년에 다시 총리로 복귀했다. 총리직에 복귀해서 만 2년 동안 준비를 거쳐서 2015년 4월27일 워싱턴을 공식 방문한다는 뉴스가 나온 것은 2월초였다. 이것은 분명히 일본의 아베 권력과 미국 내 한인들과 한판 붙어야 할 판이었다. 2007년에 그것을 주도한 나에게로의 도전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당혹스럽고 두려운 마음이었다. 나는 이미 연방의회내 상하 의원을 약 50여명을 친한파 그룹(Korea Caucus)으로 만들어 놓긴 했지만 이들을 일본과의 문제로 내 세우기엔 우리(한인동포)가 역부족임을 잘 알았다. 의원들을 움직이려면 지역구 시민들의 청원과 여론조성이 필요하다. 서명운동에 돌입해서 전자는 그런대로 추진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워싱턴포스트(WP)나 뉴욕타임즈(NYT)였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에서 일본 총리의 역사의식 문제를 다루어주어야 할텐데 하는 마음 때문에 초조하고 조급했다.
매주 화요일 제자반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나의 열심(?)을 관찰해 오던 아내가 제안했다. 제자반의 반원들에게 기도부탁을 하라는 권고였다. 아내는 무엇보다도 본인이 절절하게 기도하지 않으면서 중보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는가 라는 반문이 더 강하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하루 두어 차례씩 기도문까지 적으란다. 반드시 지도목사님께 내용과 진전을 알리라고 한다. 아내는 자신의 시어머니께도 기도부탁을 했다.
이만큼 간절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원하고 기도했던 적이 기억에 없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자신감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직접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지의 데스크를 두드렸다. 워싱턴포스트는 8만 달러 상당의 광고를 권한다. 과감하게 광고를 내 질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전면 인터뷰 하는 조건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좀처럼 그만한 공간도 없다. 마침, 뉴욕총영사가 새로 부임했다. 신임 김기환 총영사는 나하고는 친분이 있는 분이고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뉴저지 초대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릴 것을 초청하러 그 분을 만났다. 만난 김에 부임 인사차 가장 먼저 뉴욕타임즈사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임 김기환 총영사의 성품으로 미루어볼 때에 분명히 일본총리 방미에 관해서 의견을 낼 것을 예상하고 기대를 했다. 아베총리가 과거사(위안부문제)에 관해서 사죄를 해야 한다는 연판장을 만들어서 전국을 돌면서 지역구에서 의원들로부터 동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15명 정도에 그쳤다. 만일에 뉴욕타임즈나 로스엔젤레스타임즈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면 연판장에 동의할 의원이 최소한 10여명은 늘어날 것이라고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사력을 다했다. 물론 아내의 강권과 독촉이 있었지만 내가 더 절절했다. 관심 있는 많은 분들과 외교. 안보 전문가들, 특히 한국 내 외교전문가들의 문의가 쇄도하는 것을 미루어 보면 이 문제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담이 가증되고 온통 스트레스다. 이 사안에 대해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하원 외교위원장은 연판장에 서명의원 최소 20명은 되어야 할 것이라 했다. 20명 돌파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들고 의원회관을 돌아야 한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분께 전부를 달아야한다. 이것은 개인의 일도 아니고 일본을 해코지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원한이 그 동기도 아님을 찬찬히 설명식으로 하나님께 고백했다. 일본의 마귀권력을 허물어 내는 시작의 일이라고 차분하게 기도했다. 역사정의, 인권, 평화를 위하는 그래서 앞으로도 이 일에 전념하길 기도했다.
▲뉴욕타임즈 사설
4월20일 월요일, 새벽기도에서 막 돌아왔고 나는 배달된 뉴욕타임즈를 폈다. 그 날자 사설란 맨 윗자리에 “Mr. Abe and Japan's History"라고 아베총리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글이 선명하게 실렸다. 다시 눈을 씻었고 신문을 흔들어 보았다. 분명했고 현실상황이다. 29일로 예정된 아베의 의회연설을 앞둔 최적의 시점이고 더구나 사설의 내용은 마치 내가 써준 것 같은 강력하지만 품위 있는 비판이다. 그날 오전 내내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자제했다. 그리고 그대로 집에 혼자 머물렀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도응답 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뉴욕타임즈가 어떤 곳인가..? 그리고 발행인과 편집인, 뿐만 아니라 사주의 입장까지 살펴야 하는 사설란에서 이렇게 강력한 주장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오전 내내 그냥 그 분, 하나님께만 생각을 집중했다. 제자반의 이진영 목사께만 카톡으로 알렸다.
나는 이 뉴욕타임즈 사설을 들고서 뉴욕일원 하원의원 3명을 마이크 혼다 의원의 의원총회장 연설의 보조연설자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맨하탄의 ‘찰스 랭글’, 롱아일랜드의 ‘스티브 이스라엘’, 뉴저지 버겐카운티 인근의 ‘빌 패스크룰’ 의원이다. 4월 21일 총회장엔 혼다가 25분 연설을 했는데 그보다 더 강력하게 역사정의, 위안부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위의 세 의원의 연설이 그 임팩트가 컸다. 과연 아베총리가 과거사에 대해서 언급을 할지 안할지가 모든 의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뉴욕타임즈 사설을 필두로 주류언론이 경쟁적으로 아베연설을 허용한 의장을 비판했고 일본의 역사의식의 천박함을 지적했다. 연판장엔 8명의 공화당 의원을 포함해서 총 25명의 의원이 가세를 했다.
일본 아베총리의 미국방문 관련해서 큰 관심을 갖은 한국 내 전문가들의 반응이 그야말로 뜨거웠다. 평소에 나의 이와 같은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고 그리고 늘 기도해 주시는 한국의 높은뜻교회 ‘김동호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필코 하나님께서 일본을 열러주실 것 이라는 말씀과 워싱턴포스트지 광고료를 모금해 주시겠다는 연락이다.
아내의 지혜로운 ‘충격과 완충의 이중 방식’에 유도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참가하게 된 ‘제자반’에서 나는 이만한 [기도의 힘]을 체험했다. 제자반의 합동 기도제목이 아니었더라도 아내는 “우리 집에서 만났던 제자반원들이면 기도부탁을 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광고했고 몇몇 반원들이 카톡으로 기도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셨다. 이 기도 프로젝트는 ‘제자반’의 일이었다. 이보다 더 분명하고 아주 명확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페이스 북에 이 간증을 올렸다.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해 주셨다’라는 의견에 동의해 주는 쪽이 소수다. 어떻든 그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 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이 일이 힘들고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니고 가끔 여기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포기할까 두렵다. 아, 하나님,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뉴저지초대교회 출석
뉴욕늘기쁜교회 김홍석 목사 친형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어느덧 나는 아내와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을만큼 순 예배의 성실한 참가자가 되어 있었다. 아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창시절 그룹 공부로 축적해 놨던 그 신앙(성경)지식은 한 물 갔어도 이미 오래전에 간 것이란 의견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신데 나의 성경지식은 죽은 것 같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거의 일 년여 동안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쳤고 가까스로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3시간 이상을 진행하는 제자훈련 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3권짜리 제자훈련 교재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지금 마지막 10개월째 과정이다.
2007년도, 처음으로 워싱턴(연방의회)과의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미국의 정치권내 일본의 파워에 놀라게 되었다. 미국과 전쟁을 치렀으면서 그리고 현 일본의 아베 행정부가 그 전쟁의 전범자들의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미일관계의 밀착에 놀랐다. 나는 아베 행정부는 신사참배의 마귀권력이란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본의 자민당 권력이 그렇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워싱턴이 움직이는 방식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새삼스럽게 일본에 주목하게 되었다. 기독교문화권으로 융성한 미국의 심장부에 일본이 막강한 파워를 갖고서 위치해 있는 것이 정말로 늘 눈에 가시처럼 스트레스였다. 미국의 정치권이 일본의 실체를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연방의회에서의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의 추진이었다. 2007년에 우리는 인권문제로 그것을 연방하원에 제기해서 만장일치 결의안으로 통과를 시켰다.
그 이듬해에 ‘신조 아베’는 총리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결의안으로 인해서 미국과 일본관계가 훼손되었고 아베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신조 아베’는 절치부심, 2012년에 다시 총리로 복귀했다. 총리직에 복귀해서 만 2년 동안 준비를 거쳐서 2015년 4월27일 워싱턴을 공식 방문한다는 뉴스가 나온 것은 2월초였다. 이것은 분명히 일본의 아베 권력과 미국 내 한인들과 한판 붙어야 할 판이었다. 2007년에 그것을 주도한 나에게로의 도전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당혹스럽고 두려운 마음이었다. 나는 이미 연방의회내 상하 의원을 약 50여명을 친한파 그룹(Korea Caucus)으로 만들어 놓긴 했지만 이들을 일본과의 문제로 내 세우기엔 우리(한인동포)가 역부족임을 잘 알았다. 의원들을 움직이려면 지역구 시민들의 청원과 여론조성이 필요하다. 서명운동에 돌입해서 전자는 그런대로 추진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워싱턴포스트(WP)나 뉴욕타임즈(NYT)였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에서 일본 총리의 역사의식 문제를 다루어주어야 할텐데 하는 마음 때문에 초조하고 조급했다.
매주 화요일 제자반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나의 열심(?)을 관찰해 오던 아내가 제안했다. 제자반의 반원들에게 기도부탁을 하라는 권고였다. 아내는 무엇보다도 본인이 절절하게 기도하지 않으면서 중보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는가 라는 반문이 더 강하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하루 두어 차례씩 기도문까지 적으란다. 반드시 지도목사님께 내용과 진전을 알리라고 한다. 아내는 자신의 시어머니께도 기도부탁을 했다.
이만큼 간절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원하고 기도했던 적이 기억에 없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자신감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직접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지의 데스크를 두드렸다. 워싱턴포스트는 8만 달러 상당의 광고를 권한다. 과감하게 광고를 내 질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전면 인터뷰 하는 조건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좀처럼 그만한 공간도 없다. 마침, 뉴욕총영사가 새로 부임했다. 신임 김기환 총영사는 나하고는 친분이 있는 분이고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뉴저지 초대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릴 것을 초청하러 그 분을 만났다. 만난 김에 부임 인사차 가장 먼저 뉴욕타임즈사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임 김기환 총영사의 성품으로 미루어볼 때에 분명히 일본총리 방미에 관해서 의견을 낼 것을 예상하고 기대를 했다. 아베총리가 과거사(위안부문제)에 관해서 사죄를 해야 한다는 연판장을 만들어서 전국을 돌면서 지역구에서 의원들로부터 동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15명 정도에 그쳤다. 만일에 뉴욕타임즈나 로스엔젤레스타임즈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면 연판장에 동의할 의원이 최소한 10여명은 늘어날 것이라고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사력을 다했다. 물론 아내의 강권과 독촉이 있었지만 내가 더 절절했다. 관심 있는 많은 분들과 외교. 안보 전문가들, 특히 한국 내 외교전문가들의 문의가 쇄도하는 것을 미루어 보면 이 문제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담이 가증되고 온통 스트레스다. 이 사안에 대해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하원 외교위원장은 연판장에 서명의원 최소 20명은 되어야 할 것이라 했다. 20명 돌파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들고 의원회관을 돌아야 한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분께 전부를 달아야한다. 이것은 개인의 일도 아니고 일본을 해코지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원한이 그 동기도 아님을 찬찬히 설명식으로 하나님께 고백했다. 일본의 마귀권력을 허물어 내는 시작의 일이라고 차분하게 기도했다. 역사정의, 인권, 평화를 위하는 그래서 앞으로도 이 일에 전념하길 기도했다.
▲뉴욕타임즈 사설
4월20일 월요일, 새벽기도에서 막 돌아왔고 나는 배달된 뉴욕타임즈를 폈다. 그 날자 사설란 맨 윗자리에 “Mr. Abe and Japan's History"라고 아베총리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글이 선명하게 실렸다. 다시 눈을 씻었고 신문을 흔들어 보았다. 분명했고 현실상황이다. 29일로 예정된 아베의 의회연설을 앞둔 최적의 시점이고 더구나 사설의 내용은 마치 내가 써준 것 같은 강력하지만 품위 있는 비판이다. 그날 오전 내내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자제했다. 그리고 그대로 집에 혼자 머물렀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도응답 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뉴욕타임즈가 어떤 곳인가..? 그리고 발행인과 편집인, 뿐만 아니라 사주의 입장까지 살펴야 하는 사설란에서 이렇게 강력한 주장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오전 내내 그냥 그 분, 하나님께만 생각을 집중했다. 제자반의 이진영 목사께만 카톡으로 알렸다.
나는 이 뉴욕타임즈 사설을 들고서 뉴욕일원 하원의원 3명을 마이크 혼다 의원의 의원총회장 연설의 보조연설자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맨하탄의 ‘찰스 랭글’, 롱아일랜드의 ‘스티브 이스라엘’, 뉴저지 버겐카운티 인근의 ‘빌 패스크룰’ 의원이다. 4월 21일 총회장엔 혼다가 25분 연설을 했는데 그보다 더 강력하게 역사정의, 위안부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위의 세 의원의 연설이 그 임팩트가 컸다. 과연 아베총리가 과거사에 대해서 언급을 할지 안할지가 모든 의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뉴욕타임즈 사설을 필두로 주류언론이 경쟁적으로 아베연설을 허용한 의장을 비판했고 일본의 역사의식의 천박함을 지적했다. 연판장엔 8명의 공화당 의원을 포함해서 총 25명의 의원이 가세를 했다.
일본 아베총리의 미국방문 관련해서 큰 관심을 갖은 한국 내 전문가들의 반응이 그야말로 뜨거웠다. 평소에 나의 이와 같은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고 그리고 늘 기도해 주시는 한국의 높은뜻교회 ‘김동호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필코 하나님께서 일본을 열러주실 것 이라는 말씀과 워싱턴포스트지 광고료를 모금해 주시겠다는 연락이다.
아내의 지혜로운 ‘충격과 완충의 이중 방식’에 유도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참가하게 된 ‘제자반’에서 나는 이만한 [기도의 힘]을 체험했다. 제자반의 합동 기도제목이 아니었더라도 아내는 “우리 집에서 만났던 제자반원들이면 기도부탁을 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광고했고 몇몇 반원들이 카톡으로 기도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셨다. 이 기도 프로젝트는 ‘제자반’의 일이었다. 이보다 더 분명하고 아주 명확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페이스 북에 이 간증을 올렸다.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해 주셨다’라는 의견에 동의해 주는 쪽이 소수다. 어떻든 그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 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이 일이 힘들고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니고 가끔 여기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포기할까 두렵다. 아, 하나님,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뉴저지초대교회 출석
뉴욕늘기쁜교회 김홍석 목사 친형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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