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의 원로 조동진 박사 “서구선교에서 사도적 선교로"
페이지 정보
성회ㆍ2008-07-31 00:00관련링크
본문
6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7월 28일(월) 개회예배를 시작으로 5일간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넷째날(31일) 오전집회에서 한국선교의 원로 조동진 박사(조동진 선교연구소 소장)가 “한국교회 세계선교 지도력 개발과 21세기 선교신학 정립”라는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했다.
다음은 강의내용이다.
이번 대회에 가장 나이든 강사중 일인이다.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던 어떻게 50년대에 부름을 받았는가? 어머니가 나를 바치겠다고 서원기도했다. 해방이 되어 7년만에 감옥에서 나온 최한기 전도사가 부흥회때 나를 자기방에 재우면서 안수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3일째 나를 꺼꾸러 뜨리고 죄를 고백하게 했다. 3일간 먹지 않고 회개기도를 했다. 그리고 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신학교 우등생이지만 개척하니 목회에 실패했다. 그래서 전도공부하기로 결심했다. 56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전도/선교학을 공부했다. 50년대는 신학교에서는 선교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칼리지 정도였다. 60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선교학을 공부한 목사가 됐다. 그리고 총회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60년대에 나에게서 공부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귀한 선교의 지도자가 됐다. 임택권, 장영춘 목사등이 나에게 공부했다. 한국교회의 주도한 사람들이 당시 나에게 배웠다.
그런데 지나간 작년 11월에 아시아선교학자들의 국제대회가 시작했다. 50여명중 서양선교자가 왔다. 조나단 봉크는 "당신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서양학자가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랍다. 당신들은 비서구에서 보낸 학자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선교는 핍박받은 나라의 사람이 선교를 리더했다. 서구의 선교는 기독교가 흥한 나라에서 왔다. 그래서 달라야 한다. 잘못된 서구 선교의 역사와 단절하고 사도적 선교를 계승해야 한다. 조나단 봉크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고 기뻤다. 한국선교세력은 서구의 계승세력이 아니다. 사도적인 방법으로 나라가 갈라진 방법으로, 가난한 나라의 백성으로 선교하는 것은 사도시대와 같다.
사도적 선교의 패러다임은?
서구선교는 황제의 국가적 권위와 힘을 통한 선교이다. 캐톨릭교회와 권력이 야합하여 기독교 왕국의 잘못된 선교였다. 종교개혁이 교황의 권력을 교화에 물리치는것은 성공했다. 식민지시대 서구중심의 선교는 20세기 후반으로 끝난다. 21세기의 패러다임은 사도적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도적 시대는 312년 이후 콘스탄틴 시대의 선교이다.
사도행전은 로마까지 간것을 기록했지만 다른사도들도 영국, 바벨론, 인도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다.
억압받고 박해받는 자로 부터 억압받고 팝박하는 자들을 향한 선교, 나라없는 민족이 나라밖으로 쫓겨다닌 민족으로 부터 시작된 선교, 가난하고 힘없는 민족이 부하고 강한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숨어다니며 에배하느느 시대였다. 5. 사도시대 선교의 패러다임은 중심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종망론적인 선교이다 6. 사도시대의 선교는 순교로 이어지는 선교였다.
이것이 사도적인 선교의 원리이다.
근대 서구선교는 자기들의 문명을 이식시키는 것이 중심이다. 서구화가 기독교화라고 잘못 가르쳤다. 2차대전후 비기독교 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면서 비선교 민족중심으로 전환된다.
21세기 선교는 서구 식민지 선교이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종교개혁이전시대를 훨씬 지나 사도시대로 가야 한다.
21세기 선교사 중심의 개념이 세계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유럽을 세계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와서 그것이 아니고 변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유럽의 황혼은 아시아의 새벽이다.
한국교회는 서구선교와 파트너십이 세계화라는 착각이 있었다. 서구화가 세계화라는 것은 낡은 개념이다.
서구선교가 부활한것은 휘튼에서 였다.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선구선교의 부흥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독교대학가운데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대학이다. 150년동안. 총장실 앞에 보낸 선교사 이름이 있다. 세게에서 가장 선교사를 많이 보낸 대학이다. 세계선교를 위한 사관학교이다. 66년 부활절을 기해서 이곳에 모여 대회를 열고 휘튼선언을 발표했다.
서구 선교세력의 인구는 약해져서 2000년은 전체 인구중 서구교인은 23%밖에 안된다. 78%는 비서구 나라사람이다.
이차대전 종속으로 아시아, 아프리카교회들이 서구의 하청조직으로 부터 달라진다. 다시 독립하면서 폭발적으로 45년이후에 늘어나기 시작한다.
일방적 선교 파송정책이 종속되었다. 한국교회 파송제도는 이미 사라진 이런것을 흉내내는 것이 문제이다. 60년대 이후 서구선교단체는 철수하거나 지역사역자로 교체하는 것으로 선교정책을 바꾸었다. 한국교회는 서구의 일반적인 파송제도를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의 중요성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한국사람만 모인다. 그것은 동네잔치이다. 세계잔치가 아니다. 다른 나라 선교단체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제적인 네트워크이다. 70년대부터 자신의 이익으로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WTO, WHO, ILO, IMF등이다.
신자유적인 서구네트워크는 서구부자나라의 중심의 구조이다. 비선교선교국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이익을 위한 국가네트워크로 발전해야 한다.
70년부터 아시아선교협의회를 조직했다. 88년에는 2사계나라 선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나는 한국선교가 세계선교의 선두에 서기위해 WEF를 주도했다. 선교네트워크의 동참이 없으면 고립되고 외톨이 선교를 하게된다. 한국선교만으로 복음화를 시킬수 없다. 동네잔치처럼 우리끼리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여러단체들과 힘을 합해 동참해 나가야 한다.
서구선교사는 2000년 11만명, 서구 선교사는 2000년 18만명으로 세계선교의 주역이 달라졌다. 미국선교사중 장기선교사는 3분의 1도 안된다. 미국의 10만명 선교사중 종신선교사의 수는 3만명이다. 한국은 대부분 장기선교사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다음은 강의내용이다.
이번 대회에 가장 나이든 강사중 일인이다.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던 어떻게 50년대에 부름을 받았는가? 어머니가 나를 바치겠다고 서원기도했다. 해방이 되어 7년만에 감옥에서 나온 최한기 전도사가 부흥회때 나를 자기방에 재우면서 안수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3일째 나를 꺼꾸러 뜨리고 죄를 고백하게 했다. 3일간 먹지 않고 회개기도를 했다. 그리고 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신학교 우등생이지만 개척하니 목회에 실패했다. 그래서 전도공부하기로 결심했다. 56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전도/선교학을 공부했다. 50년대는 신학교에서는 선교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칼리지 정도였다. 60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선교학을 공부한 목사가 됐다. 그리고 총회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60년대에 나에게서 공부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귀한 선교의 지도자가 됐다. 임택권, 장영춘 목사등이 나에게 공부했다. 한국교회의 주도한 사람들이 당시 나에게 배웠다.
그런데 지나간 작년 11월에 아시아선교학자들의 국제대회가 시작했다. 50여명중 서양선교자가 왔다. 조나단 봉크는 "당신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서양학자가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랍다. 당신들은 비서구에서 보낸 학자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선교는 핍박받은 나라의 사람이 선교를 리더했다. 서구의 선교는 기독교가 흥한 나라에서 왔다. 그래서 달라야 한다. 잘못된 서구 선교의 역사와 단절하고 사도적 선교를 계승해야 한다. 조나단 봉크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고 기뻤다. 한국선교세력은 서구의 계승세력이 아니다. 사도적인 방법으로 나라가 갈라진 방법으로, 가난한 나라의 백성으로 선교하는 것은 사도시대와 같다.
사도적 선교의 패러다임은?
서구선교는 황제의 국가적 권위와 힘을 통한 선교이다. 캐톨릭교회와 권력이 야합하여 기독교 왕국의 잘못된 선교였다. 종교개혁이 교황의 권력을 교화에 물리치는것은 성공했다. 식민지시대 서구중심의 선교는 20세기 후반으로 끝난다. 21세기의 패러다임은 사도적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도적 시대는 312년 이후 콘스탄틴 시대의 선교이다.
사도행전은 로마까지 간것을 기록했지만 다른사도들도 영국, 바벨론, 인도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다.
억압받고 박해받는 자로 부터 억압받고 팝박하는 자들을 향한 선교, 나라없는 민족이 나라밖으로 쫓겨다닌 민족으로 부터 시작된 선교, 가난하고 힘없는 민족이 부하고 강한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숨어다니며 에배하느느 시대였다. 5. 사도시대 선교의 패러다임은 중심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종망론적인 선교이다 6. 사도시대의 선교는 순교로 이어지는 선교였다.
이것이 사도적인 선교의 원리이다.
근대 서구선교는 자기들의 문명을 이식시키는 것이 중심이다. 서구화가 기독교화라고 잘못 가르쳤다. 2차대전후 비기독교 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면서 비선교 민족중심으로 전환된다.
21세기 선교는 서구 식민지 선교이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종교개혁이전시대를 훨씬 지나 사도시대로 가야 한다.
21세기 선교사 중심의 개념이 세계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유럽을 세계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와서 그것이 아니고 변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유럽의 황혼은 아시아의 새벽이다.
한국교회는 서구선교와 파트너십이 세계화라는 착각이 있었다. 서구화가 세계화라는 것은 낡은 개념이다.
서구선교가 부활한것은 휘튼에서 였다.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선구선교의 부흥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독교대학가운데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대학이다. 150년동안. 총장실 앞에 보낸 선교사 이름이 있다. 세게에서 가장 선교사를 많이 보낸 대학이다. 세계선교를 위한 사관학교이다. 66년 부활절을 기해서 이곳에 모여 대회를 열고 휘튼선언을 발표했다.
서구 선교세력의 인구는 약해져서 2000년은 전체 인구중 서구교인은 23%밖에 안된다. 78%는 비서구 나라사람이다.
이차대전 종속으로 아시아, 아프리카교회들이 서구의 하청조직으로 부터 달라진다. 다시 독립하면서 폭발적으로 45년이후에 늘어나기 시작한다.
일방적 선교 파송정책이 종속되었다. 한국교회 파송제도는 이미 사라진 이런것을 흉내내는 것이 문제이다. 60년대 이후 서구선교단체는 철수하거나 지역사역자로 교체하는 것으로 선교정책을 바꾸었다. 한국교회는 서구의 일반적인 파송제도를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의 중요성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한국사람만 모인다. 그것은 동네잔치이다. 세계잔치가 아니다. 다른 나라 선교단체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제적인 네트워크이다. 70년대부터 자신의 이익으로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WTO, WHO, ILO, IMF등이다.
신자유적인 서구네트워크는 서구부자나라의 중심의 구조이다. 비선교선교국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이익을 위한 국가네트워크로 발전해야 한다.
70년부터 아시아선교협의회를 조직했다. 88년에는 2사계나라 선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나는 한국선교가 세계선교의 선두에 서기위해 WEF를 주도했다. 선교네트워크의 동참이 없으면 고립되고 외톨이 선교를 하게된다. 한국선교만으로 복음화를 시킬수 없다. 동네잔치처럼 우리끼리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여러단체들과 힘을 합해 동참해 나가야 한다.
서구선교사는 2000년 11만명, 서구 선교사는 2000년 18만명으로 세계선교의 주역이 달라졌다. 미국선교사중 장기선교사는 3분의 1도 안된다. 미국의 10만명 선교사중 종신선교사의 수는 3만명이다. 한국은 대부분 장기선교사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