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원주민선교 파송팀위한 중보기도회, 선교는 중보기도자도 같이 하는 것
페이지 정보
성회ㆍ2008-08-13 00:00관련링크
본문
기도, 특히 중보기도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기자는 수차례 한기홍 목사(은혜교회)의 강연을 듣고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한기홍 목사는 부임해 가는 곳 마다 담임목사를 위한 중보기도팀을 운영한다.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은 자연히 담임목사의 말씀에도 은혜를 받는다. 한 목사는 "내가 이런 사역을 할수 있는 것은 모두 중보사역자 덕"이라고 말했다.
담임목사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동안 담임목사에 대한 지지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처럼, 선교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면 선교의 일꾼으로 거듭나게 된다.
선교와 중보기도
지난 8월 11일(월) 새벽 북미원주민선교를 떠난 선교팀을 위해 선교기간내에 중보기도회가 연속으로 열리고 있다. 선교는 선교지에 나가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남은 중보기도자도 같이 하는 것이다.
선교기간내에 매일 저녁 8시에 모여 중보기도회를 열고 있는 뉴욕충신교회(김혜택 목사) 성도들의 기도가 진행되는 예배당의 벽에는 선교를 떠난 각 성도들의 기도제목이 붙어있다.
"금식중인데 힘이 더욱 난다"라며 찬양과 말씀을 인도한 송정희 사모는 "안일할때 사탄이 틈을 타고 선교를 망친다. 사탄에 틈을 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선교는 기도이다"라며 집회를 인도한다.
북미원주민 선교지에서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으로 3명의 성도들이 목에 고통을 호소했다. 중보기도의 한 제목이다.
또 4번팀이 간 곳은 연락이 현지와 연락이 재대로 되지 않아 현지 원주민들이 당황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시 잘 이야기가 되어 화요일 밤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원주민 여자분이 따뜻하게 환영해 주어 8개의 천막을 쳐주었다. 중보기도의 덕이 아닐까?
올림픽 경기와 신앙
13일(수) 저녁, 뉴욕충신교회 송정희 사모는 "고린도전서 9장 24-27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올릭핌경기의 경기자를 비유하여 설교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내용이다.
월요일에는 우리는 하늘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이다. 화요일에는 한가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말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교만이 아니라 겸손이 필요하다. 겸손은 순종이다.
이제 하나가 되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바울은 믿음의 삶을 일꾼이라고 이야기 했다. 군사라고, 농부라고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주자라 했다. 본문의 말씀은 경주자에 대한 말씀이다.
분쟁이 많은 고린도 교회는 아테네에서 가까운데에 있다. 그래서 경기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군사를 이야기하는 것 보다 경기자를 이야기했다.
현재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경기장에서느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 있다. 우리도 믿음의 경기에 섰다.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보고 있다. 내가 생각할때 주님과 사탄이 보고있다. 믿음의 삶을 누가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라. 그런 믿음의 부담감이 있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응원 하시지만 사탄은 넘어졌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경기자의 자세이다.
올림픽 경기에는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목적이 있다. 금메달이다. 그들에게는 뛰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 믿는자에게도 목적과 목표가 있다. 목적과 복표는 일선상에 있으며, 목적에 비해 목표는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추상적이다. 목표는 백종족 복음화등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목적과 목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방향없이 가는 것이다. 목표가 없으니 주먹을 쥐지만 허공을 치는 것이다. 방향없는 교회는 비전이 없으니 안주하는 교회가 된다. 그런교회는 변화가 없으며 율법적이다. 그러다 보니 인본주의로 간다. 목표없는 교회는 제자훈련, 잔도폭발등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는 한다. 하지만 남이 하니까 하는 것이지 목표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일이년하다가 흐지부지된다. 경기자는 목적목표가 있는 것 처럼, 우리에게도 목적목표가 있다.
디모데전서 5장을 보면 경기자는 법대로 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 룰을 지켜야 한다. 룰을 안지키면 반칙이다. 그이유는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을 생각하지 않아서 이다. 훌륭한 경기자가 되기위해 훈련과정이 있다. 축구선수는 축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등 기초과정을 한다. 우리믿음에도 그런 연습과정이 있다. 믿는 우리는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을 통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통성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은 수레바퀴 삶이다. 축구선수가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 처럼 신앙인들도 수레바퀴삶처럼 예배가 연습이 되어야 한다. 섬김, 말씀, 교제, 전도...그런 과정이 있어야 전체가 훈련이 되어진다.
경기의 자세가 중요하다. 운동에는 바른 자세가 있고 그후 그자세를 위해 연습을 한다. 자세가 잘못되면 안된다. 그러면 믿음의 바른자세는 절제이다. 먼저 감정 게으름등을 다스리고, 시기질투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을 젤제하는 것이다.
다스려서 절제가 안되면 쳐서 복종이 되어야 한다. 남북전쟁 전 노예들은 쇠사슬에 묶어 짐승처럼 복종을 강요했다. 우리에게도 올라 오는 것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올림픽 운동선수는 체중조절을 잘해야 한다. 금식을 하지만 안먹는 것은 힘들다. 처음부터 못한다. 한두끼부터 금식을 해야 삼일금식을 할수 있다. 경건의 훈련이다. 체중조절은 쳐 복종하는 것으로 고통이 따른다.
올림픽 운동선수들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면류관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기자는 수차례 한기홍 목사(은혜교회)의 강연을 듣고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한기홍 목사는 부임해 가는 곳 마다 담임목사를 위한 중보기도팀을 운영한다.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은 자연히 담임목사의 말씀에도 은혜를 받는다. 한 목사는 "내가 이런 사역을 할수 있는 것은 모두 중보사역자 덕"이라고 말했다.
담임목사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동안 담임목사에 대한 지지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처럼, 선교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면 선교의 일꾼으로 거듭나게 된다.
선교와 중보기도
지난 8월 11일(월) 새벽 북미원주민선교를 떠난 선교팀을 위해 선교기간내에 중보기도회가 연속으로 열리고 있다. 선교는 선교지에 나가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남은 중보기도자도 같이 하는 것이다.
선교기간내에 매일 저녁 8시에 모여 중보기도회를 열고 있는 뉴욕충신교회(김혜택 목사) 성도들의 기도가 진행되는 예배당의 벽에는 선교를 떠난 각 성도들의 기도제목이 붙어있다.
"금식중인데 힘이 더욱 난다"라며 찬양과 말씀을 인도한 송정희 사모는 "안일할때 사탄이 틈을 타고 선교를 망친다. 사탄에 틈을 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선교는 기도이다"라며 집회를 인도한다.
북미원주민 선교지에서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으로 3명의 성도들이 목에 고통을 호소했다. 중보기도의 한 제목이다.
또 4번팀이 간 곳은 연락이 현지와 연락이 재대로 되지 않아 현지 원주민들이 당황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시 잘 이야기가 되어 화요일 밤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원주민 여자분이 따뜻하게 환영해 주어 8개의 천막을 쳐주었다. 중보기도의 덕이 아닐까?
올림픽 경기와 신앙
13일(수) 저녁, 뉴욕충신교회 송정희 사모는 "고린도전서 9장 24-27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올릭핌경기의 경기자를 비유하여 설교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내용이다.
월요일에는 우리는 하늘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이다. 화요일에는 한가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말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교만이 아니라 겸손이 필요하다. 겸손은 순종이다.
이제 하나가 되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바울은 믿음의 삶을 일꾼이라고 이야기 했다. 군사라고, 농부라고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주자라 했다. 본문의 말씀은 경주자에 대한 말씀이다.
분쟁이 많은 고린도 교회는 아테네에서 가까운데에 있다. 그래서 경기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군사를 이야기하는 것 보다 경기자를 이야기했다.
현재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경기장에서느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 있다. 우리도 믿음의 경기에 섰다.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보고 있다. 내가 생각할때 주님과 사탄이 보고있다. 믿음의 삶을 누가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라. 그런 믿음의 부담감이 있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응원 하시지만 사탄은 넘어졌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경기자의 자세이다.
올림픽 경기에는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목적이 있다. 금메달이다. 그들에게는 뛰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 믿는자에게도 목적과 목표가 있다. 목적과 복표는 일선상에 있으며, 목적에 비해 목표는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추상적이다. 목표는 백종족 복음화등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목적과 목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방향없이 가는 것이다. 목표가 없으니 주먹을 쥐지만 허공을 치는 것이다. 방향없는 교회는 비전이 없으니 안주하는 교회가 된다. 그런교회는 변화가 없으며 율법적이다. 그러다 보니 인본주의로 간다. 목표없는 교회는 제자훈련, 잔도폭발등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는 한다. 하지만 남이 하니까 하는 것이지 목표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일이년하다가 흐지부지된다. 경기자는 목적목표가 있는 것 처럼, 우리에게도 목적목표가 있다.
디모데전서 5장을 보면 경기자는 법대로 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 룰을 지켜야 한다. 룰을 안지키면 반칙이다. 그이유는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을 생각하지 않아서 이다. 훌륭한 경기자가 되기위해 훈련과정이 있다. 축구선수는 축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등 기초과정을 한다. 우리믿음에도 그런 연습과정이 있다. 믿는 우리는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을 통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통성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은 수레바퀴 삶이다. 축구선수가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 처럼 신앙인들도 수레바퀴삶처럼 예배가 연습이 되어야 한다. 섬김, 말씀, 교제, 전도...그런 과정이 있어야 전체가 훈련이 되어진다.
경기의 자세가 중요하다. 운동에는 바른 자세가 있고 그후 그자세를 위해 연습을 한다. 자세가 잘못되면 안된다. 그러면 믿음의 바른자세는 절제이다. 먼저 감정 게으름등을 다스리고, 시기질투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을 젤제하는 것이다.
다스려서 절제가 안되면 쳐서 복종이 되어야 한다. 남북전쟁 전 노예들은 쇠사슬에 묶어 짐승처럼 복종을 강요했다. 우리에게도 올라 오는 것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올림픽 운동선수는 체중조절을 잘해야 한다. 금식을 하지만 안먹는 것은 힘들다. 처음부터 못한다. 한두끼부터 금식을 해야 삼일금식을 할수 있다. 경건의 훈련이다. 체중조절은 쳐 복종하는 것으로 고통이 따른다.
올림픽 운동선수들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면류관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