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윤 선교사 "한류바람 분 인도, 이젠 중원에서 예수로 겨룰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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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ㆍ2008-08-31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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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윤 인도 선교사가 지난 7월 말 열렸던 세계선교대회 참가차 미국을 방문하고 8월 31일 저녁 인도로 돌아간다.
아멘넷 기자는 유동윤 선교사를 만나 카레의 나라, 소를 우상으로 섬기는 나라, 힌두교의 나라, IT가 강한 나라등 피상적으로 알려진 인도이야기를 들었다. 유 선교사의 인도이야기는 끓이 없었다. 그의 남은 이야기는 아멘넷 칼럼을 통해서 계속 만날수 있다.
19년동안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해온 유 선교사는 6년 동안 북미주 원주민(인디언) 선교사로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마친후 2006년 6월 뉴욕에서 인도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최근 뉴욕에서 북미원주민 선교를 통해 큰 관심이 일고 있다. 6년동안 원주민 사역을 해온 유 선교사가 뉴욕교계를 위해 해줄말은 없을까?
유 선교사는 "북미원주민 사역은 장기사역이 필요하다. 원주민 사역은 가난하여 그들을 부추겨 일어난다는 개념이 아니다. 원주민들은 삶 자체가 망가져 있다. 그래서 장시간의 미션으로 원주민들의 자존감을 살리고 중독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년간의 사역후 유 선교사는 선교훈련원에서 인도에서 온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뜨거움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더럽고, 무서운 인도는 그의 속에서 나가게 하시고 인도를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유 선교사는 "우리 가족은 한 팀이잖아요"라며 아내 유형란, 정원, 정준, 정아등 가족과 함께 2006년 인도를 향했다.
계급제도 카스트를 뚫고 선교하라
유 선교사가 처음 만난 인도는 계급제도인 카스트가 강하게 존재했다. 천민으로 태어나면 죽을때까지 천민이다. 인도에서 사역하는 한인선교사들은 주로 접근하기 쉬운 천민, 빈민, 어린이등을 대상으로 사역한다.
그래서 인도의 주류교회에 접근하기가 힘들며, 따라서 인도 상류 계급을 위한 전도자가 부족했다. 현지인 목사들의 대부분은 천민출신이며 인도 계급 상류층은 그들을 목사로 대우하지 않는다.
유동윤 선교사는 비록 변두리에서 시작하지만 중앙을 돌파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배짱좋은 기도를 했다.
그런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오는 9월부터 한인선교사중 처음으로 137년 역사를 가진 뉴델리 소재 현지교회인 주현교회의 담임을 맡기로 했다. 또 델리대학교의 교목을 맡기로 햇다.
주류교회로 진출하는데 대한 염려와 반대도 있다. 한편에서는 긁어 부스럼이라며 정체가 드러나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는 "이제는 인도 중원에서 예수를 드러내며 자웅을 겨눌때가 됐다"라며 "한인선교사의 주류진출은 저도 처음이고 그들도 처음이니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카레의 나라, 인도에 정착하기
유동윤 선교사가 인도에 도착하여 철저한 현지화 작전을 펼쳤다. 현지인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선교 프로젝트에 현지인들이 의견을 듣고 프로젝트에 참가시켰다. 또 현지인들과 같이 어울려 먹고자고 말했다.
한인교회 성도들이 담임목사와 같이 식사하면 좋아하는 것과 같이, 인도인들도 선교사와 같이 식사를 하면 좋아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는 카레로 대표하는 인도음식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유 선교사는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현지인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위기도 닥쳤다. 노란콩이 들어간 카레에다 빵을 찍어 먹는데 보기에 마치 설사와 같아 힘이 들었다. 현지인과 같이 손으로 먹다 보면 서툴러 얼굴에 음식 찌꺼기가 붙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적응된 유 선교사는 "오히려 미국에 와서 한국음식을 먹으니 소화가 안된다. 인도있을때는 적어도 4일은 카레를 먹었다"고 소개했다.
인도 언어는 1100개이며, 가지까지 치면 3천여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 가운데 인도사역에서의 언어사용은 어떨까?
현지 언어가 많다보니 영어를 주언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힌두어이다. 그래서 힌두어를 배우겠다며 동네사람에게 3개월만에 힌두어로 설교를 하겠다고 큰소릴 쳤는데 걱정이다.
유 선교사는 여러사역에 쫓아다니다 보니 아내인 유형란 사모는 실력이 5등급인데 유 선교사는 아직 3등급이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언어공부에 바쁘다.
사역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으로서 유동윤 선교사가 보는 인도는 어떤나라일까?
유 선교사는 "인도는 선교를 떠나 한번은 방문해야 할 나라이다. 비행기를 타고 눈 덮힌 히밀라야 산맥을 보았는데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같았다. 인도는 느린것 같지만 IT에 강국이고 핵개발을 한 나라이다. 또 토속종교의 모습인데, 깊은 힌두철학을 만들어 냈다"고 인도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인도의 독특한 문화 이해하기
인도는 수천개의 언어속에 다른 문화속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단일문화와 언어속에서 살아온 한인들은 현지인을 만나고 당혹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인도는 "1+1=2라는 것 같이 이렇게 될것이다"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어른들은 사람들앞에서 다른 사람을 야단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방안에서 야단을 치는것은 괜찮지만 공공장소에서 야단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다 현지인에게 쫓겨나는 선교사도 있다.
'예스'와 '노'의 의미도 다르다. 인도사람은 '예스'를 하며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절대 '노'라는 이야기를 안한다. "No Problem"이라는 말은 '예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일 만나자라고 이야기할때 듣는 "No Problem"은 반드시 긍정의 의미가 아니므로 내일 만나지 못할 확율이 크다.
인도의 문화속에서 색이 분명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인선교사는 현지인을 이해 못한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서 성공한 사역의 방법이 다른지역에서는 반드시 성공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류의 바람이 분 인도
인도의 동북부에는 한류바람이 불었다. 한국 드라마등 비디오가 유행이다. 하지만 인도사람의 삶은 한국의 60년대인데 드라마는 2천년대이므로 속은 따라가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해지는 문제도 있다. 인도 동북부에는 현대 멜로물이 나오는 반면, 북부 본토에는 한국의 현대물 보다는 아직 대장금이 유행이다.
힌두교와 기독교
힌두교 국가인 인도인의 13%가 이슬람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이 힌두교에 눌려 조용하다. 기독교는 2%인데 남쪽은 도마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성하고, 동북부는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의 영향으로 기독교 인구가 높다. 하지만 뉴델리가 있는 북부 본단은 0.5%밖에 되지 않는다.
힌두교는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이 되기도 한다. 인도는 빈부의 차가 많음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힌두교의 영향이다. 힌두교의 가르침은 어렵더라도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며 좋은 일을 하면 다음에 좋은 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메세지는 다음 생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니 현지인들에게 충격적이다. 지금 예수를 믿으면 왕의 아들이 된다는 메세지는 힌두문화로 보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쉽게 받아 드릴수 없다. 좋은일을 많이 함에도 선교지에서 기독교 선교사가 공격을 받는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동윤 선교사는 한인교회와 힌두교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유 선교사는 "힌두문화인 요가와 명상을 크리스찬이 하는 것은 교회를 잠식하는 것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건강이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태권도가 선교의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 처럼, 요가와 명상이 힌두의 선교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인도선교의 방향
유동윤 선교사는 2008 세계선교대회에 참가하고 과거와 달리 전문인 선교가 필요함을 느꼈다. 우물을 파주고 빵과 사탕을 주는 1세대 선교를 지나 전문인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
목사이자 선교사가 하는 사역은 전문성이 없어 힘이 든다. 예를 들어 빵집을 한다고 하면 선교사가 주관하기는 힘들다. 유 선교사는 "전문인들이 장기선교가 아니더라도 3-6개월 선교지로 와서 집중하는 선교가 큰 효과를 낼수 있다"고 말했다.
유 선교사는 음악사역자를 인도에 초청했다. 인도의 노래 실력, 특히 교회음악은 심각할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 3명이 불러도 3명의 불협화음을 듣는다는 것. 그래서 현지인 찬양사역자를 양성하는 음악학교가 나와야 한다고 부탁했다.
유 선교사는 세계선교대회 참가를 통해 지라니 케냐 어린이 함창단에 큰 도전을 받았다. 그는 예수전도단이 찬양사역을 시작하면서 서울역에서 앞에서 모여 찬양할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난것 처럼, 인도에도 찬양을 통해 큰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유동윤 선교사의 사역내용
인도에는 3백여명의 한인선교사가 있다. 하지만 인도는 남한의 33배나 큰 지역이므로 인도의 남한크기를 겨우 10명이 커버하게 된다.
유동윤 선교사는 베데스다선교센터를 통해 310여개의 미전도종족에 보낼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를 열고 있다. 현재 인도인 30여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유동윤 선교사는 "한인들로만으로는 선교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대원 목사는 한국말을 잘하지만, 한인들이 보기에는 정서적으로 미국사람이다. 현지인을 훈련시켜 사역을 지원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이 기본적으로 사역할수 있도록 교회당을 지어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빈민촌 어린이사역도 한다. 또 현지인 사역자를 위해 컴퓨터 사역을 한다. 교육과정은 컴퓨터 7대로 12주과정인데 인기가 많아 현재 100여명이 기다리고 있다.
유 선교사는 "인도교회는 야성을 잃었고, 이를 깨우기 위해 부흥의 전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사역이 커지는데 돕는 사람은 같다. 인도를 예수이름으로 융단폭격하기 위해 폭탄을 지원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동윤 선교사 이메일: benjaminyoo@yahoo.com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아멘넷 기자는 유동윤 선교사를 만나 카레의 나라, 소를 우상으로 섬기는 나라, 힌두교의 나라, IT가 강한 나라등 피상적으로 알려진 인도이야기를 들었다. 유 선교사의 인도이야기는 끓이 없었다. 그의 남은 이야기는 아멘넷 칼럼을 통해서 계속 만날수 있다.
19년동안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해온 유 선교사는 6년 동안 북미주 원주민(인디언) 선교사로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마친후 2006년 6월 뉴욕에서 인도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최근 뉴욕에서 북미원주민 선교를 통해 큰 관심이 일고 있다. 6년동안 원주민 사역을 해온 유 선교사가 뉴욕교계를 위해 해줄말은 없을까?
유 선교사는 "북미원주민 사역은 장기사역이 필요하다. 원주민 사역은 가난하여 그들을 부추겨 일어난다는 개념이 아니다. 원주민들은 삶 자체가 망가져 있다. 그래서 장시간의 미션으로 원주민들의 자존감을 살리고 중독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년간의 사역후 유 선교사는 선교훈련원에서 인도에서 온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뜨거움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더럽고, 무서운 인도는 그의 속에서 나가게 하시고 인도를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유 선교사는 "우리 가족은 한 팀이잖아요"라며 아내 유형란, 정원, 정준, 정아등 가족과 함께 2006년 인도를 향했다.
계급제도 카스트를 뚫고 선교하라
유 선교사가 처음 만난 인도는 계급제도인 카스트가 강하게 존재했다. 천민으로 태어나면 죽을때까지 천민이다. 인도에서 사역하는 한인선교사들은 주로 접근하기 쉬운 천민, 빈민, 어린이등을 대상으로 사역한다.
그래서 인도의 주류교회에 접근하기가 힘들며, 따라서 인도 상류 계급을 위한 전도자가 부족했다. 현지인 목사들의 대부분은 천민출신이며 인도 계급 상류층은 그들을 목사로 대우하지 않는다.
유동윤 선교사는 비록 변두리에서 시작하지만 중앙을 돌파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배짱좋은 기도를 했다.
그런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오는 9월부터 한인선교사중 처음으로 137년 역사를 가진 뉴델리 소재 현지교회인 주현교회의 담임을 맡기로 했다. 또 델리대학교의 교목을 맡기로 햇다.
주류교회로 진출하는데 대한 염려와 반대도 있다. 한편에서는 긁어 부스럼이라며 정체가 드러나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는 "이제는 인도 중원에서 예수를 드러내며 자웅을 겨눌때가 됐다"라며 "한인선교사의 주류진출은 저도 처음이고 그들도 처음이니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카레의 나라, 인도에 정착하기
유동윤 선교사가 인도에 도착하여 철저한 현지화 작전을 펼쳤다. 현지인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선교 프로젝트에 현지인들이 의견을 듣고 프로젝트에 참가시켰다. 또 현지인들과 같이 어울려 먹고자고 말했다.
한인교회 성도들이 담임목사와 같이 식사하면 좋아하는 것과 같이, 인도인들도 선교사와 같이 식사를 하면 좋아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는 카레로 대표하는 인도음식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유 선교사는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현지인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위기도 닥쳤다. 노란콩이 들어간 카레에다 빵을 찍어 먹는데 보기에 마치 설사와 같아 힘이 들었다. 현지인과 같이 손으로 먹다 보면 서툴러 얼굴에 음식 찌꺼기가 붙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적응된 유 선교사는 "오히려 미국에 와서 한국음식을 먹으니 소화가 안된다. 인도있을때는 적어도 4일은 카레를 먹었다"고 소개했다.
인도 언어는 1100개이며, 가지까지 치면 3천여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 가운데 인도사역에서의 언어사용은 어떨까?
현지 언어가 많다보니 영어를 주언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유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힌두어이다. 그래서 힌두어를 배우겠다며 동네사람에게 3개월만에 힌두어로 설교를 하겠다고 큰소릴 쳤는데 걱정이다.
유 선교사는 여러사역에 쫓아다니다 보니 아내인 유형란 사모는 실력이 5등급인데 유 선교사는 아직 3등급이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언어공부에 바쁘다.
사역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으로서 유동윤 선교사가 보는 인도는 어떤나라일까?
유 선교사는 "인도는 선교를 떠나 한번은 방문해야 할 나라이다. 비행기를 타고 눈 덮힌 히밀라야 산맥을 보았는데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같았다. 인도는 느린것 같지만 IT에 강국이고 핵개발을 한 나라이다. 또 토속종교의 모습인데, 깊은 힌두철학을 만들어 냈다"고 인도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인도의 독특한 문화 이해하기
인도는 수천개의 언어속에 다른 문화속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단일문화와 언어속에서 살아온 한인들은 현지인을 만나고 당혹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인도는 "1+1=2라는 것 같이 이렇게 될것이다"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어른들은 사람들앞에서 다른 사람을 야단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방안에서 야단을 치는것은 괜찮지만 공공장소에서 야단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다 현지인에게 쫓겨나는 선교사도 있다.
'예스'와 '노'의 의미도 다르다. 인도사람은 '예스'를 하며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절대 '노'라는 이야기를 안한다. "No Problem"이라는 말은 '예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일 만나자라고 이야기할때 듣는 "No Problem"은 반드시 긍정의 의미가 아니므로 내일 만나지 못할 확율이 크다.
인도의 문화속에서 색이 분명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인선교사는 현지인을 이해 못한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서 성공한 사역의 방법이 다른지역에서는 반드시 성공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류의 바람이 분 인도
인도의 동북부에는 한류바람이 불었다. 한국 드라마등 비디오가 유행이다. 하지만 인도사람의 삶은 한국의 60년대인데 드라마는 2천년대이므로 속은 따라가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해지는 문제도 있다. 인도 동북부에는 현대 멜로물이 나오는 반면, 북부 본토에는 한국의 현대물 보다는 아직 대장금이 유행이다.
힌두교와 기독교
힌두교 국가인 인도인의 13%가 이슬람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이 힌두교에 눌려 조용하다. 기독교는 2%인데 남쪽은 도마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성하고, 동북부는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의 영향으로 기독교 인구가 높다. 하지만 뉴델리가 있는 북부 본단은 0.5%밖에 되지 않는다.
힌두교는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이 되기도 한다. 인도는 빈부의 차가 많음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힌두교의 영향이다. 힌두교의 가르침은 어렵더라도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며 좋은 일을 하면 다음에 좋은 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메세지는 다음 생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니 현지인들에게 충격적이다. 지금 예수를 믿으면 왕의 아들이 된다는 메세지는 힌두문화로 보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쉽게 받아 드릴수 없다. 좋은일을 많이 함에도 선교지에서 기독교 선교사가 공격을 받는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동윤 선교사는 한인교회와 힌두교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유 선교사는 "힌두문화인 요가와 명상을 크리스찬이 하는 것은 교회를 잠식하는 것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건강이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태권도가 선교의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 처럼, 요가와 명상이 힌두의 선교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인도선교의 방향
유동윤 선교사는 2008 세계선교대회에 참가하고 과거와 달리 전문인 선교가 필요함을 느꼈다. 우물을 파주고 빵과 사탕을 주는 1세대 선교를 지나 전문인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
목사이자 선교사가 하는 사역은 전문성이 없어 힘이 든다. 예를 들어 빵집을 한다고 하면 선교사가 주관하기는 힘들다. 유 선교사는 "전문인들이 장기선교가 아니더라도 3-6개월 선교지로 와서 집중하는 선교가 큰 효과를 낼수 있다"고 말했다.
유 선교사는 음악사역자를 인도에 초청했다. 인도의 노래 실력, 특히 교회음악은 심각할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 3명이 불러도 3명의 불협화음을 듣는다는 것. 그래서 현지인 찬양사역자를 양성하는 음악학교가 나와야 한다고 부탁했다.
유 선교사는 세계선교대회 참가를 통해 지라니 케냐 어린이 함창단에 큰 도전을 받았다. 그는 예수전도단이 찬양사역을 시작하면서 서울역에서 앞에서 모여 찬양할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난것 처럼, 인도에도 찬양을 통해 큰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유동윤 선교사의 사역내용
인도에는 3백여명의 한인선교사가 있다. 하지만 인도는 남한의 33배나 큰 지역이므로 인도의 남한크기를 겨우 10명이 커버하게 된다.
유동윤 선교사는 베데스다선교센터를 통해 310여개의 미전도종족에 보낼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를 열고 있다. 현재 인도인 30여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유동윤 선교사는 "한인들로만으로는 선교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대원 목사는 한국말을 잘하지만, 한인들이 보기에는 정서적으로 미국사람이다. 현지인을 훈련시켜 사역을 지원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이 기본적으로 사역할수 있도록 교회당을 지어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빈민촌 어린이사역도 한다. 또 현지인 사역자를 위해 컴퓨터 사역을 한다. 교육과정은 컴퓨터 7대로 12주과정인데 인기가 많아 현재 100여명이 기다리고 있다.
유 선교사는 "인도교회는 야성을 잃었고, 이를 깨우기 위해 부흥의 전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사역이 커지는데 돕는 사람은 같다. 인도를 예수이름으로 융단폭격하기 위해 폭탄을 지원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동윤 선교사 이메일: benjaminy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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