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강사 김용의 선교사 뉴욕집회 성료 "복음의 열매가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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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08-10-2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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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예수전도단 뉴욕지부(와이엠코너스톤, 대표간사 윤재영목사)는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단 대표)를 초청하여 10월 24일(금)부터 27일(월)까지 퀸즈중앙장로교회(안창의 목사)에서 전도집회를 열었다.
김용의 선교사는 4일간의 시종 웃음이 끓어지지 않는 집회를 인도했다. 김 선교사는 바리새인 처럼 복음을 지식으로 아는 성도들에게 경고하며 살아 역사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했다. 또 선교단 대표답게 마지막 날에는 "복음의 열매가 선교이다"라며 선교를 강조하며 집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다음은 말씀요약이다.
유행에 마음을 뺏기는 사람의 특징은 푯대가 없다. 인생이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쉽고 편한길을 찾는다. 멸망으로 간다면 가면 안된다. 잠깐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영원한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고 불안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나가는 방향을 중요하다. 성경은 방향의 끝을 보라고 말한다. 꿈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수있다. 진정한 목적과 가치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인다. 눈은 사물을 인식하는 렌즈가 아니라 마음의 창이다. 자신의 가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탕자가 돌아 왔을때 아버지와 형의 마음이 달랐다.
주님의 꿈과 내가 생각하는 꿈이 다른것은 비극이다. 하나님은 우리향한 꿈이 있다. 복을 주실 실력을 가진 분은 주님이다. 그러면 누구의 꿈이 이루어 져야 할까? 말은 주님의 꿈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하지만 두 꿈이 충돌이 일어나면 무조건 내뜻이 우선이다.
(창세기 12장 1절-3절) 성경을 읽으면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것 같지만 아브라함이 복의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주님의 의도이다.
(갈라디아 3장 8-9절) 관건은 내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복이 아니라 복음이 복이다. 복음에는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다.
인간이 범죄한후 인간이 하나님에 나갈수 없는 것은 의로움의 문제이다. 범죄하는 자는 자동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죄를 통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것은 저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죄의 문제로 누구도 하나님 앞으로 나갈자가 없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이다.
아브라함의 복의 중심은 세상적이다. 우리는 '도토리' 하면 '묵' 을 생각한다. 하지만 스폴전은 하나님께서 도토리 안에 온 우주를 담아 놓았다고 말한다. '복'이라는 말은 세속적이고 천박한 개념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다.
복의 주제는 이방 모든 민족이다. 순서적으로 아브라함에 복을 주었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했다는 선민의식이 있지만 왜곡된 의식은 성경귀절을 보고 한것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말마암아 받는 복은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방을 축복하기 위해 선택한 사명적 존재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교적 존재로 지으셨다.
아브라함 같이 한번 언약하시면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약속을 하시고 성취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한다. 신앙생활을 표류하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 변하지 않는 곳에 믿음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
(출애굽기 19장 5절)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갈망하고 하나님과 중재하라는 선교적 공동체로 교회를 이땅에 세우셨다. 하지만 푯대를 놓치면 목적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된다. 구약은 이스라엘 실패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잃어버렸다. 영원한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된다.
이스라엘은 선교적 사명을 잘못해 끝장났다. 병든 이스라엘은 저주이다. 오늘날도 십자가 복음이 쓰레기장에 있다. 중국의 기독교는 참혹한 핍박을 받았지만 90년 문을 열었을때 100배이상 기독교인이 늘었다. 선교사에 가장 큰 기적이다.
130년전 조선은 미전도종족이었다. 당시 오늘날 무슬림보다 더 전도하기 어려웠던 땅이 조선이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복음을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의 죽음으로 한국 기독교가 시작됐다. 다 도망가던 한국전쟁때도 선교사가 왔다.
이제 한국은 축복을 받아 170개국에 1만8천여명의 선교사가 나가있다. 순교한 선교사 소식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선교는 그냥 주어진 일이 아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복음과 선교는 다르지 않다. 복음의 열매가 선교이다. 선교는 복음이 온 길이다. 선교는 열방을 포기할수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김용의 선교사는 4일간의 시종 웃음이 끓어지지 않는 집회를 인도했다. 김 선교사는 바리새인 처럼 복음을 지식으로 아는 성도들에게 경고하며 살아 역사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했다. 또 선교단 대표답게 마지막 날에는 "복음의 열매가 선교이다"라며 선교를 강조하며 집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다음은 말씀요약이다.
유행에 마음을 뺏기는 사람의 특징은 푯대가 없다. 인생이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쉽고 편한길을 찾는다. 멸망으로 간다면 가면 안된다. 잠깐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영원한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고 불안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나가는 방향을 중요하다. 성경은 방향의 끝을 보라고 말한다. 꿈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수있다. 진정한 목적과 가치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인다. 눈은 사물을 인식하는 렌즈가 아니라 마음의 창이다. 자신의 가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탕자가 돌아 왔을때 아버지와 형의 마음이 달랐다.
주님의 꿈과 내가 생각하는 꿈이 다른것은 비극이다. 하나님은 우리향한 꿈이 있다. 복을 주실 실력을 가진 분은 주님이다. 그러면 누구의 꿈이 이루어 져야 할까? 말은 주님의 꿈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하지만 두 꿈이 충돌이 일어나면 무조건 내뜻이 우선이다.
(창세기 12장 1절-3절) 성경을 읽으면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것 같지만 아브라함이 복의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주님의 의도이다.
(갈라디아 3장 8-9절) 관건은 내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복이 아니라 복음이 복이다. 복음에는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다.
인간이 범죄한후 인간이 하나님에 나갈수 없는 것은 의로움의 문제이다. 범죄하는 자는 자동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죄를 통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것은 저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죄의 문제로 누구도 하나님 앞으로 나갈자가 없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이다.
아브라함의 복의 중심은 세상적이다. 우리는 '도토리' 하면 '묵' 을 생각한다. 하지만 스폴전은 하나님께서 도토리 안에 온 우주를 담아 놓았다고 말한다. '복'이라는 말은 세속적이고 천박한 개념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다.
복의 주제는 이방 모든 민족이다. 순서적으로 아브라함에 복을 주었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했다는 선민의식이 있지만 왜곡된 의식은 성경귀절을 보고 한것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말마암아 받는 복은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방을 축복하기 위해 선택한 사명적 존재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교적 존재로 지으셨다.
아브라함 같이 한번 언약하시면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약속을 하시고 성취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한다. 신앙생활을 표류하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 변하지 않는 곳에 믿음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
(출애굽기 19장 5절)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갈망하고 하나님과 중재하라는 선교적 공동체로 교회를 이땅에 세우셨다. 하지만 푯대를 놓치면 목적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된다. 구약은 이스라엘 실패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잃어버렸다. 영원한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된다.
이스라엘은 선교적 사명을 잘못해 끝장났다. 병든 이스라엘은 저주이다. 오늘날도 십자가 복음이 쓰레기장에 있다. 중국의 기독교는 참혹한 핍박을 받았지만 90년 문을 열었을때 100배이상 기독교인이 늘었다. 선교사에 가장 큰 기적이다.
130년전 조선은 미전도종족이었다. 당시 오늘날 무슬림보다 더 전도하기 어려웠던 땅이 조선이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복음을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의 죽음으로 한국 기독교가 시작됐다. 다 도망가던 한국전쟁때도 선교사가 왔다.
이제 한국은 축복을 받아 170개국에 1만8천여명의 선교사가 나가있다. 순교한 선교사 소식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선교는 그냥 주어진 일이 아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복음과 선교는 다르지 않다. 복음의 열매가 선교이다. 선교는 복음이 온 길이다. 선교는 열방을 포기할수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이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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