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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종훈 목사 "이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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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1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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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한인장로회 뉴욕장로회신학대학원 제3회 학술세미나가 5월 1일(주일) 오후 5시 신학교가 소재한 뉴저지하베스트교회에서 열렸다. 먼저 강사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가 "사도바울의 복음"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다. 이어 해외한인장로회 총회장이며 뉴욕예일장로교회 담임목사인 김종훈 목사가 "이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종훈 목사는 "이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 한인이민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제언했다. 이민교회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답은 없다. 하지만 이민의 중단과 역이민속에 한인이민교회의 물리적인 환경은 최악으로 달리고 있는 가운데, 어려운 이민생활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에게 매달렸던 이민신앙의 선배처럼 위기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본질로 돌아가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도행전 29장이 많은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 김종훈 목사의 강의이후 더많은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에 의해 미래가 고민되어져야 한다. 2차례에 걸쳐 김종훈 목사의 강의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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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학술세미나 단체사진

(한인)이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누구나 관심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확실한 말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주제의 방향을 목회학 차원으로, 제가 이민목회를 하는 사람으로 경험하는 범위안에서 이민교회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1982년 1월에 뉴욕에 이민을 온 후 35년동안 뉴욕에서 살고 있다. 이민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그리고 장년 목회, 이민교회에서 모든 부서를 경험한 특별한 경험이 있기에 그것을 기초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이민교회의 과거현재미래를 구분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사회학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이민교회의 과거현재미래는 이민자들의 관심에 따라서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민교회의 과거현재미래를 이민자의 관심에 따라 나누어 보았다.

이민교회의 과거(1903-1965년)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 부터 미국이민이 시작된 것을 다 알고 있다. 이분들은 미국에 오셨어도 언제나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니 고국을 향한 정취적인 이슈가 이분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치하에서는 해외 독립운동본부가 되었고 해방이후에 조국이 공산화되어지는 위협에서 조국을 지키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금년 1월 한국과 미국의 중간에 있는 하와이에서 한국 통합총회 관계자와 선교협의를 하고 시간이 잠시났을때 하와이 초기교회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교회안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서있는 것을 보았고, 그곳이 바로 민족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곳에 살고 있는 후예들도 모두 이러한 정치적인 관심이 있는 분들의 후예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결국 이민자들의 관심이라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이민교회를 섬기는 가에 따라 이민교회의 특성이 지어지는데, 과거의 이민교회의 특성은 하와이를 중심으로 보면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민교회의 현재(1965-2015년)

이민교회의 현재를 1965-2015년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어떤 학적인 근거로서 말한 것이 아니라 저의 목회적인 관점에서 나누어 보았다. 1965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인종간 이민쿼터제를 폐지했다. 백인이 얼마, 아시안이 얼마, 중남미 얼마라는 이민 쿼터제가 폐지되고 이후 1970년대부터 많은 한국분들이 미국으로 이민오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간호사들이 많이 왔다. 그리고 간호사를 아내를 둔 목사들이 많이 왔다. 그분들은 한인이민교회 초창기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박희소 목사와 안창의 목사 등이 그렇다.

1980-90년대는 한인이민의 절정기였다. 저도 1982년, 80년대 초반에 미국에 이민왔는데 그때 많은 분들이 이민오셨고, 1990년대까지 20년 동안 한인들의 이민의 물결이 피크를 이루었다. 그러다 2천 년대부터 한인이민이 많이 감소가 되었다. 2015년까지 이민온 분들은 초창기 하와이 이민자들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피부로 느꼈던 것은 이때 이민자들의 최대관심은 '어메리칸 드림'이었다. 한국보다 더 나은 경제적인 안정,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더 좋은 교육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기회의 나라라는 미국에서의 어메리칸 드림은 당시 이민자들의 대부분의 관심이었다.

당시 한인 이민자들의 주된 업종을 보면 야채과일가게, 생선가게, 잡화점, 문방구, 봉제공장, 네일가게, 세탁소, 철물점, 의류가게, 델리가게, 꽃가게 등이었다. 그때는 누가 공항에 마중나오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을 결정되던 때였다. 만약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분이 공항에 마중 나오면 그분을 따라 봉제공장에 들어갔다. 이런 것들이 당시 이민사회의 모습이었다. 한인 이민자들은 12시간 이상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니 이민교회의 성격은 당연히 이런분들의 이민의 관심과 같이 가게 되었다. 한인 이민자들은 고생을 하면서도 고생의 대가가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한인이민교회는 이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저도 이민자 공항픽업, 아이들의 학교등록, 소셜시큐리티 카드 발행받는 것을 도왔다. 당시에는 사회봉사기관이 많이 없었기에 연로하신 분들 중에 아프신 분들이 병원에 가는 것도 도왔다. 이사를 하게 되면 교회 청년들이 이사를 도왔고, 하여간 교회가 한인 이민자들의 모든 삶의 기초였다. 처음 이민와서 집을 찾고, 직장을 얻는 것 까지 모든 이민생활의 센터의 역할을 교회가 했다. 당시 한인이민교회는 영적인 중심지, 정신적인 중심지, 그리고 이민생활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은 어려우면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이민은 나무를 뽑아 다른데 옮겨 심는 상황인데, 옮겨 심으니 얼마나 뿌리를 내리기 힘들겠는가. 그러니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이민와서는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어렵기에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신앙의 핵심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지고, 내가 어떻게 하든지 위로를 받고 내가 어떻게 하든지 복을 받고 내가 어떻게 하든지 이민사회에 정착하는데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고달픈 이민생활속에서 다른 어떤 생각을 하는 여유가 없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결속력도 있고 한인교회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도 했지만, 미국 주류사회와의 관계 그들의 흐름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주류사회로 부터 고립화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때 나타난 것이 '한흑 갈등'이었다. 1982년부터 87년까지 뉴욕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이민자로서 일을 하면서 공부했기에 과정을 마치는데 5년이 걸렸다. 제가 있었던 학교에는 3분의 2가 흑인학생이었고, 나머지는 스페니쉬 한인 백인들이 섞여있었다.

어느날 클래스에서 한흑 신학생들간에 재미있는 토론이 벌어졌다. 브루클린이나 브롱스 등 흑인지역에서 한인들이 야채가게를 하는데 흑인들이 가게에서 자꾸 훔친다. 그러니 우리들은 열심히 성실하게 미국와서 땀을 흘리고 이민생활의 터전을 닦아가는 사람에게 훔치고 때로는 총을 들고 돈을 빼앗고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맞지 않고, 십계명에도 어긋난다고 이야기를 했다.

흑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흑인지역에서 돈을 벌어서 돈을 지역 밖으로 가지고 나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지역에 가서 집을 산다는 것. 결국은 흑인 지역에서 돈이 빠져나가기에 점점더 지역이 게토화가 되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한인들은 열심히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한다고 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 흑인들을 점점 더 못살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훔치는 것은 사회정의라고 이야기하면서 클래스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아직도 그때 뜨거웠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서로 나중에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한흑 신학생들이 각자의 교회에서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저희 한인 신학생들은 한인교회로 돌아가서 운동을 펼쳤다. 아무래도 흑인들은 교회중심이기에 종업원을 고용할 때 커뮤니티 안에 있는 목사에게 추천을 받기로 하자고 했다. 그러면 훔쳐가거나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업을 하고 있는 지역 흑인 커뮤니티의 흑인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절기때에는 과일 등을 기부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서서히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신학생들이 작은 역할을 한 기억이 난다. 처치애브뉴에 폭동사건도 잘 알고 있다.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민와서 어렵고 힘든 생활속에서 힘들 때 하나님을 부르짖고 그리고 이민의 꿈도 이루는데만 관심이 있었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보는 눈이 없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들은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민사회의 새로운 현상

이민사회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났다. 상권의 대형화로 인한 소상권 쇠퇴가 일어났다. 80-90년대만해도 샘스클럽, 비제이, 코스코, 타켓, 스테플 등은 도심 외곽지대에만 있었다. 그래서 소상인들이 작은 자본으로도 쉽게 비지니스를 오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테플이 들어와 한인들이 하던 스테셔너리들은 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홈디퍼가 들어와 한인운영 하드웨어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왠만하면 비제이나 코스코에서 다 커버를 한다. 이전에는 작은 옷가게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조금만 벗어나면 대형 백화점에서 빅세일을 하고, 아웃렛몰이 주변에 다 있다. 한인들이 잡고 있었던 비지니스 업종들이 다 손을 놓기 시작했다. 생선가게도 거의 하지 않고, 야채가게도 손을 놓고 있다. 맨하탄 봉제공장은 처음 이민온 분들이 서니사이드 우드사이드 엘머스트에서 살면서 서브웨이를 타고 많이 다녔는데, 나중에는 인건비때문에 공장을 중국이나 중남미로 이전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가발과 가방 비지니스가 상당히 성행했는데 점점 뉴저지로 옮기거나 문을 닫고 해서 아직도 브로드웨이에 남아있는 한인상권은 미미한 상태이다. 점차적으로 한인 이민자들이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직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민의 정체 및 역이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8년 올림픽 이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돌파하면서 점차 생활이 안정이 되어갔다. 미국 한인이민자들을 보는 한국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미국에 왔다고 하면 전에는 부러운 투로 보았는데, 90년도 이후에는 왜 그렇게 고생하느냐 불쌍하게 보며 미국 거지 왔냐고 한다. 그러다보니 2010년 이후 한국을 방문하여 그런 대우를 받은 한인 이민자들은 왜 미국에 살아야 하느냐 하는 고민을 하며 정체감이 상당히 흔들리게 되었다. 이민의 정체현상이 벌써 5년여 전부터 생기고 있으며, 오히려 역이민이 모습을 보인다. 제가 총회 일을 맡으면서 세계 많은 곳을 다니고 있다. 캐나다에도 중남미에도 남미에도 더 이상 이민이 안온다고 한다. 미 동부에서 부터 서부까지 이민이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역이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민교회는 이민이 들어오지 않으면 더 이상 공급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과 함께 나타나는 현상은 열심히 이민생활하면서 교회중심으로 열심히 봉사하던 분들이 은퇴내지 노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일교회도 개척 23년차인데 초기에 열심히 일했던 분들이 노령화되어 지금은 건강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령화 현상과 함께 2세들이 '조용한 탈출(Silent Exodus)'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잘아는 이야기이다. 고등부까지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학생들이 대학과 대학원에 가면서 85% 이상이 자기가 자란 모교회를 떠난다. 말없이 조용히 떠난다고 해서 '조용한 탈출'이라고 부른다. 그것도 관심의 차이이다. 이민 1세들의 관심은 이민교회가 이민생활의 중심이었다. 교회가 신앙의 중심 그리고 생활의 중심이었다. 2세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자란 2세들은 언어도 문화도 부족하지 않다. 1세와 2세들의 관심이 다르다. 여러가지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관심이 다른 것이다. 1세들이 추구하면서 세워오는 교회의 방향과 이 땅에서 자라나서 미국문화와 미국생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2세들의 교회에 대한 관심의 차이가 결국은 그들을 떠나게 한다고 보고 싶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오는 개인주의, 물량주의, 성적인 자유에 대한 유혹은 사실은 한인 2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백인도 마찬가지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예일교회를 개척하고 5-6년이 되었을 때 베이사이드에 있는 유대회당으로 이전했다. 다들 유대인하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에서 자녀교육 세미나를 하면서 랍비를 초청해서 유대인 자녀교육의 성공의 노하우에 대해 듣고 싶었다. 교육의 기술과 방법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유대회당 랍비는 폴란드에서 나치의 학대를 피해 앨리스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이민자로서 어려운 일들을 열심히 했으며, 그리고 안식일이 되면 깨끗한 옷을 입고 회당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모습이 자신들이 처음 이민왔을 때의 모습과 같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주일이 되면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깨끗한 옷을 입고 교회에 오는 모습을 보고 옛날에 자신들이 미국에 처음 왔을때를 생각했다는 것.

결론은 지금처럼 하면 자녀교육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랍비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실망했다.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는 자녀를 키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아이비리그 교수가 만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기대했는데 단지 여러분이 자녀들과 함께 지금처럼 안식일을 잘지키라, 그러면 자녀교육 성공한다고 말했다. 랍비가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사실 유대회당도 우리 크리스찬들에 빌려줄 이유가 없다. 렌트를 받기위해 단지 경제적인 이유때문이었다. 이유는 유대인 젊은 층들이 다 세상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이민사회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이민사회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그 랍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며, 이것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세의 관심 그리고 2세의 관심은 다르다. 그리고 이민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관심이 다르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민사회의 관심에 다른 교회형태 변화

이민사회의 관심에 다른 교회형태 변화를 본다. 지금 크게 나누어보면 1세 중심의 교회가 있고, 1세의 신앙적인 토대위에 2세들의 관심을 품는 영어목회가 있고, 2세들이 다인종교회에 참석하거나 메가처치 안의 한인공동체 교회에 참석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본다. 특별히 팀 켈리 목사가 있는 리디머처치에는 많은 한인 2세들이 있으며, 한인 공동체를 위한 서비스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런 큰 메가처치 안에 한인 공동체에 들어가서 다니는 자녀들도 많이 있고, 결국은 다인종 사회속에서 다인종 교회로 가야하지 않나 해서 다인종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도 있다. 여하간 3가지 형태로 교회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어떤것이 맞는지에 대해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과거의 이민교회는 고국에 대한 향수로 고국의 정치에 대한 후원하는 단체였다면, 1965-2015년까지 이민교회는 어메리칸 드림이라고 하는 이민자의 관심에 주목하며 1970년대에 시작해서 1980-90년대에 피크를 이루었다가 2000년-2010년 하강 포물선을 이루는 이민의 물결을 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한인이민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2부 이민교회의 미래에 대해 이어집니다. 학술대회에 끝까지 참가하지 못했는데 음성파일을 제공해주신 뉴욕장신대 학감 이기백 목사님과 권순민 재학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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