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소장의 역사적인 흑인 대통령 오바마 취임식 참관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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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01-24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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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6일 워싱턴DC에 소재한 어느 한 주택에 5분 간격으로 검은색 캐딜락이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을 각각 내려주고 사라졌다. 저녁시간에 사람이 들어갔는데도 불빛이 새어나오질 않았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한 중요한 만남이 있음이 분명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바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언론의 눈을 피해서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의 집에서 비밀 회동을 갖었다. 두 사람이 길고 힘들었던 경선 과정 끝에 민주당을 단일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협상 중재자는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이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3선 의원이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당내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어느 한쪽 계파에 소속된 입장도 아니었다. 힐러리 클린턴에겐 파인스타인은 같은 여자상원이고 그동안 여자대통령을 가장 열망한 의원이었으며 오바마의 이슈와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동료 상원의원이었다. 파인스타인 의원의 중재로 힐러리 클린턴은 다음날 워싱턴 기차역(Union Station Main Hall)에서 공개행사를 열고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공식적으로 중단하고 오바마 의원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길고 치열한 경쟁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의 역할이 돋보였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힐러리에게도 또한 오바마에게도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훌륭한 취임식을 책임져 주겠다고 했다.
20일 오전 11시 30분 역사적인 미국의 44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 준비위원장인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취임식에는 180만 명의 국민들이 직접 참관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전국으로부터 몰려올지 아무도 예상하질 못했다. 일주일전부터 워싱턴 인근까지 모든 호텔은 동이 났다. 19일 자정을 기해서 시내로 들어오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을 책임진 파인스타인 의원에게 그동안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취임식이 역사적으로 가장 활짝열린 취임식이 되도록 해줄 것과 누구도 참가하기 쉽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심지어는 시내안의 노숙자들도 절대로 내 보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취임식을 치루어 달라고 했다. 흑인 대통령이란 이유로 특별히 경비.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함인데 주인공의 뜻대로 하자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을 위한 특별 예산을 마련했으며 새대통령의 안전을 위해서 특별조치를 취하기 했다. 예년 같으면 특별한 사람들이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 취임식엔 누구든지 참가를 하도록 했다. 자신이 속해있는 연방지역구의 하원으로부터 참가티켓을 요청하도록 했다.
티켓을 구입하지 못했어도 행사장으로 오면 일반시민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의원들은 배정받은 티켓을 갖고서 지역구민들에게 배포를 했다. 취임식 전날인 19일엔 티켓을 받으려고 의원실로 몰려온 시민들로 인하여 의사당 부근의 차량이 통제되기도 했다. 바람이 너무나 강해서 살갖을 찢어댄다고 소문이 난 포토맥 강의 겨울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취임식 티켓을 구하려고 4시간씩 이상을 떨면서 기다리는 장사진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다 역사적인 최초의 흑인대통령의 현장에 있으려는 욕구였다. 미리 약속받은 티켓을 받으러 필자도 예외없이 의원회관엘 3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각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올라온 지역구민들을 맞으려고 의원실에 대기하고 있었고 언 몸을 녹이라고 따근한 차를 제공하기도 했다.
취임식 전야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각 인종, 종교, 봉사단체, 이익단체별로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축하하는 전야제 파티가 열렸다. 저녁시간 부터는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의 퍼레이드 년도에 철제스탠드와 경찰저지선을 설치하느라 3천의 경찰과 5천의 무장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작업을 했다. 워싱턴DC의 시내 한복판을 가로 막아서 통행을 금지시키니 참관인들이 그냥 그 자리에 갇히고 말았다. 필자도 미처 호텔을 구하지 못해서 4명이 5백달러씩 분담해서 1베드룸 아파트를 2일동안 빌렸다.
20일 아침엔 새벽5시부터 시내가 요란했다. 먼저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취임식장을 향하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었다. 심지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참관인이 입장하는 입구에서 아예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정된 장소의 입장 시간은 9시부터 였다. 7시30분에 나섰는데도 벌써 길거리는 인파로 메워졌다. 이렇게 출렁거리는 사람의 물결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없었다. 4시간을 걸어서 겨우겨우 지정된 곳에 도착했다.
취임식이 진행되는 의사당계단 바로 앞에는 2만개의 의자를 배치했다. 노랑,오렌지,자주, 파랑, 은빛으로 구분해서 각각 의자에 앉을 수 있는 티켓과 서서 참관하는 티켓으로 나누었다. 필자는 운좋게 노란색의 맨 앞세션의 자리를 받았다. VIP들이 막 입장을 시작하는 아슬아슬한 시간대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참관인들이 통행해야 할 도로까지 막아 버리는 바람에 시간대에 입장을 할 수 있는 시민들 3만여명 이상이 도로에 갇혀서 취임식을 보지도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파인스타인 준비위원장은 특별히 경찰에 지시해서 사고의 경위를 조사하도록 했다고 한다.
취임식 참관인단석 가장 가운데의 앞자리에 앉을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이상한 일은 이번엔 아무도 필자에게 티켓을 검사해 보자는 경호요원이 없었다. 이전과 그 이전의 대통령 취임식때엔 티켓을 구해서 정당하게 입장했음에도 모두가 백인들인데 필자만 유독 아시안이기 때문에 금방 눈에 드러나서 취임식 도중에 서너 번은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경호요원이 귀찮게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좋은 로얄 참관인석에 흑인들도 남미계들도 아시안들도 백인들과 함께 많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귀찮은 일이 없었다.
이와같은 현상은 취임식 저녁의 축하 무도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비해서 정치행사가 얼마나 편해졌는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할 방도가 없을 정도이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수많은 정치행사에 참가했지만 어느 한 가지 내가 주인이고 나도 일원이란 생각이나 그런 기분이었던 적이 없었다. 늘 남의 잔치였고, 어색했고 불안 했었다. 180만명의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취임식행사를 상상해 볼 수가 있겠는가?
사회자인 다이안 파인스타인 취임식준비위원장의 목소리도 분명히 떨렸다. 535명의 연방의원중에서 오바마 리더쉽의 탄생을 가장 학수고대했다는 그래서 예비경선과정에서 당연직대의원들의 목소리를 낮추게 하느라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는 확고한 진보철학의 여성정치인 다이안 파인스타인의 목소리가 분명히 스스로의 감동에 떨리고 있었다. 취임식의 사작을 알리는 파인스타인의 마이크 소리에 웬지 눈물이 쏟아졌다.
의사당 출구 복도를 통해서 취임식단에 등장하는 오바마의 모습이 대형스크린에 나타나자 워싱턴DC의 시내 전체가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환호성을 지르는 관중들보다 눈물을 쏟아내는 관중이 많았다. 바로 옆자리 휠체어에 몸을 실은 흑인 할머니가 몸에 두른 담요에 얼굴을 묻고서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움을 내고 있었다. 앞자리의 백인 귀부인도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분명히 울고 있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목사가 축복기도를 하는 동안 그의 기도말에 모든 사람들의 진정이 담기는 것을 확신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족을 위해서 특히 두 딸인 말리아와 샤샤를 보살펴 달라는 워렌 목사의 기도말귀에 앞.뒤의 사람들로부터 아멘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했던 바로 그 성경에 손을 얹어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순간이었다. 오바마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인 링컨, 그래서 그는 취임식을 위해서 필라델피아로부터 링컨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기차로 워싱턴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바마대통령은 빈부의격차로 인종의 차이로 성별과 이념의 차이로 갈기갈기 찢어진 지금의 미국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절대절명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가 그렇게 링컨을 배우고 그를 따르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철저하게 미국시민의 통합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취임을 앞둔 일주일전(13일)에 자신을 반대했던 미국 최고의 보수논객들 6명이 모인 사랑방 모임에 예고없이 찾아갔다. 그들에게 시대정신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보수의 대통령도 진보의 대통령도 아니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그것을 구분할 겨를이 없다 지금 미국은 건국 초기의 정신으로 국민이 모두 함께 나가야 한다. 함께 행동해야 한다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강조했다. 바로 그것은 링컨대통령의 리더쉽이었다. 올해는 링컨이 태어난지 꼭 200년 되는 해이다.
취임식이 있는 20일의 전날은 오바마의 영성과 철학,그리고 행동의 사표인 아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이다. 특별히 오바마는 그래서 침착성을 유지한다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언급했다. 바로 링컨이 손을 얹고서 선서를 했던 바로 그 성경에 손을 얹었을때의 오바마 대통령의 심정을 상상해 봐야 한다. 노란색 투피스 차림의 부인 미셀이 손에 든 성경에 손을 얹은 오바마의 눈길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향했지만 아마도 그는 그 순간 링컨대통령을 깊게 묵상했을 것이다.
취임연설을 하는 동안 막내딸인 샤샤는 한번도 아빠의 연설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연설을 끝내고 단상을 내려오는 아빠에게 샤샤는 제일먼저 엄지손가락을 내 보이면 최고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바로 저것이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연설문 작성담당자인 존 파브로우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대부분 대통령 혼자서 작성한 취임연설문은 필자가 그 자리에서 듣기론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구체적이었고 다양하게 언급했지만 직접적이었다. X세대 대통령답게 직설적이었다.
시장을 감시하는 것을 소홀하게 했더니만 이렇게 어려워졌다.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언급했을때엔 여기저기서 “와우..”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연설문에까지 박았다. 60년전 내 아버지는 식당에서 서브를 받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이 미국이다라고 했을때엔 그의 “평등”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다시금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리더쉽을 다시한번 발휘할 것이다. 세계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고 현재의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핵무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과거의 적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치를 세계에 다시한번 더 과시하겠다고 했다.
축하연주에도 바이얼린은 백인남자(이작 펄먼), 첼로는 아시안(요요마), 피아노는 여성(가브리엘라 몬테뇨), 그리고 클라리넷은 흑인(앤서니 맥킬)이었다.
김동석 소장(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 센터 대표)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협상 중재자는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이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3선 의원이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당내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어느 한쪽 계파에 소속된 입장도 아니었다. 힐러리 클린턴에겐 파인스타인은 같은 여자상원이고 그동안 여자대통령을 가장 열망한 의원이었으며 오바마의 이슈와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동료 상원의원이었다. 파인스타인 의원의 중재로 힐러리 클린턴은 다음날 워싱턴 기차역(Union Station Main Hall)에서 공개행사를 열고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공식적으로 중단하고 오바마 의원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길고 치열한 경쟁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의 역할이 돋보였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힐러리에게도 또한 오바마에게도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훌륭한 취임식을 책임져 주겠다고 했다.
20일 오전 11시 30분 역사적인 미국의 44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 준비위원장인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취임식에는 180만 명의 국민들이 직접 참관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전국으로부터 몰려올지 아무도 예상하질 못했다. 일주일전부터 워싱턴 인근까지 모든 호텔은 동이 났다. 19일 자정을 기해서 시내로 들어오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을 책임진 파인스타인 의원에게 그동안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취임식이 역사적으로 가장 활짝열린 취임식이 되도록 해줄 것과 누구도 참가하기 쉽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심지어는 시내안의 노숙자들도 절대로 내 보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취임식을 치루어 달라고 했다. 흑인 대통령이란 이유로 특별히 경비.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함인데 주인공의 뜻대로 하자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을 위한 특별 예산을 마련했으며 새대통령의 안전을 위해서 특별조치를 취하기 했다. 예년 같으면 특별한 사람들이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 취임식엔 누구든지 참가를 하도록 했다. 자신이 속해있는 연방지역구의 하원으로부터 참가티켓을 요청하도록 했다.
티켓을 구입하지 못했어도 행사장으로 오면 일반시민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의원들은 배정받은 티켓을 갖고서 지역구민들에게 배포를 했다. 취임식 전날인 19일엔 티켓을 받으려고 의원실로 몰려온 시민들로 인하여 의사당 부근의 차량이 통제되기도 했다. 바람이 너무나 강해서 살갖을 찢어댄다고 소문이 난 포토맥 강의 겨울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취임식 티켓을 구하려고 4시간씩 이상을 떨면서 기다리는 장사진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다 역사적인 최초의 흑인대통령의 현장에 있으려는 욕구였다. 미리 약속받은 티켓을 받으러 필자도 예외없이 의원회관엘 3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각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올라온 지역구민들을 맞으려고 의원실에 대기하고 있었고 언 몸을 녹이라고 따근한 차를 제공하기도 했다.
취임식 전야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각 인종, 종교, 봉사단체, 이익단체별로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축하하는 전야제 파티가 열렸다. 저녁시간 부터는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의 퍼레이드 년도에 철제스탠드와 경찰저지선을 설치하느라 3천의 경찰과 5천의 무장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작업을 했다. 워싱턴DC의 시내 한복판을 가로 막아서 통행을 금지시키니 참관인들이 그냥 그 자리에 갇히고 말았다. 필자도 미처 호텔을 구하지 못해서 4명이 5백달러씩 분담해서 1베드룸 아파트를 2일동안 빌렸다.
20일 아침엔 새벽5시부터 시내가 요란했다. 먼저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취임식장을 향하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었다. 심지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참관인이 입장하는 입구에서 아예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정된 장소의 입장 시간은 9시부터 였다. 7시30분에 나섰는데도 벌써 길거리는 인파로 메워졌다. 이렇게 출렁거리는 사람의 물결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없었다. 4시간을 걸어서 겨우겨우 지정된 곳에 도착했다.
취임식이 진행되는 의사당계단 바로 앞에는 2만개의 의자를 배치했다. 노랑,오렌지,자주, 파랑, 은빛으로 구분해서 각각 의자에 앉을 수 있는 티켓과 서서 참관하는 티켓으로 나누었다. 필자는 운좋게 노란색의 맨 앞세션의 자리를 받았다. VIP들이 막 입장을 시작하는 아슬아슬한 시간대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참관인들이 통행해야 할 도로까지 막아 버리는 바람에 시간대에 입장을 할 수 있는 시민들 3만여명 이상이 도로에 갇혀서 취임식을 보지도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파인스타인 준비위원장은 특별히 경찰에 지시해서 사고의 경위를 조사하도록 했다고 한다.
취임식 참관인단석 가장 가운데의 앞자리에 앉을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이상한 일은 이번엔 아무도 필자에게 티켓을 검사해 보자는 경호요원이 없었다. 이전과 그 이전의 대통령 취임식때엔 티켓을 구해서 정당하게 입장했음에도 모두가 백인들인데 필자만 유독 아시안이기 때문에 금방 눈에 드러나서 취임식 도중에 서너 번은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경호요원이 귀찮게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좋은 로얄 참관인석에 흑인들도 남미계들도 아시안들도 백인들과 함께 많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귀찮은 일이 없었다.
이와같은 현상은 취임식 저녁의 축하 무도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비해서 정치행사가 얼마나 편해졌는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할 방도가 없을 정도이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수많은 정치행사에 참가했지만 어느 한 가지 내가 주인이고 나도 일원이란 생각이나 그런 기분이었던 적이 없었다. 늘 남의 잔치였고, 어색했고 불안 했었다. 180만명의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취임식행사를 상상해 볼 수가 있겠는가?
사회자인 다이안 파인스타인 취임식준비위원장의 목소리도 분명히 떨렸다. 535명의 연방의원중에서 오바마 리더쉽의 탄생을 가장 학수고대했다는 그래서 예비경선과정에서 당연직대의원들의 목소리를 낮추게 하느라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는 확고한 진보철학의 여성정치인 다이안 파인스타인의 목소리가 분명히 스스로의 감동에 떨리고 있었다. 취임식의 사작을 알리는 파인스타인의 마이크 소리에 웬지 눈물이 쏟아졌다.
의사당 출구 복도를 통해서 취임식단에 등장하는 오바마의 모습이 대형스크린에 나타나자 워싱턴DC의 시내 전체가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환호성을 지르는 관중들보다 눈물을 쏟아내는 관중이 많았다. 바로 옆자리 휠체어에 몸을 실은 흑인 할머니가 몸에 두른 담요에 얼굴을 묻고서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움을 내고 있었다. 앞자리의 백인 귀부인도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분명히 울고 있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목사가 축복기도를 하는 동안 그의 기도말에 모든 사람들의 진정이 담기는 것을 확신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족을 위해서 특히 두 딸인 말리아와 샤샤를 보살펴 달라는 워렌 목사의 기도말귀에 앞.뒤의 사람들로부터 아멘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했던 바로 그 성경에 손을 얹어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순간이었다. 오바마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인 링컨, 그래서 그는 취임식을 위해서 필라델피아로부터 링컨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기차로 워싱턴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바마대통령은 빈부의격차로 인종의 차이로 성별과 이념의 차이로 갈기갈기 찢어진 지금의 미국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절대절명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가 그렇게 링컨을 배우고 그를 따르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철저하게 미국시민의 통합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취임을 앞둔 일주일전(13일)에 자신을 반대했던 미국 최고의 보수논객들 6명이 모인 사랑방 모임에 예고없이 찾아갔다. 그들에게 시대정신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보수의 대통령도 진보의 대통령도 아니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그것을 구분할 겨를이 없다 지금 미국은 건국 초기의 정신으로 국민이 모두 함께 나가야 한다. 함께 행동해야 한다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강조했다. 바로 그것은 링컨대통령의 리더쉽이었다. 올해는 링컨이 태어난지 꼭 200년 되는 해이다.
취임식이 있는 20일의 전날은 오바마의 영성과 철학,그리고 행동의 사표인 아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이다. 특별히 오바마는 그래서 침착성을 유지한다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언급했다. 바로 링컨이 손을 얹고서 선서를 했던 바로 그 성경에 손을 얹었을때의 오바마 대통령의 심정을 상상해 봐야 한다. 노란색 투피스 차림의 부인 미셀이 손에 든 성경에 손을 얹은 오바마의 눈길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향했지만 아마도 그는 그 순간 링컨대통령을 깊게 묵상했을 것이다.
취임연설을 하는 동안 막내딸인 샤샤는 한번도 아빠의 연설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연설을 끝내고 단상을 내려오는 아빠에게 샤샤는 제일먼저 엄지손가락을 내 보이면 최고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바로 저것이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연설문 작성담당자인 존 파브로우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대부분 대통령 혼자서 작성한 취임연설문은 필자가 그 자리에서 듣기론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구체적이었고 다양하게 언급했지만 직접적이었다. X세대 대통령답게 직설적이었다.
시장을 감시하는 것을 소홀하게 했더니만 이렇게 어려워졌다.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언급했을때엔 여기저기서 “와우..”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연설문에까지 박았다. 60년전 내 아버지는 식당에서 서브를 받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이 미국이다라고 했을때엔 그의 “평등”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다시금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리더쉽을 다시한번 발휘할 것이다. 세계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고 현재의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핵무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과거의 적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치를 세계에 다시한번 더 과시하겠다고 했다.
축하연주에도 바이얼린은 백인남자(이작 펄먼), 첼로는 아시안(요요마), 피아노는 여성(가브리엘라 몬테뇨), 그리고 클라리넷은 흑인(앤서니 맥킬)이었다.
김동석 소장(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 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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