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섭 목사 "이민목회자의 아픔 -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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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09-01-05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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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회자 그 교인” (원제목: 그 남자 그 여자)
요즘 한국가요라는게 미국에 와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 많은 분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게다가 목회를 하다 보니 가요에 심취(?)할 기회와 시간도 없는 것이 모든 목회자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양일념의 바쁜 와중에 (?) 최근에 한국방송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대중가요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대중가요는 바이브와 장혜진이라는 가수들이 부른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가져간 그 여자, 한때는 내가정말 사랑했던 그 여자, 다 믿었었어 바보같이”라는 가사가 저의 마음에 깊이 아주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이 노래가 그것도 가요가 왜 목양일념에 정신없는 내 마음에 와 닿는가 하며 잠시 흔들림과 불안과 혼동에 빠져든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의 혼돈 후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옛사랑이 생각나서도 아니고 남녀의 이별이 슬퍼서도 아니고 경험 없는 어린 목사가 목회가 힘들어서도 아닌, 짧은 이민목회를 하면서 성도와 목회자의 사랑이 마치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남녀의 사랑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짧은 이민 목회(겸손의 표현이 아닌 정말로 짧은 목회임)를 하면서 그 짧은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성도들과의 이별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으로 찾아와서 함께 교회를 세우자던 분들, 이별의 말도 없이 얼마 없는 성도들 중 한 가정만 남기고 모두 데리고 나간 그 분(지금은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마치 앞서 소개한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 과거의 그 분들을 생각할 때 목회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배신감과 절망감 그리고 좌절감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교인들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하며 등을 돌리고 눈앞에서 까맣게 사라져 갈 때 그 마음이란 남녀의 이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가슴 아프고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전에 어느 집사님이 어떠한 이유로 교회를 떠나가겠다고 전화로 통보(?)할 때 그 집사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오랜 시간 전화를 붙잡고 달래도 보고 매달려도 보고 모든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은 교회를 떠나겠다고 이별을 결정하는 그 순간 문득 옛날에 첫 사랑과 이별할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지금 모시는 목사님의 한 교회에서 26년간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내가 겪은(는) 일들을 26년간 겪으시며 오늘까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목회를 해 오신 걸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 졌습니다.
오늘 내가 지난날 겪은 그리고 지금 겪는 그리고 미래에도 올 2009년에도 겪을(없기를 기도하지만) 성도와의 이별은 나 홀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민 목회자라면 함께 겪고 슬퍼하는 아픔일 것입니다. 동병상련의 차원에서 이민 목회를 하시는 동역자님들 그리고 감히(?) 이민 목회를 하려고 미국으로 오려하거나 아니면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님들에게 지면을 통해서 위로와 한 걸음 먼저 발을 디딘 자로써의 짧은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이민 목회로 부르심(Calling)이 있어야 한다.
모든 목회가 사명이 있어야 하지만 특별히 이민 목회는 다른 목회와는 달리 특별한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민 목회로의 부르심 없이 달려들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본인도 불행해지고 자신의 가정도 불행해지고 함께하는 교인들도 불행해 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 목회했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도 그냥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같은 마음으로 목회를 하면 되겠지 하면 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 한데로 이민 목회는 한국의 목회와는 다릅니다. 이민교회가 다르고 이민교회 성도들이 다르고 이민 목회자의 삶이 다릅니다.
최근에 이런 다르다는 평범하지만 특수한 진리를 간과하고 많은 이민교회 중 중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청빙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미 경험한데로 많은 경우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민교회가 다르고 성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는 인식만 가지고는 이민목회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민목회로의 진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민목회로 부르고 계신지 그 소명을 받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등록하면 시작할 수 있지만 진정한 목회는 목자장의 부르심이 없이는 시작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 예로 미국에 계신 많은 이민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위해 심부름꾼, 운전기사, 자동차 수리공, 법원통역, 자녀학교 통역, 픽업, 방과후학교 교사, 병원 간호조무사, 아파트 배관수리공, 목수, 등등 여기다 사모님들은 가사도우미에서 육아도우미 등 때로는 쌈짓돈까지 바쳐야하는 비상금 주머니까지의 역할 등, 한국의 목회자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며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도 마다않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은 바로 부르심입니다.(물론 이러한 일들을 다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바로서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제자가 되면 감사하지만 노래가사처럼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가져간 그 [여자]”처럼 등지고 떠나 버리는 것이 이민목회입니다. 그래도 또 믿고 또 믿고 또 주고 또 주고 또 속아주고 또 속아주고 또 사랑해주고 또 사랑해주는 것이 이민 목회입니다.
최근에 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부자격자들에게 영주권 스폰서를 서 준 게 문제가 되어 이민국과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모든 절차와 심사를 철저하게 강화하였다는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돈을 받은 교회나 목회자도 정말로 한 둘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생각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서 불법인줄 알면서도 교회가 나라의 법을 어기는 도덕적 지탄까지도 감수하며 영주권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성도들은 영주권을 받는 즉시로 교회를 떠나버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 이것이 이민교회고 이것이 이민교회 성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이민목회는 이별이 다른 목회와는 남다르게 많습니다. 아마 오래 이민목회를 하신 분들께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가슴 아픈 이별로 새벽을 눈물로 적셨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그 눈물이 강을 이룬다고 말하실 것입니다. 그 아픈 이별가운데서도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상처가운데서도 다시 남겨진 양들을 돌아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슬러서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들로 나가는 목자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지 그리고 또 다른 준비된 이별 앞에 양을 지키고 나를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을 계속갈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 대답은 오직 부름심의 확신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양(Quantity-Hardware)이 아닌 질(Quality-Software)로
그러므로 이민 목회는 이러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특수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양(Quantity)가 아닌 질(Quality)로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닌 소프트웨어(Software) 중심의 목회로 수와 상관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양 무리들을 잘 양육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목회자에게 수적인 성장을 목회의 목표로 삼는다면 이민교회에서는 멀지 않아 곧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민교회의 80%는 소형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이 미자립 교회를 섬기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싸워가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자적인 성장이 목표라면 몇 년간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 이를 이루지 못할 경우 100명의 목회자중 80명이 넘는 목회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괴감과 패배감 그리고 실망감에 사로잡혀 상처받고 힘들어하거나 이민목회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민목회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민목회는 양이 아니고 질입니다.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목회도 양이 아니고 질이었듯이, 바울의 목회도 양이 아니고 질이었듯이 우리의 목회도 질(Quality)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미국교회들 중에서도 하드웨어를 추구한 교회들은 건물 모게지와 새로 지은 교회건물과 교육관등의 건축비용을 지불하지 못하여 은행으로부터 차압을 당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에 나왔었습니다. 이것은 양을 추구한 잘못된 목회의 결과인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 그의 셋방에서 로마의 복음화를 시작하여 그의 셋방에서 전한복음을 통하여 로마의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교회는 대형화되고 화려해질 때 그 힘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이민교회가 살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웨어 중심의 목회이며 양이나 수가 아닌 질(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단 한 명의 교인을 데리고 평생을 바울처럼 텐트를 만들며 목회를 하더라도 바울과 같은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만 있다면 이민사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민목회자로 단 한 명만 데리고도 목회를 죽을 때 까지 그 한명과 한다는 자세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3. 주님의 위로와 상급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이민목회가 힘들고 고된 만큼 주님께 큰 상급이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 24:14-15)하신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눈에 흐르던 슬픔의 눈물, 성도들과의 이별로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 씻어주실 것입니다 (계21:4).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큼이라” (마5:11,12). 이민 목회자는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나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4. 쿨(Cool)한 목회자가 되자!
좋게 이야기해서 쿨(Cool)한 목회자가 되자고 말씀드리지만 어떤 의미에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나쁜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는 조금은 나쁜남자의 이미지가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너무 잘해주는 남자, 쩔쩔매는 남자보다는 나쁜남자(여자를 조금은 거칠게 다루는 남자)에게 더 끌린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잘 못하였을 때는 과감하게 지적하고 잘못을 바로 고쳐 줄 수 있는 목회자, 어떨까요? 교회를 떠나려할 때 과감히 잘못됨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다른 교회에서 그런식으로 떠나 왔을 때 성도하나 늘어난다는 생각에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이 아닌 떠나보낸 사람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며 때로는 교회를 떠난 성도를 야단치고 다시 원 교회로 돌려보내며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목회자 말입니다.
이민교회 목회자는 붙잡아도 떠나는 사람을 쿨(Cool)하게 보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떠난다고 ‘너 잘되나 두고보자’식으로 보내지도 말고 구차하게 매달리지도 말고 진심으로 축복하고 정문으로 왔으니 정문으로 보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나갈 때는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예배시간에 교인들에게 인사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떠나라고 합니다. 들어 올 때보다 떠날 때가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어차피 성도는 우리의 개인소유나 나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분들이 아닌 나에게 일정시간동안 맡기어진 주님의 양이고 우리는 주님의 일을 맡은 일군인 것입니다.
“남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남자의 마음을”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서 혹시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올해에는 제발 제발 섬기는 교회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을 위해서 꾹 참고 또 참고 참아 주의 제단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목회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서 말입니다. 작은 교회가 이민사회의 보석인데 다 나가면 보석이 하나하나 없어 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회자를 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함께 우십니다. 이렇게 가사를 바꾸면 어떨까요 “[목사]를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목사]의 마음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 함께 이민교회를 세워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감당하는 이민교회 성도님들과 목회자님들 되시기를 기도하며 두서없이 글을 올려 봅니다.
최호섭 목사(뉴욕영락교회)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요즘 한국가요라는게 미국에 와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 많은 분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게다가 목회를 하다 보니 가요에 심취(?)할 기회와 시간도 없는 것이 모든 목회자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양일념의 바쁜 와중에 (?) 최근에 한국방송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대중가요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대중가요는 바이브와 장혜진이라는 가수들이 부른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가져간 그 여자, 한때는 내가정말 사랑했던 그 여자, 다 믿었었어 바보같이”라는 가사가 저의 마음에 깊이 아주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이 노래가 그것도 가요가 왜 목양일념에 정신없는 내 마음에 와 닿는가 하며 잠시 흔들림과 불안과 혼동에 빠져든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의 혼돈 후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옛사랑이 생각나서도 아니고 남녀의 이별이 슬퍼서도 아니고 경험 없는 어린 목사가 목회가 힘들어서도 아닌, 짧은 이민목회를 하면서 성도와 목회자의 사랑이 마치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남녀의 사랑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짧은 이민 목회(겸손의 표현이 아닌 정말로 짧은 목회임)를 하면서 그 짧은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성도들과의 이별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으로 찾아와서 함께 교회를 세우자던 분들, 이별의 말도 없이 얼마 없는 성도들 중 한 가정만 남기고 모두 데리고 나간 그 분(지금은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마치 앞서 소개한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 과거의 그 분들을 생각할 때 목회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배신감과 절망감 그리고 좌절감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교인들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하며 등을 돌리고 눈앞에서 까맣게 사라져 갈 때 그 마음이란 남녀의 이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가슴 아프고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전에 어느 집사님이 어떠한 이유로 교회를 떠나가겠다고 전화로 통보(?)할 때 그 집사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오랜 시간 전화를 붙잡고 달래도 보고 매달려도 보고 모든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은 교회를 떠나겠다고 이별을 결정하는 그 순간 문득 옛날에 첫 사랑과 이별할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지금 모시는 목사님의 한 교회에서 26년간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내가 겪은(는) 일들을 26년간 겪으시며 오늘까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목회를 해 오신 걸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 졌습니다.
오늘 내가 지난날 겪은 그리고 지금 겪는 그리고 미래에도 올 2009년에도 겪을(없기를 기도하지만) 성도와의 이별은 나 홀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민 목회자라면 함께 겪고 슬퍼하는 아픔일 것입니다. 동병상련의 차원에서 이민 목회를 하시는 동역자님들 그리고 감히(?) 이민 목회를 하려고 미국으로 오려하거나 아니면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님들에게 지면을 통해서 위로와 한 걸음 먼저 발을 디딘 자로써의 짧은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이민 목회로 부르심(Calling)이 있어야 한다.
모든 목회가 사명이 있어야 하지만 특별히 이민 목회는 다른 목회와는 달리 특별한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민 목회로의 부르심 없이 달려들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본인도 불행해지고 자신의 가정도 불행해지고 함께하는 교인들도 불행해 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 목회했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도 그냥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같은 마음으로 목회를 하면 되겠지 하면 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 한데로 이민 목회는 한국의 목회와는 다릅니다. 이민교회가 다르고 이민교회 성도들이 다르고 이민 목회자의 삶이 다릅니다.
최근에 이런 다르다는 평범하지만 특수한 진리를 간과하고 많은 이민교회 중 중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청빙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미 경험한데로 많은 경우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민교회가 다르고 성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는 인식만 가지고는 이민목회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민목회로의 진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민목회로 부르고 계신지 그 소명을 받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등록하면 시작할 수 있지만 진정한 목회는 목자장의 부르심이 없이는 시작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 예로 미국에 계신 많은 이민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위해 심부름꾼, 운전기사, 자동차 수리공, 법원통역, 자녀학교 통역, 픽업, 방과후학교 교사, 병원 간호조무사, 아파트 배관수리공, 목수, 등등 여기다 사모님들은 가사도우미에서 육아도우미 등 때로는 쌈짓돈까지 바쳐야하는 비상금 주머니까지의 역할 등, 한국의 목회자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며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도 마다않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은 바로 부르심입니다.(물론 이러한 일들을 다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바로서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제자가 되면 감사하지만 노래가사처럼 “모든 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가져간 그 [여자]”처럼 등지고 떠나 버리는 것이 이민목회입니다. 그래도 또 믿고 또 믿고 또 주고 또 주고 또 속아주고 또 속아주고 또 사랑해주고 또 사랑해주는 것이 이민 목회입니다.
최근에 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부자격자들에게 영주권 스폰서를 서 준 게 문제가 되어 이민국과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모든 절차와 심사를 철저하게 강화하였다는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돈을 받은 교회나 목회자도 정말로 한 둘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생각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서 불법인줄 알면서도 교회가 나라의 법을 어기는 도덕적 지탄까지도 감수하며 영주권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성도들은 영주권을 받는 즉시로 교회를 떠나버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 이것이 이민교회고 이것이 이민교회 성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이민목회는 이별이 다른 목회와는 남다르게 많습니다. 아마 오래 이민목회를 하신 분들께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가슴 아픈 이별로 새벽을 눈물로 적셨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그 눈물이 강을 이룬다고 말하실 것입니다. 그 아픈 이별가운데서도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상처가운데서도 다시 남겨진 양들을 돌아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슬러서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들로 나가는 목자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지 그리고 또 다른 준비된 이별 앞에 양을 지키고 나를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을 계속갈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 대답은 오직 부름심의 확신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양(Quantity-Hardware)이 아닌 질(Quality-Software)로
그러므로 이민 목회는 이러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특수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양(Quantity)가 아닌 질(Quality)로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닌 소프트웨어(Software) 중심의 목회로 수와 상관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양 무리들을 잘 양육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목회자에게 수적인 성장을 목회의 목표로 삼는다면 이민교회에서는 멀지 않아 곧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민교회의 80%는 소형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이 미자립 교회를 섬기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싸워가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자적인 성장이 목표라면 몇 년간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 이를 이루지 못할 경우 100명의 목회자중 80명이 넘는 목회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괴감과 패배감 그리고 실망감에 사로잡혀 상처받고 힘들어하거나 이민목회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민목회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민목회는 양이 아니고 질입니다.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목회도 양이 아니고 질이었듯이, 바울의 목회도 양이 아니고 질이었듯이 우리의 목회도 질(Quality)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미국교회들 중에서도 하드웨어를 추구한 교회들은 건물 모게지와 새로 지은 교회건물과 교육관등의 건축비용을 지불하지 못하여 은행으로부터 차압을 당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에 나왔었습니다. 이것은 양을 추구한 잘못된 목회의 결과인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 그의 셋방에서 로마의 복음화를 시작하여 그의 셋방에서 전한복음을 통하여 로마의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교회는 대형화되고 화려해질 때 그 힘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이민교회가 살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웨어 중심의 목회이며 양이나 수가 아닌 질(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단 한 명의 교인을 데리고 평생을 바울처럼 텐트를 만들며 목회를 하더라도 바울과 같은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만 있다면 이민사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민목회자로 단 한 명만 데리고도 목회를 죽을 때 까지 그 한명과 한다는 자세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3. 주님의 위로와 상급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이민목회가 힘들고 고된 만큼 주님께 큰 상급이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 24:14-15)하신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눈에 흐르던 슬픔의 눈물, 성도들과의 이별로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 씻어주실 것입니다 (계21:4).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큼이라” (마5:11,12). 이민 목회자는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나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4. 쿨(Cool)한 목회자가 되자!
좋게 이야기해서 쿨(Cool)한 목회자가 되자고 말씀드리지만 어떤 의미에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나쁜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는 조금은 나쁜남자의 이미지가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너무 잘해주는 남자, 쩔쩔매는 남자보다는 나쁜남자(여자를 조금은 거칠게 다루는 남자)에게 더 끌린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잘 못하였을 때는 과감하게 지적하고 잘못을 바로 고쳐 줄 수 있는 목회자, 어떨까요? 교회를 떠나려할 때 과감히 잘못됨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다른 교회에서 그런식으로 떠나 왔을 때 성도하나 늘어난다는 생각에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이 아닌 떠나보낸 사람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며 때로는 교회를 떠난 성도를 야단치고 다시 원 교회로 돌려보내며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목회자 말입니다.
이민교회 목회자는 붙잡아도 떠나는 사람을 쿨(Cool)하게 보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떠난다고 ‘너 잘되나 두고보자’식으로 보내지도 말고 구차하게 매달리지도 말고 진심으로 축복하고 정문으로 왔으니 정문으로 보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나갈 때는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예배시간에 교인들에게 인사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떠나라고 합니다. 들어 올 때보다 떠날 때가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어차피 성도는 우리의 개인소유나 나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분들이 아닌 나에게 일정시간동안 맡기어진 주님의 양이고 우리는 주님의 일을 맡은 일군인 것입니다.
“남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남자의 마음을”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서 혹시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올해에는 제발 제발 섬기는 교회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을 위해서 꾹 참고 또 참고 참아 주의 제단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목회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서 말입니다. 작은 교회가 이민사회의 보석인데 다 나가면 보석이 하나하나 없어 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회자를 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함께 우십니다. 이렇게 가사를 바꾸면 어떨까요 “[목사]를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목사]의 마음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 함께 이민교회를 세워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감당하는 이민교회 성도님들과 목회자님들 되시기를 기도하며 두서없이 글을 올려 봅니다.
최호섭 목사(뉴욕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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