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달 특집 ①] 환상의 팀웍 김기호 목사와 김선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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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9-04-0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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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근이는 태어난 후 한달만에 황달로 열이 나고 뇌성마비까지 악화가 되어 장애인이 되었다. 부모는 외아들인 선근이가 7살이 되던 해 아들을 위해 장애인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인 미국으로 왔다.
어릴때 미국에 왔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어려웠던 선근이의 모습은 남아있다. 청년이 된 선근이는 어릴때의 아픈기억을 떠 올리며 "한국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때리고 놀리는등 육체적인 폭력과 함께 언어적인 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선근이에게는 미국도 천국은 아니었다. 장애인에 대한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교묘한 언어적인 폭력은 존재했다. 그래서 선근이는 장애를 극복하고 스스로 서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지속적으로 공부를 했다. 김선근 전도사(Sun Kim, 34세)는 나약칼리지를 거쳐 ATS를 오는 5월 졸업한다. 11년이나 걸린 긴 과정이었지만 김 전도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는 김 전도사는 졸업후 2년이 지나면 RCA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다.
김기호 목사와 김선근 전도사
김 전도사에게 목회를 세워준 사람은 주양장로교회 김기호 목사이다. 5년전 김 전도사는 김기호 목사에게 제자훈련을 받다가 김 목사의 목회비전과 인격에 푹 빠져 같이 사역을 하게 됐다.
김 전도사는 현재 주양장로교회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다. 김기호 목사는 "김 전도사에게는 열정과 함께 깊은 영성이 있다. 육체적으로 연약함이 있지만 깊은 영성때문에 아이들이 잘 따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언뜻 보기에는 무리해 보이는 큰 비전을 김 전도사에게 제시했다. 김 목사는 "장애인 목회자로서 장애인들을 위한 목회가 아니라 일반인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권유했다.
또 "장애인이라는 연약함을 열정으로 극복하고 신실함과 순수함,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일반목회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도 김 목사의 뜻에 순종했다.
김기호 목사는 역설적으로 장애인 목회자의 강점을 설명하며 "요즘 사람들은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히려 장애인 목회자가 설교를 할때 귀를 열고 집중하며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김선근 전도사
김기호 목사가 김 전도사에게 목회의 눈을 열어 주었다면 어린 선근이의 신앙을 세워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김 전도사는 "목사의 딸이었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성경공부를 시켰더. 또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목사와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늘 말해 나의 신앙과 앞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육신의 어머니이자 신앙의 어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꼭 김 전도사를 데리고 새벽기도를 나갔다. 김 전도사는 "눈이 많이 온날 평소보다 더 일찍 나를 나를 깨워서 목사님이 편하게 교회에 들어갈수 있도록 눈을 치웠다"고 기억했다.
2001년, 김 전도사의 어머니는 소천했다. 정비소에 맡긴 차를 찾아오면서 둘은 잠시 멈추고 피자를 먹었다. 그때 어머니는 예언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 내가 떠나면 부모는 없지만 내가 한 기도를 통해 너는 그 열매를 따먹을 것이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자동차 사고로 소천했다.
장애를 극복하라
장애인 목회자로서 장애인에게 무슨 조언을 할수 있을까? 김선근 전도사는 "장애인들도 삶의 포커스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장애인을 만들었는지 궁금해 할수도 있지만 일반인과 똑 같이 사랑하시고 필요하니 만드셨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비장애인에게 "예수님 말씀중에 달란트 비유가 있다. 비록 나는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는 많지 않지만 가진것을 다 드렸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을 보면서 달란트가 더 많은 일반인들은 더 많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돌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들도 할일을 찾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이 많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엄마의 꿈을 통해 성장해 왔다. 장애인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에게 희망 소망 사랑을 주면 비록 육체적으로 연약하지만 사명을 잘 감당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근 전도사의 앞으로의 계획은 '팀 미니스트리'이다. 김 전도사는 "나는 설교와 교인 케어링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어릴때 미국에 왔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어려웠던 선근이의 모습은 남아있다. 청년이 된 선근이는 어릴때의 아픈기억을 떠 올리며 "한국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때리고 놀리는등 육체적인 폭력과 함께 언어적인 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선근이에게는 미국도 천국은 아니었다. 장애인에 대한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교묘한 언어적인 폭력은 존재했다. 그래서 선근이는 장애를 극복하고 스스로 서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지속적으로 공부를 했다. 김선근 전도사(Sun Kim, 34세)는 나약칼리지를 거쳐 ATS를 오는 5월 졸업한다. 11년이나 걸린 긴 과정이었지만 김 전도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는 김 전도사는 졸업후 2년이 지나면 RCA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다.
김기호 목사와 김선근 전도사
김 전도사에게 목회를 세워준 사람은 주양장로교회 김기호 목사이다. 5년전 김 전도사는 김기호 목사에게 제자훈련을 받다가 김 목사의 목회비전과 인격에 푹 빠져 같이 사역을 하게 됐다.
김 전도사는 현재 주양장로교회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다. 김기호 목사는 "김 전도사에게는 열정과 함께 깊은 영성이 있다. 육체적으로 연약함이 있지만 깊은 영성때문에 아이들이 잘 따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언뜻 보기에는 무리해 보이는 큰 비전을 김 전도사에게 제시했다. 김 목사는 "장애인 목회자로서 장애인들을 위한 목회가 아니라 일반인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권유했다.
또 "장애인이라는 연약함을 열정으로 극복하고 신실함과 순수함,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일반목회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도 김 목사의 뜻에 순종했다.
김기호 목사는 역설적으로 장애인 목회자의 강점을 설명하며 "요즘 사람들은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히려 장애인 목회자가 설교를 할때 귀를 열고 집중하며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김선근 전도사
김기호 목사가 김 전도사에게 목회의 눈을 열어 주었다면 어린 선근이의 신앙을 세워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김 전도사는 "목사의 딸이었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성경공부를 시켰더. 또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목사와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늘 말해 나의 신앙과 앞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육신의 어머니이자 신앙의 어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꼭 김 전도사를 데리고 새벽기도를 나갔다. 김 전도사는 "눈이 많이 온날 평소보다 더 일찍 나를 나를 깨워서 목사님이 편하게 교회에 들어갈수 있도록 눈을 치웠다"고 기억했다.
2001년, 김 전도사의 어머니는 소천했다. 정비소에 맡긴 차를 찾아오면서 둘은 잠시 멈추고 피자를 먹었다. 그때 어머니는 예언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 내가 떠나면 부모는 없지만 내가 한 기도를 통해 너는 그 열매를 따먹을 것이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자동차 사고로 소천했다.
장애를 극복하라
장애인 목회자로서 장애인에게 무슨 조언을 할수 있을까? 김선근 전도사는 "장애인들도 삶의 포커스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장애인을 만들었는지 궁금해 할수도 있지만 일반인과 똑 같이 사랑하시고 필요하니 만드셨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비장애인에게 "예수님 말씀중에 달란트 비유가 있다. 비록 나는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는 많지 않지만 가진것을 다 드렸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을 보면서 달란트가 더 많은 일반인들은 더 많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돌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들도 할일을 찾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이 많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엄마의 꿈을 통해 성장해 왔다. 장애인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에게 희망 소망 사랑을 주면 비록 육체적으로 연약하지만 사명을 잘 감당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근 전도사의 앞으로의 계획은 '팀 미니스트리'이다. 김 전도사는 "나는 설교와 교인 케어링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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